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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안식일 개념
1. 월삭
하나님의 계명(율법=안약의 말씀)에서 요체가 되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입니다.(시50:5)
구약시대에는 특별히 선별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하여(레21:4) 매일 제사(상번제, 안식일 번제, 월삭 번제, 각종 절기 번제, 속죄제, 화목제, 낙헌제 등)를 드리는 일을 하였으며 신약시대에는 구원을 받는 모든 백성들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들이 되어서(히7:11-15, 벧전2:5-9) 신령한 제사(영적 제사=눈에는 보이지 않는 자들이 행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제사)를 하나님에게 드립니다.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사는 반드시 율법으로 엄격히 규정된 규례를 따라서 행하여야 하는 것이며 규례에 맞지 않는 제사를 행하는 제사장은 반드시 죽임을 당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규례를 따르지 않는 제사를 행하면 구약시대에는 제사장의 육신이 죽임을 당하였고(레16:2, 민3:10, 레10:1-2 등) 신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영적 제사장이므로 그 영혼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계20:11-15, 요일5:16 등)
하나님에게 드리는 제사규례에는 “제사 날짜”가 규정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날짜에 맞추어 제사를 행하여야 하며 날짜가 맞지 않는 제사를 하는 것은 하지 않은 것과 같아서 죄(불법)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모든 제사 날짜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가르치신 달력인 태양태음력(출12:1-2)으로 계산한 날짜를 따라서 지켜야 하는데 구약성경에는 월삭(月朔=태음력의 초하루=민28:11-15)을 지켰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태음력을 사용하였다는 것은 알 수가 있으나 그 모세가 사용하였던 역세의 자세한 역법(曆法=날짜를 계산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없으므로 오늘날 교회들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역세(달력)를 모르고 따라서 모세의 율법에서 규정한 각종 제사의 날짜들도 알지 못합니다.
안식교도들은 주장하기를 “신약성경에 사도교회가 월삭을 지켰다는 기록도 없으며 예수도 월삭을 지키라고 가르친 일이 없으므로 새 언약에서는 월삭이 폐하여 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그런 주장은 근거 없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영생 한다”(눅10:25-28)라고 하였으니 월삭을 지키라고 하였던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계명에서는 어느 한 가지의 율법만 폐하는 법이 없으며(마5:17-20) 율법을 폐하거나 변경할 때에는 모든 율법을 다 폐하거나(히7:18) 모든 율법을 변경하는 것입니다.(히7:11-12)
그리고 월삭은 안식일의 첫날을 알게 하는 매우 중요한 날입니다.
월삭이 없어지면 제7일안식일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바울도 골2:16절에서 교훈을 할 때에 “절기와 월삭과 안식일을 지키는 일로 인하여 폄론을 받지 말라”고 하였으며 갈4:10-11절에서도 “너희가 날(상번제)과 달(월삭)과 절기와 해(정월 초하루)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가르친 새 언약이 헛될까 염려된다.”라고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과 월삭과 절기는 항상 지키면 같이 지키고 폐하면 같이 폐하는 것이며 어느 한 가지만 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1). 월삭의 의미
①. 로쉬 호데쉬(Rosh Chodesh, “달(month)의 머리”의 의미)라고 하며, 유대력으로 매달 초하룻날을 기념하는 절기일이다.
하나님은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새로운 달력시스템을 주셨는데, 이는 그들이 더 이상 애굽의 달력에 따라 살지 않고 스스로 자신들의 시간을 컨트롤하며 사는 것을 의미하며, 애굽의 종살이에서 완전히 벗어남을 상징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노예들은 주인이 시키는대로 일해야 하며, 스스로 자기시간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출12:2) 이 달이 너희에게 달들의 시작이 될지니 곧 그것이 너희에게 한 해의 첫 달이 될지니라.
바벨론 탈출 후 월삭일은 산헤드린(유대인의 최고 의결기관)에 의하여 공표되는데, 초생달을 목격한 두 증인의 보고를 받고 공표하게 된다. 월삭일이 일단 공표되면, 산헤드린은 산 위에 불을 피워서 주변사람들이 월삭일임을 인지할 수 있게 하며, 이 불빛을 관찰한 주변도시마다 똑같이 그 도시의 산위에 불을 피우기 때문에, 월삭일 공표소식은 급속하게 전 지역으로 퍼져 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봉화(烽火)식 전달방법은 예루살렘 성전시대가 끝날 무렵 산헤드린에 의하여 폐지되었고, 직접 사람이 공표사실을 전달해 주는 새로운 방식으로 바뀌어서 4세기말까지 지속되었으며, 산헤드린 공회의 마지막 공회장이었던 힐렐2세(Hillel II)가 천문학적 “계산”에 근거한 “확정” 월삭 달력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즉, 매월 월삭일이 천문학적 계산에 근거하여 미리 확정되어 버림) 따라서 산헤드린이 해체된 이후에도 유대인들은 이 체제에 근거하여 계속해서 월삭일을 지킬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월삭일은 단순히 매달의 첫째 날을 의미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민수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에 있습니다
(민28:11, 15) 너희는 너희의 달들이 시작되는 때에 어린 수소 두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되고 점 없는 어린양 일곱 마리로 {주}께 번제 헌물을 드리되 15. 또 항상 드리는 번제 헌물과 그것의 음료 헌물 외에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죄 헌물로 {주}께 드릴 것이니라.
의외이지만, 윗 구절처럼 월삭일날 “죄헌물”을 드리라는 명령이 있다. 월삭일날 (매일 드리는 세번의 기도시간외에) 특별히 추가해서 드리는 무사프(Musaf)라는 기도시간이 있다. 이 기도시간에, 월삭일을 “속죄의 시간”으로 언급한다. 월삭일은 “다시 새롭게 되는 것”(renewing)과 “다시 태어나는 것”(rebirth)를 의미합니다. 달이 초승달로 태어나서 새롭게 다시 시작하듯이, 우리의 영육간의 삶도 심기일전하여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하는 것입니다.
월삭과 여성과는 특별한 관련이 있습니다. 유대전승에 의하면, 모세가 산에 올라간 후 내려오기를 지체하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던 사건에 여성들만은 참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월삭에 노동을 면제받는 보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통은 공식화되어 이제는 슐한 아루흐(Shuchan Aruch)를 비롯한 유대인의 법문서에 명문화까지 되어 있습니다.
혹자는 여성들이 월삭일에 노동을 하지 않는 이유를 달리 설명하기도 한다. 즉, 월삭일은 여성들의 월경주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달이 매달 자신을 새롭게 하듯, 여성들도 매달 자신을 새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②. 비르카트 하-호데쉬(Birkat Ha-Chodesh, “월삭을 축복함”): 월삭을 앞둔 바로 직전의 안식일에는 회당에서 비르카트 하 호데쉬 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이 기도시간에 새달을 축복하며 소원성취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또, 월삭을 앞둔 바로 직전의 안식일은 샤밧 메바르힘(Shabbat Mevarchim, “축복의 안식일”)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여성들만으로 구성되는 로쉬 호데쉬 모임(women’s Rosh Chodesh groups)들이 주로 이날 집회를 갖고 친목합니다.
③. 욤키푸르 카탄(Yom Kippur Katan, “작은 속죄일”): 위에서 간단히 언급했던 것처럼, 월삭일에는 속죄일의 면모가 약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16세기의 카발라주의자(Kabbalist, 신비유대교인)인 사페드(Safed)는 월삭일을 “작은 속죄일”로 지켰습니다. 현재에도 소수의 유대인들은 월삭일에 금식을 하는 등 월삭일을 욤키푸르 카탄 으로 지킨다고 합니다.
월삭일 당일에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금지조항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좋은 옷으로 단장하며 하루 종일 즐거운 무드가 이어집니다. 또한 할렐(Hallel, 시편113편~118편)을 낭송하며, 특별한 기도인 야알레 베야보(Ya’aleh ve-Yavo, “일어나 오시옵소서”)를 드립니다.
④. 키두쉬 레바나(Kiddush Levana, “달(月)의 축성(祝聖)): 이 기도는 달빛을 받으며 야외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기도시간에는 시편과 탈무드에 수록된 랍비 축도문을 낭송한다. 탈무드에 따르면, 월삭에 달을 축복하는 사람은 신의 임재를 경험한다고 합니다.
2). 성경이 말씀하는 안식일은 토요일?
하나님이 현재 사용하는 로마식 달력을 모세에게 알릴 지식이 없어서 달을 통하여 절기를 만들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모세가 하나님의 온전하심을 몰라서 달을 보고 절기를 만들었을까요?
둘 다 아니라고 봅니다. 미련한 우리들은 알 수 없으나 이런 방법도 하나님의 섭리라 보심이 은혜라고 여깁니다.
각설하고 하나님도 완전하시고 예수님도 완전하시며 하나님께 십계명과 율법을 받고 백성에게 말씀을 선포한 모세 그리고 그 입에서 외쳐진 말씀도 완전합니다.
그런데 그 완전한 말씀이 로마달력과 유대달력이 융합되면서 현재의 문제가 발생됩니다.
즉 유대의 제7일안식일 준수가 로마달력과 합하여 지면서 전혀 다른 방법의 제7일안식일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월삭(1일) 후 8일, 15일, 22일, 29일이 제7일 안식일이 일주일 개념으로 변형된 것입니다.
①. 현존의 유대력은 AD4세기에 제정된 달력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의 마지막 공회장이었던 힐렐2세(Hillel II)가 천문학적 “계산”에 근거한 “확정” 월삭 달력제도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제7일 안식일이 토요일이라고 말하는 근거 역시 4세기경부터 사용된 유대달력을 통하여 유대인들이 사용한 달력의 토요일을 안식교에서는 예언자라고 보는 “화잇 여자”를 통해서 제7일안식일이 토요일이다 는 주장이 확정된 것입니다.
물론 그전에도 로마카톨릭의 변화 과정 속에서도 볼 수도 있었으리라 봅니다.
그러나 제7일안식일이 토요일로 확증 할 수 없음은 이모든 날이 월삭을 무시하고 태양력에 의한 달력을 사용하는 로마 카톨릭이 증거하며, 화있 여자가 말하고 있는 현재 유대력에 의한 제7일안식일은 월삭을 배제한 달력이므로 모세에게 명령된 제7일안식일과 동일하다고 말 할 수 없음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말세에 때와 법이 변개 될 것을(단7:25)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변개된 로마달력이 말하는 일주일 속에서 그리고 변개된 유대달력에 의해 한날을 택하여 준수하는 것입니다.
이런 변개된 로마달력 속에서 유월절이 안식일 됨을 찾으니 제7일이 안식일이라는 증거를 찾으니 불가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 제7일안식일이 토요일이니 아니면 일요일이니 아니면 다른날이니 라는 하나님 보시면 미련한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각설하고 지금 제7일안식일 준수자들이 말하는 예수님도 안식일을 준수했는데 라는 예수님이 준수하신 제7일안식일에 해당되는 날이 아님을 말합니다.
유대민족이 현재 사용하는 달력은 산헤드린 공회의 마지막 공회장이었던 힐렐2세(Hillel II)에 의해 4세기경부터 새로이 만든 달력으로 매년 추분 다음에 오는 달이 처음 뜨는 날을 정월(티쉬리 월=모세의 달력으로는 7월) 초하루로 정하여 날짜를 계산하는데 일요일과 수요일과 금요일이 되면 하루를 늦추는데 그 이유는 1월10일(속죄일)이 금요일이나 안식일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함입니다.
이와 같이 현재의 유대력은 태양력과도 다르며 유대 종교력과도 다른 이상한 달력을 만들어서 사용합니다.
그러면서 윤달을 배열하는 것은 다른 태양태음력과 같이 19년에 7번을 배열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이스라엘의 달력은 모세의 달력과는 전혀 다른 달력입니다.
이상에서 보듯이 오늘날 유대인들이 지키는 달력은 순수한 태양태음력이 아니고 자기들의 국가적 고유한 특성에 따라서 변형된 역법을 사용하여 만들어 지키는 달력이므로 오늘날 이스라엘 나라의 달력을 따라서 절기를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절기와는 상관이 없는 절기를 지키는 것입니다.
②. 성경은 토요일을 제7일안식일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안식일은 토요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금요일 해질녘부터 토요일 해질녘까지를 안식일로 지킴니다.
유대인들이 지키는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라고 말하게 됩니다.
하루를 이런 식으로 계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음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음력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기준을 삼습니다. 이 방식에 따라 일곱째 되는 날, 즉 달이 뜨고 지는 것이 일곱번째가 되는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것이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면서 일곱째 날을 복 주셨다는 창2:2~3에 근거합니다. 이것이 기초가 되어 본문 출20:10과 신5:14에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인 이스라엘은 이런 하나님의 기쁨을 나눌 수 있도록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들어 안식일을 준수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디에서도 안식일을 토요일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한주의 마지막 요일인 토요일을 거룩하게 하여 안식일로 지키라고 말씀하지 않고 제 칠일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을 뿐입니다.
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고 말씀하면서 요일 명을 뺀 것일까요? 달력을 보건대, 토요일이 일곱째 날인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기 때문에 토요일이라는 말을 굳이 말해야 할 필요가 없어서 요일명이 빠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키라는 말씀은 우리들이 통상 그러련~하는 주말로서의 토요일이 아닙니다! 이유은 이렇습니다. 위에서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유대인들은 음력을 중심으로 생활했었습니다. 그들은 첫째날, 둘째날, 세째날... 그리고 다시 다음 달로 넘어가서 첫째날, 둘째날, 세째날... 이렇게 29일이 되는 달과 30일이 되는 달을 교대로 보내면서 일 년을 지냈습니다.
바로 월삭 후 8,15,22,29 번째되는 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달력은 요일명이 없는 태음력이기 때문에 요일을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흔히 쓰는 달력을 보십시다. 엄격히 말하면 달력(월력)이 아니라 태양력(일력)입니다.
태양력 밑에 음력이 표시된 날짜를 보면 8,15,22,29일이 모두 한결 같이 토요일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또한 태양력 아래 음력이 표시된 달력을 보면 일곱째날이 모두 토요일로 되어 있지를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우리들이 사용하는 달력으로“안식일은 토요일이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일 일곱째날을 모조리 토요일이 되게 하려면 첫번째날은 무조건 일요일이라고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달이 바뀔 때에는 앞달의 요일이 무슨 요일로 끝났던지 상관없이 다음 달 첫날은 이유 없이 다시 일요일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면서 동시에 일곱째 날인 8,15,22,29일이 변함없이 토요일이 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달력을 이렇게 운용하지 않는 이상 일곱째날이 토요일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토요일은 일곱째날이 아니라 일곱 번째 요일입니다.
③. 첫날이 일요일 마지막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 된 이유
오늘날 일반적인 달력(정확히 말하면 태양력)에는 일요일이 첫번째날로 되어 있고 일곱째날이 토요일로 되어 있습니다.
요일명이 지금의 명칭으로 굳은 것은 로마가 태양력을 사용하면서부터 입니다. 이 태양력의 시조는 이집트였는데 이집트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밤하늘의 7개의 행성을 사용하여 시간을 분할하여 단위화 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연히도 7이 한 주간의 순환단위가 되었습니다. 거기에 바벨론과 유대로 이어지는 신앙적인 의미의 7이 겹쳐졌습니다. 그 결과 7일을 한 단위로 하는 네 묶음짜리의 한 달, 그 한 달이 열두 개인 일 년이라는 시간개념이 도입되어 태양력의 열두 달 일 년 단위의 시간을 분할하는 시간단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과정속에서 콘스탄틴 황제가 아직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기 전인 321년에 빛으로 오신 주님을 고백하는 그리스도교인들의 편에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기점삼아 한 주간의 첫날 예배드리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당시 둘째 날이었던 태양의 날을 앞으로 당겨 한주간의 첫날로 삼았습니다. 그러자, 요일 이름들이 줄줄이 앞으로 하나씩 옮겨지면서 일요일이 첫째날, 월요일이 둘째날, 화요일이 세째날.... 그리고... 맨 앞에 있던 토요일이 맨 뒤로 가서 일곱째 날이 되었던 거지요. 그래서 일요일이 한 주간의 첫날, 토요일이 한 주간의 마지막 날이 되어 오늘날의 요일 명을 갖는 칠일 단위의 한 주간으로 정착된 것입니다.
④. 안식일과 토요일의 관계
오늘날의 태양력이 지시하는 토요일을 성경이 말씀하는 일곱째 날로서의 안식일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유대교인이라면 유대력이 있으니까 유대력에 따라 일곱째 날을 안식일로 지킨다고 하지만 유대교인이 아닌 입장에서는 일곱째 날이 토요일이므로 토요일이 안식일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토요일은 현재 사용하고 있는 태양력에서의 일곱번째 요일이기 때문에, 음력을 기준으로 말씀되었던 처음 초승달로부터의 일곱번째 날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한 주간의 마지막 날, 일곱번째의 날인 토요일이 안식일이라고 말하는 것은, 엄밀하게 따져 보면 태양력의 일곱번째 요일을 안식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 제7일안식일이 토요일인가
출12:1~2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시104:19“여호와께서 달로 절기를 정하심이여 해는 그 지는 때를 알도다”
①. 하나님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의 새 역사를 쓰도록 명령하시면서 출애굽한 해의 달을 이스라엘이 새롭게 출발하는 첫해 곧 건국기념일로 정하도록 명령하시면서 십계명을 주시었다 그 십계명중 제4계명에 제7일을 안식일로 주시면서 이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명령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의 문헌을 보면 출애굽 할 당시 애굽인들의 달력은 현재 사용하는 이집트 달력인 1년이 365일인 달력을 사용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모세에게 애굽의 첨단문화를 사용하여 제7일안식일을 지키라 명령하지 않으시고 당시 초승달이 뜨기 시작한날부터 14일에 유월절을 지키며 무교절을 지킨 그들에게 제7일안식일을 지키라 명령하십니다.
② 당시 애굽인들은 나일강이 범람하던 달을 1년의 시작으로 하여 1년365일을 제정하였다 문헌에서 말 하는바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첫해 1월1일은 애굽의 1월1일과 동일함을 알게 된다.
즉 동일한 출발이기에 1년365일과 1주일이 7일임을 인정하는 두 국가는 안식일외의 모든 것이 동일함을 알게 됩니다.
출애굽 당시의 요일이 언제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재를 비교하여 추정은 할 수 있다고 보는데 현재 이집트인들은 금요일을 제7일로 인정하여 그날을 휴일로 정해 지킨다고 합니다.
만약 이집트인들이 지키는 금요일이 제7일이라면 유대인들도 제7일안식일이 금요일이 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현재 이스라엘인들이 지키며 제7일안식일이라 주장하는 토요일은 이를 입증 할 증거 없이 달력의 7일째 표기된 요일이기에 이날은 제7일안식일로 인정하여 지키는 것이라 보게 됩니다.
만약 토요일이 율리우스력에 의한 제7일이 토요일이라 주장한다면 그들이야 말로 로마카톨릭에 의해 제정된 날을 제7일안식일로 믿고 지키는 어리석은 자들임을 자신들 스스로 자인하는 것입니다.
제7일안식일의 정확성을 따진다면 율리우스력보다는 지금 이집트인들이 사용하는 시리우스력에 의한 제7일안식일을 찾아야 정확성이 있습니다.
*. 그런데 제7일안식일 준수자 들은 현재의 변형된 율리우스력에 의한 토요일이 진정한 안식일이라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만 성경을 철저히 준수하는 자들이라 포장합니다.
4). 바리새교인 39종 안식일 금법
에밀·슈라(E.Schurer)는 [그리스도때의 유대백성의 역사]란 책에서 39조의 금법을 말했는데 그것은 성경에도 없는 유전을 가미해서 만든 것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안식일에 금지할 내용
1. 씨 뿌리지 말 것.
2. 밭 갈지 말 것.
3. 곡식 단을 묶지 말 것.
4. 곡식을 거두지 말 것.
5. 곡식을 타작하지 말 것.
6. 곡식을 까불지 말 것.
7. 곡식을 갈아 가루로 만들지 말 것.
8. 곡식을 찌지 말 것.
9. 채질하지 말 것.
10. 반죽하지 말 것.
11. 굽지 말 것.
12. 털 깎지 말 것.
13. 빨래하지 말 것.
14. 때리지 말 것.
15. 염색하지 말 것.
16. 실 짜지 말 것.
17. 밧줄 끌지 말 것.
18. 두 끈 만들지 말 것.
19. 두 실을 짜지 말 것.
20. 두 실을 가르지 말 것.
21. 매듭을 짓지 말 것.
22. 매듭(끈)을 풀지 말 것.
23. 바늘로 두번 깁지 말 것.
24. 두 뜸을 깁기 위해 찢지 말 것.
25. 사슴을 잡지 말 것.
26. 죽이지 말 것.
27. 껍질 벗기지 말 것.
28. 소금치지 말 것.
29. 그 가죽을 만들지 말 것.
30. 머리털을 밀지 말 것.
31. 그 것을 깎지 말 것.
32. 두 글자를 쓰지 말 것.
33. 두 글자를 쓰기 위해 지우지 말 것.
34. 집 짓지 말 것.
35. 헐지 말 것.
36. 망치로 납작하게 때리지 말 것.
37. 불을 끄지 말 것.
38. 불을 켜지 말 것.
39. 한 집에서 다른 집으로 물건을 옮기지 말 것.
②. 그 밖의 금법
이 밖에도 안식일 날 전혀 일을 안하고 지키려는 여러가지 금법이 있다.
또 위의 39종의 금법도 구전법으로 설명을 해야 한다. 그 예가 다음과 같다. 여자가 끈을 자기 허리에 매는 것은 죄가 안되지만 물통을 치켜 올리려고 허리에 매면 죄가 된다. 누구나 한 글자라도 두 벽에 각이 나게 쓰거나 장부책의 두 쪽에 쓰면 두 글자를 쓰는 죄를 범하게 되며 또 모래 위에 쓰거나 기타 영구적이 아닌 일시적인 것 위에 쓰는 것은 죄가 안된다.
또 유대인 집주인이 문 밖에 유대인 거지가 왔을 때 동냥을 주는 것도 한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걸으니 죄가 된다고 한다. 팔을 문지방 너머로 내밀면 그대로 앉아 있어야 하고 그때 주인이 동냥을 꺼내 들면 거지가 손을 내밀어서 그것을 받을 때는 죄가 안된다. 즉 거지가 먼저 손을 집안으로 들이밀면 주인이 동냥을 내서 손에 쥐어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물건을 나르지 않은 결과가 된다. 사실은 이 행동 자체가 집안에서 밖으로 옮긴 것이 된다 그러니 그들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노릇을 하고 있는 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해야만 의를 더 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여자가 댕기와 같은 것을 머리에 드리는 것밖엔 아무 것도 가지고 다닐 수 없고 옷을 만드는 사람도 바늘을 가지고 금요일 저녁에 어디 갈 수 없다. 왜냐하면 혹시 잊어 버렸다가 다시 생각나서 안식일에 찾아 오면 죄 짓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콜로니모스라는 랍비는 그 누명을 벗으려고 죽은 아이의 입에 종이 조각을 물려 그 죽은 아이가 그 종이에다 참 살인자가 누구인가 말해 줄까 해서 그렇게 했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안식일에 했다고 해서 죽을 때 유언에 "자기 죽은 후 안식일을 범한 벌로서 100년간 지나가는 사람마다 돌을 내 무덤에 던져 달라"고 했다고 한다.
또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리수도 2,000큐빗,(또는 1,1212야드)으로서 이는 다분 여호수아 3:4의 법궤와 백성 사이의 상거가 2,000큐빗이었던데서 또는 안식일에 법궤를 고치려 걷는 리수에서 온 듯하다. 행1:12을 보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산은 예루살렘에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는기록도 있다. 서기관은 안식일에는 빈대가 옷에 있어도 털지 말라는 등의 엉터리 법을 만들어서 멍에를 씌었다. 그래서 주님은 참다운 안식일의 정신과 지키는 방법을 보여 주신 것이다.
5). 이스라엘이 광야 생활 중 제사를 지낸 사건
①. 광야 생활 중의 상번제를 드림.
민수기28:9~10에는 매일 아침과 저녁에 상번제로 하나님께 제사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외에도 유월절, 무교절, 칠칠절, 수장절, 나팔절, 속죄일, 7월15일~21, 등의 절기를 출애굽한 이스라엘인에게 지키도록 시내산에서 친히 모세를 통하여 명령하시었으니 당연하게 이스라엘은 명령을 준수하여야 합니다.
②. 광야생활 중 제사 준수
성경을 읽다보면 광야생활 중 유월절을 지켰다는 기록은 있으나 나머지 절기를 준수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던 중 아모스서를 읽으면서 의문이 풀리게 됩니다.
암5:22~25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사십 년 동안 광야에서 희생과 소제물을 내게 드렸느냐“
즉 이스라엘 족속은 출애굽 후 광야생활을 하면서 매일 드리는 상번제를 드리지 않았으며 각종 제사를 드리지도 드릴수도 없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즉 이런 이스라엘의 제사법과 그 법을 지키는 자들 그리고 이런자들을 하나님이 용서하심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제사법을 주신 참된 의미를 되집어 보게됩니다.
이스라엘에게 각종제사법을 주심은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용서를 기억하라함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2. 예배하는 날이 된 주일(일요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가신 후 장사 된지 삼일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신 날이 안식 후 첫 날(행20:7)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신 것을 말씀합니다(롬14:9). 따라서 이 날을 기념하여 주일에 예배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데 어떤 뜻이 있을까요?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유대교와의 결별입니다.
주일을 지킴으로서 안식일을 지키는 유대인들과 구별되는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다는 신앙관점을 갖게 됩니다. 새 출발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결별이라는 것은 나누어 쪼개진다는 의미보다는 옛 것에서 벗어나 옛 것과는 전혀 관계없이 새로운 시작을 갖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대교와는 관계없는 그리스도교가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변하여 새사람이 되므로 다가오는 한 주간을 지배하는 첫째 날의 주인공이 된다는 뜻을 갖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주간을 지배하는 빛 되신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이기 때문에 주님과 함께 “세상을 이기는 사람”의 인생을 출발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은 세상을 비추는 하나님이십니다. 콘스탄틴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로마의 국교로 공인하기 전에 부활절을 기점으로 한 주간의 첫날을 주의 날로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다른 별들보다 훨씬 밝은 태양의 이름으로 된 일요일을 맨 앞으로 당겨서 주님을 섬기고 주일을 지키는 의미를 아주 기억하기 좋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에 근거하여 부활절을 기점삼아 한 주간의 첫날을 안식일로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빛으로 오신 주님의 빛을 받아 그대로 세상을 밝힌다는 분명한 자각을 더욱 강하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빛으로 오신 부활의 주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은 태양같이 뒤따르는 다른 별들을 비추는 빛의 사역에 참여하여 어둠에 갇혀 있는 죽어가는 영혼들을 밝은 빛 세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영적 사명감을 더욱 더 강하게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태양의 날에 빛되신 주님으로부터 빛을 받아 나머지 별들에게 그 빛을 비추어 줌으로서 함께 빛을 내게 하는 사역을 통해 주님의 부활능력을 나타내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주일을 지킬 때마다 달력을 보면서 더욱 더 강하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예수님께 속했다는 소속감의 확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안식 후 첫날 이뤄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부활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께 속해 있는 사람이라는 분명한 자기정체성을 확인하는 겁니다.
소속의 문제를 확인하므로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기쁨이 주일성수를 통해 재차 경험되고 주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속한 사람들은 반드시 주님과 식탁교제를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과 만나 식탁교제를 나누는 것이라는 영적 교제의 의미를 말합니다.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행사가 아닙니다. 애찬을 나누고 성찬예배를 드리는 것은 단순히 기독교의 독특한 종교의전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하고 기념하면서 주님과 함께 식탁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는 구약적 견해로서가 아니라 당연히 참여해야 할 부활하신 주님과의 식탁교제를 포기한다는 의미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주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뭘 하느라고 주님과의 식탁교제에 빠지는 것인지.
주님께서 생명을 던져 새생명을 주셨건만, 뭣 때문에 주님이 베푸신 부활 식탁에 참여하지 않는 것인지.
그렇기 때문에 주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부활식탁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일주일을 시작하겠다는 인간적인 인간의 의지표현일 뿐이라는 것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주님의 날을 기억하고 주일을 안식일로 지킨다는 것은 나를 구별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예수님께 속한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인하는 일입니다. 또, 주일을 지킨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과 식탁교제를 갖는 거룩한 일이라는 사실도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준수한다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지 않는다는 차원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셔서 고난당하시고 죽기까지 하셨다가 부활하셔서 지금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시는 분과 생생한 교제를 나누는 것이다”라는 깊은 뜻을 갖는 차원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교부 저스틴(Justine)은 자신의 저술에서 주일이 신자들의 예배일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였다.
첫째, 주일은 한 주의 첫 날로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어둠에 빛을 던지신 날이기 때문이다.
둘째,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계속적으로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셋째, 주일은 일곱 번째 날인 안식일이 갖지 못한 '영적 신비'를 내포하고 있다고 보았다.
초대 교회에서는 지금의 토요일 저녁에 예배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유대력에 의하면 일요일은 현재의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즉, 안식일 다음 첫 시간을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시간으로 삼았고 이는 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과 불과 몇 시간 정도의 차이 밖에 나지 않았으므로 신자들이 주일과 안식일 예배에 대한 큰 거리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트라얀(Trajan, 98-117) 황제의 박해 시 '제국내의 모든 야간 종교 집회가 불법이 되었기 때문에' 주의 만찬을 위한 초기 신자들의 주일 모임은 다음날인 일요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주님과 가장 먼저 영적 교제를 갖기 위해 해가 뜨는 시간이나 그 전에 예배하였습니다. 이 변화는 안식일과 주일이 적어도 한 날에 있었던 관습을 깨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예배하는 날이 유대인의 토요일과 이방인의 일요일로 공존하였다. 그러다 보니 이 문제로 갈등이 있었습니다(롬14:5,6). 바울은 안식일 문제로 폄론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골2:16). 안식일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골2:17).
구약의 유월절 만찬이(대하30:15-17) 신약의 성찬예식으로 대치되듯이(요6:53), 구약의 짐승의 피가(레3:2;히13:11) 신약의 그리스도의 피로 대치되듯이(엡1:7),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로 대치하여 완성된 것입니다.
4). 주일(일요일)에 예배한 기록
①. 주후 98~118년경 사도 요한의 직계 제자이며 안디옥 교회 감독 이그나티우스(Ignatius)의 '마그네시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 "이제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님의 날에 의해 살게 되었습니다."
②. 주후 100년경 기록된 기독교 예배 지침서인 디다케(Didache)의 기록 : "'주의 날'은 특별한 날이므로 주의 날마다 함께 모여 떡을 떼며 감사를 돌릴 것입니다."
③. 주후 70~130년에 기록된 위경으로 분류된 프슈도 바나바(Barnabas)의 편지 : "여덟째 날(*일요일)은 새로운 세계의 시작인 바 천년왕국의 안식 후에 마지막 영광을 바라본다."
④. 주후 165년경 순교한 교부 저스틴(Justine)의 제1 변증서 : 그리고 일요일이라고 부르는 날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나 시골에 사는 사람이나 한 곳에 모입니다
⑤. 주후 165년경에 사망한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 Martyr)의 기록 : 일요일이라는 날에 모이는 기독교 집회의 예배 순서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 순서는 성경봉독, 설교, 기도, 주의 만찬 의식과 봉헌이 있었다."
⑥. 주후 170년경 고린도 감독 디오니시우스(Dionysius)가 로마 감독 소테르(Soter)에게 보낸 편지 : 우리는 주의 거룩한 날을 지켰습니다. 이 날에 당신의 서신을 읽었습니다."
⑦. 주후 215년경 알렉산드리아의 교부 클레멘스(Clemens)가 일요일 준수를 지지하는 글을 남겼다.
⑧. 초대 교회의 교부 터틀리안(Tertullianus)은 당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위정자들과 일반 이교도들에게 호소 "태양과 일요일을 가지고 우리를 비난하는 그대들은 우리와 친근해야만 한다. 우리도 그대들의 '사투른 신'(Saturn. *농사의 신)과 그대들의 쉬는 날들(*토요일)과 결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⑨. 초기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신학자 그리스 교부 오리게네스 (origenes 185~254) :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기 때문에 주님의 날을 항상 지키고 있는 것이다."
⑩. 주후 253년경 북아프리카 카르타고의 주교인 키프리아누스(Cyprianus)는 난지 8일만에 행하는 유대교의 할례 관습을 기독교의 주일 준수를 예시해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⑪. 4세기 초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페트로스(Petros) : "주일을 기쁨의 날로 지킨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 날에 살아나셨기 때문이다."
⑫. 주후 321년 3월 7일 로마의 황제 콘스탄틴(Constantine, 주후 274~337)의 일요일을 휴일로 하는 칙령 : 모든 재판관과 시민 그리고 기술자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에 쉬어야 한다."
⑬. 주후 386년 로마의 황제 데오도시우스(Theodosius. 치리 379~395)의 휴식령 : "우리 선조들이 주일이라고 옳게 불렀던 일요일에는 모든 기소와 소송에 관한 처리와 업무를 일체 중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