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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조춘숙
말 씀 에스겔 47장 1-5절
제 목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4]
여러분께서는 믿음의 계단을 오르면서 마음의 갈등을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마음의 부담이 커지면서, 큰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부담스러웠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훨씬 자유롭지 않았을까 후회하는 마음도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결단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면 사후에 가게 될 상상하기 조차 하기 힘든 지옥이 있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돌이킬 수도 없는 심정일 것입니다.
길어야 80년을 사는 짧은 인생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포기 할 수 없어서 세상을 이겨내야 하는 여러분은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아야만 믿음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본성과 부딪히므로 감당하기 힘들더라도 인간의 의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세상의 무거운 짐은 예수그리스도께서 대신 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감당하도록 홀로 두시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믿고 이제 그리스도의 진리의 길로 한 계단씩 올라가다 보면 여러분이 지금 가지고 있는 세상을 향한 마음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믿음의 계단을 오르고 있는 성도들 중에는 하나님의 말씀과 전혀 상관없이 세상사람처럼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도 있고, 욕심과 정욕을 포기하기 힘들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믿음으로 살겠다고 결단하자 이제 자신의 믿음이 다른 사람들보다 좋은 것 같아서 교만해진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신앙생활을 하면서 뾰족한 인간의 의가 깨어지는 훈련도 받고 충성하는 믿음도 가지면서 조금씩 하나님 자녀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순간부터 사도바울처럼 순종하는 신앙을 갖는다면 그것보다 좋은 것은 없겠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한 계단씩 오르며 단단한 믿음으로 성장한다면 그것 역시 축복입니다.
이제 네 번째 계단인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 같은 믿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도의 마음에는 높은 산과 같은 충만함과 깊은 골짜기처럼 버릴 수 없는 인간의 의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두 마음이 있습니다.
성숙한 성도들은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인지 알고 있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과 충만한 믿음이 부딪힐 때 더욱 괴로운 것입니다.
절대로 타협 해서는 안 되는 죄인 줄 알면서도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서 깊은 골짜기에 떨어지는 심정으로 믿음을 버렸을 때 높은 산처럼 충만한 믿음이 무엇인지 알기에 그 마음은 더욱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누구나 믿음이 충만할 때는 무엇이든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욕심에 사로잡히게 되면 한 순간에 추락하는 나약한 믿음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충만한 기쁨을 아는 성도가 죄를 지으면 회복하기 더 힘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짓는 연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므로 하나님께 회개하며 빨리 돌이키는 것이 지혜입니다.
사단은 성도들을 유혹해서 죄를 짓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유혹을 받았을 때 믿음으로 이기는 성도들은 더욱 성장하겠지만 그 유혹에 넘어지는 성도는 죄가 발목을 잡기 때문에 회복하기 힘들 것입니다.
성숙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항상 두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도바울과 같은 믿음의 사람도 인간의 의를 온전히 버리지 못해서 고뇌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날마다 자신을 쳐서 복종하며 사명을 감당하기도 합니다.
사도바울은 베냐민지파이며 길리기아 다소에서 좋은 가문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가말리엘 문하에서 엄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율법을 목숨처럼 지키는 율법주의자였습니다.
율법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는 믿음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지 않는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을 선 것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며, 믿음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믿음을 때문에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면서도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협하기도 했으며, 그리스도인을 죽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기 위해서 다메섹 도상에 막 도착했을 때 갑자기 하늘로부터 감당할 수 없는 빛이 그를 둘러싸면서 예수그리스도의 음성을 들렸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는 엄한 주님의 음성이 들리자 그는 놀라며 누구시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인데 너는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네가 앞으로 행할 일을 네게 이를 자가 있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신기한 것은 많은 사람이 같이 있었지만 예수님의 음성을 사울 외에는 아무도 듣지 못했고, 강한 빛 역시 사울만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로 사용하시기 위해서 택하여 부르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사울만 들을 수 있었고, 빛도 사울만 볼 수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믿음을 갖는 성도는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성령을 통해, 전도자를 통해 사람들에게 복음을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은 성도뿐입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강한 빛으로 인해 눈이 어두워지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을 죽이기 위해서 눈에 불을 켜고 달려가던 그의 육의 눈이 어두워지고 그리스도께서 정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는 영의 눈이 떠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울을 다멕섹도상에서 만나고 계신 그 때 성령께서 성안에 있던 아나니아에게 일어나서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다소 사람 사울을 찾아 안수해주라는 명령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나니아에게 동시에 일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울에겐 빛과 음성으로, 아나니아에게는 성령으로 역사하셨습니다.
성도가 어느 지역에 있든 하나님의 역사는 이렇게 동일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나니아는 당황했을 것입니다.
성도를 죽인 원수의 눈을 치료해야 하는 사명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순종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하기 힘들고, 당장은 이해할 수 없어도 훗날 사도바울이 충성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왜 사울의 눈을 치료하라고 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 없이 행하시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난을 주시면 고난을 주시는 이유가 있고, 사명을 주시면 사명을 통해 역사하실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그리스도 자체를 부정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을 죽여도 죄의식도 없었고 그들은 죽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는 자기가 죽였던 사람들이 믿고 있던 예수님께서 살아계신 분이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는 순간 지금까지 자기가 붙들고 있던 신앙이 얼마나 잘못 된 것이었는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즉시 지금까지 잘못 믿었던 유대인의 신앙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깨닫는 즉시 행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바울은 실천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께서 살아계신 성자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다면 바울처럼 즉시 목숨과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2-23절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인간의 지혜가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무지의 세계가 넓어집니다.
지식을 원에 비유하면 그 원이 커짐에 따라 원주가 접하는 원주 밖의 세계도 비례적으로 넓어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삼천 가지의 지혜로 잠언을 썼던 솔로몬왕은 전도서에서 자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지혜와 지식을 가졌지만 지혜가 많을수록 번뇌도 많으며 지식이 더할수록 근심도 더 커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많은 재물과 쾌락을 누렸지만 인생은 아무리 많은 소유를 가져도 결국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솔로몬은 비록 작은 세상의 힘을 가졌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신보다 세상을 온전히 살았다고 부러워하며 높이 보았습니다.
세상의 힘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쌓일수록 그 지식보다 더 쌓여 있는 자신의 영적 무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 역시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수록 인간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고 섬긴다는 것이 한계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킬 때는 법만 어기지 않고 행위로 드러내면 되었는데 이제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보니 신앙은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가져야만 섬길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도로 살기 위해서 믿음과 지혜가 성장해야 하고, 인간의 의를 모두 버려야만 말씀에 복종하고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그에 따르는 갈등도 점차 심해져 갔습니다.
율법 위에 믿음을 올려 놓는 것이 무척이나 힘겨웠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마음에서 두 마음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은 신앙적으로 갈등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육신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어느 누구도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갈등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입니다.
바울안에 예수님의 희생에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의 법을 섬기려고 하고, 인간의 의로 뭉쳐있는 육신은 죄의 법을 섬기려고 하는 자신을 보면서 인간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갈등이 무척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런 두 마음 가운데서도 성도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 있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높은산을 땅에서부터 봉우리까지 한 믿음으로 보고 높은 산봉우리를 믿음이 충만한 자리라고 한다면, 낮은 곳은 인간의 본성과 세상의 유혹 때문에 늘 갈등하는 고통의 자리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생활은 높은 산처럼 충만한 믿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연약한 육신 때문에 눈물로 간구해야 하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세상을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이 충만할 때는 세상의 문제를 만나도 두렵지 않았을 것이고, 충만하지 못했을 때는 세상과 사람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누구나 산 위에 서 있을 때와 골짜기에 떨어지는 때가 있기 때문에 충만할 때는 교만하지 말아야 하고, 낙심할 때는 하나님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절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 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사도바울은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복음을 영접한 그리스도인을 죽이러 다니던 율법주의자가 복음을 전하러 다니는 그리스도인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 오직 영혼구원에만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모든 열정을 전도하는데 쏟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매를 39대씩 5번을 맞았고, 3번의 태장을 맞았으며, 돌을 맞아 죽을 뻔 한 적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복음을 전하러 가다가 배가 3번 파선하였고, 옥에 갇혀 굶고 목마른 것이 몇 번인지 셀 수 없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후 바로 전도자의 삶을 사는 것도 놀랍지만 그가 당한 핍박은 성령 충만한 성도라도 감당할 수 없이 엄청난 고난이었습니다.
오직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핍박을 당하는 바울의 신앙은 높은 산위에 우뚝 서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이 누구입니까?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가문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최고의 학문을 배웠으며, 자기가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갖고 누릴 수 있는 로마시민권을 가진 귀족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주님을 영접하고 난 후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갖기를 소망하는 세상의 모든 좋은 조건들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오직 말씀으로만 남은 인생을 산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 지금 가진 모든 소유는 물론 복음을 반대하는 가족을 버리라고 하다면 순종하실 수 있겠습니까?
연단을 당하면서 어쩔 수 없이 놓아야 하는 그런 믿음 말고 바울처럼 스스로 가족과 재물과 명예를 버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세상을 버림으로써 더 큰 세상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육의 눈으로 보는 세상보다 더 큰 영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기꺼이 그리스도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기 힘들어도 두렵지 않은 것은 언제나 동행하시며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물론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겠다는 다짐을 하다가도 골짜기에 떨어진 것처럼 낙심하며 주저앉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십자가의 보혈로 여러분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음으로 붙들어야만 신앙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살다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세상의 문제를 만났을 때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자기의 생명을 대신 주신 그리스도를 붙들지 않으면 넘어질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당하면서도 복음으로 세운 교회들이 말씀으로 부흥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는 복음만이 생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에 세운 모든 교회들이 더 많은 영혼을 품기를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높은 산 위에 서 있는 성도에게 말씀을 맡기시고 많은 영혼을 살릴 수 있도록 돕는 사람과 물질로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맡기실 수 있는 큰 그릇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9장 1-2절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늘의 능력을 허락하신 것은 오직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하심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진리를 힘있게 전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귀신을 내쫓고 병자를 고치는 기적을 보이며 하나님 나라를 전했습니다.
말씀만이 어둠에 사로잡힌 영혼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담대하게 복음을 선포한 제자들처럼 성도들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12제자처럼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제자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특별히 부르신 사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들도 사도바울의 신앙과 말씀의 깊이를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데 부끄럽지 않도록 영적인 권세와 능력을 부어주셨고, 바울은 소아시아와 로마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8절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이 세상은 많은 유혹 때문에 복음만 가지고 살아가기가 힘든 곳입니다.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바울이었지만 그는 날마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도우심을 구할 정도로 인간의 악한 본성 때문에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늘에 직접 올라가 낙원을 보는 축복도 받았고, 그의 손수건만 덮어도 병을 치료하는 능력을 가진 바울이라 할지라도 그의 육신은 연약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육신도 연약한데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서 쫓아다니는 유대인들은 그에게 위험의 대상이었고 실제로 큰 고통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눈이 잘 보이지 않아서 각 교회에 서신을 보낼 때 대필을 해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고, 복음을 전하다 매맞고 갇히고 굶는 고난 때문에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능력 중에 병 고치는 은사가 있는데 바울 역시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아 많은 병자를 치료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자기의 병을 고치지 못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며, 어쩌면 그런 바울을 보면서 하나님 존재까지 의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가 세운 이방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유대인의 방해로 인해 교인들이 예수님을 의심하고 교회가 흔들리는 것을 보면서 능력을 받은 사람이 왜 그것을 막지 못하느냐고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병도 가난도 원수도 없어야 한다는 것이 믿음이 없는 교인들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좀 더 깊이 바울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들여다본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평하신 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기적도 베풀고, 천국도 다녀온 바울이라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아야 할 영혼입니다.
만약 바울이 자기가 베푼 기적을 보고 우쭐하여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다면 그 역시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바울의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주신 은혜는 고침 받지 못하는 병 때문에 스스로 연약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고, 끊임없이 괴롭히는 원수를 통해 자신도 하나님의 보호가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세심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성경을 통해 볼 수 있어야만 여러분의 신앙이 바로 설 수 있습니다.
바울의 신앙은 산처럼 높았지만 그에게도 인간적인 연약함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 앞에 눈이 짓물러서 눈곱이 끼고, 잘 보지 못하는 바울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면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
남들 치료할 생각 말고 네 병이나 먼저 고치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모습으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은혜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지금 많은 교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대속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가난하거나 건강하지 못하면 부끄러워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대학에 떨어지거나, 승진이 되지 못하거나, 평수가 넓은 아파트에 살지 못하면 부끄러워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겠느냐고 말을 합니다.
영적인 자녀가 세상적인 잣대로 자신을 판단하며 하나님까지 부끄러운 자리로 끌어내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스스로 가난한 자리, 고난의 자리, 부끄러운 자리를 선택한 사도바울을 보면서 그의 믿음을 존경하고 부러워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닙니까?
그가 당하는 고난을 보며 우리도 바울처럼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 가식적인 신앙을 가졌다고 고백하는 것이며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일 것입니다.
자기가 미련하게 살아서 당하는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 당하는 고난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이며, 훗날 받을 상급인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방해하는 육체의 병과 교회를 방해하는 유대인들을 쫓아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했지만 응답하시지 않았습니다.
생명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바울의 기도는 처절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이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세상의 가시가 없다면 교만해질 수 있기 때문에 응답할 수 없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당하고 있는 고난이 곧 축복인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육체의 가시와 사단의 가시가 너무 괴롭고 힘들었지만 하나님께서 응답을 거절하셨을 때 그것 또한 자기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감사했습니다.
자기가 연약할수록 자기가 베푼 기적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고, 이방인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곳곳마다 세워진 교회는 영혼구원을 위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육신이 약하면 약할수록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 드러나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믿음을 가진 성도의 자세이며, 비록 골짜기에 떨어진 인간의 연약함을 안고 있을지라도 하늘에 소망을 둔 성숙한 신앙입니다.
여러분도 신앙으로 살려고 노력하지만 세상에 속한 육신이 믿음을 뒷걸음질 하게 만들 때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큰 돈을 벌 수 있지만 믿음과 바꿔야 하기 때문에 고민할 때도 있었을 것이고, 믿음만 버리면 출세할 수 있는 기회를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놓친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술과 오락과 쾌락을 즐겨야만 하는 세상에서 신앙을 지키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사도바울처럼 나는 곤고한 자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 때가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럴 때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이도록 만드는 성도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여러분의 연약한 부분을 더 많이 드러내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이 땅에 있는 사람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이며, 세상에서 사단을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입니다.
여러분의 연약한 믿음과 세상의 문제를 하나님과 믿음의 형제들에게 드러내는 것을 주저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중보기도는 여러분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쉽게 응답을 받게 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항상 자기의 장점만 드러내며 힘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이런 곳에서 성도가 다른 사람의 연약함을 끌어안고 하나님을 향해 대신 중보기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사랑이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머물러 있는 중보기도는 응답의 축복이 담겨 있기 때문에 믿음의 형제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도들에게 자기의 기도제목을 모두 부탁하므로 도리어 많은 동역자를 얻었습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은 바울의 약점과 단점을 알고 있었지만 멸시하거나 조롱하지 않았고, 그리스도안에서 한 지체라는 사랑을 가지고 자기의 목숨을 내 놓고 바울을 도와주었습니다.
교회에서 만나는 믿음의 형제가 연약해 보여도 그들은 하나님나라의 일군이며 여러분의 영적 울타리입니다.
자기보다 부족해 보이는 그 형제의 중보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자녀를 지켜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영혼을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진 성도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을 받은 지혜로운 성도입니다.
안일한 생각과 게으름으로 일하지 말고, 말씀과 능력을 맡은 종답게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사명을 감당한다면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13절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꽃밭신앙과 걸림돌신앙과 뾰족하고 낮은 산처럼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믿음은 어린아이와 같기 때문에 자기의 신앙을 지키는 것도 힘이 듭니다.
하지만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의 계단에 오른 신앙은 나 외에 다른 사람의 영혼까지 하나님께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매사에 신중해야 하며 지혜롭게 판단해야 합니다.
산 꼭대기에 선 사람은 밑에 있는 사람들 눈에 잘 보이기 때문에 그가 온전한 신앙을 갖지 못한다면 그를 바라보고 따르는 영혼까지도 함께 멸망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참 뜻을 모르는 목회자와 인도자가 영혼들을 인도하는 것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이 위험한 일입니다.
세상의 길은 가다가 길이 아니면 돌아서면 되지만 영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을 따라가게 되면 맹인을 따른 것처럼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구원의 길은 영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영접한 사람을 따라야만 그리스도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잘못 선출하면 그 사람의 임기 동안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면 그만이지만 영적인 지도자의 영향력은 한 영혼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에 더 두려운 것입니다.
대통령이 정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경제적으로 나라가 성장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이렇게 큰 영향력을 미치는데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성도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대통령은 세상일이기 때문에 사람의 육신을 괴롭게 하면 그만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가 한 입으로 단물과 쓴 물을 내면 영원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진리의 말씀을 바로 알고 전해야 합니다.
전하는 목회자도 중요하지만 성도들은 자기의 영생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말씀안에서 영 분별을 해야만 할 것입니다.
심판의 자리에서 나는 목회자를 잘못 만나 말씀을 배우지 못해서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핑계를 대거나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로 가기 때문에 나도 따라서 갔을 뿐이라고 변명을 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고, 성령께서 세상에 계시기 때문에 목회자나 환경 때문에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지 못했다는 핑계가 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말씀을 직접 들었음에도 마귀의 유혹과 거짓말에 속아 선악과를 먹은 책임을 영원한 죽음으로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어떤 말씀을 듣고 믿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말씀을 살펴봐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말씀을 모르고 있다면 지금 제가 사단의 말을 전한다고 해도 판단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많이 배워서 지식을 쌓는다고 깨달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앞선 자의 도움 받기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지혜를 빌려야 할 것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성경은 인간을 더욱 교만하게 할 뿐이지만 성령께서 가르쳐주시는 말씀은 인간을 낮고 겸손하게 하므로 하나님께 갈 때까지 더욱 겸손한 마음으로 배우시기 바랍니다.
에스겔 28장 12절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사단은 완전한 인이고 지혜가 많으며 온전히 아름다웠다고 하셨습니다.
인감도장이나 지폐를 정교하게 위조한 것을 일반인들은 절대로 구분할 수 없지만 결국 전문가에 의해 위조임이 드러나게 됩니다.
하나님을 흉내 낸 사단은 자신이 완전한 신인 것처럼 세상을 다스리고 있지만 절대로 그리스도와 같을 수 없는 것입니다.
독버섯은 색과 모양이 화려하지만 먹으면 바로 죽는 것처럼 다른 복음은 보암직하고 먹음직하여 사람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지만 거짓복음을 받아들이는 즉시 그의 영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사단은 인간이 세상의 복을 원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복음을 만들었습니다.
진리를 감추는 거짓목회자로 하여금 다른 복음을 선포하도록 했기 때문에 지금 많은 교인들이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우상에게 복을 달라고 비는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세상 복을 달라고 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정성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정성을 다해 봉사하고 헌금하며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영광을 받으시며, 예수님 때문에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드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를 대속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용서를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성을 드렸다고 해서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목회자에게 능력을 부어줍니다.
세상의 복이 목적인 목회자에게 거짓복음을 주어 말씀과 비슷하게 전하게 하므로 성도가 참 복음을 알지 못하면 그 거짓말에 속아 멸망에 빠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거짓 영을 잘 판단하기 위해서는 성령께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빛 안에 있으면 영안이 밝아지기 때문에 타락한 천사가 그리스도의 흉내를 낼지라도 쉽게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지금 많은 목회자가 하나님의 이름을 앞세워 세상의 복을 받는 것이 믿음생활을 잘 하고 있는 것처럼 전하고 있는데 그런 설교는 사단을 돕는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의를 버려야만 하나님의 의를 높일 수 있다고 말씀하시지만 거짓목회자는 하나님의 의보다 인간의 의를 높일 때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안에서 세상을 바라볼 때 헛되고 헛된 세상이 보여야만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사단이 지금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있는 것은 성도들이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전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중요한 전도를 가장 미련한 방법으로 하고 계십니다.
세상의 기적이 아니라 성도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한 영혼이 죽을 수도 있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성도들은 최선을 다해 예수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아있을 때만 기회가 있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나 전도자는 진리에 자신의 생각을 섞지 말고 깨끗한 그릇과 생명의 말씀을 가지고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전해서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고 영혼구원을 위해서 충성하신 여러분은 하나님께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받기를 바랍니다.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이제 갈 길을 선택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고 있는 넓은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좁고 협착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구원의 길로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할 것이고, 그 선택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성도는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삶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사는 것이고,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의 생각과 세상의 방식을 버리는 삶입니다.
모든 사람은 심판대 앞에서 자신이 세상에서 한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것인데 세상에서 자기가 행한 일을 전능하신 하나님께 직접 자기의 혀로 고백한다는 것은 두렵고 무서운 일입니다.
여러분이 오늘을 믿음으로 잘 살아야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 자신이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앞에 섰을 때 우리의 혀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으며 사실 그대로 직고하기 때문에 그 심판은 너무 두려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지금 여러분이 숨을 쉬고 있을 때만 기회가 있습니다.
육체의 생명이 끝나면 하나님께 용서받을 기회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이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또 한번 주시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받는다는 것은 큰 축복이므로 예수그리스도안에서 회개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예수 이름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에 오직 예수님만 구원의 길이고, 사망을 이기는 생명이며, 영생할 수 있는 부활의 첫 열매이십니다.
높은 산 위에 섰을 때 더욱 자세를 낮추는 겸손함을 보이시고, 깊은 골짜기에 떨어졌을 때 하나님께 부르짖는 지혜를 갖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예수님의 크신 희생을 통해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교만할 것도 낙심할 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영화는 하나님께서 손을 거두시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므로 교만할 것도 없고, 세상의 고난은 하나님의 손으로 붙들어 주시면 한 순간에 사라질 것이므로 좌절할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성도에게는 소망과 기쁨과 감사만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귀한 믿음만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출 수 있으므로 여러분은 꺼지지 않는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는 신부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처럼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성령님처럼 구원으로 인도하는 귀한 믿음으로 성도의 삶을 사시므로 하나님께 놀라운 하늘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