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복 있는 사람
(시 84: 1-4)
1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이 시간에 “가장 복 있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 믿어 구원 받아 천국 백성 된 것보다 더 복은 없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중에서도 더 복 있는 사람이 누굴까요? 시73:28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의 마르다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마르다는 예수님을 위하여 식사를 준비하고, 그 동생 마리아는 예수님 발 아래서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때 주님이 누가 더 복 있다 하셨을까요? 마리아가 더 좋은 편을 택하였다. 즉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0:42). 주님을 더 가까이 섬겼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고라자손들이 사모했던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일까요?
1.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1-2절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여기 여호와의 궁정은 바로 성전을 말합니다. 고라 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했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나가 봉사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습니다.
우리에게 적용하면 교회를 가까이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의 성전은 그리스도를 예표하며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기에 신약의 예배당 개념과는 다르지만,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요, 예배의 처소라는 점에서는 신약의 예배당 개념과 같은 면도 있습니다. 구약에 성전을 중심으로 생활했듯이 신약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생활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성도들도 사랑하고 주의 일군들도 사랑합니다. 바울이 교회를 그토록 사랑했던 것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천지만물을 사랑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과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하나님을 직접 대적할 수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이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창조물을 해하고자 합니다. 창조물에 대한 도전은 곧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꾸어놓고 생각하면 답이 나옵니다.
이걸 모르고 사람들이 교회를 함부로 생각하고 우습게 보는데 그건 사탄적 사고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 중에 있으리라’고 예수님이 인정하시고 함께 하신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권징이나 정당한 결정은 하늘에까지 통합니다.
어떤 사람이 상습적으로 교회를 핍박하는데 그날 아침 심하게 교회를 욕하고 길을 가다가 자동차가 전복되어 구사일생으로 살아났습니다. 그때 그가 한 말이 있습니다. "내가 교회를 핍박하다가 이런 일을 만났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회를 핍박하지 않으련다." 불신자가 신자보다 더 빨리 깨닫더군요.
교회를 핍박하는 것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 나를 핍박하느냐 했던 것처럼 예수를 핍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출석 잘하시고 교회를 향한 의무도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를 더욱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2. 예배하는 사람이 복 됩니다.
3-4절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셀라)”
고라자손이 왜 참새와 제비를 부러워했을까요? 자신들은 잠시 머물다가 갈 수밖에 없는 일군이지만 이 짐승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둥지를 틀며 사는 영주권을 가진 짐승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만 사는 것이 좋은 건 아닙니다. 모일 때는 모이고 흩어질 때는 흩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교회를 떠나기 싫어야 정상입니다. 예수님도 12살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 알지 못하셨습니까? 하지 않았습니까?
벧전2:9에 보면 성도는 다 신령한 제사장들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와 예배하고 또 각인의 처소에서 늘 기도하고 찬송하시기 바랍니다. 예배는 생명입니다. 예배가 무너지면 다 무너집니다. 반면 예배가 회복되면 모두 다 살아납니다. 그래서 히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했습니다.
우리의 환경이 아무리 어두워도 지하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한 것처럼 늘 예배하며 살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해 만나주시고 예배를 통해 복을 주시고 예배를 통해서 기적을 베푸십니다. 예배하는 사람이 가장 복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사람이 복 됩니다.
5-7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그들이 눈물 골짜기로 지나갈 때에 그 곳에 많은 샘이 있을 것이며 이른 비가 복을 채워 주나이다 그들은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시온에서 하나님 앞에 각기 나타나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국에서 모여드는데 예루살렘에 오려면 유대 광야의 험준한 사막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골짜기가 “바가의 골짜기”인데 눈물 골짜기라고도 부릅니다. 시 23에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험준하면 이런 이름이 붙었겠습니까?
이곳은 물이 없어 메마르고 골짜기는 험준하고 동서로 깊게 파여 한낮에도 빛이 들지 않아 흑암 가운데 있다고 합니다. 이 골짜기의 좌우 길목에는 동굴들이 많은데 그 안에는 한낮의 햇빛을 피하려는 맹수들이 득실거려 양들이 길을 잃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고라자손들은 하나님의 성전을 갈망했습니다.
이처럼 몸은 나왔어도 마음까지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존 번역이 쓴 천로역정과 같습니다. 오늘 길에 맹수가 무엇입니까? 잠26:13에 게으름입니다. 몸 움직이는 것을 무섭게 압니다. 게으름을 이겨야 합니다. 죄도 이겨야 합니다. 무지함도 형편도 상황도 불편함도 핍박도 이겨야 합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8-9절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소서 야곱의 하나님이여 귀를 기울이소서(셀라) 우리 방패이신 하나님이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자의 얼굴을 살펴보옵소서” 여기 부름 부으신 자는 일차로 왕입니다. 이스라엘은 신정국가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한 것입니다.
이처럼 복 있는 사람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전도와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라 한 것처럼 이런 사람은 자손대대로 형통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온 땅끝까지 퍼져 영광 받으시기를 원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러한 성도에게 약속이 있습니다. 11절에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시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고라 자손들처럼 말씀과 성령 안에서 더욱 은혜를 받아 더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