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양동 |
수월리+양정리로 남으로는 독봉산 , 북으로는 국사봉이 자리하고 있다. 양정: 양정저수지 주변. 이웃 문동가는 길 수월: 수월-수동-수양(주작골) 해명: 수월초교/두산/자이아파트---약수봉 제산: 독봉산 아래, 해수온천에서 포스코까지 덕산: 중곡동 덕산아파트 주변/ 육교에서 오비교까지 남쪽은 고현동 중곡동: 옛날 중통골이라 하였으며 사람이 몇 집 없었다. 매립하여 생긴 마을임.
<정리를 하면> 문동➽양정➽수월➽수동➽수양➽제산과 해명➽덕산 -수월리 처음: 아랫마을 해명/윗마을은 수월리 중간: 수월리는 해명/수양/수동 3리 최근: 수월/수양/해명(1~3)/수덕6개 행정리로 됨. -양정리 초기: 제산과 양정 중간: 양정/제산(1~3)제산(1~6) 현재: 양정/제산(1~8)/덕산(1~4)양정/제산/덕산 마을이었는데 지금은 양정/제산(1~8)/덕산(1~4)마을로 구분하고 있다.
|
와항마을 |
기와를 굽던 곳
1. 하청 애고지(瓦項)신라 때 기와 파편이 발굴되고 기와굴이 있다. 2. 고현 문동 애고지 (瓦項): 문동 아랫마을 기와를 구었다는 골짜기 3. 구조라 애고지골 (瓦項) : 기와를 구었다는 골짜기 4. 장목 애고지 (隘串) : 궁둥이처럼 툭 튀어나온 작은 바닷가 동네 5. 매동 왜곶이산 (矮串) : 작은 산이 궁둥이처럼 툭 튀어나왔다.
|
복항/복골/절골
대금과 시방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임. |
보항(洑項)마을 본래 대금산(大錦山) 동북으로 흐르는 큰골의 내물을 받아 농토에 인수하는 보고랑이 있었으니 보목 또는 본목이라 하여 보항(洑項)이라 하였는데 지하수(地下水)인 물이 스며 흐를 복이라 하여 복항이라 한다. 현재 바닷가에는 작은성을 지어 관광객이 찾곤한다.
복골마을 시방 위쪽에 있는 마을로 대금산가는 한 코스이기도 하다. 마을입구에 작은 저수지가 잇는데 이는 대금산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 풍부하다고 하여 물이 풍부한 보(洑)가 있는 곳이라 하여 봇골이라 하였다.
상금산(上金山)밑에서 흘러내리는 계곡물을 끌어 오는 보의 어귀에 있는 마을이다.
절골마을 시방에서 흥남으로 넘어오는 고갯에서 위로 보면 절골이란 표지판이 나온다. 약 2.5km이다. 현재 8가구가 살고 있다. 옛날이 암자가 있어 절골이라 했으나 현재는 없다. ☎ 대금산 축제가 열려 길이 막힐 때 복골마을이나 절골마을로 올라가기도 하는 곳이다.
|
아지랑곶 |
동쪽은 갈곶, 서쪽은 서곶, 북쪽은 장곶, 남쪽은 아지랑곶 곶(串, cape)이란 바다나 호수 쪽으로 툭 튀어나온 곳으로 3면이 물로 둘러싸여있다. 규모가 크면 반도(한반도)라 한다. 호미곶, 갈절곶, 장산곶,제주도 섭지코지란(섭지란 좁다는 의미이고 코지는 곶의 제주도 방언이다.)
|
서이말/ 사이말/ 광지말 |
서이말(‘鼠咡末): 쥐 서(鼠) 입가 이(咡) 끝 말(末), 지형이 쥐의 주둥이 형국으로 툭 튀어나왔다. 거제도의 최동단이며 1944.1.5 건립되어 1945.8.15파괴되고, 1960년 복구되었다. 남해안에서 유인등대는 서이말등대와 매물도 등대 두곳 밖에 없다. 쥐부리끝이라고 하며, 옛 이름은 금취(金嘴)라 하였다. 금취는 입으로 부는 악기로 주둥이 모양이었다.
사이말(蛇咡末) :서이말과 상대되는 지명으로 장목면 황포에 있다. 거제도 최북단으로 뱀의 주둥이 모양이라 뱀부리끝/사부리 끝/사오리끝 이라고도 한다.
황포 광지말 : 황포 서남쪽에 광무 9年(1905) 러일전쟁때 러시아의 함대가 거제도의 동쪽을 지나가는 망을 본 왜군 광지(廣枝)가 살았다는 마을이다.
|
시방과 이수마을의 전설 |
利水島는 잘 사는 고장이었으나 어느날부터 쇠퇴해 갔다. 지나가는 도사가 시방에서 화살이 날아와 확을 죽이는 형상이라 대비책을 세우라고 하였다.
그 도사의 말대로 화살을 막을 수 있는 비석 ‘방시순석(防矢盾石)’을 마을 뒷산에 세웠다. 그러자 정말 이수도는 부자가 되었고 이번에는 시방 마을이 쇠락해져 가는 것이었다. 고심 끝에 시방에서는 이수도의 비석을 뚫을 수 있는 쇠화살을 쏜다는 뜻으로 마을 앞에 비석을 세웠다. 이것이 지금도 남아 있는 방시만노석(放矢萬弩石)이다.
이리되자 이수도에서는 다시 쇠화살을 막을 방시만노순석(防矢萬弩盾石)을 원래의 방시순석 위에 덧세웠다. 그 두l 서로 화해하고 잘지내게 되었다.
☎ 지금도 시방과 이수도에 가면 비석을 볼 수 있다.
-이수도(利水島): 물이 좋아 잘사는 섬, 이물섬이라고도 한다. 이물섬이란 이(利)란 한자와 물이라는 한글이 혼합된 지명이다. 이물섬을 한자로 표기하면 이수도(利水島)이다. -시방 (矢方): 본래 살방이라 하였는데 이는 화살을 뜻함이며, 살방 을 한문으로 표현하며 시방이다.
|
고현독봉산 율천독봉산
|
독봉산(獨峯山)
계룡산(鷄龍山)의 동쪽 고현천을 경계로 수월, 양정리의 서쪽이 되는 신현읍 지역의 중심부에 홀로산이 있으니 이를 독봉산(獨峯山)이라하며 임진왜란때 장군이 올라가 지휘하였다는 독봉산(禿峯山)이라 전래되고 있다.
율천독봉산 : 율천 북쪽 화봉산 북쪽에 홀로 있는 산 |
조라/ 미조라/ 구조라 |
○ 미조라(彌助羅)마을--U2기지 건설로 마을이 없어졌다.
지세포리 동남쪽 2㎞지점에 지심도(只心島)를 바라보는 갯가에 20여호의 어촌이 있었는데 1981년 한국석유개발공사 제5비축기지 조성으로 모두 이주했다.
○ 구조라마을 ---옛날이 진이 있었으며 진이 옥포로 옮겨 갔을 때의 이름이다.
본래 자라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조라목, 조랏개, 조라포, 목섬, 목리 또는 항리(項里)라 했다. 거제의 구조라의 지명유래는 포구의 모양이 조래 (밥 짓기 전 쌀을 이는 도구) 모양이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 조선시대초기부터 말기까지 구조라 마을 이름은 항리(項里)였다. 항리란 앞바다의 작은 섬이 물이 들면 섬이 되고 물이 나면 잘록한 바다가 드러나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관청이나 진영이 위치한 곳 주위 길목에 위치한 마을을 항리(목실,목마실)이라 불렸다.
단지 역사적인 사건으로 현재 지명이 구조라가 된 것이다. 7 ○ 조라마을---옥포 여객선 터미널 옆 횟집들이 몰려있는 곳이다.
본래 나호라 하였는데 ( 나호(羅湖): 호수와 같은 포구이다) 선조 37년(1604)구조라진을 옮겨왔다가 1651년 다시 돌아갔는데 조라관청이 있는 골이 있어 신조라 또는 조라포라 하였다. |
거제귀목정 서대귀목정 |
사곡삼거리에서 고개를 넘으면 오른쪽마을은 옥산이고 왼쪽 마을은 화원이다. 한 200~300m 가다보면 오른쪽 보이는 동네가 외간이고 왼쪽 비닐하우스가 많은 동네가 귀목정이다. 주욱가면 거제면 사거리가 나온다.
이름이 특이한데 뭐 귀가 먹었나? 라고 생각 할 수도 있는데 귀목정이란 귀목(貴木, 느티나무) 이 있는 곳에 정자(亭)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느티나무를 귀목이라 하였다. 즉 팽나무를 포구나무, 삼나무를 수기목, 편백을 히노끼(ヒノキ), 라 불렸다. |
둔덕 시목마을/이목 감남골/서대감남골 |
둔덕시목마을은 기성현 때 國馬를 기르던 馬場잉 있어 넓은 초원을 형성하여 목장을 지켰다는 視牧이 있었으나 원종12년(1271)년 왜구의 침범으로 거제도민은 모두 거창으로 피난 가니 현도 없어지고 그 두l 감나무를 식재하여 柿木이라 한다. 이목 감남골 서대감남골은 감나무를 많이 심어 붙여진 이름이다. |
꽃받등 |
거제도에는 꽃받등이란 지명이 많은데 이는 고개마루에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어 진달래 꽃이 피는 봄이 되면 고개길이 온통 진달래 꽃으로 붉게 물들어 꽃밭과 같다하여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진달래는 산성토양을 좋아한다. 고로 산이 지나친 남벌로 산이 메마르면 산성화 되고 그러면 진달래가 많이 핀다. 꽃밭+등(嶝)
사등 꽃받등, 삼거리 꽃받등, 화도 꽃받등, 도장포 꽃받등, 소동서쪽 채이밭골 참꽃, 금곡 花田山, 서대 꽃밥등 |
장평동의 이름들
(피솔,와치,유자섬) |
장평동의 이름들
-진들: 장평의 엣이름, 비행장이 있었고 진들바구니가 유명했다.
-큰섬(댓섬, 竹島): 토크장으로 변하여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조선소 안) -작은섬( 柚子,橘島): 옛날 중국에서 여기 유자도를 거쳐 일본으로 갔다는 곳이다. 1970년 일본 유자연구가들이 다녀가기도 했다. 몇 년전 오리가 번식하여 신문에 나기도 한 곳이다.
-와치(臥峙)마을: 사곡으로 넘어가는 낮은 고개를 누운티(누워있는재)를 한자로 와치라 하였으나 지금은 조선소에 흡수되었다. -피솔마을: 누운티 서북쪽 바닷가 끝에 있는 개촌으로 붉은 적송이 울창하여 붉은 피와 같다 하여 피솔(血松)이라 부렸으나 조선소로 이주하였다. -가로지 : 연곡마을 동북쪽 바닷가에 있는 갯마을로 가루지, 서목, 조항 등으로 불리웠으나 지금은 아파트 단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