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송심순
이곳에 정착한 지 이 십여 년이 되었다. 주위 분들은 신도시 개발에 따라 이동하고 있는데 나는 집 주위에 쉼표처럼 휴식을 안겨주는 공원과 문화 공간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운동 겸 사색 겸 자주 공원에 나가 천천히 한가롭게 걷는다. 대부분 두 팔을 앞뒤로 내밀며 발걸음도 빠르게 운동을 목적으로 걷는 씩씩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과 스치면서 나무, 꽃, 잡풀들과 눈을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고 살살 만져주기도 하며 나는 느리게 걷고 있으니 운동으로 건강에 도움은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매번 하게 된다. 도심지에서 이만한 아름다운 휴식공간도 드물다는 동네 자부심에 가끔은 자랑삼아 우쭐할 때가 있다. 올 때마다 세월의 흐름에 실감하면서 자연 앞에서는 왠지 숙연해 몇 바퀴 돌면서 관상용 식물과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이곳을 한결같이 지키고 있는 풍경에 의지하며 평안을 찾는다.
얼마 전 가깝게 지내는 지인이 바이올린 연주 입장권이 준비돼 있으니 예술의 전당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내 의향보다 우리 동네에서 가깝다는 이유가 먼저인 것처럼 들려왔다. 이렇게 가끔 우리 집 주변이라는 이유만으로 첼로, 성악, 각기 다른 그룹 연주회를 즐기며 호사를 누릴 때가 종종 있다. 마치 내가 여유로운 문화생활에 입문이라도 한 것처럼 선율의 여운이 며칠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펼쳐 나가게 한다. 감당하기 벅찬 미술관 관람은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 언제나 나와는 무관한 듯 마음에서 멀리 제쳐두고 있다. 수목원 숲 공원과 예술의 전당을 우선으로 찾게 되는 차별화 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아름다운 색채를 띤 예술에 무딘 사람이 맞는 것 같다.
한 곳에 오랫동안 보금자리 삼아 살게 되면 우리 동네가 가장 편리하고 정이 들어 주거를 옮겨 다닌다는 것은 쉽게 결정하지 못한다. 몇 번 망설이는 것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나 역시 같은 생각이다. 동네라는 것은 내가 사는 집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일정한 주거 공간으로 도시나 농촌에서 마을이 형성되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알고 있다. 요즘은 대부분 도시에서는 아파트 생활에 동네라는 이름이 정겹게 다가오지 않는다. 유년 시절 동네 길목길, 동네 뒷산, 동네 이웃집을 자유롭게 드나들었던 풍경은 서서히 변해 도시의 일상의 모습은 일정한 틀에 갇혀 오가는 정이 메말라 동네라고 부르기엔 어울리지 않는 듯 낯설게 여겨진다. 어느 동네나 한가지는 내세울 것이 있고 또 불편한 것이 있게 마련인데 우리 동네에서 이 십여 년 살아보니 주거로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매일 실감하고 있다. 무엇보다 식당이나 유흥업소가 즐비해 그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우리 아파트에 들어와 자동차를 주차하는 문제가 발생해 늘 복잡하고 서로 언성을 높여 말씨름이 잦다. 몇 년 동안 이런 문제로 주민들의 주차공간이 부족해 피해를 겪으면서 결국엔 아파트 입구에 외부인 출입구와 주민 출입구를 구분해 거액을 들여 자동 차단기를 설치해 놓았다.
한참 후에 들은 얘기로는 우리 집 옆 공항버스 정류장이 있는 관계로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차를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놓고 며칠 후 돌아와 가져간다는 것이다. 듣는 순간 아차 싶었던 게 친구들이 가끔 이런 부탁을 했을 때 당연한 듯 친절하게 쾌히 승낙하며 여행 잘 다녀오라고 했던 경험이 있다. 나도 그 단속을 지키지 못하고 한몫을 한 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도시의 각박한 현실에 불편함을 떨쳐내고 집 근처에 문화 공간과 크고 작은 공원이 있어 응달 밑에서 수줍게 피어난 꽃을 보며 기특함에 호들갑을 떨어본다. 옹색했던 마음을 펼쳐놓고 늘 위안을 받을 수 있으니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공원을 몇 바퀴 돌고 나무 밑의 긴 의자에 앉아 세월의 흐름을 정확하게 알려주며 그 자리를 지켜주는 여러 종류의 나무의 일생을 헤아려 본다. 사람과 비교해보곤 하는 습관이 튀어나온다. 집도 나무로 지은 한옥이 정감을 배로 느끼게 한다는데 한해 한해 나의 삶을 나무와 비교해보게 된다.
우리 집 담 옆 황톳길은 좁은 오솔길이지만 양옆에 하늘을 향해 치솟은 몇 미터인지 가늠할 수도 없는 키 큰 나무가 일렬로 길게 우뚝 솟아 버티고 있다. 여름엔 햇볕을 가려주니 여인네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산책길이 되어 황톳빛이 유난히 반들거린다.
도심지에 살면서 제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지켜주는 공원의 바람과 새들이 계절에 맞게 전해주는 소식이 무엇보다 정겹다. 해마다 기다리는 봄의 으뜸 목련과 라일락 향기, 오월의 장미 소식을 듣고 감상하며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선율에 행복을 더해주는 문화 공간에 때로는 흐뭇하기도 하다. 특히 여러 종류의 꽃과 새, 작은 호수, 나무들이 계절의 변화에 따라 희망과 기쁨으로 유일한 사색의 장소 ‘수목원’은 자신감을 잃고 축 늘어져 가는 나이에 삶의 활력소가 되어 떠나고 싶지 않다.
비록 집 주위에 상가가 즐비해 안락한 주거 환경은 아닐지라도 숲과 예술관람 이런 공간이 갖추어진 아름다운 색채와 선율이 흐르는 ‘우리 동네’를 자랑하며 오래 머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