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의 주인
- 서암 큰스님
어느 해 문경 봉암사에서 서암(西庵, 1918 ~ 2003) 조실스님을 모시고 하안거를 지내게
됐다. 어느 날 선원 뜨락에서 서암 조실스님이 절룩거리는 내 다리를 안쓰러워 하시며
물으셨다.
"수좌는 무엇 때문에 절룩절룩절룩 하는고?"
"이승도 저승도 해와 달입니다."
"수좌는 언제부터 절룩절룩절룩 하는고?"
"사바도 극락도 산과 물입니다."
"수좌는 언제면 절룩절룩절룩임을 멈출 것인고?"
"중생도 부처도 붉고 흰 꽃입니다."
"좋은 절룩바리구나."
내가 한 다리로 땅을 한번 "쿵!" 굴리고는 절룩절룩절룩 한 바퀴 원을 그리며 도니, 조실
스님ㄲ서 다시 물으셨다.
"언제면 일체중생이 다 성불 할 때인고?"
"조실스님께서 거꾸로 걸어갈 때입니다."
"어떤 것이 거꾸로 걸어감인고?"
"산은 높고 물은 깊습니다."
"좋은 산이요, 좋은 물이구나."
내가 선채로 큰 절 세 번 올리고 조실스님께 다시 여쭙기를
"조실스님께서는 어떻게 공부를 합니까?"
"나는 화두를 놓고 지낸다."
"어떤 것이 화두를 놓고 지내는 것입니까?"
"목마르면 물마시고, 피곤하면 쉰다."
"희유하고, 희유하고, 희유하십니다."
"수좌는 어떻게 공부를 하는고?"
"저는 화두를 들고 지냅니다."
"어떤 것이 화두를 들고 지냄인고?"
"동풍으로 찰떡을 사서 온 전하를 배불립니다."
"좋은 동풍이요, 좋은 찰떡이구나.
"불법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손녀와 할머니가 함께 노래한다."
"필경 궁극적 목표는 무엇입니까?"
"대대손손 함께 춤추고 노래한다."
"조실스님의 본면목은 무엇입니까?"
"소 몰고 밭갈이 하며 씨를 뿌린다."
"희유하고 희유하고 희유합니다."
"수좌의 불법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고?"
"콩떡으로 해와 달을 누립니다."
"수좌의 참선의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고?"
"팥떡으로 산과 물을 누립니다."
"수좌의 필경 궁극적 목표는 무엇인고?"
"쑥국으로 이승과 저승을 누립니다."
"수좌의 본면목은 무엇인고?"
"쑥밥으로 사바와 극락을 누립니다."
"좋은 공양주요, 좋은 밥상이구나."
"온 세상이 언제나 먹습니다."
"나도 먹을 수 있는고?"
"조실스님은 봉암사의 주인이십니다."
"수좌는 온 세상의 주인이다."
"풀잎도 주인이요, 돌멩이도 주인입니다."
"훗날 수좌가 이 봉암사의 주인이 되어라."
" 온 대중이 다 주인입니다."
"그래, 그래, 수좌의 말이 옳도다. 이제부터 난 두 다리 활짝 뻗게 되었구나."
"오래오래 이 봉암사의 주인으로 사소서."
"오래 오래 이 봉암사의 머슴으로 살 것이니, 수좌는 오래오래 이 봉암사의 공양주로
살아라."
"네, 네, 네?"
나는 큰 절 세 번 올리고 물러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