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MLB] 데릭 지터와 마이애미 말린스
2017.08.15 오후 12:32 | 기사원문
해외야구 김형준
1997년 플로리다 말린스는 92승을 거두고 와일드카드를 따냈다. 1993년 창단 후 네 시즌 만에 만들어낸 첫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다.
개리 셰필드, 바비 보니야, 모이세스 알루, 케빈 브라운, 알렉스 페르난데스, 알 라이터, 롭 넨 등 스타가 즐비했던 1997년 플로리다의 연봉 총액은 뉴욕 양키스(7300만) 볼티모어(6400만) 클리블랜드(5900만) 애틀랜타(5300만)에 이은 메이저리그 5위였다(5200만). 플로리다는 월드시리즈 최종 7차전에서 클리블랜드를 꺾고(11회말 렌테리아 끝내기) 최초의 와일드카드 우승 팀이 됐다.
그러나 미 프로스포츠 최단 기간 우승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 플로리다는 파이어 세일에 돌입했다. 웨인 하이젠가 구단주로부터 건축 1년 만에 다시 해체 지시를 받은 데이브 돔브로스키(현 보스턴) 단장은 선발 원투펀치(브라운 샌디에이고행, 라이터 메츠행)와 주전 마무리(넨 샌프란시스코행) 그리고 셰필드 보니야 알루를 포함한 7명의 주전 타자를 다른 팀으로 보냈다(+찰스 존슨, 에드가 렌테리아, 디본 화이트, 제프 코나인, 짐 아이젠라이크).
주전 야수 중 2루수 루이스 카스티요(21)가 유일한 생존자였던 플로리다의 연봉 총액은 1998년 메이저리그 28위(1500만)로 쪼그라들었다. 1998년 플로리다는 54승108패(.333)로 시즌을 마감했다. 월드시리즈 우승 팀이 이듬해 거둔 최악의 성적이었다. 1998시즌이 끝난 후 하이젠가는 존 헨리에게 구단을 팔았다(매매가 1억5800만 달러).
그무렵 버드 셀릭 커미셔너와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1901년 양대리그 체제가 탄생한 이래 한 번도 없었던 리그 축소를 계획했다. 심각한 흥행 부진을 겪고 있는 몬트리올 엑스포스(2001년 경기당 7000명) 그리고 지방 정부와의 구장 신축 협상이 난항에 빠진 미네소타 트윈스를 해체하고 내셔널리그 팀 하나를 아메리칸리그로 옮겨 리그당 14팀씩 28구단 체제를 만들겠다는 구상이었다.
2001시즌이 끝나자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먼저 존 헨리가 보스턴 레드삭스를 7억 달러에 샀다(현 가치 27억 달러). 헨리로부터 플로리다 구단을 산 사람은 몬트리올 구단주인 제프리 로리아였다(매입가 1억5800만 달러). 그리고 로리아는 몬트리올 구단을 사무국에 반납했다. 미네소타 구단주 칼 폴라드 또한 구단 해체에 동의했다.
그 해 겨울 메이저리그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몬트리올과 미네소타 선수들의 처리 문제였다. 로리아는 몬트리올의 투타 에이스인 블라디미르 게레로(4년 연속 3할 30홈런 100타점)와 하비에르 바스케스(2001년 224이닝 16승11패 3.42)를 플로리다로 데려갈 수 있게 해달라고 했다(게레로와 바스케스, 2루수 호세 비드로와 유격수 올랜도 카브레라가 당시 몬트리올의 '빅 4'였다). 그러나 이는 나머지 구단의 강한 반대에 부딪힐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에 두 구단 선수들을 대상으로 '해체 드래프트'가 실시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그러나 1899년 이후 최초의 구단 해체는 일어나지 않았다(1899년 20승134패 승률 .130을 기록한 클리블랜드 스파이더스를 포함한 네 팀이 시즌 후 내셔널리그에서 퇴출됐다). 2001년 조 마우어를 전체 1순위로 지명한 미네소타가 미니애폴리스 지방 정부와의 메트로돔 잔여 임대 계약에 극적인 합의를 이룬 것이다. 28개 구단 계획을 취소한 사무국은 2005년 몬트리올 구단을 워싱턴DC에 입성시키는 데 성공했고, 2006년 '거부' 테드 러너에게 4억5000만 달러를 받고 팔았다(현 가치 16억 달러).
2003년 플로리다는 두 번째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다시 리빌딩이 시작됐고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런 말린스에게 희망의 빛이 비추기 시작한 것은 2012년이었다.
그 해 말린스는 개폐식 지붕을 가진 말린스파크를 개장하고 이름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마이애미 말린스로 바꿨다(말린스가 마이애미가 아닌 플로리다의 구단명으로 시작하게 된 것은 포트로더데일 출신인 하이젠가 구단주 때문이었다). 마이애미는 2억 달러를 들여 호세 레이에스(6년 1억600만) 마크 벌리(4년 5800만) 히스 벨(3년 2700만)을 영입했다. 앨버트 푸홀스에게도 (트레이드 거부권이 없는) 10년 2억7500만 달러를 제시했다(푸홀스는 10년 2억4000만 에인절스 입단). 그리고 히스패닉 인구를 의식해 베네수엘라 출신 아지 기엔을 감독에 임명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래는 없었다. 팀의 간판타자인 핸리 라미레스(현 보스턴)가 3루 이동에 불만을 품고 엇나가기 시작했고,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의 월드시리즈 우승 이후 설화가 끊이지 않았던 기엔은 쿠바계 팬들의 분노를 불러온 피델 카스트로 존경 발언으로 한 시즌 만에 해임됐다.
구장 신축의 효과도 미미했다(2012년 220만 ML 18위, 2016년 170만 ML 27위). 마이애미 지방 정부는 총 공사비(5억1500만)의 70%를 부담하게 되면서 주변 정비를 같이 하려던 계획을 실행하지 못했다. 69승93패 지구 최하위. 로리아는 카를로스 델가도에게 했던 것처럼 거부권을 주지 않은 레이에스와 벌리를 한 시즌 만에 토론토로 트레이드했다. 마이애미는 다시 늪으로 빠져들었다.
얼마전 마이애미 팬들이 간절히 기도했던 일이 일어났다. 제프리 로리아(사진) 시대가 마침내 끝난 것이다. 15년 전 말린스 구단을 1억5800만 달러에 샀던 로리아는 <포브스>의 구단 가치 평가(9억4000만 달러)를 상회하는 12억 달러(1조3700억 원)에 팔아 돈벼락을 맞게 됐다.
마이애미의 새 주인은 데릭 지터가 이끈 투자자 그룹으로, 투표 지분(voting stake)의 20%를 확보한 지터는 CEO를 맡아 구단의 운영을 이끌게 됐다(대주주 브루스 셔먼). 지터(43)가 2019년까지 계약이 되어 있는 '대선배' 돈 매팅리(56) 감독과 같이 갈 것인지는 알 수 없다(1995년은 매팅리의 마지막 시즌이자 지터의 첫 시즌이었다). 그러나 말로는 야구를 사랑한다면서 철저하게 사업 논리로만 움직인, 그리고 선발 로테이션의 순서를 바꾸라는 지시를 하는 등 경기에 개입하기까지 했던 로리아보다 훨씬 나은 구단주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흥행의 반전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전혀 없지 않다. 플로리다주는 야구의 인기가 크게 떨어지는 지역이지만 말린스파크는 쿠바 이주민들의 밀집 지역인 '리틀 하바나'에 위치하고 있다. 이에 故 호세 페르난데스의 등판일에는 지역 전체가 들썩이기도 했다. 따라서 WBC 때 관중석을 가득 메웠던 도미니카공화국 이주민들과 최근 정국 불안으로 인해 점점 더 늘고 있는 베네수엘라 이주민들의 응원을 이끌어낼 수 있는 선수단 구성이 되어야 한다. 또한 구장 곳곳에 연주 팀을 배치해 경기 내내 흥을 돋우는 등 남미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이끌어낸 이번 올스타전은 앞으로 마이애미 구단이 나아가야 할 길(철저한 히스패닉화)을 보여준 것이었다.
15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지안카를로 스탠튼(27)은 시즌 43홈런(115경기)과 5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두 개의 구단 신기록을 만들어냈다(.283 .374 .640). 최근 34경기에서 22개, 11경기에서 10개를 몰아치고 있는 스탠튼은 159경기 60홈런 페이스로, 스테로이드 논란 선수들(새미 소사, 마크 맥과이어, 배리 본즈)을 제외할 경우 1927년 베이브 루스(60개)와 1961년 로저 매리스(61개)에 이어 세 번째 60홈런 달성자가 된다. 지난 2년 간 131경기를 결장했던 스탠튼이 올 시즌의 건강을 계속 유지할 수 만 있다면, 2015년에 그와 맺은 총액 3억2500만 달러의 13년 계약은 로리아가 마이애미에서 한 일 중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지도 모른다.
구단 매각 협상이 진행 중이던 지난 7월. 현지에서는 로리아가 판매 가격을 높이기 위해 앞으로 10년 간 2억8500만 달러의 잔여 연봉이 더 남아 있는 스탠튼을 팔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나왔다. 때마침 스탠튼은 구단의 행보를 비난하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스탠튼은 남았고 부활에 성공했다. 그리고 양키스에서 20년을 뛰며 승리의 아이콘이 됐던 지터가 팀을 이끌게 됐다. 과연 마이애미는 골칫거리였던 그동안의 오명을 씻고 메이저리그의 든든한 구성원으로 변신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