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바로 봅시다 150 /3. 대담/사람이면 ‘사람’을 찾아야지(5)
사람이면 ‘사람’을 찾아야지(5)
-1984년 3월 17일 조선일보, 법정스님, 안병훈 편집부국장-
∙인전길 문화부장, 서희건 기자와의 대담
● 그때 해인사에서 출가하신 겁니까?
“그렇게 됐습니다. 선방에 있으니까 여러 사람이 찾아오더군요. 노장들에게 이것저것 물었지. 그런데 하나도 모릅디다. 그때 하동산河東山 스님이 오셨어요. 건방지다고 할까, 언제나 그렇듯이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이런 사람으로 이리저리 공부를 했는데 스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초면인데 참 이상하다는 표정이야. 혼자 웃고 그러는 겁니다. 그러면서 당신은 백련암에 있다면서 놀라오라고도 해요. 그래서 찾아갔지요. 반갑게 맞아주더니 나보고 중이 되라고 합니다. 난 중 안 되려고 원력을 세웠다고 했어요. 통 마음에 없었으니까.
그런데 내 이름을 지었다며 성철性徹이라는 겁니다. 지금 이름이지. 그리고 모월 모일에 계계도 준다더군요. 참 이상도 하지, 중은 안 되려고 했는데 그 노장을 가만히 보니까 싫지가 않아요. 그래서 억지로 이상하게 되어버렸어요. 강제로 계를 받은 거지요. 동산스님의 상좌가 된 턱이지.”
● 중 되신 것 후회 안 하십니까? (법정스님이 웃으며 물었다.)
“전혀 후회 안 했지요. 혼자 살았으니까.”
● 스님께서 출가하실 때 댁에서는 반대하지 않았습니까?
“반대했지요. 내가 장자長子인데 반대 안 할 턱이 있소? 그렇지만 여러 가지 수단이 있거든. ‘중이 안 되면 내가 죽을 사주랍니다.’ 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웃음) 나를 그냥 두면 곧 죽는다는데 어떻게 하겠어요. 부모들이 그런데 제일 약하거든, 죽지만 말라고 그러지요.”
● 부인께서는?
“찾아오는 이는 어머니였는데, 내가 원체 무섭게 하니까 딴 사람은 안 왔어요. 금강산에 있을 때 어머니가 찾아오셨더군요. 막 무어라고 하니까 ‘난 너 보러 안 왔다. 구경하러 왔지.’ 그러시더군요.”
(종정스님은 세상 인연 다 그런 것이라는 듯 미소만 흘리고 있었다. 출가 전에 결혼한 부인 이야기에는 직접적인 응답이 없이 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는데, 아들을 여러 번 찾으셨던 모양이다. 성철스님은 그 낌새를 알면 산으로 못 올라오도록 어머니가 다치지 않을 만한 거리에서 돌을 던지며 피했다고 한다. 그러면 어머니는 가지고 온 옷이나 음식을 바위 위에 올려놓고 돌아갔다가 며칠 후 다시 찾아와 그 물건이 그냥 있는지 확인했다고 한다. 없어졌으면 ‘아들이 가져갔겠지’ 하고 좋아했을 모정. 그래서 실례인줄 알면서도 다시 물었다.)
마하반야바라밀 _()_
첫댓글 힘들고 힘들었을 구도의 길에....
그 힘든 세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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