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수첩 1 | 김리라
동화 속 주인공처럼
작가로서 좋은 동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
*가치 있는 이야기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는 재미있지만, 자칫 가벼울 수 있고 필요한 이야기는 다소 무거워질 수 있다. 두 이야기가 씨실과 날실처럼 잘 짜여 조화로운 동화가 좋다. 그동안 저학년이나 중학년 동화를 주로 써왔다. 저학년 동화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 ‘주제나 소재가 무거우면 재미없다.’
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저학년이든 고학년이든 다루는 주제나 소재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이들 눈높이에 맞게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으니까. 특히 주제는 다소 무겁지만, 저학년 눈높이에 맞게 쓰인 동화를 볼 때 경이로움을 느낀다.
저학년 동화에서 발랄하고 경쾌한 문장을 많이 쓰는데 어떤 동화는 주제는 물론 작품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게 붕 떠 있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아이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는 내적 요인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아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외적 요인 즉 다른 사람이 문제거나 어른에게 문제가 있는 경우다. 후자의 이야기는 쓰기가 정말 힘들다. 쓰다가 멈추고 다시 쓰곤 한다.
가치 있는 이야기는 다 읽고 나서 행복하다. 자꾸 곱씹게 된다. 문장이나 묘사가 특별해도 좋지만, 그보다는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가 매력적이며 가치 있을 때 좋은 동화라고 본다.
마지막으로 개성 있는 캐릭터 즉 살아있는 캐릭터다. 캐릭터라고 하면 시각적 상징물이 먼저 떠오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외적인 개성도 중요시한다. 동화에서는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한계가 있다. 좋은 동화 속 캐릭터는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대화를 통해 저마다 개성 있는 캐릭터를 발견할 때 좋은 동화라고 생각한다.
김리라
어릴 때 꿈은 연극 연출가, 시인, 작가, 생선가게 주인이었어요. 생선 가운데 특히 갈치를 좋아했답니다. 『무에타이 할아버지와 태권 손자』로 제 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을 수상했고, 지은 책으로는 『우리는 걱정 친구야』, 『너랑 절대로 친구 안 해!』, 『돌봄의 제왕』, 『공부 잘하게 해 주는 빵』, 『플라톤 아저씨네 이데아 분식점』, 『이상한 생일 초대』가 있습니다.
작가 수첩 2 | 김미혜
그래도 동시 읽는 기쁨과 동시 쓰는 즐거움으로
작품을 쓸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이웃집 할망구가 / 가방 들고 학교 간다고 놀린다 / 지는 이름도 못 쓰면서 / 나는 이름도 쓸 줄 알고 / 버스도 안 물어 보고 탄다 / 이 기분 니는 모르제
「내 기분」이라는 시입니다. 까막눈에서 벗어난 기쁨이 찬란하고, 당당하지요. 누가 좀 놀리면 어떤가요. 배운다는 것이 이리 고마운걸요. 할머니의 세상이 환해졌으니 풀이 꺾일 리 없습니다. 이 기분 니는 모르제! 영락없는 개구쟁이, 메롱, 혓바닥을 널름 내미는 초등학교 2학년 장난꾸러기 모습에 웃음이 납니다. ‘내 기분’은 어른인 내 마음 한구석 어디쯤에 숨어 있던 마음 같기도 합니다. 이 시를 쓴 칠곡의 강달막 할머니는 여든이 넘어 한글을 깨우치고 그 감격을 이렇게 유쾌하게 담아냈습니다.
논에 들에 할 일도 많은데 / 공부 시간이라고 / 일도 놓고 / 허둥지둥 왔는데 / 시를 쓰라 하네 /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
소화자 할머니 역시 한글을 배우면서 「시가 뭐고」 라는 수작을 남겼습니다. 짧은 시에 할머니의 삶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논과 들, 시금치 씨와 배추 씨가 할머니 세계의 전부라고 하지만 할머니는 삶의 한순간이 굉장한 시가 된다는 것을 아는 분이지요.
저도 일상적 삶, 일상적 어법에 충실한 시를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용쓰지 않고 천천히, 순하고 바르고 착하게 살려고 합니다. 으르렁거림 뒤에 숨은 아픔을 보려고 합니다. 시를 말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하지요. 어떤 것을 쓰든 그것은 선명한 이미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선명한 그림은 어떤 대상을 그리든 천천히, 오래 마음을 두어야 그려집니다. 오래 마음을 두고, 마음을 다하면 눈에 보이는 것 너머가 보이고, 들리는 것 너머의 것이 들리기도 하겠지요. 그것들이 억지로 만들지 않고, 꾸며지지 않고 진솔하게 전하는 방법을 생각해야겠습니다. 때로는 덜 살금살금, 덜 자분자분.
‘하겠다’의 문장으로 쓴 것은 그동안 쓴 동시들이 지금 말하는 내용에 미치지 못하는 게 많아서입니다. 시 한 편 한 편 곡진하게 쓰지 못했다는 생각에 ‘진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노라는 말도 감히 올리지 못하겠습니다.
김미혜
2000년 『아동문학평론』으로 등단. 동시집 『안 괜찮아, 야옹』, 『아빠를 딱 하루만』, 『꽃마중』, 『아기 까치의 우산』, 『시 수업 이야기』, 『신나는 동시 따 먹기』, 그림책 『저승사자에게 잡혀간 호랑이』, 『돌로 지은 절 석굴암』, 『분홍 토끼의 추석』, 『귀신 단단이의 동지 팥죽』 등을 냈다.
작가 수첩 3 | 김하늘
나쁜 동화만 안 쓰면 다행이다
작가로서 좋은 동화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0여 년 전에 한겨레작가학교에 다닐 때 이오덕 선생님이 어린이를 배반하지 말라고 하셨다. 같이 공부하던 도반들이랑 그 무렵에 권정생 선생님댁에 갔는데 선생님은 우리를 보고 ‘좋은 동화를 못 써도 나쁜 동화만 안 쓰면 된다.’고 하셨다. 그 두 말씀이 나에게는 바이블이 되었다. ‘좋은 동화는 무엇이고, 어린이를 배반하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늘 달고 문학을 했던 것 같다.
‘어린이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가 지금까지는 좋은 동화를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어린이를 아프게 하는 길을 꿈꾸게 하거나, 잘못된 세상을 좋은 세상으로 꾸며서 보여주는 것은 좋은 동화가 아니라고 아직은 생각한다. 그 덕분에 ‘어린이는 무조건 착하고 아름답다’거나 ‘모든 사람이 다 잘 돼서 잘 먹고 잘 살았다.’고 억지 마무리를 하는 동화는 안 써야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 마나 한 얘기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얘기를 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글이라는 것도.
앞으로 또 어떤 생각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지금까지는 이렇다. 더 현명하고 지혜로운 기준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겠지.
김하늘
『마중꽃』, 『지리산 소년병』, 『핵심콕콕 안녕 한국사』를 비롯한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쓴다.
작가 수첩 4 | 원종찬
쓰러질 데 가서 확 쓰러지기
평론가로서 좋은 평론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명창은 귀명창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눈이 좋은 작품을 낳는다는 뜻이다. 그러하니 좋은 평론이란 작품의 좋고 나쁨을 잘 가려내는 글일 테다. 『아동문학론』의 저자 릴리언 H. 스미스 여사도 “범작의 부류를 너그러이 봐 주는 일은 좋은 책을 선택하고 문학의 의의를 파악하는 목적을 그르치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또한 “훌륭한 책이 주의를 끌지 못한 채 간과되”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한다고도 했다. 평론이 신뢰를 받느냐 못 받느냐 여부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눈썰미’에 달려 있다고 본다.
그런데 작품에는 여러 종류가 있듯이 독자가 만나는 평론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작품을 폭넓은 문맥에 놓고 공시적・통시적 상호관계를 따지면서 합당한 자리매김을 시도하는 ‘평론’이 있는가 하면, 주목을 요하는 신간에 대한 핵심 정보를 제공하는 ‘서평’도 있고, 작품집 뒤에 붙여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해설’도 있다. 이것들은 제각각 쓸모가 있는 것이지만, 번지수가 틀리면 낭패를 보기 쉽다.
한동안 ‘주례사 비평’이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주례사 비평이 횡행하는 평단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이다. 물론 이는 ‘문학권력’의 폐해일 것이나, 막연히 자본만 탓하는 것으로는 답이 나오질 않는다. 문학권력을 떠받치는 폐쇄적 문단구조를 해체하는 것이 관건이다. 아동문학계에는 부족한 문학적 권위를 매사 친목으로 때우려드는 희한한 ‘동업자의식’이 우심하다. 따라서 평론이 평론답지 못하고 해설을 닮아가는 것에 무심한 온정주의・적당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기성작가에게 수여하는 아동문학상들의 면면을 한번 살펴보라. ‘침묵의 카르텔’이 어떻게 묵인되는지 훤히 보일 것이다.
흔히 작품집의 발문 구실을 하는 해설은 필자와 어떤 인연을 매개로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잔칫집에서 결례는 도리가 아닐 것인즉, 주례사를 요청받았다면 장점 위주로 말한다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다만 그것이 공감을 주느냐 못 주느냐는 전적으로 필자가 책임져야 할 몫이다. 뛰어난 해설 덕분에 작품의 숨은 의미가 새롭게 살아나는 경우도 많다. 독자가 역겨워하는 것은 얼토당토 않는 심사평과 해설을 보기 때문이다.
서평은 촌철살인의 글이다. 이 책은 이런 면에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관전 포인트에 해당하는 특징과 장단점을 예리하게 짚어주는 것으로 임무를 마친다. 요즘은 서평도 물에 물탄 듯 해설을 닮아가고 있다. 서평은 2백자 원고지 5~10매 정도의 촌평으로 해결해야 독자도 읽어볼 생각이 들 텐데, 20~30매쯤 되는 지루한 것들이 태반이다. 결과적으로 해당 출판사와 작가더러 읽으라고 쓰는 것밖에 더 되겠나. 그럴 거면 평론으로 소화해서 이것저것 제대로 짚어주든지.
이렇게 여러 종류를 들어서 서로 구분하는 이유는, 보통 70매 내외로 이루어지는 평론은 좋고 나쁨에 대한 필자의 문제의식이 뚜렷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평론가라면 눈치 볼 게 아니라 자기주장에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평론다운 평론은 보기 힘들고, 읽기 좋은 해설은 많아졌다. 그렇다고 평론이 전문가들의 품평회는 아닐 것이다. 평론은 창작과 함께 동시대 문학현장에 개입하는 실천적인 행위이다. 시의 적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그에 합당한 기준을 세워서 작품을 따져줄 때, 새로운 시야가 열릴 수 있다.
원종찬
아동문학평론가, 인하대 교수, 한국작가회의 이사. 지은 책으로 『아동문학과 비평정신』, 『동화와 어린이』, 『한국 아동문학의 쟁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