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국 언론과 한국 대중을 비판하기 위해 썼다며 KBS 기자였던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밝히고 있다. 언론에게만 잘못이 있다고 생각 해 온 나는 그 글에 황당했다. 그러나 책을 다 읽은 후 그 대중의 한 사람인 '나'는 그동안의 내 잘못에 당황했다.
저자는 한국 언론의 문제점과 언론이 저지르고 있는 잘못에 대해 워렌 버핏의 주관과 비교 대조하여 설명한다.
제 1장 "우리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보도만 한다"
한국 언론은 언어의 물타기와 언론의 상징 조작을 통해 대중의 사고를 조종한다. 그 예가 바로 '구조조정'이다. 언론은 대량해고, 대량 감원 이라는 쉬운 단어 대신 구조조정이란 단어로 '해고'와' 가난'이라는 현실을 물타기하고 싶은 정부와 기업주의 의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나 또한 구조조정은 경기회생을 위한 불가피한 수단으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 외에도 세금폭탄, 서민경제 파탄이라는 단어로써 실체는 없고 이미지만 있는 언론의 상징 조작을 통해 언론은 대중을 기만한다. 무상급식의 이야기가 시작 되었을 때 몇몇 언론은 무상급식을 전면화 시키면 세금폭탄이 될거라던 기사로 역시 우리 대중을 속였으며 대중또한 속았다. 이런 왜곡된 언어로 언론은 정부와 기업의 이익을 보호해 준다. 한국의 주류 언론은 국익의 편이 아닌 강자의 편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국의 주류 언론은 파업은 국가 경제에 치명타이나 대량해고는기업의 회생과 국가 경제 회복을 위해 감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노동자는 죽지 않을 정도로만 쥐어짜고 기업주는 배가 터지도록 호강해야 국익이 유지된다는 말이냐?'라고 외친다. 바로 크레인 위에서 김진숙씨가 300 일 가까이 부르짖는 외침이다. 삼성 이건희나 현대 정몽구가 수천억을 탈세 한 일이 국가 경제와 국가 품격에 더 치명타라고 주장하는 글에 적극 동감한다. 노동자는 그저 열심히 일한 잘못밖에 없다. 기업주가 방만한 운영으로 회사가 어려워졌다면 당연히 노동자가 아니라 기업주가 책임져야 한다.
제 2장 '기자는 언론사가 고용한 월급쟁이이다'
대부분의 한국 기자들은 조직 논리에 순응하는 기회주의자들이라고 비판한다. 해설기사를 보면 신문과 통신사의 기사를 참조하고 눈치를 봐가면서 써 내려간 흔적이 역력하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읽기 위해 나는 구독료로 한달에 만 오천원이나 낭비 했으며 이런 뉴스를 듣기 위해 수신료를 낭비했다. 본전 생각이 나서 아까워 죽겠다. 1980년 5월 광주의 민주시민을 폭도, 용공분자로 계엄군의 지시에 따라서 보도했던 일부터가 현 50.60대 언론인들이 정권의 감시견은 커녕 애완견이라고 개탄한다. 정부가 불러주는 그대로 받아적는 기자는 언론인이 아니라 회사원이다.
제 3장 추정과 편견을 사실로 만든다.
인터넷에 올라오는 신문사의 기사 중 가장 쓰레기같은 기사 대부분은 '뉴데일리'이다.뉴데일리는 시민들의 모든 시위를 모두 친북행위라고 단정짓는 심각한 원천봉쇄의 오류를 기사라고 내 보낸다. 이 신문사라고도 할 수 없는 뉴데일리가 가장 몰상식하게 추정과 편견을 사실로 만들어 대중을 기만하려고 애쓴다. 많은 인터넷 기사 중에서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즐겨 읽고 있다. 알고 보니 그 '오마이뉴스'가 미국 미주리 대학 언론학 대학원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세계 시민 저널리즘의 상징적인 존재로 보고 있다고 한다.
제 4장 진실 보도보다 당장 돈 되는 보도가 우선이다.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은 진실을 구체적으로 보도 하지 않는다. 대중에게 핵심 쟁점에 관한 정보를 주지 않고 논쟁의 가십거리만 주고 있다. 그렇게 되면 대중은 많이 들었으나 사실은 들은 게 없고 아는 게 없는 상황에 처한다. 그 예가 바로 4대강 사업에 관한 일이다. 자신들의 이익에 직결된 문제에 대해서만 온갖 소음을 들을 뿐 제대로 비판의식이 없으며 그 기사들을 분석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제 5장 권력과 기업을 대변하는 언론
한국의 대중은 비교적 단일하고 균일하며 권위주의 문화에 익숙한 집단이다. 그래서 한국 언론은 권력과 기업을 대변하기가 더 쉽다고 한다.
한국언론은 이명박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 방문에 맞춰 한국전력의 원전 수주를 대통령이 직접 수주한 것처럼 보도했다. 사실이 아닌 내용을 사실처럼 기사를 쓰는 언론이나 자신이 하지 않은 일을 한 것처럼 보도해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사람이나 다 한 부류이다. 이런 언론 때문에 '나꼼수' 방송에 시민들이 열광하는 것이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 내 생각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던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가 떠나질 않았다. 내 생각의 주체는 내 자신이 아니었다. 그동안 나는 쏟아지는 정보를 비판 없이 수용했기에 뻔뻔한 언론에게 휘둘려 산 어리석은 대중이었다. 내 사고의 주체가 되기 위해 비판적인 안목과 사고는 무척 중요하다. 국세청은 아모레퍼시픽에 대해 세무조사를 시작했고 경찰은 나꼼수 4인방에 대해 수사를 착수했다. 앞으로 이들에 대해 어떤 기사가 보도 될런지 궁금하다.
첫댓글 이 글을 읽기 전까지, '내가 왜 책마을에 대해 많은 애착을 갖고 있지?'라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비로소 오늘 '님의 글을 읽고서' 그 이유를 찾은 것 같습니다.
보령이라는 지역사회에서, 세상의 비겁함과 세상의 진실을 찾으려는 고뇌, 그 속에서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성찰하고 분투하는 소중한 공간이라는 확신이 오늘 지금 님의 글을 읽고서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책마을 속에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과 결정 후, 정확하지 않은 상태(온라인에서만의 참여)를 벗어나, 확실한 참여를 해야함을 일깨워 준 글입니다.
다음에 같은 팀(가끔팀)에서 만나겠습니다. 오늘 아침 깨달음을 준 고마운 글입니다.
요새 리영희책에 푹 빠져 있습니다. 얼마전에 태백산맥이후로 처음으로 밤을 꼬박 세워 '리영희 평전'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전에 읽었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다시 읽었고,
사다만 놓고 읽지 않았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대화'를 읽고 있습니다.
샘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까 <리영희평전>에 ‘곡필 언론인과 기회주의 지식인을 질타하다’란 꼭지에 있는 한대목이 생각납니다.
" 지난 한 세월 동안 내게는 이사회에 '신문지'는 있어도 '신문'은 없었다. 무슨 말인지 알수없는 넋두리를 인쇄한‘... 지紙(종이)’는 내게 조석으로 배달되어왔지만 ‘새소식(신문)’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소식이라는 것도 하나같이 권력을 두둔하는 낡은 것이고, 권력에 아부하는 구린내 나는 내용들이었다. 그러기에 그따위 '신문종이'를 만들어내는 신문인들이 감히 '언론인言論人'을 참칭할때 나는 그들을 ‘언롱인言弄人’이라는 호칭으로 경멸해왔다. " 20년 전에 어떤 주간지에 기고한 글이지만 20년이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 읽어도 자못 통괘한 글이다 라고 저자 김상중은 얘기하고 있습니다.
신문은 있습니다. 조중동경한한겨매서국 등등등...인터넷 신문도 많습니다...뉴스를 전하는 포털도 많습니다...내 정체성에 맞추어 읽으면 됩니다...내 취향에 맞는 신문을 보시면 됩니다...사설이나 논설이 틀렸다고...나와 다르다고 느끼면 되는 것이며, 동감되는 부분이 있으면 취향대로 자신의 정체성대로 선택하면 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중요하죠. 자신의 생각!!~
제 의식을 기사 쓰는 사람들 보다 더 높여야 할텐데...그게 쉽지 않으니 문제지요..ㅜㅜ 어쨋든 옥석을 가리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