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있는 세계사] 스위스
나치 침공도 막은 '무장 중립국'… 지금도 군사 동맹 안 맺죠
스위스
정세정 장기중 역사 교사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입력 2025.02.05. 00:33 조선일보
스위스 중부 그린델발트 지역의 협곡 전경. 스위스는 국토 대부분이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뤄져 있어요. 이 때문에 농업이 큰 규모로 발전하기 어렵죠. /위키피디아
최근 스위스 정부는 냉전 시대에 만든 방공호 시설을 대대적으로 개선하겠다고 발표했어요. 방공호 현대화 사업에 무려 3500억원을 투입한다고 해 화제가 됐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이어 다른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까지 침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스위스도 전쟁에 대비한다는 이유였어요.
그런데 정작 스위스는 나토 회원국이 아니랍니다. 게다가 스위스는 국제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 ‘영세 중립’ 정책을 펼치는 중립국이지요. 1∙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전쟁의 격랑을 피해 갔고요. 이런데도 스위스는 국민 대부분이 집에 총기를 갖고 있고, 정기적으로 군사 훈련도 할 정도로 항상 전쟁을 대비하는 나라예요. 중립을 지키면서도 누구보다 전쟁 대비를 철저히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강대국 사이의 중립국, 스위스의 역사를 알아보겠습니다.
용병의 나라 스위스
스위스는 유럽 중앙에 있는 작은 나라예요. 면적은 약 4만1000㎢로 대한민국의 40% 정도 크기이고, 인구는 890만명이에요. 알프스산맥을 끼고 있어 국토의 70% 이상이 산지입니다. 스위스는 유럽의 강대국들로 둘러싸여 있어요. 북쪽으론 독일, 서쪽으론 프랑스, 남쪽은 이탈리아, 그리고 동쪽으로는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죠.
국토 대부분이 산지인 탓에 식량 생산 능력이 부족한 스위스는 유럽에서 늘 가장 가난한 나라에 속했어요. 재산을 모으기 어려워서 장남이 아니면 부모에게 무언가를 상속받는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였죠.
그래픽=김현국
스위스인들이 가진 자원은 오로지 인적 자원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스위스인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한 방법은 바로 돈을 받고 전투에서 싸우는 ‘용병’ 활동이었어요.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12세기쯤부터는 유럽 각지에서 스위스 용병 활동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산지에 사는 스위스 사람들은 폐활량과 체력이 뛰어났고, 인근 국가들과 전투가 잦아 전쟁 기술도 발달했거든요. 특히 스위스 보병의 밀집 대형 전술은 상대 기병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강력했다고 합니다.
스위스 용병은 ‘마지막 한 명까지 싸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용맹했어요. 만약 용병이 전장에서 도망친다면 그를 다시 고용하는 사람이 없겠죠. 따라서 이들에겐 고용주와의 신의를 지키는 것이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어요. 신용을 잃는다면 스위스 경제가 무너지기 때문이에요. 18세기 후반 프랑스 혁명 당시엔 스위스 용병 786명이 도망가지 않고 루이 16세를 끝까지 지키다 전원 전사합니다. 이들에겐 죽음보다 신뢰를 잃는 것이 두려웠던 거죠.
용병 활동은 스위스가 중립국이란 정체성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특정 국가와 동맹을 맺고 전쟁에 끼어든다면 용병을 고용해 줄 ‘고객’들을 잃게 되니까요.
세계대전 중에도 중립 지켜
스위스가 공식적으로 중립국 지위를 인정받은 것은 1815년 오스트리아에서 열린 빈 회의를 통해서입니다. 당시 유럽 전역을 휩쓴 나폴레옹이 몰락한 이후, 유럽 강대국들은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무너진 왕정들을 복위시키고 각국의 영토를 재조정하려고 했어요.
이때 영국,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들은 스위스를 서로 자신의 영토로 편입하고자 했지만, 이로 인해 분쟁이 생기는 것을 막고자 결국 스위스를 영구 중립국으로 남겨두기로 합의해요.
이후 스위스는 스스로 중립을 지킬 수 있도록 침략에 대비해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유럽 국가가 전쟁에 휘말린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시기에도 스위스는 ‘무장 중립’을 유지하죠. 당시 독일은 벨기에나 스위스를 거쳐서 프랑스를 침공하려고 했는데요. 스위스는 알프스산맥이라는 자연 방어선을 이용해 촘촘하게 요새를 세워 독일군이 벨기에 쪽으로 이동하게 만들었죠.
바티칸 교황청의 스위스 근위병들이 교황에 대한 ‘충성 서약식’을 하고 있어요. 오늘날에도 교황 근위대는 스위스 용병으로 구성돼요. /위키피디아
스위스는 모든 국민이 군사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국민개병제’를 운용해 유사시 예비군 수십만 명을 동원하는데요. 1차 대전 당시 참호전으로 독일과 프랑스 전선이 고착화되자, 스위스는 25만명 규모의 군대를 국경 지대에 배치해 전선이 스위스로 확장되는 것을 저지했어요. 이후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가 교전을 벌이자 스위스 정부는 양측과 협상을 벌여 두 국가의 군대가 스위스로 들어오지 않도록 요구해 중립을 유지했어요.
1939년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발발한 2차 세계대전 때도 비슷했습니다. 스위스 정부는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고 군대 규모를 당시 인구의 20% 수준인 43만명까지 늘렸어요. 독일의 침략 조짐이 보이자 어린아이와 노인을 제외한 인원을 끌어모아 군대 규모를 85만명까지 불렸죠. 알프스 산악 지대에 전 국민과 병력을 수용하는 요새를 짓고, 자동차 운행과 식량 생산도 통제하며 ‘장기전’을 불사하는 모습을 보여준 끝에 독일의 침공을 피하고 중립을 유지할 수 있었답니다.
스위스의 중립은 ‘중립 선언’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어요. 스위스는 군사·외교적 노력을 통해 분쟁에 휘말리지 않고 중립을 유지해 온 것이죠.
지금도 중립 전통 이어져
스위스의 ‘무장 중립’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스위스 국민도 중립을 중요한 국가 정체성으로 여기죠. 2016년 스위스에서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 중 96%가 계속 중립국으로 남아있길 원했다고 해요.
실제로 스위스는 1945년 설립된 유엔에도 가입하지 않다가 2002년에서야 가입했고, 지금도 유럽연합(EU)이나 나토 같은 군사동맹엔 참여하지 않고 있어요.
중립국 지위를 지키는 덕분에 많은 국제 단체의 본부가 스위스에 있기도 합니다. 국제 인도주의 단체인 국제적십자위원회(ICRC) 본부가 스위스 제네바에 있지요.
윤상진 기자 사회정책부
사회정책부 근무. '신문은 선생님' 코너를 기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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