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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 전투함 (3) - 백두산급 초계함
작성일: 2016-11-04 00:18:07
백두산급 초계함은 미국의 PC-461급을 8척을 인수하여 운용하게됩니다.
이들 함정은 1942년도에 제작되어 미 해군에서 잠수함 추적함으로 용도로 사용되었으며 1949년 백두산함을 구매 시작으로 1950년 06월 16일 금강산, 삼각산, 지리산함을 공여 받게되며 6.25 전쟁에는 미국의 원조하에 1952년 01월경에 한라산함과 묘향산함을 추가적으로 공여 받게됩니다.
정전 후 에는 1960년도에 추가적으로 2척이 인수 받게됩니다.
그 중 한라산(PC-705)함이 1962년 11월 괌 항구에 정박 중 태풍으로 인하여 침몰하게되자 미국으로 부터 자매함을 공여 받게되며 함명을 설악산(PC-709)함으로 명명되어 운용하게됩니다.
이들 함정은 1960년부터 1974년까지 운용되다 전량 폐선처리되었습니다.
-제원-
건조사: -Leathem D. Smith Shipbuilding Corp., Sturgeon Bay, Wisconsin(701)
-Consolidated Iron Works, Portland, Oregon(702,703,704)
-Consolidated Shipbuilding Corp., Morris Heights, NY(705,706,708)
-Defoe Shipbuilding Co., Bay City, Mich(707)
-Consolidated Shipbuilding Co., Bronx, NY(709)
배수량: -기준 280 tons(701~707,709) / 295 tons(708)
-만재 450 tons
크기: 52.93m/7.01m/3.30m
승조원: 65명
추진: -Hooven-Owen-Rentschler RB-99DA diesel engines x2(701,702,703,704)
-Fairbanks Morse 38D8 1/8 diesel engines x2(705,706,709)
-General Motors 16-278A diesel engines x2(707,708)
-2축 추진
속도: 20.2 knots
무장: -Mk-22 76mm/50 단장함포 x1
-Mk-10 헷지호그 x1(709함)
-Mk-1 40mm/56 단장포 x1
-Mk-4 20mm/70 단장기괸포 x2
-rocket launchers x2(709함)
-폭뢰
보유함
PC 701(백두산)함은 미 해군 PC-461급 잠수함 추적함 ex- USS PC-823 -> 킹스 포인트 해양대 실습선 Ensign Whitehead호를 1947년 10월 07일 1만 8천달러에 구매하였으며 인수단 해군장교 15명이 인수를 위해 뉴저지주 호보켄 부둣가에 있는 하버보트 빌딩회사 조선소로 움직였으며 그러나 함상태는 생각보다 녹이 많이 슬어있어으며 엔진을 마지막으로 가동시킨것이 2~3년전이었습니다.
중위부터 중령까지 전부 장교로 이루어진 인수요원들은 깨끗히 닦고,조이고,칠하는등 열신히 정비하게되며 기관정비를 하루만에 끝낸 요원들은 함을 새로 도색하며 701함이라는 함번을 부여받게 됩니다.
그중 일부 장교는 함선을 판매한 킹스 포인트 해양대에서 Mk-22 76mm 함포 조작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나서 1949년 12월 26일 명명식을 가지게되며 701함은 백두산으로 명명되었습니다.
701함은 1950년 01월 01일 뉴욕항을 출항하며 24일 하와이 진주만에 입항을합니다. 입항 당시 한국 해군 함정이 입항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대하던 교포들이 그 크기에 실망을하였으나 대한민국에도 전투함이 갖추었다는 긍지를 가지게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950년 03월에는 진주만 해군공창에서 Mk-22 76mm/50구경 함포를 탑재및 100발의 탄을 구매한 701함은 기나긴 항해를 다시 걸쳐 1950년 04월 10일 진해에 도착을하여 환영을받게됩니다.
이후 701함은 여러 항구도시 방문및 공개행사를 가진 후 1950년 06월 24일 진해로 다시 귀항하게됩니다.
다음날인 06월 25일 한국전이 발발하자 동해안 지구에 북괴군이 선박을 이용하여 침투하였으며 해군본부는 701함을 출동시켜 동해안을 방어하도록 지시하였습니다.
이미 해상에서는 전투가 벌어져 YMS-509 가평정이 적함 1척 격침및 발동선 1척을 나포하게되나 701함의 승조원들은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오후 3시에는 YMS-512(구월산)/518(고성)정과 대동하고 출항 한 701함은 이날 저녁 8시 12분인 부산 북동방 약 50km에서 침로 190도, 속력 10 knots로 접근중인 중대형 화물선을 발견하게되며 이 화물선은 미 해군의 FS선과 비슷한 소련제 1000톤급 선박으로 선체를 검은색 도색하고 국기도 계양하지 않아 국적을 확인 할 수 없었습니다.
국적을 확인하기 위해 701함은 국제절차에 따라 여러차례신호를 보냈으나 상대방으로부터는 신호가 없었으며 701함은 수상하다고 판단하며 계속해서 감시하게됩니다.
결국 11시에 신성모 국방장관이 적함으로 판단시 격침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려지고 12시에 격침 명령을 하달 받게됩니다.
이미 수송선은 북괴군이 잔뜩 타고있고 무장으로 85mm가 탑재되어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게됩니다.
결국 위협사격과 함께 대한해협 해전이 막이 오르게되며 701함의 함포 초탄은 명중탄이 없었으며 탄도 100발밖에 구입 못 해 포탄이 아까워 사격연습을 5발밖에 못 했습니다.
그러다가 20여발정도 쏘면서 최소 5발정도 명중탄이 나오게되며 이에 701함은 얼마 되지도 않아 포탄을 절약하기 위해 최대 적선과 900m까지 접근하여 76mm함포와 12.7mm 중기관총을 퍼붓게 되며 이때까지 약 50여발가량 발사했는데 이미 적함은 검은 연기와 함께 서서히 기울어지고 잇는 상태였으나 적함에서 발포한 85mm가 701함을 강타하게되며 그로 인해 701함은 76mm를 사용 할 수 없게되자 12.7mm 중기관총으로만 사용하게됩니다.
같이 대동하여 왔던 512, 518정도 사격을 하게되며 1시간정도 있다가 결국 북괴수송선은 왼쪽으로 기울어지면서 새벽 01시 10분쯤에 약 20도정도로 기울어지면서 침몰하게되며 701함은 전사자 2명과 수십명의 부상자가나왔습니다.
701함은 여러 작전에참가하게되며 1952년 01월 31일 701함은 연평도 근해에서 해상 봉쇄 작전도중 좌초되어 미 구축함으로부터 구조를 받게되었으며 휴전 후 701함은 1959년까지 운용되다 1960년 08월 21일 퇴역및 폐선처리하게되며 마스트는 진해 해사에 전시되어있습니다.(ps. 마스트는 동형함의 마스트를 전시 해놓았습니다)
PC 702(금강산)함은 미 해군 PC-461급 잠수함 추적함 USS PC-799함을 1950년 06월 16일 Mare Island 해군공창에서 인수 6·25전쟁 개전 직후에 대한민국에 귀국및 작전에 투입됩니다.
08월 20일에 702(금강산)함의 지휘 아래 701(백두산), 704(지리산), 313(충무공), 301(대전), 307(단천), 309(토성), 513(김천)을 상륙 부대를 편성하여 영흥도 탈환작전에 투입되었으며 12월에는 흥남 철수 작전에 투입되기도하였으며 1951년 01월서부터 02월까지 61(두만), 62(압록), 701(백두산), 703(삼각산), 704(지리산), 801(용화), 301(대전), 302(통영), 303(대구), 304(태백산), 306(단양), 307(단천), 308(대동강), 309(토성), 310(덕천), 313(충무공), 501(강진), 506(강계), 507(강릉), 510(강경), 512(구포), 514(길주), 518(고성), FS 단양, FS 평택, FS 김해호와 함께 옹진 연백지구 작전에 참여하게됩니다.
각종 해상작전에 참여 후 1960년도에 퇴역및 해군 목록에서 제외되며 최종 폐선처리됩니다.
PC 703(삼각산)함은 미 해군 PC-461급 잠수함 추적함 USS PC-802함을 1950년 06월 16일 Mare Island 해군공창에서 인수 6·25 전쟁 개전 직후에 대한민국에 귀국및 작전에 투입됩니다.
1951년 01월부터 02월까지 61(두만), 62(압록), 701(백두산), 702(금강산), 704(지리산), 801(용화), 301(대전), 302(통영), 303(대구), 304(태백산), 306(단양), 307(단천), 308(대동강), 309(토성), 310(덕천), 313(충무공), 501(강진), 506(강계), 507(강릉), 510(강경), 512(구포), 514(길주), 518(고성), FS 단양, FS 평택, FS 김해호와 함께 옹진 연백지구 작전에 참여하게되며 각종 해상작전에 참여 후1960년 00월 00일 퇴역및 해군목록에서 제외되며 최종 폐선처리됩니다.
PC 704(지리산)함은 미 해군 PC-461급 잠수함 추적함 USS PC-810를 1950년 06월 16일 Mare Island 해군 공창서 702(금강산), 703(삼각산)함과 함께 인수하여 PC 704 지리산함으로 명명되어 운용하게됩니다.
06월 12일 샌프라시스코 해군기지에서 함포및 기관포를 장착하고 하와이로 출항해 하와이 입항 후 한국전이 발발한 소식을 듣고 군수물자를 싣고 신속히 한국으로 출항을 하게되며 콰잘린 미해군기지서 재급유를 받고 07월 16일 진해항에 입항하였으나 704함의 기관고장으로 인하여 괌에 보내져 수리를 받은 후 07월 25일 다시 진해항에 입항하게됩니다.
08월 16일 704함은 702함의 지휘아래 701함, YMS-513, PG-313, JMS-301, 307, 309정을 상륙부대 편성하여 영흥도 탈환작전에 참가하였으며 1951년 01월 황해도 장산반도 덕동포에서 피난민 구출작전에 전개하기도하였습니다
704함은 동,서해를 누비며 적의 해상교통로와 항만을 차다하여 아군 제해권 확보에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1951년 12월 25일 작전을 위해 부산항을 출항하였으며 원산항에 도착한 704함은 적의 후방을 위협하기 위해 가까운곳으로 전진했으나 해안지역에 야포와 직사포 공격을 받고 안전해역으로 이동하였으나 적의 해안포를 무력화시켜야한다는 일념으로 다시 함수를 돌려 704함의 모든 무장을 활용해 맹렬히 공격을하여 적 화기진지의 타격하여 적을 격멸하기도하였습니다.
이로인해 704함은 고추함이라는 별칭이 붙게됩니다.
그 때 북한군이 기뢰 등을 원산항으로 운반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704함은 다시 원상항으로 함수를 돌렸으며 칠흑같은 어둠과 기상악화로 방향을 잃은 704함은 적의 기뢰지대에 빠져 함장 이하및 모든승조원이 필사적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노력을 하였으나 불행히도 기뢰와의 접촉으로 704함은 57명의 승조원과 함께 운명을하였습니다.
PC 705(한라산)함은 미 해군 PC-461급 잠수함 추적함 USS PC-485를 1952년 01월 00일 인수하여 PC 705 한라산함으로 명명되어 운용하게 됩니다.
705함은 귀국 후 바로 6·25 전쟁에 투입되었으며 휴전 후에는 해상경비 임무에 투입되었습니다.
1962년 11월 11일 괌에서 정박 중 이던 705함은 태풍 카렌호에 의해 침몰하였으며 15일에 인양되어 복구가 불가능으로 판단되어 1964년도 고철로 폐선처리되며 대체함으로 PC 709 설악산(ex- PC-564 USS Chadron)함을 괌에서 인수하여 운용하게됩니다.
PC 706(묘향산)함은 미 해군 PC-461급 잠수함 추적함 USS PC-600를 1952년 01월 21일 인수하여 PC 706 묘향산함으로 명명되어 운용하게됩니다.
706함은 귀국 후 바로 6·25 전쟁에 투입되었으며 휴전 후에는 해상경비 임무에 투입되었습니다.
706함은 1968년 11월 04일 퇴역및 해군 목록에서 제외되며 최종 폐선처리되었습니다.
PC 707(오대산)함은 미 해군 PC-461급 잠수함 추적함 ex- PC-1145 -> PC-1145 USS Winnemucca를 1960년 11월 01일에 시애틀에서 인수하여 PC 707 오대산함으로 명명되어 운용하게됩니다.
1962년 04월 28일 동해에서 해상 경비임무 도중 새벽 01시 45분경 북한 공작원으로 비밀리에 잠입해 있던 최방순 수병이 조타실로 난입하여 권총으로 겨누어 진로를 북으로 나포하는 미수사건에 거치기도하였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함상에서 최수병을 제지하는 도중 최성모 부장(계급: 대위)는 최수병이 쏜 3발의 권총탄에 맞았으며 이후 이종두, 황목원 하사와 그리고 황영일 일등수병에게 총을 난사하여 부상을 입혔으며 이 사건의 범인이었던 함교에 나가 권총으로 자살하였으며 최성모 부장(계급: 대위)는 복부관통이라는 치명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만화 함장(계급: 소령)에게 보고 한 후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5시간 후인 새벽 06시 15분경에 전사하였습니다.
1963년 02월 12일 707함은 81(경남), 51(노량), 813(수영), 311(시흥), 520(김포), ARISI함과 우수함정으로 선정되어 표창받았습니다.
1964년 08월 08일 소형 간첩선을 격침시켰으며 1968년 11월 16일 한,미 해군간의 대잠훈련을 수행하였으며 707함은 197?년 00월 00일 퇴역및 해군목록에서 제외되며 최종 폐선처리됩니다.
PC 708(금정산)함은 미 해군 잠수함 추적함 ex- USS PC-1546 -> PC-1546 USS Grosse Pointe함을 1960년 11월 21일에 인수하여 PC-708 금정산함으로 명명되어 운용하게됩니다.
708함은 1964년 02월 08일에 72(강원), 56(당포), 813(수영), 311(시흥), 525(금곡), 1(덕수)함과 함께 우수함으로 선정되었으며 1965년 06월 02일 08시 45분경 납치 어선을 재탈환을 하라는 명령을 받고 연평도 서북방에서 북괴 군함 PBL-571에 납치되어 북으로 끌려가고 있는 어선을 옹진반도 700미터 앞까지 추적하여 필사적으로 구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1974년 01월 02일 퇴역및 해군목록에서 제외되며 최종 폐선처리됩니다.
PC 709(설악산)함은 미 해군 PC-461급 잠수함 추적함 ex- USS PC-564 -> PC-564 USS Chadron를 1964년 01월 22일 괌에서 인수하여 PC- 09 설악산함으로 명명되어 운용하게 됩니다.
709함은 이전함과 달리 3인치포와 40mm가 탑재하지 않은 함으로 대신 헷지호그와 로켓이 장착되었습니다.
709함은 1964년 11월 10일 속초근해서 고기잡이를 하다 북괴경비정에 납북된 창성호가 27일 새벽휴전선남방경계선 남하중인것을 발견 709함에 의해 발견및 호송을 하기도하였으며 1965년 04월 12일 PF 61함과 함께 동해를 경비중이던 709함은 동해안 거진해상에서 기관고장으로 표류중이던 어선 송진호 그리고 묵호해상 기관고장으로 표류중이던 어선 봉래호를 각각 구조하여 예인을 하기도 하였으며 1968년 07월 22일 동해안을 경비중이던 709함은 기관고장으로 표류중인 어선 최창호를 구조하기도 하였으며 11월 16일 한,미 해군간의 대잠훈련을 수행하였으며 709함은 해군에서 9년의 짧은기간동안 활약하다 1974년 01월 12일 본 함선은 퇴역및 해군목록에서 제외되며 최종 폐선처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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