아침이었다. 전화벨 소리는 자명종과 거의 동시에 울려대었다. 아침상에 조간 신문을 펼쳐놓고 읽던 아버지가 그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는 굳은 목소리로 짧은 대답만을 반복하다 전화를 끊고, 가장 먼저 엄마의 다리를 굽어보았다. 엄마는 절뚝거리며 부엌으로 걸어가다 말고 의아한 눈으로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어젯밤에 죽었대. 비가 그렇게 오는데 술은 잔뜩 마시고 빨간불에 길을 건넜대. 아버지의 눈두덩이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빨간불에 길을 건넜대, 하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엄마는 두 다리로는 버티기 어려운 몸을 애써 벽에 기댄채 아무 말이 없었다. 빨간불에 그리고 외삼촌, 나는 어젯밤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외삼촌의 고등학교 친구였던 아버지는 눈을 감고 기어이, 기어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엄마는 결코 아무런 말도 없었다.
아버지가 검은 양복을 꺼내입고 집을 나설 때 조차 엄마는 말이 없었다. 이제는 어긋나버린 것이 익숙한 한쪽 다리를 낯설게 짚은 채 표정없이 앉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지켜보았다. 엄마의 눈앞에 유년시절이 조용히 맴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는 새에 오후가 되었다. 그 날은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햇빛을 가장 많이 받는 거실 쪽 넓은 창이 마치 불투명 유리로 이루어진 것 같았다. 미동없이 앉아있던 엄마가 깊숙한 곳에 넣어두고 한동안 꺼내보지 않았던 낡은 앨범을 들고 와 거실 바닥에 펼쳤다. 첫 장에 나란히 표정이 굳은 남매가 교복을 입고 있었다. 많이 추웠던 날에 찍을 사진 같았다.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굳은 표정의 여자애가 꽃다발 하나를 건성으로 안고 있었다. 조금 더 키가 큰 남자애의 눈동자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엄마가 그 사진을 들여다보는 모습! 에서 그들의 아주 어렸던 날 있었던 사고의 모습을 목격했다. 내가 그만큼 어릴때 아버지가 벌개진 눈으로 내게 해준 이야기였다.
엄마는 여섯 살이었고, 아버지는 그때의 엄마는 지금처럼 늘 표정이 죽어있지 않았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어린 남매는 골목을 쏘다니며, 진흙으로 장난을 치며 놀았다고 했다. 여덟살 먹은 외삼촌은 엄마의 손을 이끌고 큰길로 큰길로 계속해서 나갔고 길다란 횡단보도 앞까지 가게 되었다. 초록불이 켜지면 손을 번쩍 들고 건너는 거야, 했던 외삼촌은 엄마의 손을 잡고 기세등등하게 왼손을 번쩍 쳐들고 길을 건넜지만 결국 그 둘은 빠르게 달려오던 붉은 자동차에 치이고 말았다. 빨간불이 켜졌을 때 건넜던 것이다. 그 일을 두고 가족들은 두고두고 외삼촌을 탓했다. 여섯 살 먹은 여자애는 건강했던 다리 하나를 잃었고 남자애는 웃음을 잃었다. 그것은 가족 전체의 표정을 박제품처럼 까마득히 죽어있는 듯이 만들어놓았을 만큼 큰 일이었다. 엄마는 그 이후로 외삼촌과? ?제대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았다고 했다. 외삼촌이 정도가 심한 적록색맹이라는 사실을 그 후에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비 오는 날을 싫어했다. 온 창문을 꽝꽝 닫아버린 채 이불을 휘감고 앓는 듯이 누워있었다. 비는 엄마의 아픈 기억만을 상기시키는 듯했다. 목발 하나를 언제나 곁에 끼고 살아야 했던 엄마는 여고생이었던 시절에 비 오는 날이면 금방이라도 땅 속에 꺼져버릴 듯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었다고 했다. 한 손에 목발, 한 손에 우산을 들고 갸우뚱거리며 젖은 땅을 걸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고 그럴때면 엄마는 동화 속에 나오는 앨리스의 토끼굴 하나가 눈앞에 나타나 주기를 바랐다. 마음대로 걷고 뛸 수 있는 다리 하나를, 새롭게 선물받는 세계로 가고 싶었다고, 엄마는 언젠가 눈물을 흘리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했다.
엄마에게 외삼촌의 죽음이 어떤 의미로 다가가 있는지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두컴컴한 대낮이 말없이 흘러갔다. 몇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받으려 하는 나를 엄마가 조용히 저지했다. 혼란스러운 한낮이었다. 말없이 앉아 있던 엄마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절뚝대며 부엌으로 갔다. 엄마는 비닐봉투 안에 가득 들은 붕어밥을 가지고 나왔다. 습관처럼 어항 속 네 마리의 붉은 금붕어에게 밥을 주는 엄마가 너무도 생경했다. 매일 붕어 밥을 주는 신간을 잊지 않고 있었다. 엄마에게 외삼촌이 죽었다는 날 역시 그저 평범한 일상일 뿐인 것인지 의아했다. 어항으로 작은 알갱이들이 퍼지고 네 마리의 금붕어가 순식간에 모여들어 입을 뻐끔거렸다.
저녁이 되자 지친 얼굴의 아버지가 돌아왔다. 구식 넥타이가 약간 풀어져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의 얼굴이 아닌, 다리를 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친오빠야. 당신 친오빠 죽었다는 날까지 그러면 안되지. 결국 저도 빨간불에 길 건너다 죽었어. 불쌍하기도 한데, 왜 그렇게 어리석은지……. 엄마는 말없이 방에 들어갔다.
이미 외삼촌의 존재는 아주 오래 전에 엄마에게서 지워져 버린 듯했다. 엄마는 붉은 빛을 띄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간에 피하려 했었다. 집 안에 붉은 빛을 띄는 물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 가지, 네 마리의 붉은 금붕어 빼고는. 의아스럽게도 엄마는 그 붉은 금붕어 네 마리는 아주 아꼈다.
그 날은 엄마의 일상에 그다지 큰 제약을 주지 않고 그렇게 지나는 듯했다. 나는 외삼촌이 죽었다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 생각하며 시계를 보았다. 열두시가 가까워 오고 있었다. 무심코 어항을 보았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붉은 금붕어 네 마리가 일제히 허옇게 배를 위로한 채 둥둥 떠올라 죽어 있었다. 어항은 그렇게 그 모습 그대로 정지되어 있었다. 더 이상 물도 붕어도 흘러가지 않는 채로.
자정 부렵이었다. 하루가 꼬박 지나고서야 엄마는 외삼촌의 죽음을 몸으로 깨닫게 된 것일까. 엄마는 조용히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붕어들이 죽어서 우는 것인지, 더 이상 세상에 없는 외삼촌을 생각해서 우는 것인지 잘은 알 수 없었다.
붕어들은 왜 갑자기 죽은 것일까. 어항의 물조차 더 이상 옅은 붉은빛을 띄지 않았다. 이제 정말 집 안에 엄마의 기억을 환기시킬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날은 하루종일 비가 오고 어두컴컴하고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었다.
첫댓글 박민정! 너의 작품이 여기에 올라왔다.ㅋ 웃긴다.ㅋ 박민정은 중앙대 문창과에 재학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