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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홑이불
이숙자
모시홑이불. 아주 낡았지만 손질을 하니 금년 여름엔 충분히 쓸 만하다.
60여 년 전 쯤 친정할머니와 어머니가 길쌈을 해 짜신 모시 베로 시집 올 당시에 만들어준 홑이불이다. 지금도 그분들의 체취가 묻어나고 혼이 배어있는 것만 같아서 매우 아끼고 소중히 여긴다.
여름철이면 밤마다 삼베로 만든 모기장을 꼭 치고 잠을 잤다. 칠흑같이 캄캄한 밤엔 형제들끼리 그 안에서 조잘대며 발장난을 실컷 치다가 잠들곤 했다. 보름달이 가까워지면 달빛과 별빛이 제법 휘황찬란하게 밝았고 모기장 속으로 달빛이 비치면 우리들의 얼굴은 붉으레 물들어 보이곤 했다.
달은 언제나 나를 유혹했다. 달빛으로 가득한 마당가 텃밭의 풀잎에 묻은 이슬방울이 한데 뭉쳤다 놀란 듯이 떨어지고 풀것들은 싱싱하게 은빛을 내며 커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행랑채에서 할머니와 어머니는 밝은 달빛 아래 길쌈을 하셨다. 간간이 한숨소리와 물레 돌리는 소리가 스르륵스르륵 스쳤다. 토방 뜰에선 금이 간 옹배기에 피운 모닥불이 달빛에 삭아져서 연기마저 감춰졌다. 허청채 지붕 위엔 영롱한 은색의 박꽃과 그 옆에서 동실한 조롱박이 한 폭의 정물화 같고 달이 흐르면 오동나무 잎새 그림자가 움직였다. 그럴 때면 개도 잠 못드는지 괜스레 컹컹컹 짖어댔다. 진녹색 탱자나무 잎새 위에 걸린 호박꽃 속에서 낮동안 바쁘게 움직이던 벌들은 어디가서 쉬는가. 토방의 돌 틈에선 채송화 꽃들도 잠이 들고 풀섶에서 우는 풀벌레소리만 들렸다. 마루의 기둥에 기대어 앉아 잠을 잊고 내일의 낭만을 꿈꾸던 날들이었다.
사랑채 옆으로 난 사립문 앞에는 꽤나 넓은 모시밭이 있었다. 한 여름철에 세 번 정도 모싯대를 베었다. 할머니의 어깨쯤까지 모싯대가 자라면 부지런하게 고부간의 길쌈이 시작된다. 모싯대를 한 번 베어낸 자리에는 인분을 꼭 덮어 주었다. 그러면 싹부터 진녹색 잎새가 되어 강하고 당당하게 잘도 자랐다. 할머니는 기술이 좋았다. 할머니가 금방 벤 모싯대를 왼손으로 잡고 훑으면 잎새가 우수수 떨어졌고 잎새 줍느라고 나는 바빠진다. 손가락을 모싯대 사이에 주욱 내리면 모싯대가 두 줄기로 갈라지며 가지런히 쌓여갔다. 그 벗겨진 모시를 물에 여러 번 담갔다 말리면 점점 희어졌다. 그러면 할머니는 어려 개의 모시줄기를 모아 쥐어 낭자만한 크기로 묶고 손톱 끝으로 가늘게 가늘게 짼다. 가른 모시를 쩐지를 양쪽에 세워 걸쳐놓고 무릎에 대곤 연신 침을 발라가며 삼아서 여러 소쿠리에 담는다. 실이 서로 엉키지 말라고 모래 한 줌씩을 얹어가며 손과 발과 입과 무릎, 전신을 바삐 움직여서 베를 짰다.
베를 삼던 고부간의 모습이 다정했다. 베 메던 날은 메밀묵을 끓여서 동네사람과 더불어 묵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베 짜는 일이 시작되면 어느새 들일 밭일이 끝난 걸 알 수 있다. 사랑채의 허청방 한쪽에다 베틀을 차렸다. 그때부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짤그닥짤그닥 집안은 베 짜는 소리로 꽉 찼다. 날씨 두 줄을 엄지발가락 사이로 끼워든 씨실을 감은 꾸리를 좌우로 옮기는 일을 연신 반복해가며 베를 짰다. 베 한 필이 짜일 동안 내내 우리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손님이 와도 반가이 마주하지 못했다. 그때 그 시간이 우리 형제에겐 참으로 길고도 멀게 느껴졌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날마다 긴 시간을 베틀 앞에 앉아 계셨고 베가 한 필 두 필 짜여지는 동안에 두 분의 손은 부르트고 무릎은 터져 있었다.
인내와 부지런함 속에서 결코 화려하지 않은 베는 완성되어 갔다. 길쌈하는 과정의 하나 하나에 정성과 몰두정신이 들어있다. 그리하여 잠자리 날개마냥 성글고 섬세하고 은은한 베를 완성해낸다. 허리춤에 흐르는 은은한 달빛처럼 아름답고 부드럽게 짜여진 모시베. 얼마나 고우면 옥과 같다고 표현했을까. 그래서일까? 모시는 빨아도 빨아도 새것 같고 풋풋한 향내가 난다. 우리 어머니들의 순박한 진실성이 듬뿍 배어 있어서일 것이다.
지금도 선명한 영상으로 떠올라서 아련한 그리움이 일렁여온다. 내가 보아오고 간직한 끈질김 같은 것, 삶이 고달플 때 정신적 지주가 되어 나를 인내로 안내해 준 모습이다. 그 기억 덕분에 오늘의 내가 되어있지 않을까 싶다.
요즈음엔 중국모시가 수입되어 헐값에 거래되고 있다. 그러나 그 모시는 할머니가 삼아주신 모시와는 비교도 안 되게 거칠다. 방직기술이 발달하고 편리한 옷감을 선호하게 된 지도 오래다. 이제는 베 짜는 여인들이 거의 사라져가는 게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선 그 날들이 자구 그리워진다.
변하는 것 천지다. 친정집에도 베 짜던 사랑채의 구석방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지푸라기와 마른 풀, 나뭇잎만 아무렇게나 깔려 허물어지고 있다. 오래된 습관처럼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서성거린다. 모시밭과 텃밭이 있던 곳엔 새집이 들어서고 안채만 황폐하게 낡아가고 있다. 인기척이 끊긴 지 오래라는 증거다. 가슴 깊이 남아 있는 추억의 정취를 되살려내는 친정집. 남은 세월동안 몇 번이나 다녀갈지. 헐리지 않은 안채는 나를 얼마만큼 기다려 줄는지.
할머니와 어머니. 두 분이 돌아가신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 모시홑이불만 내 곁에 남아 있다. 비록 낡고 구멍났지만 내 그리움이 가장 짙게 배어 있는, 소중한 유산이다. 낡은 홑이불을 꿰매며 살아계실 때 받은 사랑을 되새긴다.
여수를 찾아서
초록빛 생명들이 움트고 햇살이 눈부신 봄날에는 으레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바람마저 부드럽게 내 옷깃을 흔든다. 날 부르는 듯한 봄바람을 따라 남쪽으로 길을 떠난다. 여수 오동도와 향일암을 향하여.
차창 밖 아름다운 섬진강 굽이굽이 물길을 따라 펼쳐지는 풍경에 취해 차 안에서의 시간은 피곤할 새가 없었다. 항만조건이 좋아 인근에 공단이 밀집한 공업도시인 여수. 육지에서 섬까지 기다란 방파제가 바다를 가르고 있다.
사람들이 바닷바람을 마주하며 활기차게 동백섬을 향해 걷는 모습들이 퍽 즐거워 보인다. 섬에 막 닿으니 신혼여행을 온 듯한 신랑이 카메라를 내게 주며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신부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목례를 하곤 동백꽃 사이로 다정히 포즈를 취한다. 나의 신혼 때의 기분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동백섬은 193가지 수종으로 자연스레 어우러져 숲이 빽빽하다. 자연경관이 매우 아름다워서 봉황새도 잠들었다는 곳 숫섬. 꽃섬이라고 불리울 만큼 아름다운 섬이다. 사방으로 망망히 펼쳐진 바다는 가슴을 툭 트이게 한다. 한낮의 바다는 깊은 잠에 빠진 듯 평화롭다. 바다를 여성명사로 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바람에선 갯벌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마치 삶의 냄새가 이렇지 않을까 가르쳐주려는 듯이.
돌산대교 아래 끝없이 맑고 푸른 바다가 세상의 온갖 시름을 싹 씻어주는 듯하다. 눈이 항상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만 볼 수 있다면 저절로 마음은 선해질 것 같다. 지금 마음속에 든 오욕과 교만을 저 바다에 던지리라. 남보다 무거운 짐을 지고 사노라고 힘겨워했던 그 짐도 벗어 놓으리라. 오늘만이라도 저 바다를 닮아 보리라 생각하니 마음 밑바닥까지 개운해진다.
향일암이 있는 금오산을 향했다. 산 아래 보이는 바다는 저녁바람 따라 수천수만의 파도가 마치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며 일렁인다. 생동감이 있는 한낮의 바다의 표정과는 달리 저녁 무렵의 바다는 우수에 잠긴 듯하다. 저절로 내 존재의 무게를 헤아리게 된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생활이지만 그 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내 몫의 삶을 제대로 가꾸리라. 그리고 내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리라.
금오산의 굵고 작은 바위들이 거북 등껍질 형상으로 줄무늬져 있다. 금오산의 형상이, 거북이가 부처님 경전을 등에 업고 용궁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라더니 영락없이 그렇게 보였다. 향일암은 90도 절벽에 위치해 있어 파도에 부서진 물보라가 바람을 타고도 올라오지 못한다. 그래서 바다에서 염분이 올라오지 못하므로 건축물이 상하지 않으며 사람의 피부가 끈적거리지 않는단다. 이런 조건의 바다는 세계적으로 세 군데 뿐이란다.
향일암으로 오르는 길에서 군데군데 쌓여진 돌무더기는 고향의 서낭당을 보는 듯했다. 절에 가시는 할머니를 따라 가젯골 동거치를 넘으면 곤수골 모퉁이에 크고 작은 두 개의 돌무덤이 있었다. 나는 으레 동거치 쯤에서 돌 세 개를 주워서 서낭당에 바짝 다가갔다. 할머니는 큰무덤에, 나는 작은무덤에 돌을 던졌다. 할머니의 첫 소원은 ‘산신님께 비나이다. 우리 새끼 명 길게 해 주십사.’ 였다. 두 개째 돌을 던지면서 바느질솜씨 좋은 손녀가 되게 해주십사, 세개째에는 음식 잘 만드는 손녀 되게 해주십사 하시며 허리를 잔뜩 구부려 절을 하셨다. 이번에는 내 차례였다. 내가 주운 작은 자갈돌엔 ‘학교에 가면 공부 일등하게 해 주세요. 일원짜리 돈 많이 갖는 부자 되게 해주세요. 우리 엄마 다시 살아나 우리 집에 오시게 해 주세요.’ 라는 소원이 담겼었다. 그때마다 할머니가 볼 세라 몰래 옷소매로 눈물을 닦곤 했다.
오백년이나 되었다는 동백나무. 잎은 꼭 기름을 발라 닦아 놓은 것처럼 반질거리는데, 붉은 꽃들이 송이째 바닥에 떨어져 있다. 왠지 떨어진 꽃송이가 안쓰럽다. 꼭 한 사람씩만 통과할 수 있는 바위동굴을 겨우 통과해 산사에 다다른다. 원효대사를 비롯해 많은 고승들의 제취가 묻어 있을 향일암. 법당마루 끝에 앉아 잔잔한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목탁소리와 독경소리를 듣는 중에 세상사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한 성서의 전도서 말씀을 떠올린다. 수평선에 걸린 해가 하늘과 바다를 아름답게 물들이며, 바다처럼 넣은 마음으로 살라 한다.
이렇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며 덜어내고 새로운 것으로 채우기 위해 가끔씩 홀로 여행을 하고 싶다. 바쁘고 힘든 생활여건이 끊임없이 붙잡겠지만, 과감하게 떨치고 나를 위해 떠날 것이다 .
행복한 마음
우리는 살아가면서 행복을 원합니다. 그래서 행복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처럼 사는 것은 아닌지 자신을 돌아봅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은 파도처럼 이리 저리 움직입니다. 바닷물이 고요하고 평화롭게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넘실대고 있듯이 우리 마음 또한 한시도 잔잔해 본적이 없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을 멀리하고 좋은 생각만 붙들어 맬 수도 없습니다. 그냥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최고라고 여기며, 따뜻한 말과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며 이 시간을 즐겁게 보내고 싶습니다. 행복이 전염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내가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은 어린이가 떼를 쓰듯 이성을 지배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욱하고 화가 나고 짜증이 끊이지 않습니다. 시를 쓰고 글쓰기를 하는 이 시간이 감정을 다스리는 나를 위한 소중한 시간이며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격조 높은 순간이라고 생각 합니다.
나의 경우는 문학, 곧 글쓰기입니다. 이것을 발전시킨다면 남은 인생을 행복 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과 한 방향을 바라보고 함께 행복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겠지요. 어찌 보면 행복도 특별한 것 같지는 않아요. 내안에 있는 행복을 꺼내 쓰면 되는 데 욕심과 칩착이 그걸 가로막고 있는 것 같아요.
좋은 소통과 관계는 더 평온한 삶의 여정을 이루어냅니다. 소통으로 인한 회복 모든 것들이 행복을 돕는 출발점이 됩니다. 그러기에 문학을 행복이라 생각합니다. 그 속에는 괴로운 마음을 즐겁게 하는 멋과 맛과 운치가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건강 지키기
아주 느리고 더딘 몸짓이다.
기분 좋게 시원하게 늘리고 늘려본다.
칠순의 중반을 넘긴 나이에 이제 요가를 시작했다.
평생 노동으로 고갈이 된 육신
허리는 굽고 왼쪽 관절은 획 틀어져 있다. 먼저 복식 호흡으로 몸을 풀고 명상을 통해 새롭고 즐거운 마음을 먼저 만들고 자신의 우울함을 치유 한다. 굳은 근육과 관절 통증을 부드럽게 하여 어린 아이 몸으로 될 수 있게 열심히 따라 해본다.
내 몸 상태로 봐서 또 내 몸을 사랑한다면 게으름을 피우지 못하니라.
진정 나만을 위한 존재가 된 듯 이 시간이 나는 행복하다.
언제 이렇게 들숨과 날숨의 여유를 부렸던가?
평화를 얻은 기분이다.
기능을 살려 몸에 중심이 되어 관절을 넓혀 주니 가벼워진다.
오늘도 틀어진 압박을 풀기 위해 마치 화살을 당기듯 팽팽하게 몸을 당겨 보니 지친 심사까지도 편안해짐을 느껴 본다.
류마치스 관절로 두 손의 마디마디가 볼 상스럽게 울퉁불퉁하다.
험하게 산 세월의 증거가 된 손을 나도 모르게 감추게 된다.
더 늦기 전에 운동은 필수다.
서두르지 않고 느리게 해도 매우 기분 좋고 시원하다.
늦다고 생각 할 때가 가장 빠르다고들 하지 않는가?
오랜 세월 사는 탓으로 방치되었던 나의 자랑스러운 육체에게 이제부터라도 관심과 사랑을 내가 직접 줄 예정이다.
감사의 선물
척박한 땅에 겨자씨를 심고
싹트기를 소망했다
언제쯤 꽃을 피워낼까
오랜 기다림 끝에
꽃향은 사방에서 벙글거린다
사계절이 세 번 오고 간 시간
불러보고 꺼내보고
돌아보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 있다
마른 허수아비 가슴에 담았던
우리의 속앓이 쓸어낸지도 오래
그 상처는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지키기 위함이다
명치 끝을 누르던 아픔도
흐르는 세월에
녹아내리고 잊혀져 갔다
이제 그루터기의 새순도
고목에 핀 목련꽃도
함박웃음으로 수런댄다
인생사 새옹지마
잘 익어낸 천사들이
전도에 횃불을 들었다
축복이 가득하다
크신 말씀의 은혜가
감사의 단물이 되어
대지를 적신다
석류가 떨어지던 날
우리 집 마당에 가을이 열려있다
붉은 속내를 들어내더니 가을품에 안긴다
여름 햇살 머금은
알맹이들이 서로 부비며 익어간다
산월 날자 맞추어
나무아래 자리를 깔아 놓으니
간밤 두통으로
두터운 껍질이 찍어지고
붉은 보석알이 툭 터진다
알알이
진주처럼 반짝이니
내 눈이 떳다 감았다
그 옛날 두메산골에서
두 동생 탯줄을 잘랐던 어머니의 해산
칠흑의 밤
문틈 바람으로 등잔불 꺼질까
내 등으로 감싸며 지내던
그 기억들
불러들여 추억에 잠겨본다
석류를 모아놓고
신호등
빨간 신호등
새우등 앞가슴 발등에
붓짐하나 떨어친다
놀란 눈동자
눈을 감고
마른 한 숨이
지랑이를 일으키니
자란 신호등
낙타등을 안고
건네준다
쿵쾅대는
노파의 가슴을 보듬고
삶의 미래를 엿보는 순간
비켜 낼 수 없는
늙음의 무게
내 마음 비워야지
오늘도 난
신호등 앞에서
서성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