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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미즘 문화에서 선교이론을 개발하라
우리가 연구하는 대부분의 미전도 종족은 animism이 다수이고, 인도나 회교권에 미전도 종족이 많지만 이들 역시 기본적 신앙은 애니미즘이다. 라토렛의 지적에 의하면 아시아에서는 기독교회가 성장하는 문화권은 주로 애니미즘 문화권이다. 정령숭배(애니미즘)는 다른 종교에도 저항력이 약하거니와 기독교에 대하여서도 동일하다. 그러나 아시아의 소수 종족들 혹은 소외된 종족들은 다수종족의 종교를 거부하고 대신 기독교를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미얀마의 카렌족은 태국이나 미얀마의 불교를 거부하며, 인도의 나가랜드 사람들은 97%가 기독교 신자라 하여도 과언은 아닌데, 이들은 인도에 강제 예속되고 인도사회에서 소외됨으로 힌두교를 거부하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한국도 샤머니즘 사회로서 기독교가 성공한 케이스에 속한다. 이러한 현상은 태국이나 인도만이 아니라 방글라데쉬, 대만, 스리랑카, 파키스탄, 네팔 등도 동일하다. 즉 아시아에서는 애니미즘 부족 집단에서 기독교는 유일하게 성장하고 있다. 과거 혹자는 애니미즘을 종교로 간주하지 않았다. 과거 우리 나라에서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무속행위를 미신 혹은 우상으로 단죄했다. 정령숭배는 창시자나 체계적 교리 혹은 신학을 갖고 있지 않으며 존재하는 지역마다 많은 다양성을 보인다. 그리고 애니미즘도 성장하며 심지어 서구 사회에도 애니미즘의 부흥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많은 서구의 복음주의 선교사들과 선교학자들은 애니미즘이 약화되고 있다고 믿지만 우리는 전세계에 걸쳐 애니미즘이 다시 부활하는 징조를 심각하게 다루어야 한다. 한국 사회도 여름이 되면 언론매체들이 경쟁적으로 "귀신" 문제를 다루어 "악령 신드롬" 혹은 귀신 신드롬에 빠지고 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은 현대는 과학시대라고 자부하지만 사람들의 정신문명은 오히려 퇴해, 원시시대로 돌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거에 산업화가 되지 못하였을 때 농촌에서는 밤거리를 다닐 때 귀신이 나타난다고 믿었고 또 두려워하였다. 그러한 귀신공포증은 농촌문화를 지배하였다. 그런데 그러한 애니미즘은 또한 서구 세계를 포함한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뉴 에이지 운동은 기독교와 힌두교와 서구적 세속주의의 혼합종교의 한 모델이다. 뉴 에이지는 신비한 의식 행위가 있으며 별을 보고 점을 친다고 한다. 남미의 심령술이나 중남미 하이티의 부두교는 전형적인 애니미즘이다. 중국, 한국, 일본의 조상숭배는 유교의 산물이 아니라 실은 애니미즘이며, 남태평양의 멜라네시아 사람들은 소위 화물숭배(cargo cult)라는 종교를 믿는다. 화물숭배란 예를들면 비행기를 그들의 조상이 돌아온 것으로 믿는 것이다. 이들은 먼 옛날의 조상들이 때가 되면 아름다운 새가 되어 좋은 선물을 날아다 줄 것으로 믿는다. 그리하여 비행기와 미국인들의 "깡통"(canned food)를 조상들의 선물로 간주한다. 이들은 특정 의례나 제사행위가 산자에게 물질적 축복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인도네시아와 다른 아시아국가의 민속 이슬람 역시 애니미즘으로 혼합되었다. 힌두교 역시 애니미즘의 혼합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면 전 세계적으로 애니미즘의 인구는 얼마인가? 1980년 한 통계는 민속종교 인구를 32억으로 발표하였다. 1970년에 영국의 선교학자 스테판 닐은 세계 인구의 40%가 애니미즘적 사고에 근거한 삶을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위의 통계는 신뢰할만한 것이다. 랄프 윈터에 따르면 대부분의 미전도종족들은 정령숭배자들인데, 그러나 그는 약 11억 인구가 애니미즘에 기초한 세계종교와 관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미전도 종족 선교에서 애니미즘 선교전략에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세계 기독교와 선교가 , 특히 제3세계에서 지나치게 "신오순절적"인 신비주의나 열광주의에 빠져서 신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건전성에 우려를 제기한다. 심지어 많은 한국 선교사들도 성경적 균형을 상실할 정도로 잘못된 "신오순절" 운동으로 떨어지는 위험이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제기되어 이 문제를 많이 다룬다. 애니미즘의 정의 애니미즘의 정의는 결코 단순하지 아니하다. 이유는 각 부족마다 신앙형태가 너무나 다양하기 때문이다. J. T. Seamands 정의하기를 "아니미즘은 단 하나의 동질적 종교로 간주할 수 없다. 많은 부족만큼 종교가 많다고 하였다. 애니미즘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19세기 후반 서구의 문화인류학자들이 하였으며 다음으로 선교사들이 이것을 서구에 소개하였다. 문화인류학적으로 애니미즘을 연구한 영국의 에드워드 타일러는 애니미즘을 "영적 존재들에 대한 신앙과 교리"로 정의한다. 최근 미국의 선교학자 리넨은 "인격적 영적 존재들과 비인격적 힘이 인간사에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미래의 행동을 결정하고 그들의 힘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존재와 힘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믿음이다"고 하였다. 조지 코왠은 "생명이 없는 대상들과 자연현상이 영적, 초자연적 힘을 소유하고 있다는 믿음으로, 애니미즘은 창조자에 대한 참된 경배가 결여된 피조물에 대한 숭배"로 정의한다. 애니미즘의 성격 애니미즘은 창조주와 인간과 자연 및 동물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양식으로, 특히 창조주와 피조물간에는 분명한 한계가 없다. 애니미즘이란 모든 만물에는 영이 존재한다는 신앙이기 때문에 범신론도 되고 혹은 다신론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더 비판적 시각에서는 다귀론(demonology)으로 말하는 신학자도 있다. 성경은 분명 애니미즘을 정죄 하는데, 이유는 이들 영들을 마귀 혹은 마귀와 관련된 것으로 해석한다. 애니미즘은 종교학적으로는 일원론(Monism)에 속한다. 일원론이란 창조주와 피조물은 같은 근원이라는 철학으로 힌두교나 불교도 일원론에 속한다. 즉 자연과 초자연 간에는 분명한 한계가 없다. 여기서 신과 영들의 세계와 자연과 인간은 연속성이 있다. 이러한 연속성 때문에 윤회설이 가능하다. 그러나 기독교는 창주주와 피조물은 동일한 근원이 아니라 질적으로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에 연속성이 있을 수 없다. 애니미즘 사회나 문화는 영 중심의 세계관이다. 모든 사물에 각종 영이나 혼이 존재함으로 이들은 인간이 달래거나 붸아 내어야 할 대상이고 혹은 복을 빌어야 할 경배의 대상이다. 인간의 행, 불행, 혹은 운명은 초자연적인 힘이나 영에 기인함으로 악령이나 선한 영을 달래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한 종교활동이다. 그래서 애니미즘은 많은 금기 체계(taboo)가 있다. 그러나 질병 등 인간이 당하는 재난은 신보다 낮은 영들의 세계와 관련된다고 본다. 그래서 이 영들을 달래는 것이 중요한데, 서구 신학은 이 분야를 등한히 하여 방언이나 귀신의 존재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폴 히버트는 이것을 잃어버린 중간영역으로 정의한다. 중간이란 그 위에는 신들의 세계, 그 아래에는 자연의 세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에서는 질병도 과학적으로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무당을 통하여 영을 달래거나 악귀를 붸아 내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 영을 달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샤만(무당)의 일이다. 여기서 애니미즘은 샤만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여 한국에서는 애니미즘을 샤머니즘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에서는 샤먼은 특정한 복장을 하지만 많은 부족사회에서는 "유니폼"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이 무당은 굿을 하면 반드시 대가를 받는 것이 특징이다. 무당의 기능은 점으로부터 치유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의 기독교회도 이런 식으로 성령론 위주의 목회가 발전하게 된다. 그래서 현대 선교는 능력대결(power encounter)을 중시한다. 능력대결의 성경적 실례는 엘리야가 바알 제사장과 대결한 것이 대표적인 케이스일 것이다. 애니미즘 세계관에는 신들과 영들이 많으며 이들은 나름대로 위계 질서가 있어서 높은 신과 낮은 신이 있다. 물론 최고의 신도 존재한다. 그런데 애니미즘 사회의 문제점은 종교와 윤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점이다. 윤리적 가치는 가족 혹은 자기가 속한 사회 집단과 관련되어 있다. 따라서 공공 윤리가 없는 것이 약점이다. 이 사회는 사람들은 인정이 있다할지라도 근본적으로 수치문화(shame culture)가 발전하여 자신이나 가족 및 부족집단의 체면은 중시할 지라도 사람들이 보지 않는 데서도 정직하게 행하며 공공질서를 지키는 윤리의식은 높지 못하다. 애니미즘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교회 지도자들이 갖는 약점은 그들이 찬양과 기도 중에는 아멘과 할렐루야를 크게 외치는 영적 다이나믹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윤리적 온전함이 결여되어 있다는데 있다. 또한 강한 보수성으로 인하여 사회변화나 개혁이 어려운 약점도 있다. 강한 보수성과 함께 폐쇄적이고 배타적이어서 주로 가족중심이나 자기들 공동체 중심이지 다른 공동체 사람들을 수용하는데는 인색하다. 현대 종족 갈등이 심한 것도 이러한 문화적 요인 때문이다. 한국사회도 애니미즘 사회가 안고 있는 문화적 약점이 국제화, 근대화를 부르짖어도 그대로 존속하는데, 가장 고질적인 것이 아마도 지연, 학연, 혈연인데, 그 중에도 지방주의가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 좀 미안한 표현이지만 한국의 큰 장로교회 경우 경상도 출신이 아닌 사람이 경상도에서 목회하기 어렵고 호남출신이 아닌 사람이 호남에서 목회하기 어려운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사회는 직업, 전문성, 종교등 혈연공동체를 초월하는 사회구조, 독일어로 하면 Geselschaft의 사회이지만 인간관계는 농경문화의 부족적 의식이 그대로 남아서 일 처리나 사람을 판단하는데 있어서도 합리적이지 못하는 폐단이 있다. 사회가 합리성이 결여될 때 자연히 부조리와 불의가 따르기 마련이다. 애니미즘적 부족사회의 특징 그런데 애니미즘 특징을 일반화하기는 결코 단순하지 아니하다. 우리사회는 현대화 와 애니미즘 문화가 공존하지만 순수하게 애니미즘 세계관에만 지배당하는 부족 사회가 아직도 전 세계에 산재하여 있다. 이들의 사회는 다른 특징을 지닌다. 에드워드 뉴잉은 글자가 없는 사회의 애니미즘의 주요한 특징을 이렇게 기술한다: a. 총체적 : 세계는 살아있는 영적 힘과 함께 리듬감 있게 숨쉬는 총체이다.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출생으로부터 죽음 그리고 그 너머까지의 모든 활동은 하나의 총체적 종교에 귀속되는 것으로 해석된다. 생명 전체는 종교적 현상이다. b. 영적 : 그들은 각종 영적 존재들이 무한히 존재하는 세상과의 밀접한 관계 속에 살고 있다. c. 신비적 : 세상의 기원은 신비적 형식으로 제시된다. 신화는 공동체가 삶의 실재 속에서 그 믿음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d. 의례적이다: 신화는 주로 그 부족의 의례 속에서 그것들을 표현한다. 출생, 빈곤, 결혼, 전쟁, 질병, 이혼, 먹는 것, 조리하는 것, 심기, 거두기, 가축을 지키기, 집짓기, 떠남과 도착, 집에 들어오기와 떠나기, 사고 팔기 등등. e. 리듬적 : 글자가 없는 사회는 파종기와 추수기, 우기와 건기, 겨울과 여름이라는 시기별 순환주기에 지배를 받는다. 이 순환주기에 따라 리듬감 있는 박자가 공동체적 실존 양식 속에 들어오며, 그것을 기반으로 인간의 생활주기에서의 개인적 주제와 세대적 주제가 겹쳐진다. 애니미즘적 부족사회의 특징은 요약하면 사람들은 철저히 공동체 생활을 한다. 사람들은 함께 살고 함께 일하며 함께 놀고 함께 종교의식을 행한다. 이러한 사회생활에서 개인주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사회구조가 개인주의를 용납하지 않는다. 산업이 주로 자연에의존하는 농업이나 사냥 혹은 목축업이다. 농사 경우 농기구가 발전하지 못하여 서로 돕고 일해야 한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서로 "품아시"를 해야한다. 사냥할 때는 혼자가 아닌 집단으로 함께 단순한 도구를 들고 나간다. 여기에도 물론 나름대로 역할분담이 있다. 부족사회는 부족의 수장이 있어, 부족장 혹은 추장이 모든 권한을 가지고 명령을 행사한다. 법이 따로 없고 현대적 행정조직이 없기 때문에 추장의 말이 곧 법이다. 모든 생활은 종교에 지배당한다. 예를 들면 사냥을 나갈 때는 자신들의 수호신이나 신들에게 기도하거나 예배의식을 행한다. 농사에나 어업에도 물론 섬기는 신이 있다. 부족사회는 전통적이어서 사회변화가 없고 문명과는 거리가 멀어 글자가 없다. 아울러 정부나 관공서, 병원, 학교등 현대적 기구를 거부하거나 모른다. 이렇게 발전을 거부함으로 빈곤을 영속화하는데, 이러한 현상을 미국 문화인류학자 루이스 오스카는 "빈곤의 영속화"라고 정의한다. 그는 맥시코의 한 부족사회를 관찰하고 이들은 비록 도시에 가서도 풍요한 현대 사회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부족사회는 조상제사가 중요한 의례와 전통이 된다. 한국이나 중국의 조상제사와 같이 애니미즘적 부족사회는 산 조상이나 죽은 조상간에는 차이가 없다. 죽은 조상을 잘 모시지 않으면 재난이나 재앙을 당한다고 믿는 것은 죽은 조상의 영이 계속 산 자손을 돌볼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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