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조성의 또다른 신비한 측면의 중심에는 역사가 '아널드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이라고 부른 것이 놓인다. 토인비에 따르면 위대한 인간적 성취는
모두 도전에 대한 창조적 응전이었다. 말이 된다. 하지만 질병을 앓거나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는 개인적 비극을 겪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아
걸거나 잘못된 길로 빠지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비극을 창조적 천재성의
연료로 삼는 걸까? 마찬가지로, 전염병의 발발 같은 집단적 비극을 겪었을 때
왜 어떤 장소들은 시선을 안으로 돌려 편협해지는 반면 어떤 장소들은 지평을
넓혀 위대한 일을 해내는 걸까? 우리는 모른다. 화창한 날을 발명할 수 없듯
천재의 장소를 만들 수 없는 이유도 그래서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손을 들고 항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화창한 날에는
선글라스를 쓰고 비 오는 날에는 우산을 챙기듯 적절히 준비할 수 있다. 다가오는
기상 전선을 추적하고 하늘을 읽고 파도를 타며 미래를 예측할 수도 있다.
천재들은 이런 일에 무척 뛰어났다. 그들은 서퍼[surf·er]였다.
서퍼[surf·er]는 파도를 만들지 않는다. 파도를 관찰하고,
즉 힌두교에서와 같은 심오한 의미로 관찰하고 파도와 함께 춤춘다.
[OneBook/OneDay]
20200202_[천재의 발상지를 찾아서:「에릭 와이너」지음]page4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