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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30 불교방송 열반재일 특별법문 지안 대종사 법문 전문
새봄이 왔습니다. 산에는 진달래가 피고 산수유도 피었습니다. 봄을 맞이해서 온갖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불자 여러분들도 새봄을 맞이해서 하시는 모든 일이 뜻대로 잘 이루어지시기를 기원합니다.
불교의 4대 명절은 알고 계시겠습니다마는 부처님 오신 날이 있고 또 성도절이 음력으로 12월 초여드레 날입니다. 그리고 양력 3월 - 음력 2월에 8일은 출가절이고 15일은 열반절로 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의 涅槃(열반)이라는 의미는 불교의 가장 본질적인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涅槃(열반) - 산스크리트어로는 ‘니르바나’( Nirvana)라 말하기도 하고 또 팔리어로는 ‘닙빠나’(Nibbana)라 말하기도 합니다.
涅槃(열반)이 무엇인가? 사실 부처님 당시에 부처님 제자 가운데에 사리불이 어느 외도로부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너희들이 주장하는 열반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사리불이 대답해 준 말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리불은 “貪 · 瞋 · 痴 (탐·진·치) 三毒(삼독)이 사라진 것이 涅槃(열반)이다.”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말하자면, 번뇌가 없는 마음을 涅槃(열반)이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중생은 온갖 번뇌에 의해서 본래 涅槃(열반)의 마음 - 佛性(불성) 자리랄까, 自性 淸淨心(자성 청정심)을 어둡게 해 놓고 산다고 말해요. 마치 청명한 하늘에 구름이 끼어서 하늘에 본래 맑은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것처럼.
그런데 涅槃(열반)은 본래 아무 번뇌가 일어나지 않고 밝고 깨끗한 마음, 또 달리 표현하면 마음에 아무런 움직임이 없으므로 지극히 편안한 상태 또는 고요한 상태를 涅槃(열반)이라 하는데 이말을 번역 寂滅(적멸)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본래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를 가장 평화로운 모습으로 묘사한 말이 涅槃(열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涅槃(열반)은 일체중생이 모두 佛性(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설해져 있는 『涅槃經(열반경)』 구절처럼 모든 사람이 전부 涅槃(열반)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涅槃(열반)을 가지고 있는데, 지극히 편안하고 행복한 상태의 마음을 본래 가지고 있는데, 다른 잡념이 일어나서 그것 때문에 그 상태를 누리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涅槃(열반)의 참된 의미를 되새겨보면 우리가 스스로 내 마음을 평화롭게 또 아무 시달림 없는 즐겁고 안정된 마음으로 돌아가는 그런 어떤 모티브를 이 말 자체에서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전 가운데에 『涅槃經(열반경)』이라는 경전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가장 최후에 설한 법문을 수록해 놓은 경전입니다. 하루 낮밤 동안 설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涅槃經(열반경)』의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면 본래 涅槃(열반)을 중생이 증득하고 있다. 본래 涅槃(열반)을 누리고 있다는 식의 표현이 나옵니다. 이걸 佛性(불성)이라는 말로 바꿔서 ‘一切衆生 悉有佛性(일체중생 실유불성)’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涅槃經(열반경)』의 중요한 내용입니다. 모든 중생은 누구나 佛性(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涅槃(열반)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중심되는 내용입니다.
涅槃(열반)에는 네 가지 덕이 있다라고 하여 涅槃四悳(열반사덕)이라 합니다. 涅槃四悳(열반사덕)을 한자 한 자씩 네 글자의 한자로 표기합니다. 常·樂·我·淨(상·낙·아·정)을 涅槃四悳(열반사덕)이라 합니다.
常(상) - 항상 하다는 뜻이지요. 다르게 말하면 영원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涅槃四悳(열반사덕)을 한 자 한 자 설명하면서 무상한 중생세계의 無常(무상)을 벗어나서 영원하다고 표현해요. 진리의 속성을 시간적으로 나타날 때는 영원하다고 표현합니다. 공간적으로 나타날 때는 무한하다고 표현하지요.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진리 - 다르게 말하면 법 자체가 어떤 것인가? 영원한 것이고, 무한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涅槃四悳(열반사덕)에 영원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그다음에 즐겁다는 말이 나옵니다.
樂(낙) - 즐겁다는 거죠. 우리는 사바세계를 괴로운 세상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중생은 苦(고)를 안고 사는 존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본래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래는 즐겁다는 거예요. 쉽게 말해서 내 인생이 본래는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라는 거예요. 내 마음에 일어난 생각이 잘못되어 괴로움을 당하고 있고 편안치 못한 상태가 되어 있다는 겁니다. 존재 자체를 苦(고)라고 보는 그런 현실을 분석해서 말하는 이야기도 있지만 본래는 즐거움이라는 거예요. 존재를 괴로움으로 보는 게 불교가 세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 본질을 알고 보면 苦(고)가 아니라는 겁니다. 樂(낙)이라는 겁니다. 즐거움. 그래서 두 번째 글자가 樂(낙)입니다.
我(아) - 그 다음에 불교 교리의 특유한 설이 하나 있는데, 다른 종교에서는 말하지 않는 내용이죠. 無我說(무아설)입니다. 三法印(삼법인)에도 諸行無常印(제행무상인)이라는 印(인)을 먼저 말하고 그다음에 諸法無我印(제법무아인)이란 말이 있잖아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사물도 실체를 가지고 있는 건 없다는 거예요. 無我(무아)라는 말이 실체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중생의 현실 경계를 놓고 볼 때는 無我(무아)인데 涅槃(열반)을 얻었을 때는 無我(무아)가 아니라는 겁니다. 我(아)라는 거예요. 常樂我(상낙아) - ‘眞我(진아)를 회복했다.’라고 말하기도 하죠. 우리가 五蘊(오온)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살아가는 이 현실 말하자면, 괴로움(苦)의 경계이고 無常(무상)의 경계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깨달음 세계에서는 나가 없는 無我說(무아설)인데 불교 특유의 설이라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無我(무아)가 아니고 涅槃(열반) 속에서는 我(아)가 있다, 眞我(진아)가 있다는 거예요. 眞我(진아) - 우리가 흔히 사람의 몸과 마음을 두 면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몸은 『般若心經(반야심경)』에 色受想行識(색수상행식)의 五蘊(오온)이란 말이 나오는데 色蘊(색온)은 육체를 뜻하는 것이고, 거기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분별 작용을 受想行識(수상행식)으로 설명하지요. 그런데 이 五蘊(오온)이 『般若心經(반야심경)』에 空(공)하다고 설해져 있듯이 나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는 거예요. 그걸 無(무)자를 앞에 붙여서 無我(무아)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다른 특이한 주장인 이 無我說(무아설)을 내세웠다는 거예요. 그래서 無我(무아)인데 涅槃(열반)을 증득한 차원 경계에서는 我(아)라는 거예요. 眞我(진아)를 얻었다는 거예요. 가령 몸은 생멸하는 존재라 할까요? 육체를 두고 말할 때는 부모를 의지해서 몸 받아 태어났고 또 사바세계는 인연이 다 하는 날까지 생존 기간이 한정되죠. 그러면 이 몸은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라는 말을 가지고 한번 생각해 볼 때 우리 마음이 몸이 태어날 때 동시에 같이 태어난 것일까요? 불교에서는 이런 견해를 가지면 그릇된 견해라 합니다. 마음은 몸이 태어날 때 같이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마음은 태어나는 것이 없다고 해요. 『般若心經(반야심경)』의 不生(불생)이란 말 다음에 不滅(불멸)이란 말이 이어져 쓰여져 있지 않습니까? 不生(불생) - 생겨나지 않는다. 태어나지 않는다. 不滅(불멸) - 없어지지 않는다. 소멸되지 않는다. 몸은 생겨났다가 소멸되는 어떤 시간적인 한계랄까 제한이 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不生不滅(불생불멸)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일반 사람들 범부의 입장에서는 마음이 몸에 속한 것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지요. 몸이 있어야 마음이 있는 것이다. 마음이 몸을 따라서 존재하는 것인 양 잘못 생각하는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인생의 본질이지 몸을 인생의 본질로 보지 않는 것이 불교의 입장입니다. 그래서 不生不滅(불생불멸)하는 당체를 바로 涅槃(열반)이라 하는 것입니다.
涅槃(열반)은 요즘 말로는 평화를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평화로워야 되고 내 마음도 평화로워야 되고 이 모든 것이 평화 속에 있어야 하는데 자칫 우리가 涅槃心(열반심)을 저버리고 번뇌와 망상을 가지고 어떤 잘못된 견해를 고집해 만들어서 스스로의 마음의 불화를 조정하는 그런 경향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현대인들의 심리랄까 이런 면을 놓고 흔히 말할 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인생 문제에 있어서 갈등을 한다고 그래요. 갈등이 뭐예요? 마음이 안정되어 있지 않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생각과 생각이 대립하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겠죠. 생각이 이래서 성격장애도 일어나는 경우가 있고 또 이것이 심화 되면 심리적으로 병적인 현상도 나타나는 수가 있고. 그래서 몸과 마음의 안정을 누리지 못하고 불안하고 초조함에 시달리는 그런 상태가 될 수 있죠. 이렇게 된 것이 본래의 涅槃(열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涅槃(열반)이 불교의 가장 중요한 본질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다. 마음의 평화가 열반이다. 마음의 평화가 본래 스스로 갖추어져 있는 것인데 왜 불안하고 초조하고 온갖 근심 걱정에 시달리는 마음이 될까? 이런 문제는 누구나 스스로에게 한 번 물어보아야 될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래서 涅槃四悳(열반사덕)인 常樂我淨(상락아정)과 涅槃(열반)이라는 말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마음의 평화를 스스로 찾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불교는 중생을 세 가지 부류으로 구분해 말하는 설이 있습니다. 이것을 三聚衆生說(삼취중생설)이라 합니다.
첫 번째가 바르게 결정된 부류라는 뜻의 正定聚衆生(정정취중생)입니다. 중생이 가장 근기가 뛰어나고 우수한 사람들로 正定聚衆生(정정취중생)은 누구나 이미 성불이 보장되어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바르게 결정된 상태니까 성불할 수 있는 중생들을 正定聚衆生(정정취중생)이라고 합니다. 일반적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중국의 손문이라는 분이 그런 말을 남겼다고 알려져 있는데, 先知先覺者(선지선각자)라고 할 수 있죠. 先知先覺者(선지선각자) - 먼저 알고 먼저 깨달은 사람들입니다.
그 다음에 결정이 되지 아니한 무리들을 不定聚衆生(부정취중생)입니다. 不定(부정) - 결정이 되지 아니했다, 정해지지 아니했다는 뜻이지요. 이것은 현재 상태에서 판단을 하건대 成佛(성불)이 가능할지 불가능할지 판단이 유보되는 상태로 두고 봐야 되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불교의 목적은 이 不定聚衆生(부정취중생)을 正定聚衆生(정정취중생)으로 바꾸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成佛(성불)이 가능한지 불가능한지 결정되지 않는 이들을 成佛(성불)이 가능한 사람이 되도록 그렇게 변화시키는 것. 이게 불교가 할 일, 불교의 역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제일 근기가 낮은 상태를 두고 한 말이 邪定聚衆生(사정취중생)입니다. 지금 현재 기준으로 판단할 때 成佛(성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입니다. 善根(선근)이 부족하고 다르게 말하면 惡根(악근)이 많다고 할 수 있겠죠. 이래서 成佛(성불)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사람들을 邪定聚衆生(사정취중생)라 이래요. 三聚衆生說(삼취중생설)을 가지고 근기를 구분해 말했는데 내가 남보다 먼저 알고 남보다 먼저 깨달은 상근기의 正定聚衆生(정정취중생)이 있고, 그 다음에는 後知後覺者(후지후각자) - 뒤에 알고 뒤에 깨닫는, 남보다는 조금 앞서지 못하지만 그래도 알고 깨달는 그런 무리도 있고, 세 번째는 不知不覺者(부지불각자) -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그런 상태가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누구나 스스로의 善根(선근)을 심고 功德(공덕)을 닦아서 成佛(성불)이 가능한 사람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 불교의 주장입니다. 成佛(성불)이 가능한 중생 - 부처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돼야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일단 부처를 향해 가는 것, 부처를 향하는 마음, 이게 가장 수행의 중요한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부처를 향한다. 식물이 꽃을 피울 때 햇빛을 받지 아니하면 꽃을 못 피운다고 해요. 햇빛이 있어야 꽃이 피어난다는 말이에요. 그래서 모든 식물이 向日性(향일성)이에요. 옛날 오래 전입니다마는 제가 러시아 여행을 한 번 한 적이 있어요. 그때 모스크바에서 성페테스부르크라는 곳으로 기차를 타고 한 10시간 넘게 여행을 했습니다. 중간 쯤 갔을 때 평원 같은 곳이 나타나는데 전부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더라고요. 그래서 한 10분 정도 기차가 속력을 내서 달리는 동안 해바라기 밭만 전개가 돼요. 그런데 처음에는 햇빛이 쫙 비추고 있으니 창밖으로 보이는 해바라기들이 전부 해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가니까 이내 구름이 끼었어요. 구름이 끼니까 해를 향하던 해바라기 꽃들이 전부 방향이 틀려 흐트러져 버리더라고요. 그래서 해바라기라는 꽃 이름이 ‘해를 바라본다’ 라 하여 지어졌다 하는데 해가 없는 날 구름이 낄 때는 그 꽃들이 방향이 각각 틀려서 해를 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불교를 말할 때 부처님을 해에 비유해서 ‘佛日이(불일)’라고도 하죠. 그래서 불교하는 마음은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적인 정서를 가지고 말할 때는 부처님을 열심히 믿고 가르침을 따라서 수행도 열심히 하고 여러 가지 실천해야 되는 방법들을 다양하게 설합니다마는 근본은 부처님을 향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불자는 向佛性(향불성)의 마음을 가져야 된다 라고 말씀드릴 수도 있겠습니다.
涅槃(열반)은 평화입니다. 완전한 평화. 또 우리가 상대적으로 解脫(해탈)이라는 말도 써요. 부처님이 깨달음을 이루어서 얻은 경계, 正覺(정각)의 경계를 두 가지 단어로서 주로 설명하잖아요. 解脫(해탈)이라는 말은 모크샤(mokṣa)라는 범어를 번역해서 하는 말입니다.
앞서 설명한 바 있는 涅槃(열반)이란 말은 정적인 고요한 평화를 뜻하는 말이고 解脫(해탈)은 동적인 자유를 뜻하는 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어를 통해서 이해하는 개념이 조금 다르지만 결국 깨달음의 경계를 그렇게 나누어서 설명한 말로 봅니다. 그런데 解脫樂(해탈락)·涅槃樂(열반락)이라 하여 해탈·열반이라는 말 뒤에 즐거울(락) 자를 붙여서 말합니다. 수행자는 究竟(구경)에 解脫樂(해탈락)·涅槃樂(열반락)을 얻어야 한다고 합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모든 삶의 근본, 본질적인 의미를 찾아내자면 다 일반적인 말로 하면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것이겠죠. 그 행복을 불교적인 용어로 달리 표현할 때는 涅槃樂(열반락)이고 解脫樂(해탈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화로운 것이고, 또 자유로운 것. 그래서 우리가 지상 목표로 삼고 있는 모든 현상 경계의 최후 경계가 전부 涅槃(열반)·解脫(해탈)로 마무리된다고 할 수 있죠. 평화로워져야 되고 자유로워져야 됩니다. 내 개인이 또는 우리 집안이 또는 우리 사회가 우리나라가 우리가 사는 세계 - 지구촌 전체가 평화로워져야 되고 자유로워져야 됩니다. 이게 일반적으로 말하는 민주주의 이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고, 살아가는 모든 생존 세계의 궁극적인 목표를 나타내는 말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涅槃(열반)의 의미를 일상생활 속에 심화시켜 한번 생각해 가면서 우리 일상이 더욱 새로워지고 밝아지는 그런 나날이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오늘 얘기를 이로써 줄이겠습니다.

첫댓글 _()()()_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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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
나무관세음보살
...()...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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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