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 09. 05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됐다. 사상 최대 규모인 555조8천억원이다. 초슈퍼예산이자 부족한 세금 수입을 90조 원의 국채발행으로 메우는 대규모 적자예산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지난해와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3년 연속 대폭적 적자 확장 재정 편성을 기록했다.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는 내년 예산의 상당액이 집행과 함께 생산성이 사라지는 일회성 예산이라는 점이다. 보건·복지·노동을 아우른 광의의 복지예산이 200조원에 이른다. 재정건전성에 '빨간불'이 커진 셈이다.
실제, 재정악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은 큰 문제다.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오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40%는 무너진 지 오래다.
잠재성장률 최대한 높여야
세수가 거의 늘지 않는 현실에서 이를 지탱하기 위해 90조원의 적자국채를 찍어야 한다. 올해 60조원(본예산 기준)보다 30조원이 많다. 이로써, 내년 국가 채무는 945조 원으로 불어나게 된다. 국가채무비율이 46.7%까지 오르게 된다.
공공기관 부채까지 포함하면 실제 국가부채비율은 훨씬 높다. 다음 정부, 다음 세대에게 빚을 떠넘기는 사실상의 ‘재정 패륜’에 다름아니다.
박근혜 정부로부터 660조2천억원의 나랏빚을 물려받은 문 정부는 1천조원 이상의 빚을 다음 정부에 넘겨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빠른 속도로 빚을 늘린 정부는 전무했다. 결국 국민 모두의 부담인데, 재정적자 폭증의 뒷감당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걱정스럽다.
이러다가 나라살림이 거덜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는 새겨들어야 한다. 국가채무로 부도가 난 남미 사례가 남의 일이 아니게 됐다.
규제 완화, 노동 개혁을 통해 잠재성장률을 최대한 높여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해서 지속적인 흑자 달성에 성공, 2012년 90.5%였던 국가채무비율을 지난해 69.3%로 떨어뜨린 독일이 좋은 예다. 다음 정부, 미래 세대에 빚더미를 떠넘겨야 할 사정이 있다면, 국민 앞에 소상히 설명하는 것은 물론 사죄도 해야 한다.
국가채무 관리 청사진 제시를
물론, 미증유의 코로나19 충격을 감안할 때 재정 확대와 적자 재정 편성은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의결한 내년 예산안을 뜯어보면 걱정스러운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심각한 문제는 재정 악화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 즉 재정건전성이 급격히 훼손되는 것이 우려된다.
국가채무비율이 20%대에서 30%대(2011년)로 늘어나는 데 7년 걸렸고, 이후 40%대(올해)로 증가하는 데는 9년이 걸렸다. 그러나 불과 2년 만에 50%대(2022년)로 늘어난다고 하니 그 속도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국제기준을 적용하면 공기업 부채 등을 합친 실제 국가채무비율은 2018년에 이미 100%를 넘어섰다는 분석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재정준칙 공개 시점을 또 미뤘다. 국가부채 가이드라인마저 흐지부지된다면 재정 건전성은 더욱 빠른 속도로 훼손될 수 있다.
그럴수록 재정 효율성을 철저히 따지고, 과감한 노동·규제 개혁 및 산업 구조조정을 병행함으로써 경제 회생의 발판을 다져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되어 국가 경제는 파탄으로 치닫는다.
우리나라는 개방 경제인 데다 기축통화국이 아니어서 재정 건전성의 급격한 악화는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재정은 국민이 정부에 국가를 운영하라고 맡긴 세금이다. 정부는 아껴 쓸 의무가 있다. 정부는 조속히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관리할 청사진을 마련해 국민에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나랏빚 국민 1인당 2000만원
그럼에도, 문제는 나랏빚 관리의 마지노선을 문재인 정부가 급격히 허물고 있다는 것이다.
문 정부 초기의 2017년에 비해 예산은 400.5조원에서 38.8%, 나랏빚은 660조 원에서 43.2% 늘어난 규모다. 4년의 시간 동안 겪게 된 나라 살림 현주소다.
내년에 사상 최대인 89조7천억원의 적자(赤字)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국가채무가 내년 945조원으로 올해보다 139조8천억원 늘어나게 된다. 국가채무는 2022년 1천70조3천억원, 2024년 1천327조원으로 폭증할 전망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역시 46.7%나 된다. 2022년에는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역시 50%를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국민 한 사람이 짊어져야 하는 나랏빚이 2022년 2천만원을 넘어설 것이 확실하다.
홍 부총리는 “내년 예산을 편성하면서 증세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증세에 관한 논의도 시작돼야 한다. 구멍이 급속히 커져가는 재정을 계속 빚으로만 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경제 효과 미지수
내년 예산에 대해 정부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가 몰고 온 전대미문의 보건·경제 복합위기에 대응해 민생을 구제하고 성장 동력을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설명이다.
재난의 약한 고리인 취약계층과 실직자, 매출 절벽으로 폐업 위기에 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소기업을 외면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선심성 퍼주기로 흐르기 쉬운 보건·복지·고용 예산은 올해보다 10.7% 늘어난 199조9000억 원에 달해 전체의 36%를 차지한다. 30조6000억 원이 책정된 일자리 예산의 경우 공공부문 일자리를 올해보다 10만 여개 늘어난 103만 개로 확충한다지만 알바성 노인 일자리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 효과는 미지수다.
문 정부는 코로나위기 전부터 경제 활력 회복을 이유로 해마다 대규모 적자 예산을 편성해 왔다. ‘재정중독증’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국가채무만 가파르게 늘었을 뿐 경제는 침체 늪을 벗어나지 못했다. 씀씀이에 문제가 많았다는 증거다.
성장 동력 확보와는 거리 멀어
문제는 ‘경제전시(戰時) 상황’에 따라 예정에 없던 지출이 대폭 늘어나면 그걸 감안해 불요불급한 항목은 줄이는 게 상식인데 오히려 정반대로 갔다는 점이다.
예산 증가의 상당 부분은 인기 얻기식 사업들이다. 예컨대 당초 계획보다 1년 앞당긴 전면적 고교 무상교육 실시, 장병 사기진작을 위한 이발비 지원·봉급 인상 등 미뤄도 되는 사안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임기 내에 17만4000명 더 늘리겠다는 공무원 증원 방침에 따라 내년에도 3만 명가량 늘리는 예산도 편성됐다.
또한, 그린에너지 등 한국판 뉴딜 사업에 첫해부터 21조원 규모의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부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지금까지 정부 주도의 관급 사업이 성공을 거둔 예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현금 살포나 다름없는 지역상품권 예산을 15조원으로 늘린 것은도 대선을 의식한 선심 예산이란 지적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기존 사업을 짜깁기했다는 비판을 받는 한국판 뉴딜에는 21조3000억원이 투입된다. 여기에는 뉴딜이란 명분과 달리 ‘인공지능(AI) 시대 인형 눈알 붙이기’라는 비판이 나온 일자리도 포함돼 있다. 공공분야 데이터 라벨링이 대표적이다. AI가 인식할 수 있는 형태로 사람이 데이터를 정리해 컴퓨터에 입력하는 단순 작업으로, 중장기적 성장 동력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선거 의식한 포퓰리즘 의혹
현 정부 들어서면서 씀씀이가 너무 헤퍼졌다. 애초 책정한 총지출 증가율이 연평균 4.4%인데 반해 현 정부 3년간 연평균이 10% 넘게 늘어났다.
최근 내놓은 ‘2020∼2024년 국가재정 운용계획’에서도 지출 증가율 목표를 내년 8.5%, 후년 6%로 높게 설정한 뒤 2023년과 2024년은 4%대로 낮춰 버렸다. 지출 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다음 정부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이야기다.
재정 효율성 측면에서, 그동안 일자리 예산으로만 100조 원 넘게 쏟아부었지만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13조 원을 투입한 1차 긴급재난지원금도 반짝 효과에 그쳤다. 고교 무상교육 전면 시행도 내년으로 1년 앞당기기로 했다.
내년 서울시장·부산시장 보궐선거와 그 다음해 3월의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 의혹도 짚인다. 각종 현금 복지와 선심성 사업에 거액을 쓰겠다는 계획이 잡혔다. 전체 예산의 36%에 달하는 200조원을 복지·고용 지출에 배정해 현금을 뿌리겠다는 것이다. 대선이 있는 후년엔 세금 퍼붓기가 극에 달할 것이 뻔하다.
선거를 의식한 포퓰리즘 의혹을 사는 예산 편성 여부에 대해서는 국회 심사 과정에서 철저히 따져볼 일이다.
재정준칙도 차기 정권으로
문 정부의 예산 증가 규모는 전례가 없다. 문 정부 첫해 400조원이던 예산 규모가 4년 만에 약 40%(155조원) 불어나게 됐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8년간의 증가액(130조원)을 능가하는 규모다.
초고속으로 악화하는 재정 건전성을 이젠 직시해야 한다. 정부는 올해부터 2024년까지 총수입 증가율은 3.5%, 총지출 증가율은 5.7%로 예상한다.
이렇게 되면 2022년 국가채무는 1천조원이 넘고 국가채무비율은 50.9%로 50% 선을 돌파한다. 작년 말 37.1%에서 3년 만에 13.8%포인트가 뛰는 것이다.
국가 빚이 천문학적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면서도 문 정부 임기 마지막 해인 2022년까지는 확장재정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한다. 애초에 약속했던 재정준칙도 차기 정권으로 미뤄 버렸다.
재정준칙은 재정의 건전성 지표를 법으로 강제하는 법이니만큼 이에 구애받지 않겠다는 노골적 의사표시나 마찬가지다.
▲ 내년도 예산안이 확정됐다. / ⓒ시사오늘 권희정 기자
만성 적자국 전락 가능성
기획재정부는 ‘2020∼2060년 장기재정전망’을 통해 인구 감소와 성장률 둔화 추세가 계속될 경우,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올해 43.5%에서 2045년에는 99%에 달할 것이라는 섬뜩한 예측을 했다.
달러, 유로, 엔화 등 기축통화 국가가 아닌 우리로선 국가 신용이 불안해지면 곧바로 금융·외환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 방만한 현금 뿌리기 정치의 후폭풍은 피할 수 없고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국가채무비율은 2024년 58.3%까지 올라간다는 게 정부 전망이다. 저성장 쇼크까지 겹치면 60%를 넘을 수도 있다. 국제신용평가사 피치는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이 오는 2023년까지 46%로 높아지면 국가신용등급이 내려갈 수 있다”고 경고한 상태다. 미래세대에 빚 폭탄을 안기지 않으려면 나라 곳간을 함부로 열어 젖혀서는 안 된다.
심각한 문제는 우리나라 재정 적자는 문 정부 임기가 끝나더라도 개선될 수 없게 구조화됐다는 사실이다. 한번 늘리면 줄이기 힘든 복지 지출과 공무원 인건비 같은 경직성 경비를 대폭 늘려놓아 적자 체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저출산⋅ 고령화 추세를 감안하면 재정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건전 재정 기조가 무너지고 순식간에 만성 적자국으로 전락하게 됐다.
국회, 민생과 미래 세대 걱정해야
국회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국가채무 건전성 확보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당장 국회가 현미경 같은 눈으로 정부가 제출한 예산을 꼼꼼히 따져봐야만 한다. 급한 상황이라고 무턱대고 정부안을 통과시켜서는 안 된다. 불요불급한 예산은 줄이고 재정안정 건전성 확보방안도 정부가 제시해야만 한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무작정 살포하는 방식 대신 선택과 집중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초슈퍼 예산을 소비 진작과 성장 잠재력을 높이는 데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예산 투입 대비 효용을 하나하나 다시 따져봐야 할 것이다.
내년에도 전체 예산사업 수는 8천개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전문성 높은 현미경 예산심사를 통해 정부가 짠 예산안을 조목조목 들여다보고 필요할 경우 과감하게 손질해 국민 혈세가 허투루 쓰이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국회가 정밀하게 심사할 가능성도 극히 희박하다. 거대 여당이 장악한 국회는 이미 행정부에 대한 견제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재정 퍼주기에 관한 한 여당이 정부보다 더 적극적이고, 야당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고삐 풀린 재정의 실효성을 꼼꼼히 따지고 낭비 예산을 칼질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임시국회에서 보여준 독주하는 여당, 무력한 야당이 아니라 예산심사 과정에서만큼은 위기의식을 갖고 민생과 미래 세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경제 체질 강화 진력을
재정이 결코 방만하게 운용되어선 안 된다. 씀씀이를 철저하게 따져 재정의 효율성을 극대화해야 한다.
내년의 경우 지출은 약 43조원 늘어나는데 세수는 겨우 3조원 증가할 전망이다. 코로나 위기가 종식될 때까지 팽창 재정은 불가피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을 세워 재정 건전성을 확보해야 한다.
언제까지 빚으로 구멍 난 재정을 때울 수는 없는 만큼 보편적 증세 논의도 본격화해야 한다. 이쯤 되면 솔직하게 국민에게 증세 얘기를 꺼내야 한다.
위기라고 하지만 무작정 빚만 늘릴 때가 아니다. 다음 정부와 미래세대에 천문학적인 국가채무를 떠넘기는 것은 참으로 무책임한 일이다.
정부는 자칫 국가신용도 급락으로 국가부도 위기를 맞는 일이 없도록 재정 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지지 않게 해야 한다. 초팽창 예산 폭주를 멈추고 경제 체질 강화에 힘을 쏟아야 한다. 그래야 민간 경제의 활력이 되살아나 재정 악화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병도 주필
출처 : 시사오늘(시사ON)(http://www.sisa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