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4.
오래 전(2000년-2007년) 꾸르실료 봉사를 할 때 선배 봉사자들이
“카타니나는 기도를 많이 하니 주님이 응답해 주시나 봐요” 하곤 했다.
젊은 나이에 연거푸 3선에 당선 되는 남편을 두고 한 말 인듯하다.
그 때 나는 속으로 ‘기도는 무슨 기도…’
기도생활이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나에게 주어진 상황들이 너무 버거워서 시작한 꾸르실료 봉사자였다.
시작기도 할 때마다 울고, 양팔기도 하면서 울고…, 왜 그리 울기만 했는지.
시간들 속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나의 지각 능력은 알츠하이머인가 싶을 정도로 무디어져서 어떤 펀치에도 별 반응이 없는 이즈음.
-지난 7월 홍콩서 대만으로 직장을 옮긴 작은 아들이 대만으로 입국하여 격리할 때였다. 페이스 톡으로 보는 얼굴이 온통 붉은 반점으로 부어 있었다.
홍콩서 학위 받고 연구원으로 지낸 5년 동안, 본인이 받는 연구비로는 홍콩서 가족과 함께 지낼 수 없어서 홀로 지내며, 봉급 반은 한국의 가족들에게 보내고, 연구소에서 먹고 자는 생활을 하던 아들이었다.
간혹 “오늘은 빨래도 할 겸 민박집이어요.”할 때마다 가슴이 울컥 하였는데.
이번 격리하면서 보는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어미의 기도가 부족했나?, 어미의 기도가?’
아들에게 “남들처럼 편하게 살 수는 없을까? 너무 마음이 아프다”라고 했더니
아들은 “어머니, 전 이제 6부 능선을 넘고 있어요. 제 삶에 만족하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한다.
아, 그래그래 우리 작은아들!
-남편의 2018년 도지사 선거 시 재판 결과가? 항소심에도.
암담하다. 형을 받는 것은 괜찮은데 보존 받은 선거 비용을 토해 내야 한다. 우리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돈이다.
‘기도 부족인가?’
서로 말은 안하지만 남편의 울화증이 심 한 듯하다.
우린 매일 북한산 주변을 걷고 또 걷기만 한다.
모처럼 년 말에는 문우교우님들하고 합덕, 신리, 공세리 성지를 다녀왔다.
그리고 새해 첫 날에는 동네에서 해맞이를 하고 우이령길을 걸었다.
어제는 무의도 둘레길, 실미도, 소무의도 둘레길을 뚜벅뚜벅 걸었다(연일 만보기의 숫자가 2만보 이다).
처음으로 가본 실미도, 해 그름 소무의도의 정경…,
계속 “오늘 참 잘 왔다”는 소리를 연발했다.
많이 힐링 받는 하루였다.
그래그래 조금씩, 조금씩 주어진 것들 받아들이고, 헤쳐 나갈 힘을 길러 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