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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기쁨이 되십시오
생계가 어려워 17살 때 장사를 시작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부친이 남겨주신 적은 유산을 가지고 정육점을 시작한 소년은 가게를 여는 순간부터 ‘어떻게 해야 고객들이 만족할까?’라는 한 가지 생각만으로 머리 속이 가득 찼습니다.
먼저 그는 정해진 크기로만 사갈 수 있는 시스템을 바꿔 고객이 원하는 만큼 사갈 수 있게 방식을 바꿨습니다. 곧 동네에서 가장 사람이 많이 몰리는 정육점이 됐지만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손님들에게 좋은 고기를 제공하고 싶어 육질이 좋기로 유명한 시카고의 소고기를 수입해 왔습니다. 먼
거리를 오면서 고기의 신선도가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냉동 창고까지 구입했습니다. 이제는 그 지역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정육점이 됐지만 그는 계속해서 고객을 위한 서비스를 시작했고, 스위프트라는 소년이 시작한
정육점은 지금 미국에서 가장 큰 식료품회사인 ‘스위프트’로 성장했습니다.
사업을 위해 고객을 만족시키는 것처럼 전도할 때도 전도 대상자들에게 친절을 베푸십시오. 열매를
많이 맺을 것 입니다. 그리고 드리는 예배로, 매일의 삶으로
주님을 만족시켜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내가 창조된 이유이며 내가
아직도 살아가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위해 사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상대방을 배려하는 삶을 살며 무엇을 하든지 주님을 위해 하게 하소서.
하루에 한 가지씩이라도 주님이 기뻐하실만한 일을 시작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예배를 위한 결심
세계당구챔피언 윌리엄 호프 주니어는 집중력을 키우기 위해 5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1. 당구에 방해가 되는 모든 방해물을 제거하겠다.
2. 경기 중에는 모든 에너지를 당구에만 집중하겠다.
3. 한 구 한 구 완벽하게 치려고 최선을 다 하겠다.
4. 다음에 칠 동선도 계산하며 치겠다.
5. 결과와 상관없이 연습을 끊임없이 계속하겠다.
그리고 이 원칙을 예배로 바꿔보겠습니다.
1. 예배에 방해가 되는 모든 장해물을 제거하겠다.
2. 예배 중에는 오로지 하나님에게만 집중하겠다.
3. 드리는 모든 예배에 최선을 다하겠다.
4. 예배를 드리고 난 후의 삶도 신경 쓰며 살겠다.
5. 상황과 상관없이 언제나 예배하겠다.
주님께 집중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100%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만 경배하는 예배와 삶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계십니까? 주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위해 주님께 집중하며 말씀과 찬양으로 예배하는 훈련을 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예배시간에 오로지 주님과 말씀에 집중하게 하소서.
예배할 때, 기도할 때, 찬양할 때 잡념을 떨치고
집중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변화를 위한 십계명
오카프 후미히토의 ‘나를 변화시키는 정리법’에 나오는 10가지 수칙입니다.
01. 쓸데없는 물건부터 버리라.
02. 남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활용하라.
03. 가장 중요한 일부터 처리하라.
04. 예상보다 50% 넉넉하게 시간을 잡아라.
05. 최대한 단순하게 생각하라.
06. 쉬운 방법으로 즐겁게 일을 하라.
07. 나만의 능력을 찾고 계발하라.
08. 목표는 구체적으로 수치화 시켜라.
09. 일을 인생의 목표가 아닌 수단으로 삼아라.
10. 한 가지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아라.
우리를 위해서도, 주님의 일을 위해서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합니다. 그동안 해왔던 당연한 습관이라 하더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지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이미 여러 번 실패했더라도 일으켜 주시고 힘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불필요한 습관들을 제하고 빈 공간을 주님을 향한 사랑과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좋은 습관들로 채우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저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주님을 위해 잘 활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위 10가지에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서 보완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나님의 선물
아프리카와 동유럽, 중동의 여러 극빈국에 사는 아이들은 성탄절에 대해서 전혀 모릅니다.
성탄절의 주인공인 예수님은 물론, 아이들이 좋아하는 산타클로스마저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이런 아이들을 위해 미국의 여러 자선단체에서는 ‘크리스마스 상자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단체마다 다르지만 제 3세계 아이들에게 필요한
물품을 보내주기도 하고, 혹은 직접 준비한 물건을 담아서 보내주기도 합니다. 다만 일반적인 봉사단체에서는 이 기부를 ‘산타의 선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기독교
단체에서는 ‘선물로 오신 예수님’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번잡한 홍대 중심가에 커다란 박스가 쌓여 있었습니다. 국내의 한 문화단체에서
서울의 주요 번화가에 크게 상자를 쌓아놓았는데 가만히 보면 평범한 박스이지만 조금 떨어져서 보면 박스의 무늬들이 합쳐져 커다란 예수님을 형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사람들에게 되새기기 위해서 펀딩을 받아 마련된 이 행사는 매년
조금씩 규모가 커지고 있습니다.
성탄절은 오로지 예수님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님이 오셨기에 구원
받은 내가 있으며, 예수님이 오셨기에 영생의 복음이 있습니다.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가슴에 새기고 함께 모여 그 기쁨을 예배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독생자를 기꺼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마음에 품게 하소서.
성탄절의 참의미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는 행동을 한 가지 이상 하십시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치유하는 말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성경과 관련된 아주 특이한 연구가 실려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이 있습니다.
‘성경 묵상이 현대인의 스트레스를 해소한다’라는 제목이었는데 하버드 의대 교수인 허버트 벤슨 박사가 자신의 환자들을 관찰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었습니다. 박사는 심한 스트레스로 심장에 이상이 생긴 환자들을 많이 맡았는데 그 중 몇몇에게서
급격히 증상이 좋아지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생활을 분석한 결과 ‘하나님의 말씀 묵상’이 원인이라고 생각하게 된 교수는 미시간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카플란 박사의
도움을 받아 본격적으로 연구를 했는데, 성경을 보는 환자들이 누리는 치유 효과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이들의 연구에 따르면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들은 아스피린이나 소화제보다도 약효가 좋았고, 정신적
피로를 해소하는 효과가 특히 컸습니다. 특히나 말씀을 묵상할 때 집중하는 정도에 비례해 그 효과도 좋아졌습니다.
말씀이 영혼과 몸을 치유하는 것은 단순한 느낌과 착각이 아닌 실제 과학적인 효과입니다. 오늘
주시는 말씀을 놓치지 말고 깊이 묵상함으로 주님과 매일 힐링 타임을 가지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말씀이 주는 능력으로 저의 몸과 마음과 영혼을 치유해 주소서.
순간순간 성경을 보지 않고도 묵상할 말씀 5구절을 암송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자살을 부르는 상황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이고, 청소년 사망 원인의 1위 또한 자살입니다.
미국에서도 급속도로 늘고 있는 청소년 자살은 심각한 사회문제여서 ‘아동기 부정적 경험과 자살’의 상관관계를 정부차원에서 조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자살은 특히 부모의 불완전함과 관련이 많았는데 성인이 되기 전에 ‘신체 학대, 정서 학대, 방임, 성폭력, 이혼, 부모의 우울증, 편부편모가정, 부모의 사망, 잦은 부부싸움, 부모의
수감’과 같은 항목에 6개 이상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자살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무려 5,000배나 높았습니다.
‘자살, 불필요한 죽음’이라는 책을 쓴 바서만 박사는 이런 경험이 아이들이 자신은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게 해 자살로 몰아간다면서 이런 아이들을 알고 있는 어른들이나 전문가의 ‘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격려가 아주 큰 자살 예방효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전부가 아닙니다. 내 주위의 많은 어른들, 또 학생들이 어려운 상황으로 내면의 고통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누군지 알 수 없기에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소중한 존재임을 알려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귀한 자녀라는 사실을 먼저 내미는 따스한 손으로, 먼저 건네는 따스한 말 한마디로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슬픈 선택을 하는 사람들에게 생명과 희망인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주변의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위로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1분의 기적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리더의 심장’이라는 책으로 전설이 된 컨설턴트 캔 블랜차드는
직장인들이 성공을 위한 목표를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1분 경영’이라는 방법을 만들었습니다.
1분 경영은 다음 6가지 단계로 이루어집니다.
1. 자신이 해야 하는 일과 목표에 먼저 동의하라.
2. 그 일을 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생각하라.
3. 각각의 목표와 이룰 방법을 작성하되 250자 이내로 하라.
4. 이 목표들을 반복해서 읽고 숙지하며 수정하라. 단,
읽는데 1분 이상이 걸려서는 안 된다.
5. 매일 일을 시작하기 전에 1분을 투자해서 글을 읽어보라.
6. 일과를 마치고는 자신의 행동이 목표와 일치했는지 살펴보라.
단 1분이지만 제대로 투자하면 목표와 방법을 잊지 않고 방향을 제대로 설정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1분이면 됩니다. 1분을 통해 정말로 목표를 잊지 않을 수 있다면 일단 시작해야 합니다.
삶과 신앙에 올바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방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말과 생각보다 행동하는 삶을 살아 주님께 영광 돌리게 하소서.
주님을 중심으로 삶과 신앙을 위한 1분 경영을 시작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세상을 이끄는 성도
미국의 행동과학자인 피고스 교수는 리더십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학생들에게 리더십을 교육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도중에 ‘LEADER’의 영어 알파벳
글자마다 자신이 발견한 원리의 단어를 붙여 다음과 같이 만들었습니다.
‘L(listen) -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하다.
E(educate & explain) - 알기 쉽게 가르치다, 모르는 것을 설명하다.
A(assist) -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돕는다.
D(dialogue) - 허심탄회하게 대화한다.
E(evaluation) - 성과를 바르게 평가한다.
R(response) - 화답하다 또는 책임지다.’
피고스 교수는 다른 덕목의 순서는 갖춰 있기만 하면 상관없지만 리더십의 첫 단계는 반드시 ‘L’, 즉 경청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성도들은 세상에 바른 길을 알려주고 인도하는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위의 원리에 복음을
대입하면 어떻게 전도하고,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 답이 나옵니다. 그러나
먼저 상대방의 입장을 듣고 귀 기울이는 데에서 모든 일이 시작됨을 잊지 마십시오. 그리하여 진정한 리더로
사십시오. 반드시 주님께서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주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듣기는 속히 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위의 법칙을 전도와 양육에 적용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있다가 없으니…
샬롬! 지난밤 편히 쉬셨는지요? 8호 태풍 ‘바비’가
올라오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대비하셔야겠습니다. 혹시, ‘빈 둥지 증후군’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는지요? 자녀들이 함께 살다가
떠난 뒤에 밀려오는 ‘허무함’을 말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곧 ‘빈 둥지 증후군’을 겪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있다가 없으니, 그동안의 생활이 얼마나 자식 중심이었는지 절감했습니다. 밥을 꼬박꼬박 새로 지은 것도, 냉장고의 음식을 채우느라 부지런을
핀 것도, 모두 자식에게 먹이기 위해서였습니다. 둘만 있으니, 휴일이라고 나들이 할 마음도 외식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연년생
자식 둘을 다른 지역 대학에 보낸 친구는 ‘하도 밥을 안 하다 보니, 쌀에 벌레가 생겼다’고 했습니다. 우리 부부도 마찬가지여서 뭐든 대충 건너뛰었습니다. 집안일이 단순해졌습니다. 매일 돌아가던 세탁기도 멈추고, 어지럽히는 사람이 없으니 청소할
것도 없었습니다. 삶이 갑자기 껍데기만 남은 듯 공허했습니다.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두 분 다 남편 없이 홀로 자식들을 키웠습니다. 저는 늦둥이라서 형제가 모두 출가한 뒤에도 어머니 품에 오래 있었습니다. 그런
딸이 다 컸다고 밖으로 돌 때, 어머니는 어떠했을까요? 시어머니도
남편처럼 의지한 외아들을 다른 지역으로 떠내 보내고 오래도록 혼자 지냈습니다. 함께 하던 일상을 홀로
꾸려가는 게 얼마나 쓸쓸한 일인지 새삼 알 듯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식이 빠져나간 공간으로 점점
시어머니가 들어왔습니다. 아흔 살의 어머니는, 딸이 자라는
딱 그만큼의 속도로, 나날이 늙어갔습니다. 점차 어머니의
손과 발, 눈과 귀가 되어야 하는 일이 많아졌습니다. 가까운
곳에 계시지만 따로 살고 있어서, 아침저녁으로 안부전화를 하고, 경로당이
쉬는 날이면 무료하지 않도록, 건너가서 밥도 같이 먹습니다.(출처; 좋은생각, 김유경)
‘있어서 불편한 것’과 ‘없어서 불편한 것’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있어서 불편한 것’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게 다 장단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자기 마음에 원하는 대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있을 땐 없을 때를 생각하고, 없을 땐 있을 때를 생각하면, 좀 더 지혜롭게 살아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물맷돌)
[모든 일에는 정해진 때가 있고, 모든 목적은 다 이룰 기한이 있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전3:1,2) 모든 인간은 풀과 같고, 그들의 권력도 들에 핀 꽃과 같으니,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주님의 말씀은 영원히 살아 있다.(벧전1:24,25)]
모르는 척, 바쁜 척, 없는 척…
샬롬! 어저께 주일은 어떻게 잘 보내셨는지요? 저는
창립된 지 2년이 안 되는 개척교회에 출석하고 있는데, 교회에서는
그동안 관리규정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별 탈 없이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감독관청의
강권적인 지시로 어쩔 수 없이 영상으로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엄마가 변했다는 건 맞는 말입니다. 동생에겐 말하지 않았지만, 실은 얼마 전부터, 저도 그 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자식한테 짐이 되고 싶진 않다’는 말을, 엄마는 이제 안 하십니다. 불편하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나는 괜찮다는 말도 안 하십니다. 그 대신, 고맙다, 너무 좋다, 궁금하다는 말을 자주 하시죠. 엄마는 이제 뭐든지 받고 싶어 합니다. 알고 싶어 하고, 나누고 싶어 합니다. 우리집에 오셔서도, 예전처럼 불편해하지 않으십니다. 퇴근한 사위, 하교한 손자손녀를 붙잡고 이것저것 묻고 참견하십니다. 예전 같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죠. ‘내가 왜 너희 가족의 오붓한 휴식 시간을 방해하느냐?’고 하면서, 해도 기울기 전에 당신 집으로 돌아가셨을 테니까요. 그러던 엄마가 요즘은 우리 집 소파에서 꾸벅꾸벅 잠드는 일도 많습니다. 방에
들어가 편히 주무시라고 깨우면, 엄마는 말하죠. “내 집에서는
잘 오지 않던 잠이, 어째 너희 집에만 오면 이렇게 달콤하게 쏟아지는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서글픔 속에서 조금씩 깨달아 갔습니다. ‘노인이란 밤에 혼자 계시게 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을! 자식에게
부담주지 않고, 인생의 마지막 여유를 즐기던 노인들도, 어느
시점엔 혼자 사는 것에 진절머리를 내며 혈육의 온기를 찾게 되어 있다는 것, 엄마에게 바로 그 마지막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머리로는 그렇게 알았으면서도
지금껏 엄마를 위하여 선뜻 합가를 결심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 눈치도 살피고 애들 상황도 돌아봐야 했지만, 그보다는 제 마음의 준비가 아직 안 되어서 때를 미루고만 있었습니다. 엄마가
아직 꼿꼿하고 깔끔하던 땐 모시는 일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제 어깨에 허물어지듯 기대오며, 무게중심을 잃어가자, 저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엄마가 저만 바라볼수록, 저는
딴청을 피우게 되더군요. 모르는 척, 바쁜 척, 없는 척….(출처; 별별다방, 홍여사)
옛날엔 부모 모시기가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온전할 때 일찌감치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젠 장수(長壽)가 복이 아니라 재앙(?)이
되고 있습니다. 아무튼, 자신의 정신건강에 신경 써야 합니다. 아니면, 빨리 천국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물맷돌)
[너희는 나이 많은 노인을 공경하며 높이 받들어 모시고, 나를 두려운 마음으로 섬겨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레19:32)
나이 많은 사람을 나무라지 말고, 부모를 대하듯이 하십시오.(딤전5:1)]
어느 여름날의 추억
샬롬! 8월 들어 네 번째로 맞이하는 주말입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에는 그 나름의 치유법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쓰이는 치유법도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 먹기, 음악 듣기, 서로
어루만지기, 진실을 말하고 용서하기,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기, 아이들과 놀기, 예술 작품 만들기 등입니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이곳저곳에서 저희가 살던 ‘영춘’으로 휴가를 왔습니다. 어느 해 여름엔, 처제 친구의 친구들이 휴가를 왔습니다. 우리에게는 전혀 부담을 주지 않고 강변에다가 텐트치고 지내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여름날의 날씨가 얼마나 변화무쌍합니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통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은 우리집으로 피신했습니다. 우리집에서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갑자기 들이닥친 열 명이 넘는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정신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손님 치르는 일에는
워낙 이력이 난 사람이라, 아내는 별 탈 없이 손님들을 잘 접대하고 있었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비바람이 그치고 날씨가 맑게 개였습니다. 그들은 염치없이 하루를 더 묵어가겠다고 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제 아내가 차려주는 음식 맛에 홀려서 그런 결정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들의 그런 결정을 매정하게 뿌리칠 수 없었습니다. 그 손님들 중에는 꼬마 손님들도 여러 명 되었습니다. 그 중의 한
아이가 자기 아빠에게 참외를 따먹고 싶다면서 졸랐습니다. 떼쓰는 아이에게 시달리던 그 아빠는 ‘참외를
좀 따 먹으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보자, 아내는 아직 참외가
덜 익어서 주저하다가 마지못해 승낙했던 가 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심방을 갔습니다. 심방 마치고 돌아왔을 때, 수돗가에는 큰 소쿠리가 놓여 있었고, 그 소쿠리 안에는 참외가 가득 차 있었습니다. 크기는 웬만해도 아직
덜 익은 참외와 살구만한 새끼참외까지, 모조리 따서 물로 깨끗이 씻어놓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 아빠의 표정은 더욱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잘못했다는 얼굴이 아니라, 아주 큰일을 해낸 것처럼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내로서는 엄청 속상한 일인데, 당사자는
아주 잘했다는 표정을 짓고 있으니, 아내는 정말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과거 주일설교 중에서)
살다보면,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합니다. 나는
잘한다고 했지만, 다른 사람이 볼 땐 결코 칭찬해줄 수 없는 일들을,
우리는 일쑤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쪽에서 볼 땐 결코 수긍할 수 없는, 그야말로 아주 잘못된 일인데도, 그 당사자는 자기 잘못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물맷돌)
[만일 너희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6:14-15)]
고독의 시간이 필요한 이유?
샬롬! 새아침을 맞이하여 인사드립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 되시길 빕니다. 태풍이 불어오면 엄청난 피해를 주기 때문에, 사람들은 태풍을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태풍이 없으면 적도는 훨씬 더워지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북반구는
지금보다 더 추워진답니다. 그러니까 태풍은, 태평양의 넘치는
열(熱)을 북쪽으로 나르는,
열 배달부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아시다시피, ‘외로움’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었을 때에 느끼는 고통의 감정입니다. 반면에 고독(孤獨)은, 마음이 비어있고 자유로우며, 고요하고 평화로운 상태로 ‘혼자 있는
시간’을 말합니다. 사람의 ‘영적감각’은, 분주한 세상에서
먼지처럼 떠다니면서, 어떤 형체는 보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뚜렷하지 않은 상태로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신없이 살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갈급함과 허전함이 있습니다. ‘왜, 나는 외로울까? 왜, 나는 만족스럽지 못할까?’하고, 자신의 삶이 공허한 이유를 알기 위하여 가끔은 고독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에서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는 까닭에 외로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자기 자신의 고독과 마주함으로써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고독한 시간을 갖지 않기 때문에 외로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외로움을 극복하려면, 고독에 빠져서 세상의 경이로움을 경험하기 위한
‘영적감각’을 일깨우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기독교에서는 ‘고독’을 ‘묵상’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내면의 고독을 즐기면서 사셨다’는 사실을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특히, 새벽시간과 큰 사건을 치르신 전후에 홀로 산에 올라가셔서
묵상을 많이 하셨습니다.(출처; 들꽃편지, 최용우)
한 마디로 말해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금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지금 자신이 진정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는, 절대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조용히 돌아볼 수 있는 ‘고독의
시간’을, 우리는 종종 가져야 합니다.(물맷돌)
[사람들을 보내신 후,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홀로 산 위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녁때까지 그곳에 혼자 계셨습니다.(마14:23) 그때,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눅6:12)]
엄마의 전화
샬롬! 지난밤 편히 잘 쉬셨는지요?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미 들어서 아시겠지만, 중국에는
바퀴벌레를 키우는 농장이 있다고 합니다. 그 숫자가 무려 60억
마리나 된다고 하네요. 그 농장은 지진이 많은 쓰촨성에 있는데, 만일
지진이라도 일어날 경우에는 주변국가에 충격적인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녀는 엄마의 전화에 시달렸습니다. 전화만 받으면 언짢아지고 힘이 빠졌습니다. 전화를 안 받거나 제대로 듣지 않으면, 엄마는 더 자주 전화하거나
통화시간을 늘렸습니다. 그녀는 통화를 마치면 찾아드는 우울과 싸워야 했습니다. 그녀의 긴 호소는 제 마음이 아파질 만큼 무겁고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녀 엄마의 삶을 살펴보니,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엄마는 할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할머니는 남편의 사업실패와 외도로 상처가
많았습니다. 할머니가 견디는 방법은 그저 참는 것이었습니다. 고통을
참으려는 시도는 할머니의 감정을 마비시켜서, 자기 딸에게도 엄마로서의 기본적인 의무만 감당했던 것입니다. 애정결핍을 느낀 엄마는 결혼한 후에 아빠에게서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빠 역시 ‘사랑받고 싶은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습니다. 아빠의 사랑이 부족했다기보다는, 사랑에 대한 엄마의 갈증이 도저히 채울 수 없을 정도였던 것입니다. 엄마를
이해했다면, 그녀가 우울감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엄마의
쉴 새 없는 전화가 우울의 도화선이지만, 그러나 피할 수가 없으니 슬기롭게 이겨낼 방법을 찾아야 했습니다. 우리가 생각해낸 방법은 엄마의 전화를 일단 반갑게 받고, 이어폰으로
통화하면서 책상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상은 그녀가 결혼하고 마련한 그녀만의 공간이었습니다. 엄마와의 통화를, 책상을 정리하면서 스스로를 챙기는 시간으로 삼은
후, 엄마의 전화가 더 이상 우울을 끌어오는 신호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어느새 엄마의 전화를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출처;
좋은생각, 이남옥)
‘우리가 시련을 당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시련에서 벗어날 길도 마련해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려운 일을 겪게 될 경우, 하나님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어려움을 잘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방법을 알려주십니다.(물맷돌)
[여러분이 겪는 시험은 모든 사람들이 다 당하는 시험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므로, 여러분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여러분이
시험을 당할 때에 피할 길을 마련해주셔서 감당할 수 있게 하실 것입니다.(고전10:13)]
가족이라서 더 모르는 가족의 사정(事情)
샬롬! 어젯밤도 편히 잘 쉬셨는지요? 혹시 늦더위
열대야로 고생하신 것은 아닌지요? 아무쪼록 건강하고 행복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독일신문에서는 ‘네 개의 눈 아래에서’라는 표현을 자주 접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단둘이’이라는 뜻으로 “네 개의 눈 아래에서 이야기해도 될까?”는
“우리끼리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누가 보아도 딱 ‘우리 집 같은’ 가족 이야기입니다. 드라마 ‘아는 것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가 그렇다는 겁니다. 처음엔, 앞부분
괄호 안에 들어간 수식어와 ‘가족’이라는 단어 사이에 괴리감을 느꼈습니다. 아니, ‘누구보다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사이’가 가족 아닐까요? 그런데, 생각하다 보니, 수긍이 갑니다. 친구나
회사 동료, 심지어 지나가는 행인의 마음까지도 살펴서 파악하려고 노력하면서, 우리는 정작 매일 부딪치는 가족은 ‘알아서 헤아려 주겠지’ 그리 기대하면서 말을 아끼고 있습니다. 넘겨짚기가 십상이고, 그런 ‘넘겨짚음’이 쌓이고 쌓이면, 가족 구성원의 마음을 더 모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드라마 속 가족의 개별적인 상황이 꼭 우리가족의 사연과 같지는 않겠지만, 전개되는
드라마 속에 보편적 메시지가 보입니다. ‘가족이라서 더 모르는 상대방의 마음’말입니다. 하지만, 드라마의 끝이 희망적입니다. 우리 가족도 희망적이기 위하여 그래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일상이
되어 묻지 못한 서로의 감정을 넘겨짚을 게 아니라, ‘선명한 의사소통으로 마주하기’ 말입니다. 처음엔 복숭아 하나쯤 패대기쳐질지라도, 오래 묵혀둔 질문을 꺼내놓으면서. 언제나 시작이 어렵습니다.(출처;
빛과 소금, 백소영)
드라마가 끝난 지 좀 됐습니다. 하지만, 그
주제는 우리가 두고두고 생각해볼 문제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좋았던 사이라도, 함께 살다보면 갈등과 다툼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가족일 때에는, 혹여 다투는 일이 있게 되더라도 반드시 대화로 풀어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글쓴이는 드라마 속에 ‘보편적 메시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이 주제를 풀어나가야만 합니다.(물맷돌)
[하나님은 고독한 자에게 가족을 주시고, 갇힌 자를 이끌어내어 기쁨으로 노래하게 하신다. 그러나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다.(시68:6) 그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믿음의 식구들을 돕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돈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간청하였습니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일은 우리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그들이 협력해준 사실입니다.(고후8:4-5)]
자유,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
샬롬! 8월 들어 세 번째로 맞이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며칠 전에는 잠자리 떼가 몰려다니더니, 지금은 매미소리가 요란합니다. 입추와 말복이 지났으니, 이제 곧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오겠네요. 올해 2020년이 앞으로 두고두고 기억될 한 해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날아가던 새가 한순간에 잡혀 새장에 갇힌 것처럼, 저도 감옥에 갇혀 자유를 완전히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교화소에서는, 365일 24시간 중에서 개인적인 시간은 단 1분도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정말 숨 막히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일 단위로 사는
법’을 터득하자, 교화소생활을 잘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40명
정도 되는 보안원들이 24시간 저를 지켰습니다. 그들은 제가
잠자는 동안에도 카메라로 감시했습니다. 어떨 때는, 그 자리에서
전혀 움직이지 못하고 그대로 앉아 있어야만 했습니다. 움직이려면 손을 들고 허락을 받아야 했고, 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허락 없이는 갈 수 없었습니다. 한 발자국도
내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요즘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합니다. 마음대로 운전하고 다니는 것이 너무 신기할 정도입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일들이 그저 즐겁기만 합니다. 교화소에 갇히기 이전, 자유에 익숙했을 때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는 정말 새롭게 느껴집니다. 너무나 소중한 자유에 대하여 감사를
잊고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고 싶은 말을 맘대로 할 수가 있고,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입니다.(출처;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임현수)
캐나다 국적의 임 목사님은 18년간 150번이나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녘동포들에게 이모저모로 사랑을 베풀었답니다. 하건만, 엉뚱한 죄명으로 사형언도를 받고 949일을 독방에서 지내야만 했습니다. 이때 임 목사님은,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지, 그리고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달았답니다.(물맷돌)
[내가 자유롭게 걸어 다닐 것입니다. 이는 내가 주님의 교훈들을 따랐기 때문입니다.(시119:45) 너희가 내 가르침을 따라 산다면, 너희는 나의 참된 제자가 될 수 있다. 그러면 진리를 알게 될 것이고,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8:31)]
맛과 멋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이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피천득의 수필 ‘맛과 멋’ 중 한 구절입니다. 명품 음식을 보면 맛도 있고 멋도 있듯이, 삶에도 신앙에도 맛과 멋이 있습니다. 신앙도 경건의 모양만 가득한
사람이 있고, 경건의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는 사람은 설익은 맛, 꾸며진 겉멋 같습니다. 경건의
능력이 있는 사람은 깊이 곰삭은 맛, 빙산의 숨겨진 큰 부분같이 헤아릴 수 없는 멋이 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5)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당신의 상처는 어디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어김없이 찾아온 무더위, 이래저래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최근 등산과 낚시, 걷기는 물론 자동차를 타고 나가 자연 속에서
밤을 지내는 ‘차박’이 인기를 끌기도 합니다.
책 읽기도 좋은 선택입니다. 나무 그늘이든 선풍기 앞이든 가장 편한 자세로 앉아 책을 펼치는
것은 시대와 지역이 달라 만날 수 없는 저자를 대면하는 특별한 은총을 누리는 시간인 셈이니까요.
마르트노 성인에게 사탄이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인은 속지
않았습니다. 사탄에게 성인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의
상처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스도는 왕관이 아니라 상처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치 동굴 속으로 메아리가 번져가듯
“당신의 상처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말이 마음에 번져갑니다. 깊은 동굴 속에 든 것처럼 마음마저 선선해지는
것은 덤이고요.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버티기
우리의 전통 민속경기 중 씨름이 있습니다. 거구의 장사들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발과 손기술 등을 사용하며 상대를 모래밭에 넘어뜨립니다. 안다리, 밭다리, 배지기, 되치기
등의 기술은 물론이고 뒤집기 같은 화려한 기술이 가히 탄성을 자아낼 만합니다.
씨름판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술은 의외로 버티기입니다. 힘이 막상막하인 상대방과 샅바를
잡고 서로의 허점이 보일 때까지 버티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이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지만, 선수들은 비지땀을 흘려가며 견뎌냅니다. 이 지루해 보이는 버티기의
과정을 잘 이겨낸 선수가 화려한 기술을 선보일 기회를 얻게 되고 승리의 기쁨도 맛봅니다.
우리는 ‘언제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그칠지’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힘들게 버티는 중입니다. 긴장을 늦추지 말고 오래 참고 버티고 견디며 다시 찾아올 기회를 노립시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3)
이성준 목사(인천 수정성결교회)
밀물과 썰물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에 두 번씩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을 경험합니다.
바닷물이 육지로 들어오는 밀물 때는 어부들이 배를 타고 나가 조업을 하고, 반대로 바닷물이
빠지는 썰물 때는 갯벌에서 조개와 같은 해산물을 채취합니다. 물때에 따라 적게는 1~2m, 많게는 4~5m씩 차이가 나는 밀물과 썰물의 발생 원인은
자전하는 지구의 원심력과 40만㎞ 떨어져 있는 달이 지구의 바닷물을 잡아당기는 인력 때문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세계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마귀의 나라가 우리
인간들을 잡아당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느 쪽과 가까워지느냐에 따라 신자와 불신자로 나뉘어집니다. 신자들은 때에 따라 믿음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밀물과 썰물 현상을 경험합니다.
그러면 우리 신자들은 어떻게 해야 믿음이 떨어지지 않고 계속 올라갈 수 있을까요. 원리는
간단합니다. 마귀와 멀어지고 하나님과 가까워지면 됩니다. 오늘부터
교회를 가까이하고 예배를 가까이하고 말씀을 가까이합시다.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한다면 우리 믿음은 해수면처럼
계속 높아지고 성장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차진호 목사(여의도순복음서귀포교회)
확신 한 모금
1996년 8월 4일 미국 애틀랜타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대한민국 이봉주 선수는 값진 은메달을 획득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계속되는 코스를 빠른 속도로 달렸습니다. 코스
중간중간에는 물통이 놓여 있었습니다. 선수들은 그 물을 머리 위에 붓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면서 갈증을
달랬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삶을 가리켜 “달려갈 길을 마칠 때까지 달리는 것”(딤후 4:7)이라고 고백합니다. 그의 인생에도 오르막 내리막이 있었습니다. 죽음의 위기와 육신의 질병이 그의 등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돌을 맞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달렸던 이유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하신’ 주님에
대한 믿음과 확신의 생수를 한 모금씩 마셨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 우리 인생 끝자락에 금메달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생의 결승점에 구원의
옷을 입으시고 두 팔 벌려 기다리는 예수가 서 계십니다. 빛나는 의의 면류관을 들고서 말입니다. 예수가 나를 기다리신다는 사실, 이것만큼 인생 달리기에 시원한 생수는
없습니다.
전담양 목사(고양 임마누엘교회)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
한 연예인이 “인생은 롤러코스터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인생은 놀이동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일 뿐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을 삽니다.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고, 모든 게 뒤틀릴 때도 있습니다. 회전목마처럼 일상이
지루하게 반복될 때도 있고, 범퍼카처럼 좌충우돌하다가 앞뒤가 꽉 막힐 때도 있습니다. 대관람차처럼 한 바퀴 돌고 나면 한 번 더 타고 싶어도 내려야 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니 살다가 내리막이 있으면 그 뒤에 오르막이 있음을 기대하고, 일상이
반복돼 지루할 땐 하루의 소소한 행복도 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이리저리 부딪혀도 멈추지 않고 다시
시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인생이 그 어떤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모습이라도, 어릴 때 부모님처럼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며 반갑게 손 흔들어주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지금의 삶은 먼 훗날 천국에서 추억으로 떠올릴 것입니다. 때로는 그늘에서 쉬기도 하고, 달콤한 간식도 사 먹으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기뻐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손석일 목사(서울 상일교회)
나다움이 아름다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물었다. ‘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업적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렇게 말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바로 나 자신이다.’”
작가 윤슬의 책 ‘책장 속의 키워드’ 중 한 구절입니다. ‘바로 나 자신이다!’ 그의 당당한 모습이 멋집니다. 하나님은 만물을 보시기에 좋게 창조하셨습니다. 만물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아름다움이 스며있다는 의미입니다. 꽃은
꽃이 될 때, 구름은 구름이 될 때, 나는 내가 될 때 하나님께
가장 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다빈치는 미켈란젤로가 되려 하지 않았고, 고흐는 드가와 마네, 르누아르, 세잔이 되지 않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리면서
집중할 때 고흐가 됐습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아름다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 사명에 집중해 나는 나답게 당신은 당신답게
그는 그답게 자기다움으로 돌아갈 때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나다움이 아름다움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 1:31)
한재욱 목사(강남비전교회)
치지 못한 종
마음속에 멍처럼 남아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심심할 때면 얼굴을 비춰보던
고향의 우물 같은 그런 시간이기도 합니다. 강원도 단강에서 첫 목회를 할 때였습니다. 새벽 4시30분 새벽기도회를
위해 10분 전 종을 쳤습니다. 새벽마다 울려 퍼지는 잔잔한
종소리를 하나님이 부르시는 소리로 알고 자석에 쇠 끌리듯 예배당을 찾아 첫 신앙을 가진 동네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새벽종은 그만큼 의미 있는 것이었지요.
기억에 남은 그날은 망설인 끝에 종을 치지 않았습니다. 긴 가뭄 끝에 단비가 왔고 밀렸던
모내기를 하느라 어둠 속 흙투성이가 돼 돌아오는 마을 사람들을 전날 밤 봤기 때문입니다. 종을 치면
그 소리를 듣고 고단한 몸을 일으켜 교회에 나올 교우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새벽에 필요한
하늘의 은총은 피곤함을 이겨낼 꿀잠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오래전 한 새벽, 치지 못한 종은 숙제처럼 남아 있습니다.
믿음과 인간다움의 거리는 얼마나 될지 묻는 질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