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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광제주가 화산섬 제주로
꼽아보니 이번이 제주도 여섯 번째 방문이었다. 배를 타고 망망대해를 지나며 처음으로 바다의 비린내를 맡게 해준 고등학교 수학여행부터 최근에 다녀왔던 고향친구들과의 여행까지. 그 동안 제주도는 내 기억 속에 무얼 남겼을까? 삼다도, 검은 곰보 투성이의 현무암, 돌하르방, 눈 덮인 한라산, 움푹 꺼진 병풍처럼 둘러싸인 성산일출봉, 만장굴, 귤, 넓은 바다, 그리고 관람료가 비싼 관광지! 하지만 2009년 세밑을 앞두고 이 기억들을 모두 다시 정렬해야하는 기회가 주어졌다. 관광 제주가 아닌 화산섬 제주로!
전국이 신종플루로 열병을 겪던 탓으로 일정이 무기연기 또는 취소될지 모른다는 소식에 차라리 잘되었다 포기하던 차였는데 일정을 연기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공문을 보고는 적이 당황도 되었었다. 학교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가을 제주를 볼 수 있을 거라는 당초 예상을 깨고 학년말 일정으로 바쁜, 막 방학을 앞둔 일정을 학교 선생님들께 떠넘기듯 무겁게 겨울 제주로 향해야했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18일, 8시가 조금 넘어 도교육청을 출발한 일행은 11시 20분 경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여, 제주목관아를 시작으로 제주 교과통합체험탐구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평소 우러르듯 지켜보아왔던 장선생님의 진행은 한층 더 매끄럽고 거침이 없었다.
제주목관아 해설을 맡게 된 중년여성의 문화해설사는 교사단체라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조금은 긴장한 듯 제주의 역사를 성심을 다해 풀어주었다. 2002년 12월에 복원을 완료했다는 제주목관아는 조선시대 제주지방 통치의 중심지임을 상징하려 많이 애쓴 흔적이 보였지만 복원된 건물이라서 그런지 드라마 세트장을 보는 듯 했다. 연회장소로 사용하였다는 우련당 쪽으로 돌아, 부정한 액이 범접하지 못하도록 제작했다는 홍화각 옆의 낭쇄(나무소)를 지나 중대문에 이르기까지 하늘은 제주의 매서운 바람을 오지게 맛보게 하려는 지 간간 눈을 뿌리며 옷깃을 여미게 하는 을씨년스런 잿빛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활을 쏨으로써 “훌륭한 덕을 본다(觀德)”는 뜻을 담고 있는 관덕정은 제주에서 가장 오래된 보물답게 돌하르방 2기가 두 눈 부릅뜨고 지키고 서 있었다.
2. 설릉사람 많은 놀라운 제주
이번 행사에 참여하고 싶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교과통합체험 프로그램”이라는 주제 때문이었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자신을 소개하는 선생님들은 많은 분이 과학담당교사였지만, 초․중등, 교과를 가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교과통합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은 4.3 평화공원에서부터 조심스럽게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듯 했다.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4.3은 내겐 역사책속에나 있던 그저 그런 암울했다던 우리역사의 한 페이지에 불과했었다. 그래서인지 출발 전 과제로 주어진 현기영님의 단편소설 『順伊삼촌』을 읽어내려 가는 것도 낯설었고, 글 속에 자주 등장하는 제주방언도 무척 부담스러웠었다.
상생(相生)! 그랬다. 제주 4.3 평화공원전시관에서 화해와 상생의 길을 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유족들의 염원을 조금이나마 읽을 수 있었다.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경찰과 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1948년 4월 3일 단독선거․단독정부 반대를 기치로 무장한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집단학살(Genocide)의 사례로 꼽히는 사건. 그 비극적인 기간이 7년 7개월이었다는 사실도 놀라웠지만 더 놀라웠던 사실은 그렇게 큰 민중역사를 50년이나 쉬쉬 묻어두었다가 1997년에야 비로서 4.3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했다는 사실이었다. 남 얘기 들춰내기 좋아하는 기자들도 잠재워버린, 유족들의 울음마저 죄가 된다며 50년을 묻어버렸다는 사실이 더 무서웠다. 그런 생각이 든 것은 나뿐이었을까? 성급하고 바삐 살아가는 우리가 아닌가? 앞뒤 가리지 않고 까발리며 아귀다툼하는 우리가 아닌가? 그런 현대인들의 시각이 아니더라도 “민간인 학살”이라는 민중역사를 함부로 얘기할 수 없었던 그들의 설움과 피맺힌 울분마저 가두어진 채 누군가의 손아귀에 놀아났다는 생각에 몸서리가 쳐졌다.
석양인지 아침인지 알아볼 수 없게 눈보라가 매섭게 몰아치는 오후, 제주돌문화공원내에 조성된 전시장안에서 체험단원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전시물을 탐독하며 제주의 지형을 죄다 파헤쳐버리고 말겠다는 기세였다. 공원 안에 장승처럼 서있는 돌하르방이나 갖가지 모양의 거대한 현무암들, 공원을 빠져나와 어둠이 내려앉은 시각에 들른 현기영님의 단편소설 『순이삼촌』의 소설내용을 새긴 너븐숭이(넓은쉼터) 유적지의 순이삼촌 기념비, 모두가 구천을 떠도는 4.3의 영혼 같았다. 흩뿌리는 진눈깨비조차 보이지 않는 북촌초등학교의 어두운 하늘과 너븐숭이의 애기무덤도 왜 이제야 들러주었냐는 듯 서럽게 우는 통합체험 첫날이었다. 점심식사를 했던 그 곳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신제주 시내에 자리한 숙박지에 도착했을 때는 싸락눈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통합체험 둘째 날. 따뜻한 남녘이라서인지 도로의 눈은 금방 녹는 듯 했지만 도로는 미끄러운데 이른 아침부터 세계자연유산의 잉태과정을 보겠다고 버스는 선흘리 거문오름을 향했다. 섬전체가 화산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다양하고 독특한 지형이 형성되어있어 제주도는 한라산천연보호구역과 성산일출봉, 그리고 이곳 거문오름용암동굴계 등 3개소를 제31차 세계유산위원회(WHC)총회에서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고 했다.
거문오름을 탐사하는 내내 자연이 선물한 오름의 신비로움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 동안 제주도내 공원을 여러 차례 둘러보았지만 그저 그렇게 보았던 돌담들과 거대한 무덤처럼 봉긋 솟아있는 오름들이었다. 아니, 오름이라는 사실도 모른 채 둘러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천읍 선흘리 일대의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는 10~30만 년 전, 이 곳 거문오름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분출된 용암류가 지형적인 경사면을 따라 북북동 방향으로 해안까지 흘러가면서 용암동굴군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분화구 내부의 울창한 수림이 음산한 기운을 띠었다 하여 신령스러운 산을 뜻하는 거문오름이란다. 이동 중 들었던 자세한 설명과 돌문화공원전시장에서 읽었던 생소한 용어들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용암동굴, 분석구, 스코리아, 스트롬볼리안, 용암협곡, 붕괴도랑, 파호이호이용암, 아아용암, 알오름...... 걸죽하고 맛깔스런 해설과 재담으로 일행을 즐겁게 해준 해설사님 덕분에 거문오름 수직굴에 이르기까지 힘든 줄 모르고 무리를 따라 가며 신비로움을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추운 겨울임에도 함몰구안에서 올라오는 따뜻한 기운덕분에, 겨울과 봄을 동시에 경험하는 듯 했다. 바닥은 백설인데 대나무도 아닌 것이 아직도 파란 잎을 자랑하는 식나무, 참식나무. 이미 육상은 다 말라비틀어져있을 고사리고비와 수많은 고사리, 이끼 무리들은 보란 듯 숨쉬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독특한 지형 탓에 갱도진지, 병참도로 등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으로 일본군의 군홧발에 짓밟힌 흔적들이 이 곳 저 곳 산재해있어 먼저 가신 선열들의 나라 잃은 설움의 눈물샘을 보는 듯 했다.
거문오름의 용암동굴계를 따라 계속된 체험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함박눈을 맞으며 걸어보는 푸른 겨울 숲인 곶자왈(화산이 활동할 때 분출된 아아용암류가 분포하고 있는 지대에 형성된 숲)동백나무숲, 그 숲엔 빨간 동백꽃이 개화를 막 시작했고, 바닥에는 자금우가 빨간 열매를 달고 있었다. 육지의 숲 같았으면 잿빛 겨울하늘을 보여주어야 할 판에 동백나무숲 안쪽은 7월 여름처럼 칙칙한 숲이어서 하늘조차 보이질 않았다. 곶자왈의 생태를 반영해서인지 겉으로 드러난 나무뿌리는 넓적하게 만들어 수직으로 세우고 흙 한 줌이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뿌리로 새카만 돌들을 한 아름 품고 있었다.
선흘곶자왈에서 빠져나와 제주도의 북북동쪽으로 향하다 둘러 본 대섭이굴은 4.3 당시 피신했던 흔적들과 유품, 그리고 독특한 용암동굴을 보존하기 위해 철창으로 출입을 제한하고 있었다. 수십 만 년 전 용암의 흐름을 쫓아 다시 내려가다 만난 일부 공개된 김녕사굴에서는 용암동굴임에도 동굴 벽에 매달린 석회성분의 종유석이 매달려 있었으며, 동굴바닥 또한 석회질임을 염산과의 반응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근원을 월정리 해수욕장의 패사(貝沙)에서 찾아보았다. 바다의 조개껍질이 부서져서 만들어진 모래가 제주바람에 날려와 용암동굴위의 지층에 쌓이고, 이들이 지하수에 의해 녹아들어가 용암동굴에 석회동굴 지형을 형성했다는 이야기이다. 참으로 자연은 흉내 낼 수 없는 경이로움으로 인간을 비웃는 듯 했다.
뜨거운 용암의 흐름의 끝은 월정리 바다로 향했다. 겉은 식고 속은 흐르다가 쪽박 깨뜨리듯 벌려 생기게 한 튜물러스(Tumulus), 그 지대에 기어이 꾸미고 만 식생(植生). 삼다도(三多島) 제주에서 자연의 위대함과 함께 바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강인한 생명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체험단의 발길은 분주히 일정을 꾸며갔다. 성산일출봉의 낙조를 보진 못했지만, 석양의 끝을 잡고 성산일출봉의 탄생과정을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 주었다. 응회구, 분석구! 제주도 수학여행때와 신혼여행 때 올라 예사롭지 않다는 듯 바라만 보았던 그 봉우리였다. 하지만 봉우리에 오르지 않고서도, 그 봉우리에서 분지형태의 용암구를 보지 않고서도, 5~6천 년 전화산폭발과 함께 성산일출봉을 휘두른 새카만 응회구 지층을 성처럼 만들어버린 장면을 상상할 수 있게 했다.
하룻밤을 묵고 아침 일찍 찾은 동쪽 수마포 해안가의 일제진지동굴에선 몸서리가 쳐졌다. 그 아름다운 해안에 철심을 박듯, 민족의 살을 도려내듯 동굴을 파헤쳐 그들의 군사진지로 활용했을 천인공로할 만행을 직접 확인하는 순간 우리 역사공부를 등한시한 내 자신이 부끄럽기까지 했다. 해안동굴 안에서는 제주도민의 노동력을 착취하며 킬킬거렸을 일본군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도 했고, 해안가 반대편에서 자행된 4.3의 대 학살의 비명이 들리는 듯도 했다. 그도 모르고 그 잔디밭(우뭇개 동산)에서 깔깔깔 사진을 찍었다니, 일출봉의 아름다움만 보고 비극은 보지 못한 부끄러움이라니. 수마포 해안가 큰 바위 위에서 낭송한 장선생의 시낭송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 “...성산포에서는 한 마리의 소도 빼놓지 않고 바다를 본다.”
광치기해변가(광치기여)에서 바라다본 성산일출봉의 모습은 그래서 더 남달랐다. 해안가 모래사장은 온통 화산분출물이 풍화되어 만들어진 흑갈색 모래였고, 그 해안을 따라 15km의 올레길 1코스가 꾸며져 있었으며, 이제 막 올라오기 시작한 갯매꽃 등 사구식물의 어린 잎이 고개 숙여 나도 좀 봐 달라 손짓했다.
3. 제주의 사람과 문화
3일차 제주는 제주도 사람 냄새가 물씬 났다. 돌, 바람, 여자가 많아 3多島! 도둑, 거지, 대문이 없어 3無島! 3년 전 장사치에게 홀려 성읍 외곽 몇 집만 둘러보게 하고는 기어이 말뼈가루를 사게 한 기억만 남아있던 정의현. 성읍민속촌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읍성이었다. 초가와 돌담이 어우러져 자연의 미가 돋보이는 마을에서 제주도민의 소박함과 따뜻한 마음씨를 읽을 수 있었다. 바람을 막기 위한 “풍채”와 사람과 돼지가 만들어내는 화장실 “퉁시”는 자연과 사람은 하나일 수밖에 없는 그들이 일궈낸 문화였으리라. 정의현성 내부의 객사는 꾸밈이 있어 서운했지만 지방수령이 근무했다는 동헌 앞 느티나무에는 콩짜개덩굴과 풍란, 이끼들이 오래 쌓아온 믿음처럼 어우러져 또 다른 상생을 연출했다. 150 여 년의 모습을 고스란히 담고 고고하게 자리한 향교에선 영재학생들에게 유학과 조선의 선비정신을 고취시킬 수 있는 훌륭한 체험 장소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읍민속촌 정의현성내의 맛깔스런 제주음식으로 중식을 마친 일행은 신제주에서 반 바퀴를 돈 남쪽 서귀포해안가를 찾았다. 이중섭미술관 입구에 보존된 이중섭 거주지에서 그의 흔적을 눈으로 더듬고, 미술관에 전시된 그의 작품들 속에서 그 동안 강하게 남아있던 “황소” 의 이미지가 아닌 “환상”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켜왔다. 전시관을 나오면서 만난 수선화와 제비꽃은 꽃을 아이들보다 크게 그린 그의 작품 “꽃과 아이들”을 다시 생각하게 해주었다.
신생대 가리비를 생흔화석으로 그대로 간직한 서귀포퇴적층은 그야말로 살아 숨쉬는 교육장이었다. 시간에 쫓겨 일행의 꼬리를 밟으면서도 다시 방문하고 싶은 아쉬움을 남겨두고 와야만 했다. 더구나 운영진이 보여주고 싶었다는 산호화석은 통째로 없어진 채여서 씁쓸함을 남겼다. 어느 무지한 사람이 40-70만 년 전의 보물을 쓰레기로 바꾸어 송두리째 도려내 가져가 버렸다는 얘기! 인간에 의한 고약한 풍화라 하기보다는 너무도 무식한 훼손이었다.
해가 보였다, 눈비가 왔다를 반복하는 짓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제주의 젖줄이라 불리는 막숙물통 용천수를 찾아갔다. 16~20년 전 한라산에서부터 출발했을 물방울들이 모인 용천수의 신비로움에서 가까운 과거를 만질 수 있었다. 50여 미터를 옆에 두고 아낙들의 빨래터와 사내들의 노천 목욕탕으로 구별하여 사용하였다는 그들의 문화 속에서 싸움터와 삶터의 경계선에서 울고 웃었던 그들의 체온을 느끼게 했다. 물 좋은 섬 제주는 용천수를 상징하였다는데 골프장 등이 들어서면서 맥이 끊기고 있다니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3일차 마지막 일정은 용암 돔인 산방산과 응회환인 용머리 해안가에서 마무리되었다. 제주 360여 개의 오름 중 가장 터줏대감(74만 년 전 생성)이라는 산방산의 경관도 경관이려니와 수성화산분출물의 퇴적에 의해 형성된 용머리 응회환의 장관은 어디에 내 놓아도 손색없는 또 하나의 자연유산임에 틀림이 없었다. 불행하게도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해수면이 높아지면서 용머리해안이 하루 8시간 이상 잠겨 침식됨에 따라 해안 산책로를 70cm이상 높이는 공사에 착수했다니 여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날 만은 어둠이 바닷물보다 더 빨리 용머리 해안을 덮어버렸다. 용머리 해안이 바위해안인 탓에 조수 웅덩이나 돌개구멍을 만들고, 또 그 안에서 작은 생태계를 형성하면서 자아내는 또 다른 신비를 뒤로하고 버스에 올랐다. 숙박지로 향하면서 어렴풋 남아있는 빛을 쫓아 사계리 해안가의 사람발자국과 동물화석을 소개하는 운영진의 설명을 확인하고 싶어 마지막 밤의 새벽에 매서운 칼바람을 맞으며 해안을 되짚어 걸어봤지만, 긴 겨울 새벽 어둠이 허락해주질 않았다.
4. 해내림으로 희생영령을 위로하며
소설의 절정과도 같았던 체험 마지막 날 아침, 사계리 해안가의 일출은 장관이었다. 구름속에서 잠깐 그 모습을 보이며 남쪽 수평선으로부터 해안까지 길게 붉은 물비늘을 연출하나 싶더니, 다시 모습을 감추고 푸른 바다를 향해 따스한 해내림을 연출했다.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운영진은 체험단을 송악산 응회환의 한 둘레로 안내하며, 다시 한번 태평양전쟁을 제주도의 역사와 연관시켰다. 성산일출봉 수마포 해안가와 비슷하게 응회환을 따라 파헤쳐진 일제진지동굴! 이 곳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동굴 입구와 안에서 자라는 도깨비쇠고비가 순해보였고, 동굴 속에서 바라본 산방산과 형제섬은 애써 태연한 척 하였다. 이 날 아침의 해내림은 아마도 암울한 역사의 혼백을 위한 용서와 위로였을까.
절울이 송악산은 화산활동의 진수를 다 보여주는 듯 했다. 제주올레길의 10코스를 따라가며 탄낭구조를 품고 있는 응회환의 일부를 밟고, 낮게만 보았던 분석구를 헉헉 올라선 정상에서 한반도의 최남단 마라도와 그 앞의 가파도를 바라보는 순간, 마치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가 만나 우리 땅 우리 바다가 이 만큼이라 그려주는 듯 했다. 하지만 분석구 안에 방목된 흑염소 떼들의 한가로움은 7,000년 전의 무서운 화산폭발의 상상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분석구의 능선에서 확인한 셋알오름고사포진지와 그 오름 밑으로 뚫려진 군용트럭도 통과했다는 1.2km 길이의 셋알오름일제동굴진지, 태연히 감자를 캐는 농부들의 발아래 숨겨진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일제지하벙커와 남쪽 해안을 향해 모자를 얹어놓은 듯 군데군데 봉긋 올라온 콘크리트 일제격납고를 직접 확인하는 동안 제주의 역사에 대한 내 무지(無知)를 감추느라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곳엔 아직도 피비린내와 땀 냄새가 배어 있었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많은 과제가 숨겨져 있는 듯 했다.
점심식사 전 감자밭을 가로질러 올레길을 밟으며 다녀왔던 4.3 유적지 섯알오름 학살터, 제주 공항에 오기 직전 들렀던 무등이왓(제주 주민 100명 이상이 학살당하고 흔적 없이 사라진 잃어버린 마을)과 4.3의 희생자 시신을 찾을 수 없어 생전에 입은 옷가지 등을 묻어두었다는 동광헛묘까지 이번 체험프로그램은 4.3의 역사로 시작하여 4.3의 넋을 위로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짧은 4일 동안 참 많은 곳을 체험하며 보고 배웠다. 일반영재교육의 주제로 설정하기엔 너무 많은 예산이 요구되어 적용이 어렵겠지만 영재교육 주제선정을 위한 방향제시에는 충분한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차 안에서나 숙박지에서 서로 나눈 많은 정보들과 함께 이번 체험프로그램의 형식을 응용한다면 다양한 테마의 영재교육과정이 개발될 수 있을 듯 하다.
태평양전쟁과 4.3의 역사를 제주지형과 연관시킨 점은 탁월하였지만 다소 주제가 무거웠거나, 해녀들의 물품보관소로 이용하고 있는 수마포 일제진지동굴이나 관리자도 없는 듯 보였던 알뜨르비행장 주변과 일제지하벙커, 그리고 섯알오름 4.3 유적지의 방치된 유물 등 다소 소홀히 여기는 역사의 흔적들을 좀 더 신중하게 관리되고 보존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 제기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꼈다. 제주 공항대합실에 제주의 역사를 알리는 테마여행 안내도 한 장 걸 수 있는 벽면이 제공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하지만 이런 몇 가지 아쉬움을 빼면 한 마디로 너무도 잘 짜여진 테마기행이었다. 겉만 보아왔던 제주, 너무 몰랐던 제주, 경이로운 화산섬 제주, 그리고 피로 얼룩진 4.3 제주! 화산섬과 너븐숭이! 3박 4일 제주 한 바퀴를 도는 동안 체험하며 느낀 소감을 압축하는 문구들이다. 교과통합체험 탐구프로그램이라는 주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이 영재교육과의 접목이 가능할까 했던 의구심은 기우에 불과했다. 이번 체험활동에 참여한 모든 선생님들에게 영재교육프로그램 개발의 실마리를 제공해주었다고 확신한다. 과학과 사회, 역사, 문화, 예술의 넓은 영역을 넘나들며 자신을 뒤돌아보게 하는 치밀함도 보여주었다. 운영진이 2년 동안 머리를 맞대고 개발해낸 프로그램을 짧은 4일 동안 몰래 훔쳐가는 느낌도 들어 미안하다는 마음까지 들었다. 훌륭한 프로그램을 끝까지 정성껏 꾸며주신 도교육청과 운영진 여러분의 노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며, 늦게나마 태평양전쟁과 4.3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해 준데 대하여도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