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병바위 - 병바위 와 소반바위의 설화
고창에 있는 병바위와 소반바위를 올랐다. 전설따라 산책 같은 걸음을 했다. 병바위는 전라북도 고창군의 아산면 반암리 호암 마을 뒤에 있는 바위이다. 높이가 35m에 이른다. 병바위는 한자화하여 호암(壺巖)이라고 한다. 『여지도서』(흥덕)에 "관아의 서쪽 20리에 장연(長淵) 가에 있다. 병[壺] 모양으로 서 있기 때문에 호암이라고 불린다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를 통해 바위의 모습에서 지명이 유래된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대동지지』, 『호남읍지』 등에 "호암(壺岩)은 서쪽 20리에 있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호남지도』 (고창)에 인천(仁川)이 흐르는 흥덕과 고창의 경계부에 호암이 묘사되어 있으며 『해동지도』 (고창), 『1872년지방지도』에도 '호암'이 표기되어 있다. 0. 산행코스 : 고창아산초등학교 – 두암초당 – 전자바위 – 소반바위 – 병바위 – 인천선생제단비 – 아산초등학교후문 – 아산초등학교운동장(2.04, 1시간30여분소요)
▲오늘의 출발지 고창아산초등학교이다 아산초등학교는 1933년에 설립된 유서깊은 학교로 학교 운동장 주변으로는 고목이 다된 늙은 왕벚나무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울타리를 대신하고 있다.
▲오늘 gps산행경로이다 2킬로미터로 천천히 1시간30여분 소요된다
▲오래됨을 증명하듯 초등학교 앞에 서 있는 왕벗나무다 벚꽃이 피면 엄청 아름답겠다 벚꽃 필때 산책삼아 와봐야겠다
▲학교운동장을 돌아 옆길로 들어섰다 뒤쪽 두락암, 전자바위 밑으로 영모정과 두암초당이 보인다
▲영모정 앞에 이정표가 보이고 두암초당가는 길은 표시되어 있지 않다 무시하고 산속길로 들어서야 된다.
▲그 곳에 있는 아홉개바위에 깃든 신선이야기 안내판이다 호남의 8대 명혈에 속하는 곳이 영모마을의 금반옥호, 선인취와 형국이다 금소반에 술명을 차려놓고 신선이 술에 취해 누워 있다는 뜻이다. 구암마을 주변에는 아홉개의 바위가 있는데. 산신이 말을 타고 내려와 술을 마시기위해 안장을 얹어두고 탕건을 벗어 두었다는 안장바위와 탕건바위, 그리고 술에 취해 잠든 신선을 말이 울며 깨웠다는 마명바위와 시끄러워 재갈을 물렸다는 재갈등바위와 함께 선바위, 형제바위, 병풍바위, 벌바위, 병바위까지 다양한 신선설화가 깃든 바위가 있다.
산쪽으로 난길을 찾아 두암초당으로 진행한다
▲두암초당(斗巖草堂) 아산초등학교 뒤 전자바위 이 바위 중턱에는 옛 정자 하나가 있다. ‘두암초당’이라는 현판을 달고 있는데, 조선 중기의 유명한 학자인 호암 변성온(1530-1614)과 아우인 인천 변성진(1549-1623) 형제가 말년에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호남의 석학인 하서 김인후에게 가르침을 받고 퇴계와 교류한 호암은 빼어난 인품과 학식으로 널리 존경받던 선비였다. ‘두암(斗巖)’이라는 말도 곡식을 재는 말(斗) 같이 매사에 공평하고 반듯하다는 뜻으로 정자 주인의 품성과 지향이 담겨 있다. 이 초당은 바위의 움푹 파인 자리에 기둥을 놓고 처마를 들였다. 그래서 정자의 3분의 1은 바위 안에, 나머지 3분의 2는 다리를 받쳐 놓고 허공에 떠 있는 형상이다. 이 작은 정자에 올라 누마루에 걸터앉으면 인천강과 그 유역의 너른 땅이 거칠 것 없는 풍경을 풀어 놓는다.
▲고산경행(高山景行) 두암초당의 현판에는 '고산경행;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높은 산 큰 길'과 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로써 호암의 인품을 나타내는 말이다.
▲산고수장 (山高水長) 산은 높고 물은 유유히 흐른다는 뜻으로,군자의 덕이 높고 끝없음을 산의 우뚝 솟음과 큰 냇물의 흐름에 비유한 말이다
▲두암초당을 둘러보고 다시 나와 바위를 둘러 진행한다
▲바위는 바로 오를 수 없고 안부를 거쳐 올라야 한다
▲두암, 전자바위 오르는 곳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사진상 작아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크고 로프가 아니면 오를 수 없을 정도이다
▲바위에 올라서 바라 본 잠시 후 진행할 소반바위쪽 이다 |
▲바위위에서 한참을 놀다가 다시 바위를 내려선다
위에서 보니 아찔하다
▲건너편 바위로 올라섰다. 소반바위라고 하는데, 병바위옆에 있어 설화에 따라 소반바위라 명명된것 같다
▲소반바위에서 바라 본 전자바위와 아산초등학교이다
▲건너편으로는 구황봉이 조금 더 진행하면 병바위 조망처가 나온다
▲병바위 조망처에서 바라 본 병바위모습이다
▲병바위 옆으로 인천강 주진천의 돌징검다리가 보인다
여기서 보기에는 건널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내려서보니 건너기 어렵더라
고창군에서 건널수 있게 보수해줬으면 좋겠다
건너편에서 보는 병바위의 모습이 제대로인에 건널수 없어 아쉬웠다
▲병바위 아랫쪽으로는 인천강이라고도하고 주진천이라고도하는 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다
▲병바위 조망처를 내려선다
상당히 급경사이고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면 묘지가 나오고 묘지 앞쪽으로 또다른 병바위 조망처가 있다
▲묘지앞 조망처에서 바라 본 병바위이다
▲묘지를 내려선다
그런데 이곳 잡목을 정리하고 치우지 않아서 진행하기가 성가시다.
정리가 요망되는 구역이다
▲진행하면서 와이드로 찍어 본 병바위의 모습이다
▲병바위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나게 굵은 나뭇가지가 경이롭게 보인다
▲이정표가 있는 병바위 아랫쪽으로 내려선다
▲병바위설화
선동(仙洞) 뒤 선인봉에 사는 신선이 반암(盤岩) 뒤의 채일봉에서 잔치를 하여 몹시 취했다.
취하여 자다가 잠결에 소반을 걷어차서 술병이 거꾸로 선 것이 지금의 병바위이고,
반암에 있던 소반이 굴러 영모정 뒤 지금의 자리에 놓이니 바로 소반바위이다.
이곳에 반암, 호암의 마을 이름이 생기고 금반옥호(金盤玉壺), 선인취와(仙人醉臥)라고 하여 명당을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병바위 위에 금복개[금 술잔]가 있는 것으로 전하나 워낙 가팔라서 아무도 오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반암리 병바위」는 신선이 잔치를 벌이고 취하여 자다가 소반을 걷어차 거꾸로 선 술병이 병바위가 되었다는 암석 유래담이다.
왼쪽에서 보면 사람얼굴 특히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얼굴을 닮았다고 하여 '큰바위얼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아산초등학교방면으로 진행한다
▲병바위
병바위와 같은 형상의 바위가 생긴 이유는 암석을 이루는 유문암의 특성때문이다
화산재와 암편으로 이뤄진 응화암은 쉽게 부숴지는 반면 용암이 귿어 만들어진 유문암은 암질이 단단하기 때문에
잘게 부숴지지 않고 큰 절리로 쪼개지는 경우가 많아 절벽을 형성하는 기암괴석이 잘 만들어진다
병바위 상층부에서 벌집모양의 타포니를 잘 관찰할 수 있다. 타포니란 암석이 물리적, 화학적 풍화작용을 받은 결과
암석의 표면에 형성되는 풍화혈 형태의 지형으로 특히 암석의 측면에 벌집 모양처럼 집중적으로 파인 구멍을 말한다.
▲아쉽다. 징검다리를 건너면 이렇게 전망좋은 곳에서 이모습을 볼 수 있을텐데~~
▲연기마을 방향으로 작은 모정이 있고 천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다시 한번 병바위의 모습을 바라 보고
▲아산초등학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멋진 바위와 삼나무숲을 잠시 걷고
▲이곳 대나무 숲길이 나온다
도중에 대나무숲길쪽으로 난 오솔길 보여 아산초등학교로 이어지는 길일까 하며 들어갔다
▲그런데 아니다.
인천선생 - 인천(仁川) 변성진(卞成振 1549~1623)
제단묘인데 비석이 여럿이다
문제는 묘를 지나 강쪽으로 길이 없다는 것. 높지 않지만 내려 설 수 없는 벼랑이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내려설 수 없다
▲인천선생 묘비를 나와서 바라 본 아산초등학교 방향이다
그다지 높지 않지만 내려설수 없다 ㅠㅠ
다시 돌아간다
▲아산초등학교 후문이 나온다
▲이정표도 있다
▲좀전에 길이 끊어진 인천선생묘비의 바위지대이다
여기서 보기에 낮게 보이지만 내려올수 없다
▲아산초등학교로 돌아와 산책같은 산행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