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날치기-대필 논란 밀양 보고서 불채택
원론적 수준의 대화와 소통 강조하는 권고안 발표
국회 산업자원통상위원회가 대필-날치기 논란이 일었던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위한 전문가협의체 기술 검토 보고서를 사실상 채택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산업위의 송전탑 관련 권고 안도 한국전력과 주민의 원만한 해결을 강조하는 원론적 수준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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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일 산업위 밀양 송전탑 관련 간담회가 비공개로 돌아선 후 산업위에서 권고안을 마련할 움직임을 보이자 산업위를 방문한 밀양 주민이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여상규 산업위 새누리당 간사와 오영식 민주당 간사는 11일 오후 밀양 송전탑 전문가 협의체 보고서 관련 전문가 협의체 여야 추천위원과 산업위 간담회를 마친 후 국회 기자회견장에 내려와 간담회 결과를 알렸다. 이들은 “40일 간 전문가협의체가 운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협의체 내에서 원만하고 합의된 결론에 이르지 못한 점에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여야 간사는 이어 사업자인 한국전력에는 “전문가협의체 기간 중 제기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밀양 주민 신뢰를 회복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주민과 대화와 소통에 적극적으로 노력할 것을 권한다”고 당부했다.
또 송전탑 반대대책위와 밀양 주민들에겐 “전문가협의체의 의견에 주목하고 대승적인 차원에서 현실적인 고려를 해주기 바라며, 적극적으로 사업자와의 대화에 성실히 임할 것을 권한다”고 밝혔다.
정부엔 “사업자인 한전과 밀양 주민 간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한다"고 밝혔다.
이날 산업위는 위원 간 논란이 된 밀양 송전탑 관련 기술 검토 보고서를 놓고 수석전문위원 보고 등을 받았지만 보고서 자체를 채택하지 않은 셈이라 보고서에 근거한 권고안 마련 자체도 어려웠다. 실제 이날 간담회에서도 여당 측 협의체 추천위원과 야당 측 추천위원 사이에 입장차는 컸다.
간담회에 출석한 여당 추천 위원인 김발호 위원은 주민 측 위원들을 비난하는데 주요 발언을 할애했다. 김발호 위원은 “한전은 협의체의 임무를 수행하기에 적합한 전기전문가를 추천했지만 주민 측은 한 분을 제외하고 모두 사회운동을 하는 분으로 구성됐다"며 ”저는 여당 추천이지만 중립적으로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평했다.
김발호 위원은 이어 “주민 측 위원들은 기술검토에 무리한 자료제출을 요구하고, 준비기간이 부족한데도 자료를 숨긴다는 기자회견을 하는 등 기술검토는 뒷전에 두고 주로 법리공방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기술 검토 내용보다는 정치 공격성 발언을 주로 이어 갔다.
김 위원은 “주민 측은 국회에 보고서 불채택과 사회적 공론화 기구를 요구하고 있지만, 보고서는 주민 측의 전문성이 떨어지는 사회운동가 세 분만 반대하고 있다”며 “보고서 절차에 하자가 없고, 기술적 검토도 명확한 결론이 났다. 국회가 협의체의 판단을 존중해 권고안을 내기 바라며, 주민들에겐 충분한 보상체계를 마련해 대통합을 부탁드린다”고 주장했다.
반면 야당 추천위원인 석광훈 위원은 “한전 측 위원들의 초안이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제출한 보고서를 카피 앤 페이스트(copy&paste)한 수준이라 충격을 받았다”며 “주민 측 위원과 저는 국회가 부여한 독립적 검증이 불가능한 지경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석광훈 위원은 “한전이 제출한 기존 송전망의 증용량 검토내용은 과장된 해석을 하고 있으며, 신뢰도 고시 같은 법적근거가 취약했다”며 “미국의 765kV 송전선 취소 사례 등을 면밀히 검토해 대안으로 제시했다”고 대안을 강조했다.
이어 여야간사들은 모두 단일한 내용의 보고서 제출에 실패한 협의체에 강한 유감을 나타내며 산업위 간담회에서 뭔가 결론을 내자는 입장을 모으기도 했다.
반면 산업위 간담회 방청을 하던 밀양 주민들은 간담회가 비공개로 돌아서고 여야 간사들이 결론을 도출하자는 식의 입장을 밝히자 격한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 주민은 “내일부터 공사가 들어오면 몸으로 막으면 된다. 우리가 다 죽으면 된다. 원망할 것도 뭣도 없다”며 “우리가 더 죽어야 이 나라가 정신을 차린다”고 울분을 토하며 눈물을 훔쳤다.
다른 주민은 “우리 할매들이 다 벗고 막을 것이다. 우리가 밀양에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철탑은 못 세운다”고 분노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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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위 간담회가 비공개로 돌아서기 전 김발호 위원(앞줄 오른쪽) 뒤로 밀양 주민들이 방청석에 앉았다. |
“한전 ‘공사강행 공고’로 착각하지 말라”
이렇게 산업위 권고안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지는 상황에서 권고 내용이 한전과 주민의 대화 노력을 강조하는 수준에서 나오자 밀양 주민들은 즉각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는 성명서를 내고 “우리는 권고안을 환영한다”며 “한전은 착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정부는 사회적 공론화기구를 구성하라”고 촉구했다.
반대대책위는 “베끼기 대필 날치기 논란으로 얼룩진 전문가협의체 보고서를 국회가 채택하지 않은 것은 입법기관인 국회의 당연하고도 정의로운 판단”이라며 “한국전력은 이 권고안이 한전에 대한 공사 강행을 권고하고 있다는 어처구니없는 착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국회 권고안은 정부가 중재에 나설 것을 부탁하고 있다”며 “주민 및 야당 측 위원들이 협의체 기간 중에 확인한 바, 미국에선 765송전선로 갈등을 공공규제위원회라는 틀을 통해 원만하게 해결한 사례가 있다“고 사회적 대회기구 필요성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