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주
"존은 키가 큰 편인가?" 존의 키가 150센티미터라면, 나이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여섯 살이면 아주 큰 편이고, 열여섯 살이라면 아주 작은 편이다.
시스템1은 관련 기준을 자동적으로 끄집어내고 , 키가 크다는 의미를 자동적으로 조절한다.
그런가 하면 범주를 넘나들며 세기를 짝짓기해 다음 질문에 답할 수도 있다.
"존의 키에 비해 이 식당 음식은 얼마나 비싼가?"
이때 답은 존의 나이에 달렸다.
존이 여섯 살일 때보다는 열여섯 살일 때 ,식당 음식은 훨씬 덜 비싸다.
그런데 아래 경우를 보자,
존은 여섯 살이다. 키는 150센티미터다.
짐은 열여섯 살이다. 키는 155센티미터다.
단일 평가라면 존은 키가 아주 크고, 짐은 크지 않다는 데 누구나 동의한다.
두 경우는 비교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존은 짐에 비해 키가 큰가?"라고 둘을 빅접 비교해 물으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것이다.
놀랄것도, 모호할 것도 없는 답이다.
그런데 다른 상황에서, 어떤 대상이나 사건이 비교 맥락을 스스로 구성하다 보면
심각한 문제에서 일관성 없는 선택이 나올 수 있다.
단일 평가와 공동평가가 항상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판단은 늘 뒤죽박죽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섯 살짜리 남자 아이라든가 탁자라든가 하는 여러 범주로 나뉘고, 범주마다 기준이 있다.
판단과 선호도는 범주 안에서는 일관되지만, 범주가 다른 대상을 비교하고 평가할 때는 일관성을 잃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다음 세 질문에 대답해보라.
사과와 복숭아 중에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가?
스테이크와 전골 중에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가?
사과와 스테이크 중에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가?
첫째, 둘째 질문은 같은 부류에 속한 대상을 묻기 때문에 바로 대답할 수 있다.
게다가 단일 평가에서 나온 순위("사과를 얼마나 좋아하는가?"와 "복숭아를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그대로 적용했을 수도 있다.
사과와 복숭아가 모두 과일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과일이 똑같은 기준에 따라 비교되고,
공동평가뿐 아니라 단일 평가에서도 암묵적으로 서로 비교되니 선호도 역전은 없다.
이런 범주 내 질문과 달리, 사과와 스테이크를 비교할 때는 고정된 답이 없다.
사과와 복숭아 조합과 달리 사과와 스테이크 조합은 자연스러운 대체물이 아니며,
똑같은 욕구를 충족하지도 않는다.
어떤 때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고, 어떤 때는 사과가 먹고 싶지만,
스테이크를 먹는다고 사과를 먹고 싶은 욕구가 해소되거나
사과를 먹는다고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욕구가 해소된다고 보기 힘들다.
신뢰하는 조직에서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고 상상해보자.
아래 명분에 기부를 해달라는 내용이다.
많은 돌고래 번식지가 오염되어 돌고래 개체수가 감소하리라 예상됩니다.
돌고래에게 오염되지 않은 번식지를 마련해주기 위해 민간 기부의 특별 기금을 조성했습니다.
이 문제를 보고 무엇이 연상되었는가?
비슷한 다른 명분이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떠올랐을 것이다.
특히 멸종 위기 종을 보존하려는 프로젝트가 떠올랐기 쉽다.
그리고 시스템1이 자동적으로 '좋은 대 나쁨' 차원의 평가를 내리고,
머릿속에 여러 동물이 떠오르면서 그 가운데 돌고래의 순위가 막연하게 자리 잡을 것이다.
돌고래는 이를테면 족제빗가의 페럿이나 뱀 또는 잉어보다 훨씬 사랑스러워서,
저절로 비교 대상이 되는 종들 가운데 꽤 높은 순위에 오른다.
여기서 대답해야 하는 것은 잉어보다 돌고래를 더 좋아하느냐가 아니라 돈의 가치다.
물론 과거에도 비슷한 요청을 받았던 경험으로 미루어, 이 요구에 절대 응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아주 잠간만 이 요청을 수락했다고 상상해보자,
다른 많은 어려운 질문이 그렇듯이, 돈의 가치를 평가해야 하는 질문도 바꿔치기와 세기 짝짓기로 해결할 수 있다.
돈과 관련한 질문은 어렵지만, 그보다 쉬운 문제는 얼마든지 있다.
돌고래를 좋아한다면 돌고래를 살린다는 명분에 호감을 느낄 것이다.
그 다음에는 저절로 돌고래를 좋아하는 정도가 기부 정도로 바뀌어 금액이 떠오른다.
과거에 환경과 관련해 기부했을 때, 그 금액이 정치 기부나 모교 미식축구팀 기부와는 달랐을 수 있다.
우리는 기부금이 어느 정도면 내게 '아주 큰'액수이고, 어느 정도면 '튼큰 액수'이거나 '적당한 액수'
또는 '적은 액수'인지도 가늠할 수 있다.
그리고 특정 종에게 느끼는 감정의 크기도 있다.('아주 좋아한다'부터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까지).
이 감정을 액수로 환산해, 이를테면 '아주 좋아한다'를 '꽤 큰 금액을 기부한다'로 바꿔 일정한 액수를 정할 수 있다.
이번에는 다른 호소문을 받았다고 해보자,
장시간 햇빛에 노출된 종장 노동자는 일반 사람들보다 피부암에 걸릴 위험이 높습니다.
하지만 건강검진을 자주 받는다면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위험군에 속한 사람들에게 건강검진을 실시할 기금을 조성하고자 합니다.
다급한 문제일까?
다급함을 측정할 때 어떤 범주가 기준으로 떠올랐는가?
이 문제를 공증보건 문제로 자동적으로 범주화했다면,
농장 노동자의 피부암 위험은 같은 부류의 다른 문제들보다 순위가 더 높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멸종 위기 종에서 차지하는 돌고래의 순위보다 틀림없이 낮았을 것이다.
띠라서 피부암의 상대적 중요성에 대한 느낌을 금액으로 환산할 때
멸종 위기 종 보호에 내놓은 금액보다 적은 액수를 떠올렸기 쉽다.
실제로 단일 평가 실험에서, 사람들은 농장 노동자보다 돌고래에 더 많은 액수를 제시했다.
이제 공동평가로 두 가지 명분을 비교해보자.
돌고래와 농장 노동자 중에 어느 쪽이 더 많은 기부금을 받을 자격이 있을까?
공동평가는 단일평가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일단 감지되면 결정적 역할을 하는 특징을 부각한다.
농장 노동자는 인간이고, 돌고래는 인간이 아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단일 평가에서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특징이다.
단일 평가에서 돌고래가 사람이 아니라는 시실을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대상이 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삼 부각되지 않는다.
농장 노동자가 인간이라는 시실도 모든 공중 보건 문제가 인간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단일 평가의 좁은 틀짜기에서는 돌고래에게 더 높은 세기 점수가 부여되고,
세기 짝짓기에 따라 더 많은 기부금이 돌아간다.
공동평가는 문제의 대표성을 바꿔놓는다.
'인간 대 동물'이라는 대표적 특징은 둘을 같이 놓고 봐야 두드러진다.
공동평가에서 사람들은 농장 노동자에게 굳건한 지지를 보내고,
사랑스러운 비인간 종 보호보다 농장 노동자의 복지에 기부를 훨씬 더 많이 한다.
내기와 강도 사건처럼 여기서도 단일 평가와 공동평가에서 판단이 달라진다..
시카고대학의 그리스토퍼 시는 선호도 역전을 보여주는 여러 근거를 제시했는데,
아래도 그중 하나다. 평가 대상은 중고 음악 사전이다
| A사전 | B사전 |
| 발행 연도 | 1993 | 1993 |
| 수록 단어 수 | 10,000 | 20,000 |
| 상태 | 새 것 같음 | 표지 찢어짐, 그 외는 새 것 같음 |
단일평가에서는 A사전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그러나 공동평가에서는 당연히 선호도가 달라진다.
이 결과는 크리스토퍼 시가 말하는 '평가 가능성 가설(evaluability hypothesis)을 잘 보여준다.
단일평가에서는 수록 단어 수에 비중을 두지 않는다.
그 자체로는 평가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에 공동평가에서는 그 점에서 B사전이 낫다는 사실이 금방 드러나고,
수록 단어 수는 표지 상태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사실도 명백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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