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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21장
이삭의 출생, 블레셋 왕과 평화조약
(찬송 46장)
2024-1-24, 수
맥락과 의미
오늘 창세기 21장의 첫 장면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고 여종의 아들 이스마엘과 여종은 바란 광야에 거하게 된 이야기입니다. 거기서는 물이 없었는데 천사가 물을 줍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블레셋 사람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의 번성을 보고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은 이야기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언약 백성이 된 우리를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을 깨닫도록 이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1. 사라가 이삭을 낳고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쫓아냄(1-21절)
2. 블레셋 왕이 아브라함에게 평화조약을 제안(22-34절)
1. 사라가 이삭을 낳고 아브라함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쫓아냄(1-21절)
1) 이삭의 출생과 가족의 웃음(1-7절)
사라가 91세,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또 2절에도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하셔서 말씀하신대로 이루셨습니다.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아브라함은 4절에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이삭에게)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말씀대로 복을 주셨고, 아브라함도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가 뭡니까? 17절에 보면 하나님의 언약의 표시(증거)입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에는 세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첫째, 언약 당사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먼저 아브라함에게 헌신하셨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헌신했습니다.
둘째, 언약의 말이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이런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겠다. 자손이 번성하게 할 것이고, 땅을 네게 주겠다.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하겠다. 네가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 이에 대해 아브라함에게는 순종의 행동을 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셋째, 언약의 표시가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그 자손의 몸에 있는 할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 하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셨습니다. 그가 어디 가든지 함께 하시며 보호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도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찾아오셔서 아브라함을 격려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맺은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이 더욱 굳세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예를 들면 돈, 안정된 직장 등)을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의지할 위험이 있습니다. 미래가 확실하면 자기 미래를 의지하고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항상 어느 정도 불확실 속에 두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시며 나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실지는 미리 보여주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약속을 지키신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나를 믿고 따라 오너라.”고 말씀하십니다.
한편 아브라함에100살이 되도록 자녀가 없던 것과 같은 고난이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경우를 통해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아브라함도 헤맸지만 다시 말씀에 순종해서 믿음을 갖추었고 자녀를 낳았고 언약의 표시로써 할례를 행하지 않았느냐? 너희들도 아브라함처럼 그렇게 하라.”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할례를 행했습니다. 할례는 예수님에 의해 세례로 발전되었습니다(골 2:11,12). 우리 모두 믿음으로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다는 표시입니다.
우리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님의 깨끗하게 하심을 통해서 우리를 매일 새롭게 만들어 주십니다. 불안해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회개할 것을 회개하면서 순종합시다. 여기에 참된 복이 있습니다.
아이를 낳은 다음에 사라가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웃게 하시고 나를 듣는 자가 다 웃으리로다.”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이삭이라 지었습니다. 이삭(이-자아크)은 웃다(자아크)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1년 전쯤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아들을 낳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녀는 의심하면서 피식 웃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기쁨의 웃음을 웃고 있습니다. 그녀를 웃게 만드신 하나님의 일을 기억하며 많은 사람도 기뻐하며 웃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웃음을 주십니다. 언약을 신뢰하므로 하나님께서 참 웃음을 주실 때까지 신실하게 앞으로 나가기를 바랍니다.
2) 이스마엘의 추방(8-21절)
이삭이 젖을 뗄 때 집안에 큰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대개 3살 무렵에 젖을 뗐습니다. 이스마엘은 아마 17살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렸다.” 놀리는 것은 ‘웃다’ 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참 기쁨의 웃음이 아니라 조롱하는 웃음이었습니다.
이것을 보고서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아주 단도직입적으로 말합니다.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십시오.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10절). 이는 갈라디아서 4장 30절에 그대로 인용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무 괴로워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내보내라. 사라가 너에게 한 말을 들으라.” 사라가 화난 상태에서 그 말을 한 것은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의 내용은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의 내용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이 정식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정에 매여서 바른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입을 통해 당신의 뜻을 전달하셨고 확인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염려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습니다. “이스마엘도 번성하게 하겠다.”
아브라함은 약간의 양식을 주어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냈습니다. 그들은 바란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었고 가죽부대에 가져왔던 물이 거의 없었습니다. 바란 광야는 아브라함이 살던 곳 보다 남쪽입니다. 엄마와 아들은 목놓아 통곡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하갈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저기 있는 아이의 소리를 들으셨나니… 그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17,18절). 하나님의 천사가 하갈의 눈을 밝게 해 주어 샘물을 찾게 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이와 함께 계시매” 그는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그는 광야에 있으면서 활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집트 여인과 결혼하면서 언약 백성과 더 멀어졌습니다. 이스마엘의 어머니도, 그의 아내도 이집트 여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처럼 언약의 복에서 떠난 사람에게도 자손의 번성과 번영을 약속했습니다. 인류 70억의 인구가 그것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아들 딸 삼으셨는데, 우리를 더 돌보시지 않겠습니까?
불신자들의 많은 물질적 번성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우리에게 주신 영적 번성을 감사하도록 합시다. 아브라함과 이삭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그냥 땅 한 조각 소유하지 않고 나그네 생활을 했지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400년 후에 그 땅을 주실 것입니다.
2. 블레셋 왕이 아브라함에게 평화조약을 제안(22-34절)
두 번째 브엘세바 우물 이야기는 참 감동적입니다. 아브라함은 블레셋 사람이 사는 땅에 나그네로 살고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과 그 나라의 왕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을 아주 무시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습니다. 자기 아내 사라를 빼앗고 자기를 죽일까 봐 걱정이 되어서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인정합니다(22절). “당신이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계십니다. 그런즉 당신은 우리를 잘 대해 주십시오.”
그 땅의 주인이 이제 간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영적인 사실이 불신자의 눈으로 보기에도 그렇게 보였습니다.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100세에 아들을 낳는 기적과 아마도 아브라함의 재산이 점점 늘어 나는 것도 보았을 것입니다.
아비벨렉은 아브라함에게 자신과 자신의 후손과 평화의 언약을 맺자고 제안합니다(27,32절).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요청합니다.
첫째로, 앞으로 거짓되게 행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앞서 20장에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비벨렉을 죽이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비멜렉 가문에 여성들이 임신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아비멜렉 가문에 여성들이 임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고 아브라함이 복과 저주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거짓되게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이 자기와 후손들에게 선하게 행할 것을 맹세해 달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이 이방인은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인정하건 인정하지 않건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도 이 세상에서 복과 저주의 근원입니다. 세상이 우리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 때문에 복을 받기도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거짓과 불의를 행하면 애꿎게 세상이 우리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습니다. 우리가 사랑과 정의를 행하면 우리 때문에 세상이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을 입게 됩니다.
성도가 가진 것이 없고 불안정해 보여도 믿음대로 나아가면 성도를 무시하던 불신자들이 달라집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보통 이상의 무언가가 성도의 삶에 있다는 것을 압니다. 초자연적인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서 “우리 함께 평화조약을 맺읍시다” 하고 제안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님께서 주신 카리스마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왜 그것이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을까요? 우리가 포기해서 그렇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잡고 나아갑시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참된 능력과 번성을 경험할 것입니다.
아비멜렉이 머리를 숙이고 왔을 때, 그때서야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이 했던 나쁜 행동을 책망합니다. “당신의 종들은 왜 우리가 팠던 우물을 빼앗았습니까?”(25절). 성도는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참고 기다리면 정당하게 항의하고 바로잡을 기회가 옵니다.
두 사람은 평화의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화해의 표시로서 아비벨렉은 그 우물을 아브라함에게 돌려 주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새끼 양 일곱 마리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을 브엘세바로 불렀습니다.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브엘-우물, 세바-맹세).
33절에 “아브라함이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에셀나무는 생명과 번성을 상징합니다.
창세기 2장 8절과 9절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심는다는 뜻)하셨고 거기에 생명나무를 두셨습니다. 그 에덴동산의 풍성한 생명의 축복을 아브라함은 어느 정도 맛볼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면서 세상적인 풍요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영생의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경배할 것입니다.
34절 “그가 그 땅에 여러 날을 지냈더라.” “날”은 “1년”을 말하기도 합니다. 많은 해 동안 거기서 지냈습니다. 지낸다는 것은 23절에 “머문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나그네 생활한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땅이 없었지만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먼저 자녀를 주시고 번성케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 우물에 올 때마다 이 거룩한 나무의 그늘 아래에서 다시는 아내를 누이라고 말하면서 거짓이나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이렇게 바르게 신앙고백을 합시다. 우리의 삶이 그 증거가 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한 나라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브엘세바의 우물과 같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주실 것입니다.
그 언약을 실행하실 예수 그리스도께 믿음으로 간구합시다.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얻게 해주시도록 간구합시다. 우리가 식탁에서 먹을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립시다.
믿고 복종할 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늙은 나이에 자녀를 주셨습니다. 그에게는 땅 한 조각도 없었고 나그네로 남의 땅에 빌붙어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권능과 카리스마가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에게도 이 권세를 주셨습니다. 우리가 겪는 환난과 곤고를 두려워하지 맙시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친다 할지라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시편 3:5-6).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일어나서 달려가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에 빠지지 않게 도우십니다. 죄가 발견되는 순간마다 계속 회개합시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의롭다 인정받는 기쁨을 누립시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확신하는 가운데서 영적으로 번성하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시다.
1. 오늘 말씀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2. 오늘 말씀에서 주신 교훈은 무엇입니까? 3. 오늘 말씀에서 순종할 내용은 무엇입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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