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이 가까운 늦은 밤입니다.
하루 종일 지친 일을 마치고 돌아온 가난한 연인이 허름한 임대연립주택에 마주 앉아 있습니다.
두 사람은 배가 고팠습니다.
"우리 수제비나 끓여 먹을까?"
여자는 국물을 내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엽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분명 얼마 전까지 냉동실 한구석에 잘 보관해 두었던 멸치 한 줌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입니다.
멸치가 없으니 수제비 국물은 맹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멸치 한 줌의 실종.
하지만 하루 종일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 돌아온 두 사람에게는 그것마저 아쉬운 현실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멸치가 어디로 갔는지를 진지하게 조사하는 대신, 엉뚱한 상상을 시작합니다.
첫 번째 가설은 옆집 아주머니가 훔쳐 갔다는 것입니다.
옆집 아주머니에게는 이 집의 비상 열쇠가 있었고, 얼마 전 복도에서 보았을 때 얼굴에 커다란 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멍 하나를 보고 아주머니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직접 폭행을 목격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멍 하나를 보고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입니다.
아주머니는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라 멍든 얼굴을 하고 슈퍼에 가는 것이 싫었을 것이고, 그래서 몰래 비상 열쇠를 이용해 이 집에 들어와 멸치를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무런 증거도 없습니다.
그저 두 사람이 만들어낸 픽션입니다.
그러다 두 사람은 또 다른 상상을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현실과 훨씬 멀리 떨어진 이야기입니다.
트리오핀이라는 전설 속의 짐승이 나타난 것입니다.
트리오핀은 인간의 슬픈 꿈과 비밀을 먹고 산다고 합니다.
자정이 된 틈을 타 트리오핀이 창문을 넘어 들어와 두 사람이 품고 있던 서러운 꿈과 함께 냉동실 속 멸치까지 모두 먹어 치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야기는 또 한 번 방향을 틉니다.
이번에는 멸치들이 스스로 사라졌다는 상상이 시작됩니다.
냉동실에는 아홉 마리의 멸치가 남아 있었습니다.
이 멸치들은 자신들이 인간에게 어떤 운명을 맞게 될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죽방멸치인 자신들은 다른 생선들처럼 온전히 먹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음식에 국물 맛을 내기 위해 이용되고 결국 버려질 운명입니다.
그중 성범수가 먼저 입을 엽니다.
이대로 냉동실 안에서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다고 말합니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머리와 내장을 떼어내고 국물만 우려낸 뒤 버리는 운명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성범수는 동료들에게 고향인 남해로 돌아가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모든 멸치가 그의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가운데 황기택은 성범수의 계획에 계속 현실적인 반론을 제기합니다.
고향이 남해라고 해도 지금 있는 곳에서 어떻게 그 먼 곳까지 돌아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범수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다, 비록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더라도 한번쯤 자기들의 운명을 스스로 선택해 보자는 것입니다.
결국 아홉 마리의 멸치는 탈출을 결심합니다.
차갑게 얼어 있던 몸을 움직여 냉동실을 빠져나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얼어 있었던 탓에 몸은 뻣뻣하고 힘이 없습니다.
멸치들은 수도꼭지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을 이용해 몸을 불리고 조금씩 움직일 힘을 되찾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탈출구를 찾습니다.
바로 싱크대 배수구입니다.
배수구로 빠져나가면 하수도를 통해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습니다.
싱크대에는 촘촘한 거름망이 놓여 있습니다.
멸치들은 거름망을 제거하기 위해 오랫동안 애를 씁니다.
그러나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결국 싱크대 탈출은 실패합니다.
멸치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발견한 것이 바로 양변기입니다.
변기 안으로 들어가 물을 타고 하수도로 빠져나가면 탈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또다시 문제가 생깁니다.
변기의 물을 내려줄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때 장재일이 나섭니다.
장재일은 자신이 저수조 쪽으로 들어가 물을 내려 동료들을 탈출시키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은 동료들과 함께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동료들은 망설입니다.
특히 송보미는 장재일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멸치들이 삶아질 때 자신이 장재일을 눌렀던 일을 사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장재일은 송보미를 원망하지 않습니다.
뜨겁게 삶아지는 순간에는 누구든 살아남기 위해 다른 멸치를 누르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장재일은 중력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때 전한선도 장재일의 희생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명분으로 우리 가운데 하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장재일은 자신의 결정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리고 동료들에게 자신을 대신해서 넓은 바다를 마음껏 보고 오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보지 못할지도 모르는 바다를 동료들이 대신 보아 달라는 것입니다.
결국 장재일은 동료들의 탈출을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합니다.
장재일의 행동으로 물이 내려가고, 멸치들은 마침내 변기를 통해 하수도로 빠져나갑니다.
냉동실에 갇혀 있던 아홉 마리의 멸치들은 드디어 자유를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자유가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수도로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장재일은 심하게 다칩니다.
몸이 찢어지고 부러질 만큼 큰 상처를 입은 것입니다.
장재일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동료에게 부탁합니다.
이야기를 해달라고.
고통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동료 멸치는 장재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는 놀랍게도 우리가 소설의 처음에서 들었던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옛날 아주 먼 옛날, 어느 임대연립주택에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연인이 살고 있었어."
늦은 밤 두 사람은 배가 고파 수제비를 끓여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냉동실을 열어 보니 국물을 낼 멸치가 감쪽같이 사라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이야기는 처음으로 돌아갑니다.
처음에는 연인이 멸치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멸치들이 연인의 이야기를 만들어냅니다.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가고,
그 이야기가 다시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완전히 뒤섞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멸치가 정말 스스로 탈출했는지,
옆집 아주머니가 정말 멸치를 훔쳤는지,
트리오핀이 정말 존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멸치가 사라진 현실의 빈자리를 이야기로 채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멸치들 역시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이야기를 필요로 했습니다.
장재일은 죽을 만큼 아픈 순간에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습니다.
현실의 고통을 당장 없애줄 수는 없지만,
이야기를 듣는 동안만큼은 그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에서 이야기는 단순한 거짓말이나 허구가 아닙니다.
때로는 견디기 힘든 현실을 잠시 잊게 해주고,
때로는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꿈을 품게 해주며,
때로는 상처 입은 존재에게 잠시 숨을 돌릴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아홉 마리의 멸치가 꿈꾼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다시 바다로 돌아가는 것.
자신들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 마음껏 헤엄치는 것이었습니다.
그 꿈이 실제로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한 번,
자신들에게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서로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박형서의 자정의 픽션은 그렇게 사라진 멸치 한 줌에서 시작해
가난한 연인의 이야기로,
멸치들의 탈출 이야기로,
다시 가난한 연인의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 것 같습니다.
현실이 너무 고단해서 아무것도 바꿀 수 없을 때,
우리는 무엇으로 그 현실을 견딜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이야기는 현실을 없애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현실의 고통을 잠시 잊게 해주고,
꿈을 꾸게 하고,
다시 현실을 견딜 힘을 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정의 픽션은 결국 멸치가 사라진 이야기가 아니라,
고단한 현실 속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살아가는 인간과 생명에 대한 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줌의 멸치가 사라진 자리에,
이토록 길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남았습니다.
멸치 이름들이 좀 헤깔리기는 한데 설령 좀 다르더라도 그것은 이해해주기 바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