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 낙엽 (落葉)
ks kim.
북한강이 감싸고 있는 남이섬에 가보았라. 그것은 갑자기 왜 묻는거니? 가을이면 생각나는 곳이기에, 그곳하면 드라마 “겨울연가” 준상과 유진이 함께 자전거를 탄 Love 장소로 잘 알려져 있어.
또 그곳하면 남이장군을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고. 조선 명문가의 자제였지만, 그분은 끝은 역모라는 모함으로 환혈형을 당한 당대 최고 명장이지만, 비운의 사나이를 기억하는 곳이 되었어. 시대가 사람을 못 알아보는 것을 누구를 탓하랴. 그렇다고 하늘을 향해 돌을 힘껏 던지면 결국은 어디로 떨어질까? 여기서는 그래도 절대 돌 팔매하지마라.
이곳에 오면 그래서인지 마냥 즐겁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인생을 돌아보게하는 기운이 내제된 곳. 사랑과 영혼이 무섭게 교차하는 곳이랄까? 이루어질 것만 같은 절절한 사랑도, 역사도 추억의 기차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하는 블랙 홀 같은 곳. 흔히 지관이 이야기하는 기가 아주 센 곳이랄까? 그래서 많은 인파들이 기를 받고파 이곳으로 몰리는 것은 아닐까?
여기서는 떨어진 막대기 한개만 잡고 걸어도 아이들은 천사가 되고 노인은 시인이 되고 청년은 철학자가 될 수 있는 곳. 가을의 은행나무와 특히 메타세퀴아 가로수 길을 걸어봐라. 수많은 포토라인 앞에 발가 벗겨진체 레드카펫을 걷는 연예인들이 오히려 촌스럽다 생각되는 곳이지. 승자를 위한 레드카펫 아니던가? 그러나 이곳은 발 밑으로 펼쳐진 노랑색 낙옆 카펫, 오염되지 않은 순수함만이 묻어나는 자연 그대로의 생명력이 깃든 길이지. 누군가 우리는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가는 것이라하는데, 오늘따라 너무 익어가는 것은 아닌가? 빨가게 익어가게 여유를 갖고 오늘만큼은 내버려두렴, 그러다 보면 알아서 감처럼 뚝 떨어지는구나.
이곳은 누구랑 손잡고 오면 백발 노인은 소년이 되고, 아이들이 뛰어 놀면 천사가 되는 곳, 연인이 걸으면 미래의 핑크 빛 결실이 가득찰 곳이다. 그런 곳을 혼자 걷는다면 생각하기도 싫은가? 왠 청승맞은 모습일까? 오래된 카메라 챙기고 아니 요즈음은 핸드폰만 손에 들고가도 왠만한 사진작가 될 수도 있지. 이제라도 다 잊고 남이섬으로 향해보자, 내친 김에 고공에서 짚라인 타고 남이섬으로 입성하면, 성을 공략하러 가는 장군의 마음처럼 그동안 맺친 가슴이 뻥 뚤릴 것 같다. 누구든 가슴 속에 한가지 이상 야망과 사연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는 가슴에 오히려 품고 싶을지도 모른다. 자신과의 대화, 싸움, 투쟁, 분노, 추억, 연민, 그리움, 슬픔의 물방울들이 모여 햇빛에 겹쳐져 영롱해지는 것인가? 이곳 낙옆 광장은 우리들의 야망과 절절한 사연도 잠시 잊게해주는 마약과 같은 공간이다. 그래서 오고 또 오게하고 있는 것이다.
벤취에 싸여있는 낙옆을 한 손으로 정성껏 치우면서 손수건을 꺼내 내려놓는 저 아저씨는 누구일까? 아이스크림 콘을 들고 걸어오는 저 아주머니는 누구?. 멀리서 바라만 보아도 정겨움이 뚝뚝 묻어난다. 정말 부럽다는 것이 이것인가? 또 다른 가을연가가 시작 되고 있다.
가을이 익어가는 소리, 그대는 들리는가?
낙엽 위에 뒹구르는 저 커플들 정말 좋겠다. 이곳에선 어떠한 침대가 있다해도 무용지물. 천상으로부터 내려오는 따스한 햇살의 이불과 그녀의 팔베게로 호사를 누리는 저 어르신은 낭만의 화신이었던가?
그대는 낙엽의 애잔함을 얼마만큼 아는 것인가? 파릇파릇 싹이 돋은 봄은 언제였던가? 무성한 푸른 잎으로 대지 위에 펼친 적도 있었지? 이제는 또 다른 여정의 길목에서 그 목마름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셔도 마셔도 가시지 않는 갈증은 이미 속까지 노랗게, 빨가게 물들어 가고 있다. 남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낙엽”(落葉) 이란 이름을 붙여주고 있다. 그대는 “갈엽” (葉渴)으로 표기하고도 싶지 않은가?.
세상에 나락으로 뚝 떨어져도 더욱 멋진 것이 있다. 그대 말고 누가 더 있겠는가? 매년 생일처럼 기념 행사까지 차려주고 환대까지 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래도 끝나지 않는 “갈엽” (葉渴)의 이 갈증은 삶의 처절함인가? 생과 사의 갈림 길에서 격는 목마름인 것이다. 얼마만큼의 낙엽도 세월을 지닌 지식인처럼 먼저 익었다고 그 누구에게도 강요함은 없었던가? 이런 것도 목마름인가? 낙엽은 지금도 말하고 있는 것인가?
촉촉한 비가 내릴때면 낙엽은 그래도 살만하다. 갈증을 조금이라도 해소될 것이다. 누군가 비에 젖은 낙엽 같다며 빈정대지만, 빗자루로 확 쓸어버리고 싶어도 조급하게 그러지말고 그냥 두고 보시라고 싶다. 그렇다고 그가 쉽게 쓸릴 것 같냐고, 그동안 살아온 내공도 있는 몸인데. 햇빛나고 바람불면 어련히 알아서 날아갈 것인데 재촉 좀 하지말아라. 그냥 포대에 쓸어담아 땔감용으로든, 이제와서 손수 장사까지 지내 준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가는 순간까지 그래도 누군가를 따스하게 감싸주고 싶은 마음만을 알라 주었으면.
가을에 거울 앞에 다가선 누님처럼, 그대여 낙엽도 거울 앞, 또 다른 치장을 정말 잘하고 싶다. 더 이쁜 노랑색, 더 이쁜 빨강색, 파란색 단풍으로 꾸밀 자신이 있는 것이다, 그럼 다음 가을에 만나요. 안녕.
2024. 1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