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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인내하는 믿음을 통한 하나님의 응답 (야고보서 1:2~8)
“성령 충만 하십시오! 신앙의 길을 잘 달리시길 바랍니다. 결코 물러서지 말고 이번 한 주간도 주 안에서 승리하셔서 하늘의 큰 면류관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 땅은 원래 멕시코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1846년부터 약 1년간에 걸쳐 멕시코와 미국의 전쟁을 통해서 미국으로 편입된 아무런 쓸모없이 버려진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금광이 발견됨으로 금을 찾아 이곳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지금은 미국 50개주 중에서도 가장 인구가 많은 주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때의 이야기입니다. 뉴욕에 살던 어떤 청년이 부푼 꿈을 안고서 그동안 부모님에게 물러 받은 많은 재산을 다 정리를 한 후에 캘리포니아로 금을 찾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좋은 호텔에 거주를 하면서 많은 인부들을 동원하여 금이 묻혀 있을 만한 곳을 수도 없이 파헤쳐 갔습니다. 하지만 그가 지목하여 굴착을 한 곳에서는 금이란 구경조차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다 보니, 그 동안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돈도 다 떨어질 때가 되어 숙소인 호텔에서도 나와야 했으며, 이제는 인부들이나 굴착기조차 구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청년을 그곳에 온 것을 후회를 하며 비관하고 있을 때, 어떤 나이 많은 인디언이 찾아와 자신의 소유인 조금마한 땅에 금이 많이 묻혀 있다며 그 당시 금액으로 50불에 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자신에게 있던 돈은 모두 백 불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민을 하다가 큰마음을 먹고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그 인디언의 땅을 샀습니다.
그리고는 그 땅에다 천막을 치고 아침 일찍이 일어나 밤늦게까지 금이 나올 만 한 곳을 골라서 혼자서 삽과 괭이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마음을 먹고 계속 땅을 파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수 십 미터나 넘게 깊숙이 땅을 파고 들어가도 금이란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뒤늦게 인디언에게 속았다고 생각을 하니 분하고 억울한 마음만 들었습니다.
결국에는 시간이 흐르자 나머지 돈마저도 다 써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그는 낙심을 하며 더 이상 그 굴을 계속해서 파 들어가야 할 의욕마저 상실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일확천금을 꿈꾸어 왔던 자신의 욕심을 뒤늦게 한탄하면서 할 수 없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경비라도 마련하려고 50불에 산 땅을 20불에 내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는 금이 나오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서인지 그 누구도 사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청년은 할 수 없이 뉴욕까지 가는 차비만 주면 땅을 팔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아무도 그 땅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어떤 허름한 늙으신 할아버지와 나이어린 손자가 그 청년을 찾아와 자신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5불 밖에 없으니 그 돈으로 땅과 다 낡은 삽과 괭이를 자신들에게 팔면 어떻겠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노인과 아이를 보면서 가만히 생각을 하던 청년은 이번 기회를 놓치면 영영 그 땅을 못 팔 것 같은 생각이 들자, 그렇게 하자고 하면서 그 자리에서 5불을 받고 그동안 자신이 거처했던 천막까지 주면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 후, 두 사람은 땅속 깊이 버려져 있던 낡은 삽과 괭이를 들고 그 청년이 파다가 그만둔 자리의 땅을 계속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삽과 괭이가 땅 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상히 생각하게 생각을 하면서 손으로 흙을 치워보니, 그곳에서 번쩍이는 금덩어리가 엄청나게 묻혀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자 이를 본 할아버지와 손자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울면서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할아버지와 손자가 산 땅에서 엄청난 금이 묻혀 있다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지자 수많은 기자들이 그곳으로 몰려와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그 인터뷰 내용인 즉은, 두 사람은 오래 전에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이곳 캘리포니아로 이주를 하여 그곳에서 금을 캐려고 했지만, 금을 찾기도 전에 황토 병으로 가족들을 모두 잃고 두 사람만 살아남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아내와 젊은 자식들과 며느리들이 다 병에 걸려 죽고 말자, 할 수 없이 이 할아버지와 손자는 다른 사람 밑에 들어가 하루 종일 시키는 대로 땅을 파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낮 모르는 어떤 늙은 인디언이 그들이 거처를 하고 있는 비가 세는 천막으로 찾아와서 5달러나 되는 돈을 주면서 때를 기다려 보라고 하면서 가더랍니다.
그러자 영문을 몰라서 그 돈을 잘 간직을 하고 있던 중에 이 땅을 20불에 판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자신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단돈 5불밖에 되지 않아 포기를 하였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아무리 힘들고 고달파도 항상 저녁때가 되면, 하나님께 기도를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비가 오나 눈이오나, 항상 찬송을 하면서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였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가 꿈을 꾸었는데, 밝은 하늘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리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8)고 말입니다.
또한, 똑 같은 시간에 어린 손자도 꿈을 꾸었는데, 어떤 천사가 말하기를 ‘너희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인 5불을 가지고 지금 당장에 20불에 땅을 팔려고 하는 사람을 찾아가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자신의 할아버지도 잠에서 깨어 일어나 있어서 서로 꿈을 말하고는 용기를 내어 그 땅 주인을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땅 주인이 순순히 허락을 하여 그 땅을 사게 되었으며, 손자와 함께 땅을 얼마파지도 않았는데 금덩어리가 쏟아져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할아버지와 손자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 계획 하에 이루어졌으며, 그동안 가족 모두를 잃어버린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인내하면서 항상 하나님을 향한 진실한 예배가 하늘에 닿았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일 먼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간증하면서 모두가 주일만 되면, 그 교회에 나오도록 하여 찬양과 경배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합니다.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결론적으로 먼저 그 땅의 주인이었던 젊은 청년은 조금만 더 인내를 하였다면, 자신의 꿈인 요즘 말로 대박을 이루었을 테인데,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간 가지고 있던 돈마저 다 탕진해 버리고 단돈 5불에 팔아넘기고 빈손으로 돌아가도 말았던 것입니다.
어떤 글에 ‘하늘나라에는 되돌아온 소포가 많다.’는 내용의 글이 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인내하면서 확신을 가지고 조금만 더 참고 기도를 계속했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께로부터 무엇이든 지간에 어떻게든 응답을 받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을 참지 못하고 기도를 포기하였기 때문에 무응답으로 되돌아왔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서 참고 기다리며 말씀대로 지켜 살았으면, 하늘로부터 오는 축복과 약속의 응답을 받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참을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 없어서 축복을 받지 못했다는 말씀입니다. 인정하시는 분만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그래서 우리들 주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자신에게 닥쳐온 여러 가지 조건과 환경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분들이 이외로 많이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이유로 인하여 마귀, 사단들 앞에 결코 무릎을 꿇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싸웠다면, 큰 승리를 거두고 결국에는 하늘의 면류관을 받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견디지 못하여 항복을 하기 때문에 실패하고만 것입니다.
때문에 그 어떠한 고난과 고통을 인내를 가지고 조금만 더 참고 견디었다면, 큰 승리의 축복을 받았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한 믿음을 통한 참고 견디는 인내가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승리의 축복을 놓쳐 버렸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생각지 못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얼마나 오래 참고 버티며 기다릴 수 있는가에 따라 믿음이 좋다고 할 수도 있으며, 아직도 부족하다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온전한 믿음으로 남들보다 더욱더 인내하며, 얼마나 오래도록 더 참을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만큼 큰 승리를 거두고 그만큼 더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온전한 믿음을 동반한 인내는 일란성 쌍둥이와 같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강인한 인내심이 없이는 결코 강인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가 없으며, 온전한 믿음이 없이는 결코 참된 인내도 가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그들의 모습을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그들은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꼭 하나님의 역사가 꼭 자신들에게 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한 번을 돌고, 두 번을 돌고, 세 번, 네 번, 다섯 번을 돌아 어느덧 엿 새 동안을 돌았지만 그 성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만약에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어 그때를 참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 두었더라면, 결단코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을 함락시키지 못했을 것이며 또한, 가나안 땅도 다시금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믿었기에 끝까지 인내하면서 칠일 동안이나, 일곱 번째 마지막 바퀴를 돈 다음에야 비로서 그 견고한 여리고 성이 무너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만약에 그들이 인간적인 눈으로 보고, 인간적인 감각과 생각으로 자기 자신들이 느끼는 방식대로 행동을 취했다면, 결코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린 다윗이 전쟁터에서 골리앗과 마주섰을 때, 그의 거대한 몸집은 물론, 엄청나게 큰 창을 보고,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리는 우렁찬 목소리에 온전한 믿음으로 버티지 못했다면, 그는 결단코 승리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이 이 육신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더럽고 추악한 마귀, 사단들과 접전해 싸울 때, 강한 인내심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코 승리할 수가 없으며,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큰 믿음이란? 큰 인내를 동반해야만 가능합니다. 때문에 아무리 육신적으로 뛰어난 사람일지라도, 보고, 듣고, 만지고, 느낀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결단코 승리할 수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그 증거의 말씀을 한 번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야고보서 5장 10절로 11절의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주의 이름으로 말한 선지자들로 고난과 오래 참음의 본을 삼으라!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아멘!
그러나 아무리 믿음의 생활을 열심히 했다고 하더라도, 오래 참고 기다릴 줄 모르는 성도들은 아무런 성공도 이룰 수가 없으며, 하늘로부터 오는 그 어떠한 승리와 축복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좋은 성도들은 그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 처할지라도 결코 낙심하지 않고 끈질기게 참고 인내한 성도들입니다. 때문에 마음이 조급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받을 수도 없으며, 하나님의 귀한 그릇도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미국 태생의 수필가이자 목사인 에머슨(Emerson)은 말하기를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은 남보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남보다 1분 더 참는 인내가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1910년 경 606호라고도 불리우기도 하는 살바르산을 만든 과학자는 독일의 ‘파울 에를리히(Paul Ehrlich)’로서 각종 피부질환에 특효가 있는 페니실린을 세계 최초로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상표명을 왜 606호라고 하였는지 아십니까? 그 이유는 그 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605번이나 실패를 거듭했지만, 결코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계속 연구해 나가다가 606번 만에 성공을 했다고 해서 그 약의 이름을 606호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이처럼 의학계에 크게 공헌한 '606호 페니실린'은 605번의 쓰라린 실패 뒤에 찾은 인내를 통한 성공의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순도 99.9%의 온전한 정금이 나오기까지 어떠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완전한 정금을 만들기 위해서는 광산에서 힘들고 고달픈 노동을 통하여 광석을 캐어 그 광석을 잘게 깨어 부수고, 씻고, 끓이는 수많은 과정을 겪어내야 비로서 값나가는 진짜 황금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와 같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영적인 세계에는 더욱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사야서 30장 1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 말씀도 한 번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공의의 하나님이심이라! 무릇 그를 기다리는 자는 복이 있도다,” 아멘!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기다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너희들이 나를 믿고 얼마나 참고 기다리나 보자!’하시며, 인내를 온전히 이룰 때까지 우리 모두를 기다리게 하는 훈련을 시키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저와 여러분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이 육신의 삶속에서 인내를 극복하고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육신의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것도 참고 기다리시며, 또한 죄악이 관영한 이 육신의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도 오랫동안 참으시면서 기다리고 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에베소서 6장 24절에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 찌어다.”라고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의 삶은 인생의 여정(여정)에 있어서 온전한 믿음으로 인내를 훈련하는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아이들의 소망은 누구나 한 번 쯤은 가져본 생각일 것입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기다려야만 합니다. 또한, 이 세상 사람들도 바라고 간구하는 모든 일들은 기다림의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의 떡을 먹으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의 삶에 있어서 많은 시간을 기다림의 지루함과 고통의 시간을 참는 인내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내심이 없는 사람들은 많은 시간을 초조와 불안과 좌절과 분노와 원망으로 지낼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어떠한 조건과 환경에 처하더라도 온전한 믿음을 통한 인내심의 정도는 저와 여러분들의 인격의 성숙성을 가늠하는 믿음의 척도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때문에 조금 전에 함께 봉독한 이사야서 30장 8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끝까지 참고 견디면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된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뜻을 반대를 해석해 본다면, “참고 견디지 못하는 사람은 성숙하지 못한 사람으로서 결함투성이의 인격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누가복음 21장 19절에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고 했던 것입니다. 또한, 로마서 5장 3절에서도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고 하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우리들 주변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자신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하고 육신의 삶속에서 이리 저리 흔들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성도들도 한 때는 불같은 성령 체험도 맛보았으며, 방언도 받았으며, 여러 가지 환상도 보면서 별별 체험을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구원의 목표를 이루지 못하여 지옥의 길목에 서있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인 오늘날, 그런 사람들을 향하여 마태복음 10장 21절로 2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그 말씀도 한 번 찾아서 읽어 보겠습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아멘!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로 선택을 하셨더라도, 이 육신의 삶속에서 온전한 믿음으로 고난을 참을 줄 모르는 형식적인 성도들에게는 결코 하늘의 큰 은혜와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 육신의 삶속에서 여러 가지 고난과 환란들을 온전한 믿음으로 인내하지 못하는 형식적인 성도들도 결코 자신이 바라는 목적과 뜻을 이룰 수 없으며, 따라서 하나님께서 귀히 쓰시는 그릇들이 될 수가 없다는 사실도 깨닫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소유한 복을 주시되, 대부분 고난과 슬픔의 보자기에 싸서 주십니다. 그러므로 언뜻 봐서는 복이 아니라 고통과 저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믿음의 성도들이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환란이 계속 될 때에는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게 하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실조차도 의심하기가 쉽습니다.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은 온전한 믿음으로 힘들고 어려운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따르는 끈기 있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2절로 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의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도 다윗과 같은 거룩한 왕도 시편 119편 67절을 통하여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며 자신의 부족함을 온전한 믿음으로 고백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다윗은 71절을 통해서도 자신이 고난을 당한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자기 자신에게 오히려 유익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주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에게 결코 감당치 못할 고난과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니심을 믿고, 온전한 믿음으로 끝까지 이를 악물고서라도 모든 것들을 참고 인내 하면서 이겨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들이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게 느낄 만큼 응답이 안 올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도는 하자마자 즉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왜 그런 줄 아십니까? 이는 아직도 하나님의 때가 안 되었거나, 저와 여러분들의 온전한 믿음의 인내가 부족하거나, 더욱더 우리들 모두의 육신이 깨어져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도 시편 40편 1절을 통하여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여러 가지 문제들로 인하여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환경과 여건에 처해 있더라도 항상 인내하면서 온전한 믿음으로 계속해서 참으며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성도 여러분! 수로보니게 여인의 믿음을 보세요!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들린 자신의 외동딸을 고쳐달라고 애원을 하며, 예수님을 계속 따라오면서 부르짖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못들은 체하시고 계속 걷기만 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과 함께 동행 하던 제자들이 하도 답답하여 “주님! 저 여인의 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저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때,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자녀에게 줄 떡을 개에게 주겠느냐?”고 하시면서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기 위하여 일부러 무시하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지만 그 여인은 조금도 낙심하거나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을 먹나이다.”라고 하면서 부스러기나, 찌꺼기 같은 은혜도 좋사오니 제발 자신의 딸을 고쳐 달라고 애원을 합니다.
그러자 이러한 여인의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 감탄을 하시며 “네 믿음이 크도다. 그러니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라고 하시며 그의 딸을 고쳐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이러한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아브라함은 아들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었지만, 25년이나 참고 기다리다가 조급한 마음에 인내하지 못하고 여종 중에 하갈을 취했다가 오랫동안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기고 맙니다.
그러자 그는 뒤늦게 회개를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여종과 하갈을 자신의 집에서 내어보낸 다음에야 비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됨으로서 은혜의 길이 다시금 열렸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변함없는 분이시며,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고, 당신의 아들을 죽기까지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올 여름 날씨는 유난히 변덕스럽기도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올 여름은 더욱더 기온이 상승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가을의 풍성한 수확을 바라보며 아무리 덥고 힘들어도 가꾸기를 등한히 하지 않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들은 도시에 살아서 못 느낄 뿐이지, 농부들이 이처럼 더운 날씨에도 부지런히 땀 흘려 고통과 괴로움을 달게 참고 감내해 내는 것은 결과적으로 온전한 결실의 열매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농부들이 마침내 기쁨의 수확을 수중에 넣을 것을 기대하며, 그동안 모든 어려움과 힘든 일들을 달게 받아들이듯이 저와 여러분들도 신앙의 길에 생기는 그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 앞에서도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온전한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항상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끝으로 히브리서 10장 36절 말씀과 데살로니가후서 3장 5절, 그리고 누가복음 8장 15절과 누가복음 21장 18절의 말씀을 봉독해 드리면서 예배를 마칩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들 심령 깊숙이 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을 드립니다.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주께서 너희 마음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인내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3:5)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니라!”(눅 8:15)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8)
- 윤요셉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