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60〉삶의 실상 이론으로 받아들인 자괴감 휘감아
의자가 없으면, 4대 육신을 빌려주시오
이론과 현실 괴리감 좁혀야
소동파와 선사 법거량 귀감
송나라 소동파(1037∼1101)는 당송 8대 문장가 중 한 사람으로, 동림상총(東林常總, 1025∼1091)의 법맥을 받은 사람이다. 그는 젊어서 관직으로 지방을 전전할 때마다 그 지역의 선사들과 인연이 많았다. 소동파가 황주에 살면서 귀종사(歸宗寺)에 머물던 불인요원(佛印了元, 1020∼1086) 선사를 만났다. 운문종 선사인 요원과는 도와 시를 나누는 절친한 도반이 되었다. 어느 날, 소동파가 선사의 방에 들어가니 의자가 한 개만 있었다. 선사가 말했다.
“오늘은 의자가 한 개밖에 없으니, 미안하지만 아무데나 앉으시지요.”
“의자가 없다면, 화상의 4대(四大) 육신을 빌려주시지요?”
“산승이 문제를 낼 터이니 알아맞히면 대관에게 의자가 되어 주고, 맞히지 못하면 대관께서 그 옥대를 끌러 주십시오.”
“네, 스님 그렇게 하지요.”
“대관이 산승의 4대 육신을 빌려 앉겠다고 했는데, 그 4대란 본래 공한 것이요, 5온이란 있는 것도 아니거늘 대관은 어디에 앉겠습니까?”
결국 소동파가 한 마디도 못하고, 선사에게 옥대를 풀어주었다.
컨디션이 조화롭지 못하거나 감기로 고생할 때는 소동파와 선사의 법거량을 떠올리곤 한다. 5온(색수상행식)이 반연되어 잠시 모였을 뿐이요, 인간의 육신이 지수화풍 4대로 뭉쳐진 가죽주머니이거늘 그 ‘아프다는 자는 누구인가?’ 진정 아픈 것은 ‘마음이 아픈 것인가?’ ‘몸이 아픈 것인가?’ 몸이 아프다면 지대(地大)가 아픈 것인지? 수대인지? 화대인지? 아니면 풍대가 아픈가? 이런 생각을 하며, 나름대로 수행자인척 한다. 물론 5온이 공(空)이요, 무아(無我)라는 사실은 꿈에서도 설명할 만큼 내게 각인되어 있는 이론이다.
그런데 소납이 공부한 이론과 현실의 괴리감이 좁혀지지 않는 일이 생겼다. 근래 가까운 지인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보름동안 혼수상태로 있다가 깨어났지만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 정확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언어구사도 되지 않는 상황이다. 앞으로 어느 정도까지 회복될지 미지수라고 한다. 이분은 소납과 20년 가까이 지낸 분으로 소납이 어려울 때마다 도와주었던 분이다. 웃음소리도 유난히 컸고, 예쁜 것은 취하고 싶어 하는 소녀지향의 보살님이었다. 이 분이 쓰러지기 이전의 모습과 목소리, 웃음소리가 불쑥 불쑥 떠오른다. ‘그 목소리와 웃음소리는 어디로 갔을까?’ ‘늘 나를 염려해주던 근심어린 눈빛은 어디로 갔을까?’
마침 국문과 3학년 학생(간호사로 근무 경험이 있는 편입생)이 제출한 이런 내용의 과제를 읽었다. “인간의 육체는 사실상 닭이나 돼지와 다를 바가 없음을 깨달았다.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경계에서 막 죽은 사람의 몸을 물수건으로 닦아내고 사후처리를 하기도 하였다. ‘살아있는 자들의 울부짖음’, ‘죽은 자의 말없 ’이 공존하는 속에서 나는 삶과 죽음을 성찰하였다.” 이 친구 과제를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했다. 삶의 실상을 너무 이론적으로만 받아들였다는 자괴감이 나를 휘감았다.
인간으로서 역할을 할 때의 그 삶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도 루빠난다와 케마 비구니가 출가 전 미모에 집착할 때, 부정관(不淨觀)으로 육신의 실상을 깨닫도록 해주었다.
5온 가화합된 인간이라는 존재는 찰나를 살고, 찰나에 죽는다. 찰나 찰나에 생사를 반복하는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잠시 반연되어 구성되었다가 사라지는 가변의 존재인 것이다. 몸의 구성원(색, 4대)이 변하고 마음(수상행식)조차 여일하지 못한데, 무엇을 그리도 집착하고 애착한단 말인가?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일체 모든 것은 꿈, 허깨비, 물거품,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같고 (순간 번쩍이는) 번개와 같나니, 반드시 이렇게 관찰하라”고 하였으리라.
“4대란 본래 공(空)한 것이요, 5온이란 있는 것도 아니거늘 대관은 어디에 앉을 것인가?”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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