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좌선을 할 때 마음 알아차리기입니다.
좌선을 할 때는 있는 마음 알아차리기, 일어난 마음 알아차리기,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 아는 마음 알아차리기, 네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해야 합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서 마음을 알아차리는 여러 가지의 방법을 모두 사용할 수 있습니다. 좌선은 몸과 마음을 고루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그래서 마음만 알아차려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몸만 알아차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마음과 함께 반드시 몸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좌선이 수행의 전부가 아닙니다. 좌선은 행주좌와 중에서 좌座에 속하는 수행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좌선을 하는 것으로 수행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모든 행위가 모두 알아차려야 할 대상입니다. 행주좌와가 균형을 이루어야 수행이 발전하고 지혜가 생깁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은 좌선과 경행과 일상의 알아차림으로 구분합니다. 그러므로 생활 따로, 수행 따로 분리되지 않고, 생활하는 것이 모두 수행입니다.
좌선은 움직이지 않은 채로 몸과 마음에 나타나는 현상을 지켜보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이때 나타난 대상은 모두 손님입니다. 움직이지 않는 것은 움직이는 것에 비해 오히려 더 적극적인 행위에 속하므로 좌선을 할 때는 더욱 각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좌선을 수동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좌선 중에 나타나는 현상은 당연히 일어나도록 되어 있는 대상이라고 알고 수행을 시작해야 합니다.
좌선을 시작하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가렵고, 저리고, 통증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고요해서 졸음이 오기 마련입니다.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망상이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이것들은 나타날 만해서 나타난 것들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나타날 만한 것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이것들은 와서 보라고 나타난 것들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보는 의무만 하면 됩니다. 와서 보라고 요청하는 뜻으로 나타난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입니다.
만약 좌선 중에 몸과 마음에 나타난 현상에 개입하여 바라는 것이 있거나 없애려고 했다면 이 순간 알아차림을 놓친 것입니다. 좌선은 좋은 것을 보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차적으로는 움직이지 않아서 나타난 것을 손님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입니다. 이렇게 대상을 분리해서 지켜보는 수행이라는 뜻으로 바로 위빠사나라고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바라거나 없애려고 하는 수행이 아닙니다. 무엇이나 나타난 대상을 개입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수행입니다. 그래서 나타난 대상을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말고 어떤 것이나 그냥 지켜봐야 합니다. 만약 좋아하거나 싫어했다면 좋아한 마음을 알아차리거나 싫어한 마음을 알아차리고, 다음 대상으로 가야 합니다. 나타난 대상을 좋아한 것도 하나의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그리고 나타난 대상을 싫어한 것도 하나의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의 대상은 좋고 싫은 것이 없이 그것 자체가 모두 새로운 대상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이 이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종전에 가지고 있던 사고방식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의 방식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바라거나 없애려고 하는 것만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지켜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들은 원인이 있어서 생긴 결과일 뿐입니다. 그것들은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렇게 해서 얻는 이익이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온전하게 자신을 이롭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될 수 없는 것을 되게 하려고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바로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것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물론 목표는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행함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몸과 마음의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는 것은 지금까지 해보지 않은 전혀 새로운 방법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의 힘으로 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정관념과 습관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이 벽을 뚫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수행 경험이 있는 스승의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책을 읽는 것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정신세계는 문자를 뛰어넘는 직관이 필요하기 때문에 반드시 직접 수행을 해야 하고, 그리고 적절한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은 수행에 대한 불문율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수행을 하다가 죽지 않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행을 하다가 나타난 현상에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수행은 경험하지 않은 몸과 마음이란 동굴을 탐험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모두 새로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두렵고 불안한 마음이 일어납니다. 이럴 때는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일어난 마음 알아차리기입니다.
수행은 잘 안 되는 것입니다. 수행을 잘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탐욕입니다. 단지 나타난 현상을 지켜보는 것이 수행자가 해야 할 유일한 일입니다. 수행자는 결과를 만들기 위해서 수행을 하지 않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해서 자연스럽게 와야 할 결과가 나타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