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 소백종주
나이가 먹어가는 실감이 1년에 몇번쯤은 있습니다.
매년 해가 바뀌는 때이고 아내나 자신의 생일때와 결혼 기념일 집안의 애경사등.
또 국가사회의 크고 작은 각종행사에서도.세월의 빠른 무정함이나 나이먹어가는 애절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 8일은 결혼 45주년 기념일입니다. 6일에 우리산우회200회정기산행을 무사히 끝내고 7일에는 오전에 회사
퇴직자 모임 2019년신년교례회의에 참석하고 오후에는 8일결혼기념일 전야제 준비로 바쁘게 노란비슷한장미꽃
50송이를사가지고 와서 45송이는 나름 모양나는 꽃항아리를 만들어 거실 티브이옆에 놓고 다섯송이는 주방의
창가에 큰유리잔에 꽂아 놓았습니다.누구보다도 장미꽃을 좋아하는 아내.그래서 아내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은
챙긴다고 했지만 몇번은 챙기지를 못하고 지냈습니다.뭐가 그리 바쁜지 못챙긴 생각을 지금 하고 보니
아내에게 미안 하고 후회스럽기도 합니다.
금년에는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을 꼭 챙겨야지 마음억고 생일 전날에는 아내의 나이에 맞게 아내가
좋아하는 빨강장미꽃을 사가지고집에 와서 커다란 항아리에 꽂고 생일축하 몇자를 써서 거창하게 놓으니
장미꽃향기가 온 집안에가득 했습니다.퇴근후 아내는 표현은 못해도 흐믓해 했습니다.그러나 아내는 다시
장미꽃을 조금 짧게 자르고 아담하게 다듬어 작은 항아리에 꽂고 정성드려 내가 쓴 축하 리본은 안방 진열장
문고리에 걸쳐 놓았습니다.
글 내용이 쑥스러웠나 봅니다.그래서 7일은 리본을 쓰지 않고 노랑장미꽃만 다듬어 꽂아었습니다.
그리고 찹쌀떡과 뱃세주를 준비하고 촛불둘도 켜서 밝히고 정성스럽게 상을 차려놓고서 퇴근을 기다렸습니다.
같이 있던 작은 놈도 서울의 형네 집에 가고 모처럼 둘이서 오붓하게 시간을 가지려 했던 것 입니다.
아내는 퇴근하며 문열고 들어서더니 노량 장이 꽃 항아리를 보고 돈 없다 하면서 뭐하러 비싼 장미를 샀느냐고
한마디하면서도 싫지는 않은 모양입니다.지난번 생일때 빨강장미보다 향이 더 진하다고 했으니 결코 싫지 않은
모양였습니다.우리 두사람은 할말은 많지 않아도 서로가 고맙다는 몇마디. 건강하게 살자며 백세주 한병을
치웠습니다. 저는 아내에게 결혼 기념일 이 정도면 됐지.생각하고 6일에 우리 산우회에서 많이 마시고도 아내의
얼굴이 표정이 괜찮아 전에 사다 놓았던 막걸리 한병을 또 치웠습니다. 두 촛불을 각각 접시에 받쳐서 티브이
옆에 옮겨놓고 8일결혼 기념일 전야제를 마쳤습니다.
8일결혼기념일 아침 아내와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오후에 소백산 이나 치악산 종주 간다고 하니 언제나 내가 산에
간다 하면 말려도 듣지 않았으니 말그라미 바라보며 추위에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 합니다.
8일오후 7시에 대전역에서 열차로 단양으로 가서 평소 잘 다니던 ㅇㅎ장에서 하룻밤을 묵고 새벽5시에
일어나서 6시에 시내버스가 터미널앞에서 죽령으로 출발한다고 하여 터미널 앞에서 6시20분까지 기다려도 차가
나타나지 않다가 한 버스가 나타나 물어보니 6시50분에 있다고 내가 잘못알고 있었습니다. 30분간을 추위에 떨고
기다릴수가 없어서 앞의 gs마트에 가서 떡국라면을 끊여먹고 50분 시내버스로 죽령에가서 7시25분 부터
오랫만에 소백종주산를 시작 한 겁니다.춥긴하지만 몇년전의 종주때보다는 눈도 없고 추위도 적었습니다.
오늘은 혼자서 여유롭게 종주한다는 기본 아래 이곳 저곳을 조망하면서 걸었습니다. 얼마나 오고 싶어하던 소백산
이 던가.소백산은 나로선 참 으로 사연이 많은 산 입니다. 회사다닐때 서울근무하며 복잡한 일이 생겨서 스스로
이곳 단양을 택해서 귀향의 성격으로 1년간 근무하다 다시 서울로 간적이 있습니다.근무하면서 일주일에
2.3일씩 빠지고 서울에 학교도 다녔습니다.주말에는 집에 오지 않고 이 소백산 골짜기 골짜기를 쏘아 다니는
것은 물론 인근 경상북도 강원도의 높은산과 관광지를 다니며. 직장 조직 생활에 인생에 많은 생각들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산우회의 첫 산행지도 소백산의 비로봉 였습니다.그러니까 그때가 1999년도 벌써 20여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지난 세월은 20연년이 되어가는 데 내 자신은 무엇이 어떻게 변했을까? 그동안 직장에서 나왔고
또 변한게 무엇일까?확실하게 변한건 그때보다 머리가 많이 빠지고 얼굴이 주름이 지고 몸무게도 좀 줄어서
그때 입던 양복을 입으면 더 촌 스럽고 자주 만나던 지인들도 못 만나고 뱃장도 없이 째째해졌는 지 모릅니다.
그나마 아직도 깡다구는 남아 있는 듯 해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혼자서 산행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나는 도데체누구 인가? 약지 못하고 속만 빠져서 낭비만 하고.여탯껏 권력도 명에도 부도 쌓지 못하고 이 좋은
세상에서의미없이 살고 있는 걸까? 앞으로 어떻게 의미를 가지며 살아가야 할건가? 참 많은 생각에 잠겨 잠시
벤치에 앉아 햇님을 바라보며 쉬여 갑니다.다시 한참동안 오르막길을 혼자서 조용히 걷다보니 둬시간을 걸었을까!
위 전망대에서 사람소리가 납니다. 부지런히 올라가 보니 제주도에서 남여 여섯분이 왔습니다.
어제 비행기로 대구에 와서 구미의 금오산을 타고 오늘은 희방사에서 출발하여 나보다 앞서서 그곳까지 와 잠시
쉬고 있는 중 였습니다.너무좋다구 진짜 산꾼들을 만나서 반갑다고 박수를 쳐주니.산에 다니며 박수를 받으니
기분 좋다고 주먹만한 귤을 꺼내줬습니다.이게 산꾼들의 우정 입니다. 그때부터 심심하지 않게 그분들과 비로봉까지
함께 걸었습니다.비로봉정상에 가니 역시 소백산 정상답게 인천에서 온 한팀이 있습니다.
준비해간 점심을 먹고 다시 국망봉으로 향했습니다.시간은 오후 1시30분이 넘었습니다.
당초에는 소백종주를 한다고 왔지만 너무 꼼작거렸나 시간이 30여분 정도 지연 됐습니다.비로봉에서 국망봉을
지나서상월봉.다시 늦은앵이재에 오니 시간 은 오후 3시30분 날시도 차츰 추워지고 등산준비는 완벽하게
해간다고 했지만 겨울이라서 너무 무리하게 하기가..종주코스로 가는 다음 봉우리까지가 6킬로미터나 되고
이곳에서 가까운 어의곡리 을전까지도5.5킬로미터나 됐습니다.따뜻한 물로 목을 적시고 하산을 시작 했습니다.
하산길이 계속 음지의 빙판길이었습니다. 아이젠 이야 했지만 스틱을 잊고 가지고 가지 않아서 나무가지를
잘라서 임시 스틱 대용으로 몇번을 미끄러지며 땀을 흘리면서 좀 늦어도 차분하게 안전하게 하산하자를 속으로
되 뇌이며 어둠을 헤치며 하산했습니다. 내려오니 5시30분 그러나 버스는 없을것 같아서.거기에서 부터는 버스길로
어두워도 걸을수가 있어서 계속 빠른 걸음으로 한참 내려오니 시내 버스가 마을로 올라가 다시 내려 왔습니다.
그때 시간이 18시30분. 기사님께 대전으로 가야 한다니 50분에 단양에서 제천 가는 시내 버스가 있으니 속히
가자구 버스는 씽씽달려서 단양시내 시장의 시내버스서는 곳에 데려다 줍니다.
5분만 기다리면 제천 버스가 온다구 ..시내버스로 제천에 와 21시15분 열차로 대전으로 돌아왔습니다.
모처럼 긴코스 안걷다 걸었습니다.죽령에서 출발하여 제2연화봉ㅡ연화봉ㅡ제1연화봉 ㅡ비로봉 ㅡ국망봉 ㅡ
상월봉 ㅡ늦은앵이재 ㅡ별바위 ㅡ을전 어의곡리 ㅡ새발까지 20여킬로미터가 넘게 11시간여 걸었습니다.
오랫만에 하고싶었던 소백산종주 완전한 종주는 않이지만 그래도 추운겨울산 20여킬로미터를 넘게
아무사고없이 마무리 한 자신에게 감사합니다.
2019년1월9일
소백산에 다녀와서 홍 종 희 흔적을 남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