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
“올해는 중국시장 공략 원년…
세계 최고 피자체인으로 도약하겠다”
출처 : 여성조선 3월호
이탈리아 나폴리 지방의 서민음식에서 출발한 피자는 이제 세계 어디를 가도 만날 수 있는 글로벌 음식이다. 발효된 밀가루 반죽(도우)에 갖은 재료(토핑)를 올려 화덕에서 구워 먹는 이 음식이 오늘날 세계인의 사랑을 받게 된 것은 18세기 미국으로 건너간 이탈리아 이민자들에게서 비롯됐다. 화덕 대신 전기오븐에서 굽는 미국식으로 바뀌면서 피자는 오늘날 글로벌 음식이 된 것이다. 그런 피자가 국내에 소개된 것은 1980년대 중반. 글로벌 피자체인 피자헛, 도미노피자 등의 파상공세가 계속 됐지만 두 업체는 현재 한국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는 토종 피자체인 미스터피자 때문이다. 1990년 이화여대 앞 이대점에서 시작한 미스터피자는 창립 22년이 지난 지금 국내는 물론 중국, 미국, 베트남에서 한국 토종 브랜드의 저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피자 하나를 만들더라도 장인의 혼을 집어넣는다는 정우현 회장을 지난 2월9일 서울 방배동 본사 사옥에서 만나 미스터피자의 성공 비결을 들어봤다.
“2010년 9월 마지막 날 한 뭉치의 서류가 도착했다. 일본에서 날아온 미스터피자 상표권 등록증이었다. 1996년 이후부터 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에 상표권을 등록할 수 있었지만 일본에서만큼은 제외돼 있었다. (중략) 마침내 9월30일 일본 미스터피자 상표권을 우리가 취득함으로써 미스터피자는 완전한 대한민국 순수 토종 브랜드가 됐다. 언론에서는 이를 두고 ‘미스터피자, 20년 만에 日(일) 원조 삼키다’란 제목으로 대서특필했다. (중략) 그렇게 미스터피자는 한국으로 들어왔고 20년이 지난 이제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된 것이다.”(자서전 <나는 꾼이다> 중에서)
정우현 미스터피자 회장은 국내 외식업계에서 신화적인 인물로 통한다. 특별한 경험 없이 불굴의 정신 하나만으로 외식업에 뛰어들어 18년 만에 다국적 피자체인을 따돌리고 국내 1위 피자체인에 오르더니 2년 후인 만 20년째 되는 해에는 상표권 전체를 통째로 사들여 미스터피자를 우리나라 대표 피자 브랜드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로열티 받는 국내 유일 피자브랜드
미스터피자는 토종 외식 브랜드도 얼마든지 해외 유명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며 해외 어디에 내놓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지금도 써나가고 있다. 지금까지 선보인 외식사업은 해외 유명 브랜드를 국내 대기업이 들여와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피자, 햄버거를 비롯해 패밀리레스토랑 모두가 이런 과정을 거쳐왔다. 이런 구조 속에서 중견기업이 독창적인 브랜드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글로벌 기업과 국내 대기업이라는 ‘이중 벽’을 모두 뚫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그러나 미스터피자는 이를 보란 듯이 해냈다.
정 회장은 지난 1990년 1호점인 이대점을 설립하면서 외식체인 사업을 시작했다.
“1989년 미스터피자 재팬의 호소카와 요시키 사장을 만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하기 직전 태어나 처음 피자를 먹어봤는데 순간 ‘지구촌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먹거리 중에서 유행을 타지 않고 영원히 살아남을 수 있는 아이템이야말로 피자다’라는 생각이 단번에 들었어요. 그리고 일본에 가서 미스터피자를 처음 먹어봤는데 저 스스로가 ‘야, 정우현! 이 보물을 한국에 가져가서 성공시키지 못한다면 너는 한강에 빠져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확신이 차더군요. 몇 해 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프랑스 석학 자크 아탈리(Jacques Attali)도 그러더군요. 빵(도우) 위에 자기가 원하는 것이면 뭐든지 올려 구워 먹을 수 있는 피자야말로 지구촌 공통의 음식이라고. 그는 문화의 흐름을 정확히 꿰뚫어 본 겁니다.”
그렇게 한국에 들여온 정 회장은 6년 만에 미스터피자 재팬으로부터 판권을 인수한 뒤 일본을 제외한 전 세계 상품등록을 마쳤다. 1999년 100호점(대학로점), 2004년 200호점(영등포점), 2007년 300호점(제주중앙점)으로 사세를 키우더니 2008년 12월에는 제주도 서귀포에 350번째 점포를 개설하면서 매장수로 국내 1위에 올라섰다. 현재 미스터피자 체인점은 400개를 돌파했으며 매출액 면에서도 동종 업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 정우현 회장은 직원과의 소통을 강조하는 CEO다. 사진은 지난해 종무식 모습.
300% 제조법으로 국내 1위 등극
그렇다면 비결은 무엇일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창업 이래 꾸준히 지켜온 ‘300% 원칙’이다. 정 회장은 초창기부터 △24시간 저온 숙성된 밀가루 반죽(도우)을 손으로 때리고 빙글빙글 돌려서 만드는 100% 수타 방식 △수작업으로 토핑을 얹는 100% 홈 메이드 방식 △기름 두른 팬이 아닌 석쇠에 구워내는 100% 스크린 방식을 고집했다. 때문에 미스터피자는 다른 피자에 비해 기름기가 적어 맛이 담백하다. 그래서 여성이 전체 고객 중 70~80%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미스터피자가 슬로건으로 ‘메이드 포 우먼(Made for woman)’을 내건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멋진 남자(미스터피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만든다는 이 슬로건으로 미스터피자는 단번에 여성 고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2007년부터는 한층 더 나아가 ‘러브 포 우먼(Love for woman)’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도 미스터피자는 국내 마케팅업계에서 여성마케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꼽힌다.
“해외 유명 피자들이 온풍기 속에 반죽을 넣어 인위적으로 발효시키는 단기 고온방식을 사용한 반면 우리는 24시간 저온 발효시킨 밀가루 반죽만을 사용합니다. 그래야 효소가 빵 속에서 살아있어요. 그리고 빵 맛이 나기 위해서는 단백질요소인 글루텐이 많아야 되는데 그게 어떻게 해야 생겨나느냐면, 빵을 두들겨 패야 해요. 바로 수타(手打)죠. 그래서 우리 빵이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피자는 미리 만들어 놓을 수가 없어요. 배달이든 매장이든 뭐든지, 주문이 와야 숙성된 생 도우를 꺼내 때리면서 저글링(도우를 공중으로 던지며 반죽을 펴는 행위)을 해요. 그러니 제가 우리 피자를 ‘핸드메이드 명품’이라고 자부할 수밖에요.”
최근 3~4년 동안 정 회장이 가장 역점을 두고 준비해온 사업은 해외 진출분야다. 그는 해외에 내다파는 피자를 현지에 맞게 계량화시키길 거부한다. 기름을 뺀 담백함과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국내 성공전략은 세계 어느 곳에 적용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다.
“흔히 중국음식이 대부분 기름기가 많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으레 느끼한 것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시죠? 아니에요. 저도 처음에는 그런 줄 알았어요. 그래서 우리가 만든 기름기 없는 수타 피자를 좋아할지 걱정스러웠죠. 알고 보니 중국은 워낙 넓은 대륙이라서 변방의 특산물을 황제께 바치려면 건조시키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재료로 음식을 만드니 기름이 필요할 수밖에요. 제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피자를 ‘패스트푸드’라고 부르는 건데 24시간 동안 숙성하는 우리 피자가 왜 패스트예요, 슬로푸드지. 단언컨대 우리가 만드는 피자는 한국인의 입맛에 맞춘 게 아니에요. 글로벌 푸드죠.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달나라에서 먹어도 우리 피자 맛은 다르지 않을 겁니다.”
2015년까지 중국 내 매장 1000개 개설
미스터피자는 1998년 중국에 법인을 세우고 해외시장 공략에 나섰다. 그리고 2000년 1월 베이징에 1호점 건국문점을 세웠다. 이후 베이징, 톈진 등지에 점포를 개설한 결과 2012년 1월 현재 중국 내 22개점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실적일 수 있다. 경쟁사인 피자헛, 도미노피자 등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점포수를 빠르게 늘리고 있는 지금 상황을 정 회장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에서 사업할 때도 회사를 세우고 6년 동안 우리가 세운 점포라고 해봐야 27개 직영점이 전부였어요. 당시 전국적으로 170개의 지점을 보유한 피자헛과 비교하면 매장 수, 매출액 모두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었죠. 그때도 저는 매장 수 확충보다는 내부 직원교육, 물류기지 확충 등 소프트웨어부터 만드는 게 순서라고 판단했어요. 중국도 마찬가지에요. 지난 12년이 우리에게는 준비시기였어요.”
정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중국시장 공략을 선언했다. 직원들에게 보낸 신년사를 통해 정 회장은 “지금까지 해외사업이 워밍업이었다면 이제부터는 본 게임”이라며 “올해가 해외에 미스터피자를 심는 원년으로 기록되도록 아직 진출하지 않은 나라에 속속 들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목표로 2015년 매장 1000개, 홍콩주식시장 상장, 중국 1위 피자체인을 내세웠다. 정 회장은 “우리가 회사를 코스닥에 상장시키고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해 자금을 모은 것도 중국에서 본격적인 승부를 걸어보기 위함”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실현가능한 목표라는 점을 들며 정 회장은 지난 2009년과 2010년 미스터피자가 중국 최고 권위의 음식평가 사이트인 다종디엔핑(大衆點評)이 뽑은 ‘소비자에게 가장 사랑받는 50개 음식점’에 선정된 것을 근거로 들었다.
“1호점인 베이징 건국문점이 문을 연지 4개월 만에 석간인 베이징완바오(北京晩報)가 베이징에 진출한 피자점 가운데 우리 피자 맛과 서비스가 제일 좋다는 평가를 한 건 예사로운 일이 아니에요. 톈진 체육중심점은 매년 이 신문이 우수피자점으로 선정해 인근지역 명소로 자리 잡았죠. 톈진에서는 우리 명성이 피자헛보다 높아요. 지금까지 저희가 ‘2등 전략’을 사용한 것은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였어요. 점포도 가급적 피자헛 근처에 마련한 것도 이런 전략차원에서였죠. 하지만 올해부터는 사정이 다릅니다. 한국에서 그런 것처럼 중국에서도 단번에 치고 올라가 역전시킬 겁니다.”
▲ 토핑 재료를 형상화시켜 지은 방배동 본사 ‘미피하우스’(왼쪽). 1990년 9월 이화여대 앞에 문을 연 1호점 커팅식. 사진 : 미스터피자 제공
200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문을 연 월셔점 역시 2009년부터 3년간 미국 음식 평가서 자갓(ZAGAT) 서베이에서 베스트 피자 스토어로 선정됐다. 이 여세를 몰아 정 회장은 올 1분기 중 LA 리틀도쿄에 2호점을 열 계획이다. 피자의 본고장 미국에서의 승부 역시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이외에 미스터피자는 베트남 하노이에 2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미스터피자가 맏형 격이라면 두 번째 그의 작품은 2006년부터 시작한 뷔페식 이탈리아 레스토랑 제시카키친이다. 현재 총 7개의 직영점과 1개의 가맹점을 보유하고 있는 제시카키친도 올해로 7년째 접어든 만큼 매장 수 확충에 시동을 건다는 계획이다. 정 회장은 지난해 커피&수제 머핀 전문점 마노핀도 사업영역에 추가시켰다. 마노핀은 지하철 역사 한 쪽에 위치한 마노핀 익스프레스매장과 미술작품을 숍 안에 전시한 갤러리 등 두 가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동대문 거상 출신 ‘사랑전도사’
정 회장은 종종 세계 최대 외식업체 얌 브랜즈(Yam brands Inc.)의 최고경영자 데이비드 노박 회장과 비교된다. KFC, 피자헛, 타코벨 등을 보유한 얌 브랜드를 이끌고 있는 노박 회장은 백과사전 외판원, 이름 없는 3류대학 출신이지만 특유의 신바람 경영으로 워런 버핏, 제프리 이멜트 등 미국 거대기업 경영자들에게 ‘최고의 CEO’라는 찬사를 받는 인물이다.
정 회장이 살아온 길도 이와 비슷하다. 대학 졸업과 군(ROTC) 전역 후 동대문시장의 섬유도매업체 천일상사에서 회사 경영을 시작한 그는 만 1년 만에 회사를 동대문시장 내 매출 1등으로 올려놓았다. 회사 초기부터 그는 직원들에게 “천일상사는 10명의 직원이 아니라 10명의 사장이 이끄는 회사”라는 점을 강조해 시장 내에서 큰 화제를 모았다. 그가 외식업으로 관심을 돌린 것도 천일상사의 매출이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어서였다.
미스터피자에서 CEO 외 또 다른 그의 공식 직함은 CLO(Chief Love Officer), 즉 사랑전도사다. 직원들의 월요병(Blue Monday)을 없애기 위해 월요일 출근시간을 1시간 늦춘 것이나 직원들과 모인 자리에서 명시(名詩)를 읽어주는 것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기 위해서다. 정 회장은 자신이 먼저 직원을 사랑으로 대해야 직원도 고객에게 사랑을 전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데이비드 노박의 “직원이 즐겁고 고객이 행복하면 회사가 성장한다”는 경영철학과 비슷한 의미다.
미스터피자의 사훈은 뜻밖에도 ‘신발을 정리하자’다. 창의, 혁신과 같은 거창한 게 아니다. 지극히 실천 가능한 과제다. 왜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업계 1위에 오르기 전까지 우리도 ‘초일류를 지향하자’는 사훈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저 자신도 어떻게 해야 초일류가 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사내 공모를 했죠. 그런데 실무부서에서 하는 말이 공모 한 달이 지났는데도 마땅한 게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직접 확인했어요. 순간 ‘신발을 정리하자’는 글귀가 딱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신발을 정리한다는 게 뭐겠어요. 순수한 마음에서 나와야 하는 호스피탈리티(봉사)의 본질 아니겠습니까. 목표를 이루는데 큰 일과 작은 일의 차이라는 게 뭐가 있겠어요. 가장 겸손하면서 고객을 배려하는 것, 하지 못할 헛구호 같은 사훈을 만들기보다는 실천 가능한 것부터 찾아보자는 게 제 생각이에요. 대신 절대로 쇼맨십으로 하지 말 것을 강조합니다.”
그가 경영에 예술을 가미시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 지난해 4월 미스터피자는 창립 21년 만에 방배동에 지하 5층, 지상 7층 규모의 사옥을 지었다. 이름은 미피하우스. 미피란 미스터피자의 줄임말이고 하우스는 현대 실용디자인의 원천인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따왔다. 그러면서 건물 곳곳에 미술작품을 배치했다. 소나무 작가 배병우의 사진작품부터 인도네시아 작가 토미 탕가라의 러브시리즈, 개구리작가 금중기의 개구리 시리즈까지 약 100여점의 작품들이 건물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직원들이 앉아서 대화하는 의자는 미국 출신의 작가 찰스 폴록이 만든 것이고 나무 탁자는 뉴질랜드 친환경 디자인 기업이 만든 ‘오클랜드 카우리’란 이름의 작품이다. 미스터피자, 마노핀 매장과 갤러리를 결합시킨 미피레또(미스터피자 레스토랑)와 마노핀 갤러리도 그 일환이다.
그는 토종 피자 브랜드라는 데 자부심이 대단하다.
“두산, 롯데, 해태 등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피자시장에 뛰어들었지만, 하나같이 실패로 끝난 걸 보면 외식산업은 단순히 돈을 많이 들인다고 성공하는 게 아니에요. 요즘 보면 외국에서 공부한 재벌 2, 3세들이 해외 유명 체인과 손잡고 국내에서 외식 프랜차이즈를 많이 하는데 그게 우리 국익에 어떤 도움이 되겠어요. 매년 이익의 5% 정도를 로열티 사용료로 내고 있는데 그게 국부유출이 아니고 뭐겠습니까. 이젠 우리 브랜드가 해외로 나갈 때에요. 한류열풍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게 뭐라고 보십니까. 바로 음식입니다.”
그는 얼마 전 미스터피자의 설립부터 오늘까지의 발자취를 기록한 자서전 <나는 꾼이다>(위즈덤하우스)를 펴냈다. 이 책에서 그는 인생을 피자에 비유한다면 천일상사를 세운 1974년부터 피자사업을 시작하기 직전인 1989년까지 15년을 밀가루를 반죽해 도우를 만드는 과정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1990년부터 지난해까지는 도우에 토핑을 올리는 시기다. 그리고 중국, 미국 시장 공략 준비를 끝마친 올해부터는 세계 최고 피자체인으로 도약하기 위해 오븐에 구워지는 시기다. 그렇게 만들어진 명품 피자 미스터피자의 맛은 과연 어떨까.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 정우현 회장은…
1948년 경남 하동 생. 72년 단국대 법정대를 졸업하고 74년 천일상사 상무, 대표 역임. 89년 한국미스터피자를 설립한 뒤 96년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사업을 책임질 아바론코리아를 세웠다. 99년부터 2000년까지 ROTC 10기 중앙회 회장과 2000년 사회복지법인 사랑의세계 회장을 역임했다.
/이코노미 플러스 송창섭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