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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자 표기가 Hsipaw인 탓에 시포로 많이 부르지만, 현지에서 여러 사람에게 확인한 발음은 시포와는 너무 거리가 멀고 띠보에 가까웠다. 현지음 우선 원칙에 따라 띠보라고 적는다. 띠보는 국제적으로 알려진 유적지나 명승지 따위는 없는 그냥 평범한 도시다. 사실 도시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규모가 작다. 그럼에도 이곳이 관광지로 알려진 것은 주변 소수 민족 마을을 방문하는 트레킹 덕분인 것 같다. 시내에는 여행사 간판도 몇 개 보이고 각 숙소에서도 트레킹을 주선(혹은 연결)하는데 성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인지 시끌벅쩍한 관광지와는 거리가 먼 조용한 동네다. 여행자를 봉으로 알고 달려드는 사람도 없고 외국인이라고 바가지를 씌우는 분위기도 아니다. 거리를 걷는 동안에 뭐를 사라거나 뭐를 타라거나 귀찮게 하는 사람도 없으니 설렁설렁 걸어다니기 좋아하는 우리에겐 딱이다. 이런 띠보가 맘에 들어서 무려 4일을 "별 볼일 없는" 이곳에서 보냈다. 투어 상품을 이용하지 않고 4일 내내 둘이서 걸어다니기만 했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첫날(12/19) 일정은 숙소에서 지도를 들고 나와 시장을 찾는 걸로 시작했다. 시장 구경은 항상 재미있지만 우리가 늦게 나온 탓일까, 시장이 한산했다. 구운 바나나를 사 먹고(200짯) 이 골목 저 골목 쏘다니다가 길가에서 서점을 발견했다. 헌책방인가? 정말 허름한 건물에 초라한 서점을 기웃거리다가 700짯짜리 작은 책을 한 권 샀다. 제목을 보고 미얀마 전래 동화라 생각했는데 나중에 사전을 찾아 확인해 보니 속담 해설서다. 페이지마다 성의있는 그림까지 들어있는 좋은 책인데 얼마나 읽을지는?
리틀 바간이라고 오래된 탑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는데 가볼까? 사실 리틀 바간은 바간이란 이름을 붙인 게 무색할 만큼 작은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리틀 바간이라고 갔더니 불탑이 서너 개 있더라는 식의 여행기는 사실이 아니다. 리틀 바간은 근처에 산재해 있는 몇 개의 불탑군을 총칭하는 말이고 불탑의 갯수를 합하면 수십 개는 족히 된다. 우리도 이날 놓친 탑들을 다음 날 온천을 다녀오면서 발견(?)하기도 했다. 부근에는 대나무 불상을 모시고 있는 커다란 타이 식 목조 사원도 있고 띠보를 수호한다는 낫 신당도 있다. (이날 어떤 절 입구에서 리틀 바간 가는 길을 물어보았더니 뒤쪽 골목을 가르쳐 주길래 돌아 나갔는데, 마지막 날 맘먹고 낫 신당을 찾아가 보니 그 절이 바로 낫 신당이었다.)
다음 목적지를 샨 왕궁으로 정하고 큰길로 나오는 중에 띠보에서 발견한 보물 Mrs. Popcorn's Garden을 만났다. 밖에 있는 간판을 보며 organic이면 유기농이란 뜻이잖아, 하면서 들여다 보니 뚱뚱한 아줌마가 들어오라고 부른다. 평범한 농가? 넒직하지만 화려하지는 않은 정원 안에 허름한 건물이 보이고, 초가 지붕으로 비가림(해가림)을 한 테이블이 몇 개, 뚱뚱한 아줌마가 미세스 팝콘일테고 일하는 사람이 서넛 보인다. 그런데 기대 이상으로 음식이 맛있다. 값도 저렴하고 사람들도 친절�. 볶음밥 1,500 샨국수 1,000 주스 1,000 커피 500. 유기농이든 아니든 이만한 가격에 이만한 음식을 이렇게 편안한 분위기에서 먹을 수 있으니 대만족이다. 그래서 다음날도 마지막 날도 여기에 와서 점심을 먹었는데, 옆지기님은 마지막 날에 먹은 샤슈카(라는 이스라엘 요리. 이번에 처음 알았다)가 특히 맛있었다며 귀국하자마자 비슷한 걸 만들어 먹기도 했다.
(음료와 함께 나온 저 튀김이 팝콘 아줌마의 어원이 아니었을까 짐작해 본다.)
(마지막 날 먹은 샤슈카)
다음 목적지는 샨 왕궁. 3시가 좀 넘은 시각에 도착해 보니 마침 매일 오후 3시에 문을 연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왕궁이라고 하지만 사실 샨 족은 왕국을 건설한 적이 없다. 20여 부족(?) 중에서도 꽤 영향력이 있었던 가문이 1920년대에 지었다는 커다란 건물을 샨 팰리스란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데 자손 중의 한 사람은 독립 후에 샨주의 수도인 따웅지로 가서 지방정부에 참여햇다고 하고 그 동생이 이 집을 지키다가 군사정권의 박해를 받아 행방불명(사망) 되었다고 한다. 이 집도 폐쇄되었다가 최근에는 그의 조카딸인지 조카며느리인지 하는 여자분이 관리하고 있다는데, 샨족들의 다양한 정치적 포지션(무장 반군 세력도 여럿이라 한다)에 관해서도 지식이 없고 샨족 안에서 이 가문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도 아는 것이 없다 보니, 그 여자분의 장황한 (자기 가문 중심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오지는 않았다. 특히 5천짯짜리 지폐를 모금함에 직접 넣는 시범을 보여가며 도네이션을 요구할 때는 슬쩍 반감마저 들었다.
숙소에서 갖고 나온 지도에 noodle factory가 가까이 보이길래 찾아가 보니 공장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작은 건물에서 쌀국수를 만들고 있다. 우리가 이맘때쯤 올 걸 어찌 알았는데 5시에 방문하라고 적혀 있다.
공장 근처에 강변으로 나가는 길이 있다고 하길래 슬슬 걸어가 보았다. 강가에 조그맣게 모래톱이 형성되어 있는데 얼핏 허름하고 지저분한 모습이라 돌아나오려다가 좌우를 둘러보니, 헉 이럴 수가? 강변 일몰이 정말 멋졌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다음 날(12/20)은 지도에 나와 있는 온천을 가보기로 했다. 숙소 여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온천을 잘 모르는 눈치다. 그렇다면 hot spring이라고 써 있기는 하지만 유명한 관광지는 아닌 모양이다. 수영복도 챙겼는데 제대로 온천욕을 할 만한 곳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직원들은 큰길로만 가라고 했지만 가 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아가씨들의 말은 무시하고 우리는 철길 건너 샛길로 가보기로 했다. 철길을 건너가니 제법 큰 국수공장이 나타난다.
(꼬마가 일을 제법 잘한다. 기특하다고 해야 하나, 아동 노동력 착취라고 해야 하나. 이날은 일요일이었고 다음날엔 꼬마가 안 보인 걸로 미루어 학교도 안 보내고 일을 시키는 최악의 상황은 아닌 듯하다.))
듬성듬성 콘크리트 포장이 진행 중인 골목길을 따라 서쪽으로 걸어가니 벌판이 나온다. 손수레 하나도 다니기 어려울 좁은 길이 있는데 가다보면 가끔은 물길로 바뀌기도 한다. 숙소 아가씨들이 외국인에게 권할 만한 길이 아니긴 하다. 그렇지만 뭐, 우린 농사꾼이니 이 정도야 문제가 안 된다.. 무엇을 심는지 들여다 보기도 하고 일하는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면 인사도 하면서 놀멘놀멘 걸어가다 보니 큰길이 나온다. 큰길로 100 미터 정도 가다가 오른쪽으로 온천 가는 길이 시작된다.
길가에 노점을 차린 샨 족 아주머니, 우리가 앉아 있어도 인사만 할 뿐(미얀마어 밍글라바에 해당하는 샨어는 마이쑹카) 베트남 음식 반쎄오 비슷한 걸 계속 만들면서 먹으라거나 사라는 말이 없다. 지나가는 관광객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가 보다. 마침 동네 아주머니 두 분이 와서 반쎄오 비슷한 걸 사길래 우리도 달라고 했다. 그 때 손님 아주머니 한 분이 손가락 두 개를 펼쳐 보인다. 아, 하나에 200짯이에요? 미얀마어로 물어보니 다시 손가락 세 개를 펼친다. 3개에 200짯이라는 얘기구나. 맞아요, 바디랭귀지가 통했다는 기쁨에 웃음꽃이 피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니 숫자를 가리키는 말이 태국어와 겹친다. 샨족이 타이족 계열이라고 듣기는 했지만 마이쑹카를 비롯해서 미리 배워 둔 몇 마디 인삿말은 태국어와 비슷한 점이 없었기에 그들의 입에서 태국말이 나올 줄은 짐작도 못했었는데 능쏭쌈씨가 귀에 쏙 들어온다. 아, 그거 나도 알아요. 능쏭쌈씨 하혹�� 내가 태국말로 숫자를 주워 섬기니 주인 아주머니도 반가워 하며 카오씹씹엣씹쏭 화답한다. 이씹삼씹씨씹하씹, 능러이쏭러이쌈러이 노랫말처럼 한 마디씩 주고받으며 바디랭귀지가 아니라 말이 통했다는 기쁨을 공유했다.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현지어를 조금씩 배워두는 것은 (실용적인 목적도 있지만) 이렇게 잔잔한 공감을 누리는 행운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시간 넘게 걸어가서 만난 온천은 생각보다도 초라했다. 그냥 따뜻한 물이 나오는 물 웅덩이 두 개, 그리고 끝이다. 어쩐지 오는 길에 외국인도 안 보이더라. 그래도 현지인들 여럿이 온천을 즐기고 있었다.
혹시나 하고 수영복을 챙겨왔지만 그냥 발만 담가 보고 말았다.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워 산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 봤지만 더 이상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는다. 그럼 이번에는 왼쪽 산 쪽으로 난 길로 해서 팝콘 가든으로 가 볼까? 순환 코스다. 이 길도 숙소 아가씨들이 비추한 길이지만 길 상태가 괜찮다. 중간에 건물이 없고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 고즈넉한 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걸어가니 리틀 바간이 나온다. 그런데 길이 헷갈린다. 알고보니 어제 봤던 그 유적이 아니었던 것. 리틀이라고 해서 우습게 봤었나, 어제 못 보았던 불탑군도 보이고 목조 사원도 보인다. 이 사원을 대나무 부처 사원과 혼동하는 바람에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고서야 팝콘 가든을 찾아 갔다. 늦은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그늘 아래에서 퍼져 있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어제 저녁은 숙소 근처에 있는 라운아웅이란 식당에서 먹었는데 그다지 감명깊지 않아서 오늘은 다시 첫낳 저녁을 먹었던 골드로 갔다. 2인분에 2,200짯, 착한 가격이다.
(레드드래곤 호텔은 띠보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높은 건물이다. 직원들이 옥상 일출 일몰을 추천하기에 올라가 봤다.)
12월 21일, 오늘은 폭포를 목적지로 정했다. 폭포 아래 수영할 pool도 있다고 하길래 속는셈치고 또 수영복을 챙겼다. 어제 갔던 논둑길을 걸어서 큰길까지 갔는데 거기서부터 길을 헤맸다. 큰길로 나가서 온천 가는 방향으로 꺾었다가 왼쪽에 있는 묘지 사이로 들어가야 하는데, 어떤 현지인이 큰길을 따라 더 가라고 알려주는 바람에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10여 분을 가다가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시 물어보니 많이 지나왔단다. 돌아오면서 아이들에게 폭포를 물어보니 한 아이가 잉글릿 어쩌고 하면서 따라오라고 손짓을 한다. 캔유스피크 잉글리쉬? 노. 샨루 뾰땃라?(샨어 할 줄 알아?) 노. 바말루 뾰땃라? 예스. 폭포 가는 길이 어디냐니까. 마이 그랜파 잉글릿 어쩌구. 아이를 따라가니 할아버지가 우릴 맞는다. 아하, 저 할아버지가 영어를 하시는 구나. 영국의 식민지였던 탓인지 노인 중에 영어를 하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라오스 할아버지들은 불어를 했었지. 할아버지가 길을 잘 가르쳐 준 덕분에 (꼬마와 콤비플레이?) 더 헤매지 않고 공동묘지에 이르렀다. 어제 온천 가다가 본 거잖아. 중국인 묘지, 이슬람 묘지, 불교도 묘지가 따로 모여 있다. 산 비탈에 넓게 납골탑이 모여 있어서 멀리서 보면 아파트나 주택 지구 같다.
산비탈을 올라가니 정상 너머에 쓰레기 태우는 곳이 있고(냄새 나고 지저분하지만 그나마 이렇게 모아서 태우기라도 하니 길가에 막 버리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러고보니 띠보 거리는 몽유와나 뽀빠산보다 많이 깨끗하다. 물론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얘기), 꽤 넓어 보이는 벌판 넘어 저쪽 산비탈에 폭포가 보인다. 바나나 달린 것도 구경하고 사탕수수 가지도 꺾어가며 오토바이나 겨우 다닐 만한 들길을 천천히 걸어갔다. 가다가 길 가에 농가는 몇 채 있는데 음료수 파는 가게도 하나 없다. 역시 관광지로 가는 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나마 폭포를 보고 돌아가는 여행자 두어 팀과 엇갈리며 온천보다는 찾는 사람이 많음을 느낀다. 폭포 앞에도 서양인 커플이 앉아 있다. 그런데 저 커플 분위기를 보니(포도주를 다정하게 나눠 마시며...) 혹시 폭포 아래에서
프로포즈를 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때다. 흠흠.폭포는 멀리서 볼 때보다 더 크고 힘이 좋다. 이만하면 기꺼이 먼 길을 걸어 와서 보고 갈 만한 훌륭한 폭포다,
왔던 길을 되짚어 벌판을 건너고 산을 넘고 묘지를 지나 큰길로 나왔다. 옆지기님은 대형 트럭이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는 큰길을 피해 논길로 가고 싶어 했지만, 저 동네도 구경해야지 않겠냐면서 큰길로 들어섰다. 길을 따라 걷다가 손님이 많아 보이는 커다란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역시 새우 요리가 비싸다. 6천짯 새우 요리 포함해서 10,300짯) 조금 더 걸으니 길 오른쪽으로 스탠딩 붓다가 보이고 왼쪽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다. 껄로 가는 버스도 여기서 타는구나, 위치를 확인하고서 골목길을 돌아다니다가 모스크 앞에서 이름 모를 과자(?)를 사 먹었다.
숙소에서 내일 오후에 껄로로 가는 버스표를 구입함. 라시오-띠보-만달에이-껄로-냥쉐-따웅지로 가는 버스인데 껄로까지 가나 따웅지까지 가나 요금이 같다고 한다. 인당 15,500짯.
다음날 아침, 느즈막히 체크아웃을 하고 팝콘 가든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 가는 길에 이전에 놓쳤던 낫 신당을 물어물어 찾아가 보니 저번에 문앞까지 갔던 바로 그 절이다. 건물이 여러 채 있는 큰 사당이다. 여러 낫들을 모시고 있고 부처님도 있는데 다른 곳에 비하여 호랑이니 말이니 코끼리 같은 동물이 많이 보여 특이하다.. 그리고 복을 빌러 오는 신자들도 많이 보인다.
팝콘 가든에서 만족스러운 점심 식사를 하고 쉬면서 띠보에서의 마지막 여유를 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