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요 ■ 작곡 배경 1727년에 조지1세가 서거하고 그의 아들인 조지2세가 국왕에 등극하였다.조지1세는 앤여왕 서거 후 왕위 계승에 우선권이 있는 제임스2세의 스튜어트가를 제치고 왕위를 계승하게 되었기 때문에 재임기간 내내 스튜어트가를 지지하는 재커바이트의 강력한 반발을 받았을 뿐만아니라, 개인적인 능력과 사생활면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는데 심지어는 영어조차 제대로 구사하지 못했다 한다. 조지2세가 아버지 조지1세에 즉위했으나, 그의 아버지에 대한 좋지 못한 평판 뿐만아니라 그 역시 용기 없는 군주로 회자되고 있었다.특히 당시 유명한 저술가인 왈폴(Walpole,1717~97)의 영향으로 제국은 팽창주의의 열병에 휩싸이게 되고, 급기야는 조지2세는 영광스러운 정복자로서 제국의 확장을 도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국왕이라는 여론이 팽배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러한 불행스런 여론에서 벗어나고, 사실은 자기는 용맹한 군주라는 사실을 홍보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진정한 애국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어떤 획기적인 사건이 절실히 요구되기에 이르렀다. 이에 때맞추어 별 소득없이 개입해서 8년간 끌어오던 오스트리아 왕위계승 전쟁(1740~1748)이 1748년 7월 7일 엑스 라 샤펠에서 프랑스와의 평화조약으로 종결되었다. 그러자 조지2세는 이 절호의 기회를 이용하여 국민들에게 자기의 용맹스러움을 알릴 수 있는 승리 축하연(사실은 승리랄 수도 없는 그저 평화를 얻은 것에 불과 하지만)을 떠올리게 되고, 그린파크에서 거창하고 화려한 불꽃놀이의 장관을 위주로한 축하공연을 열기로 했다.
불꽃놀이 무대는 유명한 무대장치가인 세르반도니가 맡았다. 무대는 궁전 모양의 거대한 목조 구조물로, 그 크기는 가로 133m,높이 36m 나 되었다. 그 안에 오림푸스산의 유명한 신들을 조각해서 모셨고, 승리아치와 국왕의 치적들을 새긴 부조(浮彫)들을 세웠으며, 꼭대기 근처에는 밖에서는 보이지 않도록 연주자들을 위한 회랑을 마련한 매우 인상적인 구조물이었다.
■ 작곡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의 평화협정이 긑난 3개월후인 1749년 3월에 오라토리오 수잔나와 솔로몬을 막 끝낸 헨델에게 이 무대음악의 작곡이 맡겨졌다. 이와 같은 음악은 규모가 크고 야외에서 공연되기 때문에 대규모의 관악기와 금관악기군이 필요하다. 처음에 헨델은 각각 16개 이하의 트럼펫과 혼을 구상하였으나, 국왕은 헨델에게 국민들이 자기에게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전투정신이 충만한 그런 음악을 작곡하라고 명했다. 그러면서 왕은 서정적인 악기인 바이올린, 비올라, 베이스 현악기들의 사용을 금지하고, 그 대신에 트럼펫과 군대악기들을 최대한 많이 사용하라고 악기의 편성에 까지 상세한 지침을 내렸다. 헨델은 원래부터 바이올린을 위시한 현악기가 없는 음악은 생각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포병 최고사령관인 몬타규 공작과 행사 총책임자인 찰스 프레데릭에게 편지를 보내 자기의 의도를 관철코저 했는데 이것 때문에 큰 곤경에 처하게 되어, 결국 왕의 명령대에 따른 관현악법을 정했다.
▲ 악기편성 오브에 24개, 트럼페트 9개, 호른 9개, 파곳 12개, 콘트라파곳 1개, 팀파니 세쌍, 작은 북 2개, 여기에 세르빵이라는 아직 영국에서는 낯선 저음악기까지 덧붙여 당시 상상도 할 수 없는 57인의 대합주 편성으로 만들었다. 더구나 초연에는 관악기를 늘려 100개 이상이나 사용했다고 한다.
■ 공연 ▲ 공개연습 불꽃놀이를 열기 1주일 전인 4월 21일 보크스홀 가든에서 열린 대중들을 위한 공개 연습공연은 12000 여명이 모인 대 성황을 이루었는데, 저 유명한 영국 신사들의 잡지(British Gentleman's Magazine)는 열열인 환호를 보내면서 "공연을 보러온 청중들로 런던브리지가 막혀 3시간 동안 한대의 마차도 지나가지 못했다"라고 보도했다.
▲ 초연 이 세상에는 수 많은 법칙이 있는데 다음은 무슨 법칙 일까요? (1) 모든 행사는 날씨가 말해준다. (2) 큰 행사에서는 연습 때 멀쩡하던 마이크도 임석한 최고위자가 연설하려고 하면 그만 불통이 된다. 이것이 법칙인지 속담인지는 모르겠으나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의 초연이 이 경우에 딱 들어 맞는 것 같다.
* 일시 : 1749년 4월 27일 * 장소 :런던 그린 파크 (Green Park) 불행스럽게도 공식적 초연은 성공했다고 말 할 수는 없었다. 행사가 시작될 때만 해도 일기는 온도,습도 및 바람 등의 3 요소가 매우 훌륭한 날씨였다. 서곡을 연주하고 101발의 축포가 울려 퍼진 뒤, 폭죽을 쏘아 올려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불꽃의 장관이 연출되고, 이제 막 아름답고 거대한 성당 모양을 하늘에 그리려던 순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재앙이 일어났다.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어 쏘아 올린 폭죽과 불꽃들은 비바람에 휫날려가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자 , 폭죽 발사팀은 황급히 폭죽 발사장치(solar wheel : 최 상단의 그림의 중앙 상부 참조)에 폭약을 마구 밀어 넣게 되었고 넘쳐난 강렬한 불꽃이 무대에 세워둔 올림푸스산의 신상들과 조지2세의 부조물에 옮겨 붙어 삽시간에 재로 만들어 버렸다. 아마도 올림포스산의 신들은 그들의 집으로 돌아가면서 평화조약과 그에 따른 승리의 심술궂고 비틀어진 결과를 저주했을 것이며, 불꽃놀이의 장관을 기대했던 런던 시민들은 큰 실망과 함께 오직 끔찍스런 재앙만을 기억 속에 간직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행사의 실패는 조지2세가 그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노력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는 아마도 모든 장르와 시대를 통털어 가장 유명한 음악을 남겼을 것이다.
▲ 재연 재연은 한달후에 헨델이 후원하던 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분위기의 고아보호소(Foundling Hospital)에서 열렸다. 이 연주에서 헨델은 곡을 현악기와 관악기의 조합으로 구성된 전통적인 관현악곡으로 바꾸었다. 이 수정된 버전은 헨델의 가장 인기있는 곡들 중의 하나가 되었으며, 초연시의 관악기군 만으로 된 녹음도 2~3개 있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즐겨 듣는 곡도 바로 이곡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