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비 케마의 출가 (49)
깨달음을 이루신 후 6년, 부처님께서 라가가하 죽림정사에 머무실 때였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영광을 안고 돌아오는 모습에 라자가하 사람들은 찬사와 공경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의 신심은 더욱더 깊어졌다. 꼬살라국에서는 왕비 말리까가 왕과 친족들을 불법으로 이끌었다면 마가다국에서는 그 반대였다.
부처님을 만나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며 빔비사라왕은 틈이 날 때마다 친족과 대신들을 거느리고 정사를 찾았으며, 왕비와 왕자들에게도 부처님께 귀의할 것을 늘 권유하였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에게는 세 명의 왕비가 있었다.
...
끊임없는 왕의 권유에도 죽림정사를 찾지 않는 한 왕비가 있었다.
그녀는 황금빛 피부를 가진 셋째 왕비 케마였다. 빼어난 미모만큼 교만했던 케마는 사랑스런
아내 야소다라를 버리고, 아리따운 여인을 더러운 종기나 피고름 덩어리처럼 비유하는 부처님
을 싫어했다. 사랑스러운 것들이 주변에 찬란히 빛나고 있고, 자신에게 향하는 사랑이 영원하
리라 믿었던 케마에게 인생은 즐겁기만할 뿐이었다. 그런 케미였지만 화려한 봄날 죽림정사를 다녀온 여인들의 노랫소리에 마음이 동했다.
어서 가보셔요 대나무 숲으로
너무도 아름다운 대왕의 동산
상큼하고 부드러운 것 좋아하는 당신
대숲 꽃동산에 지금 빨리 가보셔요
가지가지 꽃송이에 기묘한 나무들
아름답게 수를 놓고 조화를 이룬 곳
다음에 가보리라 미루지 마셔요
때가 지나면 다시 기회 있을까요
사랑스런 케마 당신 혼자 남았네요
...
케마는 슬그머니 죽림정사가 궁금해졌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꾀를 낸 케마는 승가의 대중이 모두 걸식을 나간 아침 시간에 몰래 동산을 찾았다.
꽃과 과일나무, 연못과 풀들이 조화를 이룬 죽림정사는 평화로웠다.
바람이 실린 꽃향기와 새들의 지저귐에 취해 정사 깊이 들어 갔을 때였다. 케마는 뜻밖의 장면에 깜짝놀랐다.
라자가하 거리로 걸식을 나갔으리라 여겼던 부처님이 정사 한가운에 앉아계셨다.
여인의 몸을 종기와 피고름 주머니로 생각한다는 그런 분의 발밑에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한 여인이 예배하고 있었다.
케마는 넋이 나간채 가까이 다가갔다. 그 여인은 케마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부처님께 다가가 공손히 부채질을 해 드리고 있었다. 날마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던 케마였다. 그러나 그녀 앞에 서자 자신은 늙은 원숭이에 불과했다.
“어쩜 저리 아름다울까?”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러나 진짜 놀랄 만한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고운 비단 같던 그녀의 살결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삼베처럼 거칠어지고, 도톰하던 눈두덩이 꺼지면서 별빛처럼 초롱초롱하던 눈동자가 뭍에 올려진 생선처럼 백태가 끼기 시작했다.
잘 익은 복숭아처럼 볼그스름하던 얼굴은 점전 주름이 잡히더니 늙은 원숭이 피부처럼 늘어지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던 까만 머리카락은 늙은 돼지의 털처럼 뻣뻣해지더니 뚝뚝 부러져 나갔다.
허리가 굽고, 뼈마디가 불거지고, 이가 빠지고, 성글성글한 흰 머리카락을 겨우 추스르는 할머니가 되어 몸도 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케마는 가슴이 철럼 내려앉았다. 엄습하는 두려움에 그 노파처럼 몸을 가누지 못했다.
휘청거리는 케마에게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다.
“왕비여, 자세히 보십시오. 케마여 자세히 들으십시오.
지혜의 눈이 없는 장님 같은 이들은 이 육체의 아름다움을 아끼고 찬탄하지만, 보십시오. 이 몸은 쉽게 늙고 병들며 무너집니다. 화려한 옷과 향기로운 분으로 덮고 가리지만 아홉 개의 구멍으로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오물들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왕비여, 돌아보십시오. 케마여, 생각해보십시오. 무너지지 말라고 아무리 애써도 그것은 무너지는 것입니다.
아름답다고 아무리 되뇌어도 그것의 본성은 아름답지 않은 것입니다.
그와 나의 육체를 사랑해 보듬지만 그 다음에 기다리는 것은 슬픔과 두려움과 고통입니다.“
대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고는 빳빳이 목을 세우고 왕궁을 거닐던 케마였다.
그러나 늘어가는 속살의 주름이 늘 두려웠던 케마였다. 왕비는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왕비여, 그곳에 휴식은 없습니다. 케마여, 이곳에서 쉬십시오.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알아 육체에 대한 집착과 갈애를 버릴 때, 마음은 고요해지고 편안해집니다.”
케마는 일어나 부처님의 두 발에 예배하였다.
“어리석은 저는 말씀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저를 가엾이 여겨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왕비여, 벗어날 길을 찾으십시오. 케마여, 지혜를 닦으십시오. 당신이 아름답다고 여기는 것, 보기 좋다고 여기는 것, 거기에 아름다움은 없습니다. 원래 없습니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떨치고 자세히 보십시오. ‘나’와 ‘너’가 실재하는 것이라 생각해선 안 됩니다. ‘나’와 ‘너’를 비교해서도 안 됩니다. 그로 인해 교만심을 일으켜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행동과 말씨와 마음가짐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예의를 갖추십시오. 공손하고 부드러운 자세로 마음 속 교만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고요하고 편안한 열반에 곧바로 도달할 것입니다.”
케마는 자신의 교만을 참회하고 붉은 연꽃 같은 부처님의 두 발에 진심으로 머리 숙였다.
죽림정사를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은 평화로웠다. 왕궁으로 돌아온 케마는 낯선 집을 찾은 손님의 발걸음으로 조심조심 왕 앞으로 나아가 말하였다.
“대왕이여, 대왕께서 허락하시면 저는 부처님 교단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고 싶습니다.”
예전 같지 않은 모습에 놀란 빔비사라왕은 왕좌에서 내려와 왕비의 손을 잡았다. 철부지 아이처럼 응석을 부리고 대신들 앞에서도 언성을 높이던 케마였다. 그런 그녀가 하녀처럼 고개를 숙이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빔비사라왕은 걱정이 앞섰다.
“무슨 일이 있었소?”
왕비 케마는 죽림정사를 찾았던 일을 왕에게 자세히 말하였다. 그런 뒤 재차 무릎을 굻고 간청하였다.
“대왕께서는 저의 주인이십니다. 주인님이 허락하시면 저는 부처님 교단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고 싶습니다.”
빔비사라왕은 왕좌로 돌아가 말없이 눈을 감았다. 한참 후 빔비사라왕은 대왕의 위엄을 갖추고 말하였다.
“케마여, 당신의 출가를 허락합니다. 당신이 비구니가 되는 일을 내가 준비하겠습니다.”
빔비사라왕은 사랑하고 아끼던 케마왕비를 황금으로 만든 가마에 태우고 음악을 연주하며 라자가하 거리를 돌았다.
꽃과 향을 뿌리며 환호하는 백성들의 축복 속에 케마왕비는 비구니 스님들이 머무는 정사로 찾아가 머리를 깎고 구족계를 받았다. 그리고 다시 비구 승가로 찾아가 출가를 허락받았다. 영특했던 그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빨리 성취할 수 있었다.
날카로운 지혜를 지닌 케마를 부처님은 ‘비구니 제자 가운데 제일가는 지혜를 가진 사람’이라며 대중 앞에서 칭찬하셨다.
최고의 세력을 자랑하던 마가다국의 왕비가 비구니가 됨으로써 부처님 교단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또한 그녀의 출가로 라자가하 여인들의 출가가 잇따르게 되었다.
담마딘나는 라자가하의 부호 위사카의 아내로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남편에게 감화되어 출가하여 곧 깨달음을 성취하였고, 어려운 법문을 쉽게 설명하는 탁월한 능력을 갖춘 법사가 되었다.
담다딘나의 법문을 들으러 몰려 들었고, 그의 법문을 듣고 출가한 숙까 비구니 역시 그들 가운데 한 수행자로 그녀 곁에는 항상 오백명의 비구니들이 머물렀다.
비자야 비구니는 왕비 케마의 친구였다. 케마의 출가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어 출가하였다.
비자야는 몇 번이나 머리를 기르고 다시 깍기를 반복하였으나 마침내 당당히 대중앞에 설 수 있었다.
‘비자야 마음을 가다듬고 잘 관찰해 보세요’ 비구니 스님의 자세한 가르침에,
육식,육경의 12처, 그리고 인식작용을 합한 열여덟 가지 요소 (18계), 사성제, 팔정도의 바른 길에 대한 자세한 가르침을 실천한 비자야는 초녀녁에 전생의 일을 모두 알아차리고, 한밤중에 천안을 얻었으며, 그리고 새벽이 밝아올 무렵 무명의 암흑덩이를 산산이 부수었습니다.
“온 몸에 환희심과 안락함이 충만한 채,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이레 만에 고단한 두 다리를 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