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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예배] 사랑의 추억 (요일 4-8) - 김기곤 목사
오늘은 가정의 달을 맞이해서 사랑의 추억 그런 제목으로 요한일서 4장 8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니라 그런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얼마 전에 000 목사님께서 설교를 부탁하시면서 5월달 설교시니까 가정 문제로 설교를 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근데 사실 설교하는 사람들은 목회자들은 가정 문제를 별로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어쩐지 좀 쑥스럽기도 하고 또 다들 가정 문제 전문가 로 자처하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뭐 할 말도 없는 것 같아서 저도 될 수 있으면 다른 주제로 하고 싶어 했는데 5월이라서 이 주제를 할 수 없이 택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가정 문제를 제일 자신만만하게 설교한 때는 언젠가 하면 총각 전도사 때입니다.
제가 결혼도 못하고 시골교회 총각 전도사로 갔는데 생각해보면 그때 제일 가정 설교를 잘했던 것 같아요.
부인도 없고 속썩이는 자식도 없고 그래서 마음 놓고 설교를 했습니다.
한 번은 제가 시골교회 전도사로 가가지고 이제 교회를 어떻게 부흥시킬까 막막하고 무슨 일을 하면 좋을까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 인지도도 높고 그래서 고민을 했었는데 한 번은 길거리를 가다 보니까 군청 옆에 부녀회관이라고 있어요.
그래서 올지 이게 부녀회장을 한번 만나서 인사라도 하자 하고 올라갔습니다.
그 부녀 회장실에 들어가서 이야기 저 이야기 하다가 새로 우리 재림교회에 부응한 부임한 목회자인데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좋아했습니다. 금년에 무슨 계획이 있습니까?
그랬더니 뭐 꽃꼬지 강습도 분야에서 몇 번 하고 또 요리 강습도 하는데 사람들이 잘 안 와요.
그래요 뭐 다른 것은 없습니까? 그랬더니 별로 없다 그래요.
그게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 꾸려가는 비결 그런 제목으로 강습회를 하면 어떻겠습니까?
한 닷새 동안 월화수목금 합시다 그랬어요. 그랬더니 영 자신 있습니까 하고 그렇게 물어봐요.
강사는 누가 우리 초청합니까? 제가 합니다. 그랬더니 영 미심쩍어 하면서도 영 행사할 것이 없었는지 했습니다.
블랑카드를 붙여놓고 행복한 가정을 꾸려가는 비교를 해서 닷새 동안 했는데 그것이 아주 성공했어요.
사람들이 가정에 문제가 많아요. 근데 그 부녀회에서는 그 문제는 별로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지역의 유지들 부인들이 한 50~60명씩 매번 참석했는데 매일 숫자가 늘어나서 부녀회장이 그냥 웃음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제가 총각인 것은 절대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늘 없는 가정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뽑아가지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섞어서 닷새 동안 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 시골에서 우리 교회 위상이 아주 높아지고 제가 교인들하고 직접 방문을 하면 그 강의를 들었던 주부들이 아주 환대하고 대접을 잘해줬죠.
그때가 아마 가정 문제 설교할 때 제일 잘했던 것 같아요.
그다음에 전도사로 있을 때도 여러 번 했는데 고참 목사님들이 말씀을 하셔요.
김 목사 지금 애들 어릴 때 많이 하시오. 애들 크면 못해요.
그래요.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몰랐는데 정말 점점 이제 가정 문제는 설교 안 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할 수 없이 하게 됐습니다. 제가 준비하기 전에 인터넷을 한번 뒤져봤습니다.
한국의 가정이 얼마나 행복한가 어린이들은 어떻고 청년들은 어떻고 노인들은 어떤가 제가 찾아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뉴스 헤드라인으로 나온 것을 제가 몇 개 캡처했는데 혼인 건수는 11년 전보다 11년 전에 32만 7천 건이었는데 최근에는 거의 반토막이 났습니다.
이혼율도 많이 뛰었죠. 우리 이혼율은 아시아에서는 한국이 최고로 높습니다.
중국이나 일본보다도 훨씬 높죠. 세계적으로도 OECD 국가 중에서도 이혼율은 미국 다음으로 7위 한국입니다.
한국 밑으로 스위스, 프랑스, 호주, 노르웨이 같은 이런 자유분방한 국가들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동양의 한국이 6위를 7위를 차지하는지 참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 국가의 행복지수는 OECD 37개국 중에서 35위입니다.
거의 꼴찌죠. 꼴찌로 행복하지 않은 겁니다. 어린이는 어떤가?
어린이 행복지수도 OECD 중에서 꼴찌입니다.
이 어린이는 행복한 줄 알았더니 한국의 어린이들은 행복하지 않아요.
청소년은 어떤가? 청소년 자살률을 보면 그 밑에 연두색으로 돼 있는 것이 평균인데 아 저 10명당 몇 명을 나타내는 것인데 이 빨간 것은 아주 최고로 높은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청소년 자살률이 제일 높죠. OECD 국가 평균의 2.2배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보다 두 배나 더 자살을 많이 해요.
불행한 것이죠. 우리 한국의 청소년들이 행복하지 않습니다.
큰 문제죠. OECD 회원국 연령별 자살률을 보면요.
그 밑에 연두색이 평균인데 우리 한국의 자살률은 평균보다 훨씬 높습니다.
젊은이들은 2.2배고 특별히 70대 80대 노인들은 거의 3배 가까이 돼요.
다른 나라.
그래서 제가 이걸 보다가 왜 우리나라의 어린이 청년, 장년 노인 할 것 없이 다 불행한가 절반 이상이 자기는 불행하다고 생각한다고 통계가 나와 있습니다.
왜 그럴까?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천만 명이 넘는데 천만 명이 매일 새벽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하고 그러는데 어떻게 천만 명 인구의 4분의 1이 기독교인인 이 나라가 이렇게 사람들은 불행할까 어린이고 노인이고 할 것 없이 제가 이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으로서 아주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왜 그럴까 무엇 때문에 그러다가 제가 한 가지 얻은 결론은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한국이 불행하다고 그러지만은 만일 그렇다면은 이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는 다 불행하고 다 그래야 할 텐데 그러지 않거든요.
한국은 그래도 잘 사는 나라 쪽에 드는데도 이렇게 세계적으로 밑바닥으로 행복하지 않는 그런 나라가 됐습니다.
그게 제 결론은 한국 사람한테 사랑이 부족하다.
아무리 어렵고 불행한 일이 생겨도 자기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고 사랑을 나누고 살다 보면 그걸 이길 수 있는데, 그렇지 못하고 이렇게 자살하는 거 보면 2배 3배씩 자살하는 거 보면 노인들까지 문제가 있다.
한국 우리 사회에 결국은 사랑의 결핍이다. 그것이 없어서 사람이 목숨을 자살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때 나는 뭐 했을까?
그때 천만 명의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우리 캐톨릭까지 합하면 1400만 명이죠.
1400만 명의 기독교인들은 뭐 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기독교인으로서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 어떻게 수많은 사랑의 추억들을 남기면서 그렇게 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성경통독을 하다가 요한일서 4장 8절을 읽다가 상당히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늘 읽었던 성경절인데 그날따라 두 번째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탁 꽂혔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아주 당연한 말씀이죠.
당연한 말씀이고 많이 읽었었는데 그날따라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에 제 마음이 탁 꽂혔어요.
아 그렇구나.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아무리 열심히 믿음 있게 산다고 해도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결국은 사랑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구나.
알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는 말이고, 알지 못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 것과 같은 말인데 이것은 우리 삶 속에 문제가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경의 사랑이라는 말이 660번 나옵니다. 많죠.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대표적인 13장도 있습니다.
1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절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오.
그런 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그랬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 660개의 사랑하라는 말을 분석해 보면 딱 두 개로 갈라집니다.
하나는 여러분 이미 짐작하시죠? 하나님을 사랑하라 또 하나는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렇게 두 개로 분석됩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떤 서기관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계명 중에서 첫째 되는 계명 가장 중요한 계명이 무엇입니까?
그렇게 물었더니 예수님께서 아주 명쾌하게 두 가지로 분석해서 말씀하셨어요.
첫째는 이것이니 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다.
둘째는 이것이니 내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계명이 없느니라 예수님께서도 계명을 두 가지로 딱 분석해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리고 660개의 성경 절을 쭉 보다보면 마지막 변론으로 다시 요한일서 4장 8절로 돌아오게 됩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제가 오늘 사랑의 추억이라는 제목을 어떤 할아버지의 일기에서 가져왔습니다.
김목사님이 얼마 전에 85세 된 할아버지의 입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
입관 예배가 끝난 다음에 그 가족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아버님이 평소에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일기를 쓰셨는데 좀 보실랍니까?”
하면서 가족들이 아버지의 일기책을 가져왔는데 제가 다 볼 시간은 없어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며칠만 봤습니다.
근데 돌아가시기 한 3일 전 기록된 일기장을 보다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3일 전에 쓴 일기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생각해 보면 살면서 가장 소중한 것은 사랑의 추억이었다.”
그래서 참 멋있는 할아버지죠.
“나는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서
어떤 사랑의 추억을 남기고 떠나는 것일까?”
“나는 어떤 사랑의 추억을 남기고 떠난 것일까?”
이 마지막 말이 특별히 가슴에 와 꽂혔습니다.
일기를 읽은 다음에 집에 와서 아내의 얼굴도 물끄러미 봤습니다.
내가 이 사람과 어떤 사랑의 추억을 가지고 있었을까?
“하늘까지 가지고 갈 추억, 잊지 못할 추억 아마 이 사랑 우리가 하늘에 가지고 갈 것이 거의 없는데 제 생각에는 사랑의 추억만 가지고 갈 것 같아요.”
“사랑의 추억만은 하늘에서도 아마 기억날 것 같아요.
가족끼리의 사랑의 추억, 이웃끼리의 사랑의 추억, 또 제자 자식들의 아들들의 얼굴도 봤습니다.”
“이 애들과 나는 어떤 사랑의 추억이 있었나!”
마음속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어요.
또 많은 후회들이 떠 올랐습니다.
또 교회에 와서 옆에 앉아 계신 분들도 이렇게 봤습니다.
“이분과 나는 잊지 못할 어떤 사랑의 추억을 가지고 있을까?”
저도 이제 나이가 들수록 어떤 때는 잠이 안 오는 밤이 있어가지고 가만히 제 일생을 되돌아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뭐 열심히 살기는 한 것 같아요.
모태 교인으로 태어나서 신실한 재림교인이 되려고 어긋나지 않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것까지는 괜찮은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정말 사랑하면서 살아왔나 그렇게 묻는다면 후회되는 게 많아요.
어떤 때는 자다가도 누워 있다가도 일어나서 앉을 때가 있어요.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때 왜 좀 너그럽지 못했을까
왜 그때 상처를 주었을까 왜 그때 좀 사랑을 나누지 못했을까
그런 후회들이 갈수록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생각해 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이었나!
사람들이 외로울 때 그 목사님 얼굴 한번 보고 싶다.
그렇게 살아왔나 어떤 사랑의 추억을 남기고 나는 떠나는 것일까 그런 생각들 하게 됩니다.
가끔 요즘에 이제 제자들을 만나면 제가 1980년에 대학에 왔으니까 지금은 다 이제 같이 늙어가죠.
은퇴한 목회자들도 많고 옛날 목회자들을 만나면 옛날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때 이제 어떤 그 목회자들이 말해요. 목사님 제가 학생 때예요.
신학교 다닐 때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어떤 때는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때가 많았습니다.
그래요.
근데 거기까지는 좋은데 꼭 뭐라고 그러냐면 목사님은 모르셨겠지만 그래요.
제가 그 말에 아주 가슴에 몹시 박힙니다. 왜 몰랐을까 이 사람이 학생 때 그렇게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로웠다는데 나는 목회자가 돼가지고 왜 몰랐을까 그때 무슨 일이 바쁘다고 그렇게 정신없이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의 외로움이나 학생들의 고통을 몰랐을까 그런 반성을 해보게 됩니다.
우린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하지 않은 것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바칠 때가 많아요.
정작 중요한 거 정작 영혼까지 계속되는 것을 우리가 넘겨버릴 때가 많죠.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것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우리 제자들 이제 같이 늙어가는 제자들이 저보고 와서 주말 부흥회 해달라고 하면 제가 가서 옛날 제자 집에서 이 얘기 저 얘기하죠.
그때 제가 제자들한테 묻습니다. 그때 나한테 신학과 다닐 때 무슨 과목 배웠지 그렇게 물어보면 잘 몰라요.
우물쭈물해요.
저는 무슨 말 듣고 싶어서 물어보느냐 하면 목사님한테 그때 무슨 과목을 배웠는데 그때 참 잘 배워가지고 평생 목회를 잘합니다.
그 소리 좀 듣고 싶어서 슬그머니 물어보면 다 잊어버렸어요.
그런데 무엇은 안 잊어버리는가 몇십 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무엇은 안 잊어버리는가 하면 사랑의 추억만은 안 잊어버려요.
저하고 같이 나누었던 사랑의 추억 제가 한번 무심코 던졌던 그런 한마디 말 그런 것들 안 잊어버려요.
그래 이제 다 같이 늙어가는 제자들이 말합니다. 그때 목사님 제가 늦게 철이 들어서 결혼한 다음에 철이 들어가지고 신학과에 들어갔는데 너무 가난해가지고 후문에 컴컴한 지하방 하나 얻어가지고 둘이 우리 둘이 살았는데 한 번은 독감에 걸려가지고 둘이 일어나지도 못하고 학교도 못 가고 누워 있었습니다.
근데 저녁 무렵에 목사님이 방문하셨습니다. 포도주 두 병 들고 이렇게 오셨는데 그때 그 포도즙 먹고 저희 부부가 나왔습니다.
그 맛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그래요.
뭐 배웠냐 물어보면 대답을 못 하는데 포도즙은 안 잊어버려 사랑의 추억만은 안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제가 학교에 들어와서 하루 종일 강의 준비하느라고 바쁘다가 가끔 탄식합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면 뭐 하냐 다 잊어버리는 거 차라리 포도주 한 병 들고 돌아다니는 것이 훨씬 낫겠다.
사랑의 추억이 훨씬 나을 때가 많아요. 다른 수많은 다른 것보다도 한마디의 따뜻한 말이나 하나의 사랑의 추억이 몇 백 배 더 나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우리는 덜 중요한 것에 우리 인생을 낭비할 때가 많습니다.
진짜 중요한 거 진짜 하늘까지 같이 갈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무심할 때가 많죠.
우리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가 봅시다. 성경 660개의 사랑에 대한 구절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첫 번째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내 주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 하나님은 정이 많으신 분입니다. 여러분 우리 부모와 자식보다도 더 정이 많으신 분이에요.
왜 그러냐 하면 목숨까지 바쳤으니까 우리를 위해서 피를 다 쏟았으니까 정이 없을 리가 없죠.
그래서 고린도전서 8장 3절에 보면 하나님을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잊지 않으신다 그랬어요.
하나님께서도 잊지 못하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잊지 못하시는 사랑들이 있죠. 나사 성경에 나사로의 장례식 때 예수님께서 오셨습니다.
여러분 영어 성경에서 제일 짧은 절이 뭔 줄 압니까?
요한복음 11장 35절 지저스 웹프트 예수께서 우시더라가 영어 성경에서 제일 짧아요.
한국어 성경에서 제일 짧은 것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항상 기뻐하라.
저는 나를 위해서 울으실 수 있는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라는 걸 정말 감사합니다.
눈물을 흘리시는 분, 잊지 않으시는 분, 나와의 사랑의 추억을 잊지 못하시는 분 그분이 내 하나님이고 내 아버지신 것.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이 요한복음 11장 35절과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예수께서 우시더라와 항상 기뻐하라가 연결돼 있다고 생각이 가끔 들어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우셨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목숨을 바쳤기 때문에 내가 비로소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이 죄악 세상에서 슬픔 많은 세상에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과부가 두렙돈의 돈을 자기의 전재산을 헌금함에 드리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깊은 감동을 받으셨습니다.
과장까지 하셨어요. 제일 많이 넣었다. 진짜로 그렇게 느끼신 겁니다.
그 사실 여부를 떠나서 예수님께서 그렇게 느끼신 거예요.
제일 많이 넣었다. 한 백부장의 믿음을 보시고는 또 감동을 받으셨어요.
이만한 믿음은 내가 보지 못했다 그러셨습니다. 나다나엘을 만났을 때 그의 무화과 나무 아래서 울면서 기도할 때 그 옆에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나다나엘이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 당장 무릎을 꿇어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인정했죠.
스데반이 죽을 때 보좌에서 일어나신 분이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래 우리는 생각을 좀 해봐야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랑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신 때가 몇 번이나 됐을까 내 사랑을 하나님께서 느끼시고 깊은 감동을 받아서 잊지 못하겠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내 사랑은 몇 번이나 되었을까?
또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사랑 때문에 내가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은 것은 몇 번이나 되었을까?
하나님과 나 사이에 잊지 못하는 사랑의 추억들은 어떤 것일까 그런 것들을 한번 우리가 생각을 해봐야 되겠습니다.
우리는 참 약한 인간이죠. 사랑하기 너무 힘듭니다.
더군다나 우리 같은 약한 인간이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가르쳐 주셨어요.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보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 간단합니다.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는 방법도 간단해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감동스러운 사랑을 주는 것이, 잊지 못하는 사랑의 추억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과의 사랑의 추억을 만드는 것이죠.
지극히 작은 자는 내 남편이기도 하고 내 아내이기도 하고 우리 옆집 사람이기도 하고 우리 아파트 주민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인 같은 교우이기도 하죠. 우리는 크게 사랑하기는 힘든 사람들이라서 자주 사랑해야 되겠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자주 사랑하고 자주 하나님께 감사하고 자주 찬송하고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 이라고 생각됩니다.
두 번째는 사람들과의 사랑의 추억입니다. 지극히 작은 자들 우리 주변의 사람들 많이 있지만 특별히 가정의 달이니까 우리 가정에만 한정시켜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 지극히 작은 자들은 우리 가정에도 있어요. 우리 자식들 저는 제일 후회되는 것이 내 두 아들하고 시간을 많이 못 보내는 게 제일 후회돼요.
뭐가 그렇게 바쁘다고 그렇게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 남을 위한다고 하면서 정작 제 자식들하고는 깊은 영향을 끼칠 만한 시간을 못 가졌을까 나란히 앉아서 넘어가는 전역로를 바라보면서 영원한 것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그런 시간을 왜 많이 못 가졌을까 지금 이제 후회해도 늦죠.
다 장성을 해버렸습니다. 우리 부모님 지극히 작은 자 중에는 우리 부모님도 들어갑니다.
저희 부모님은 이제 다 돌아가셨지만은 제가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가 돼 보니까 부모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얼마나 저하를 기다리셨을까 얼마나 아버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 소리를 얼마나 듣고 싶으셨을까 그런 생각을 자주 하게 돼요.
요즘에 우리 두 사람이 전화를 기다립니다. 우리 두 아들 며느리 자식들한테 하루라도 전화가 안 오면 우리 집사람이 아주 기분이 죽 빠지는 것 같아요.
왜 오늘은 전화가 안 올까?
우리 부모님들도 그렇게 기다리셨을 텐데 왜 오늘은 전화가 안 오지 그렇게 기다리셨을 텐데 무심코 며칠이고 몇 주일이고 지나가던 그런 때가 있지 않았을까 그런 또 후회를 하게 됩니다.
우리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죠. 우리 부부 사이에 사랑의 추억이 제일 많이 필요하죠.
다른 사람과도 사랑의 추억이 필요하지만 저도 이제 나이가 많지만 그래도 우리 집사람이 저한테 잘해주길 바래요.
아직도 아직도 한 열 배쯤 알아주면 좋겠어요. 우리 집사람 하는 거 보면 다른 사람한테는 아주 잘해요.
집사님들한테 전화 오면 집사님 최고 하고 아주 잘해요.
장로님들하고 전화할 때도 옆에서 듣고 있으면 장로님 어쩌면 그렇게 멋있어요 그렇게 잘해요.
그래 제가 속으로 나한테도 한번 저렇게 해보지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 기대는 많이 하는데 기대에 서로 미치지 못해요.
그래서 섭섭한 것이 많죠.
제가 뭐 다른 집 이야기할 수는 없으니까 저희 집 이야기도 하죠.
이 설교자는요. 목회자가 설교할 때는 많이 외롭습니다.
특별히 교인들이 별로 감동도 못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상당히 마음이 외로워요.
어떤 목회자는 지난번에 저한테 그래 목사님 저는 설교 끝나고 기도실에 가서 통곡을 했습니다.
그래요. 그래서 제가 칭찬했습니다. 한 10년만 통곡해라 계속 그러면 설교가 아주 굉장하게 될 거다 그러는데 설교가 끝난 다음에 특별히 설교를 그렇게 잘 하나님의 뜻을 잘 전달 못했다 그런 생각이 들면은 상당히 외롭죠.
그 교인들이 뭐라고 해주길 기대하지는 않지만은 부인이 좀 뭐라고 한마디 해주기를 바래요.
저도 설교 끝난 다음에 어떤 때 저희 집사람이 한마디 해주기를 바랍니다.
근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말도 안 해요. 제가 기다리다 못해서 물어봅니다.
오늘 마이크 소리 잘 들렸어 하고 그렇게 물어봐요.
근데 제가 사실은 마이크 소리 잘 들어 그거 물어보는 거 아니에요?
상대편의 진심을 좀 알아야 돼요. 무슨 말 듣고 싶어 하는지 우리는 너무나 그게 무심해 무슨 말 듣고 저는 무슨 말 듣고 싶어서 그렇게 마이크 소리 물어보느냐 하면 오늘 설교 마이크도 잘 들리고 말 참 좋았고 우리 교인들도 참 좋아하던데요.
그 소리 좀 듣고 싶어서 물어보면 잘 들리는 것 같아요.
그러고는 그냥 말아요. 제가 또 한참 기다리다가 더 못 참아 가지고 또 물어봅니다.
저는 사람은 없었어 그렇게 물어봐 없었는데요. 그렇게 말해 제가 사실 좋은 사람 물어보는 게 아니고 그런 설교를 듣고 어떻게 좋은 사람이 있겠어요?
오늘 설교 참 좋았어요. 그 말 듣고 싶어서 그러는데 근데 우리 며느리는 보니까 참 잘해요.
제가 가끔 우리 아들 설교할 때 우리 아들이 목회자니까 둘째 아들이 설교할 때 우리 아들은 별로 안 좋아하지만 뒤에 가서 이렇게 들을 때가 있는데 듣고 나서 이제 집에 와서 이제 같이 오늘 설교 이야기 이렇게 할 때가 있는데 제가 좀 뭐라고 설교에 대한 평을 해주려고 하면은 제 며느리가 재빨리 말해요.
오늘 설교 참 좋았어요. 눈물이 나서 혼났어요. 저도 같이 들었는데 눈물 날 일은 하나도 없었는데 눈물이 나서 혼났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속으로 거짓말도 잘하네. 그렇게 그러다가 제가 며느리한테 얼마나 감사하는지 몰라요.
너 때문에 우리 아들이 사는구나. 설교 끝난 다면 얼마나 외롭겠냐 근데 부인이 눈물 났다고 하고 이렇게 위로해주니 그다음 힘을 내서 또 다음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죠.
그리고 사실 눈물 났다는 것도 생각해 보면 거짓이 아니죠.
저희가 어디에 감동을 받아서 눈물 났다는데 왜 다른 사람이 그걸 가지고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죠.
근데 또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가 우리 집사람한테 바라는 것 이상으로 우리 집사람도 저한테 바랄 겁니다.
우리 부부 사이 다 마찬가지예요. 우리 집사람도 저한테 가끔 물어요.
반찬 이렇게 해주면서 간이 맞아요 하고 물어요. 그러면 저는 그냥 무심하게 간이 맞네.
그리고 얼굴을 보면 얼굴이 별로 안 좋아요. 왜 간이 맞다고 그러는데 저 모양이지 그 사실 우리 집사람이 바라는 것은 간이 맞는가를 알고 싶어서 물어보는 게 아니라 어쩌면 이렇게 맛있지 이런 거 처음 먹어보는데 그런 말 듣고 싶어서 그러는데 어떤 때는 또 이거 맛이 없죠?
그래요. 그럼 저는 솔직하게 맛이 없네. 그럼 그냥 가지고 가버려요.
잡수지 마세요. 가지고 가버려. 그게 제가 반성할 때가 많죠.
평생 살면서도 아직도 같이 사는 사람의 마음도 기대가 뭔지도 모르는구나 이렇게 서로 어긋나기 시작하면 부부가 이제 말도 하기 싫죠.
자기가 바라는 것과는 전혀 달라요. 서로서로 섭섭한 것이 막 쌓이기 시작하죠.
제가 가정에 문제가 많은 그래서 이혼 직전까지 간 어떤 부부가 있었는데 그 부부가 다시 아주 사이가 좋아졌다고 하는 소문을 듣고 나서 한 번 만났어요.
만나서 어떻게 그렇게 다시 좋아졌어? 비결이 뭐야?
그랬더니 저한테 말해요. 목사님 우리 서로 기대를 다 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래 다 기대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그 사람이 영어로 말해요.
익스펙테이션을 다 버리기로 했습니다. 기대를 버리니까 포기해 버리니까 섭섭한 것이 없어지던데요.
아예 바라지 않으니까 섭섭한 것이 없어져서 서로 그러니까 다시 사이가 좋아졌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그거 참 좋은 방법이네. 그런데 그렇게 서로 포기하고 살면 재미가 없으니까 사는 것이 밋밋하니까 나는 포기하지만은 부인의 기대는 내가 맞춰주며 사는 걸로 하면 어떨까 그러면서 사는 것이 더 재미있을 텐데 나는 포기해.
그리고 저쪽의 기대만을 이렇게 자꾸 맞춰줘. 하나씩 하나씩 그러면 아마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거야.
제가 그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우리는 약한 사람들이죠.
우리가 이론적으로는 사랑해야 된다는 거 압니다.
그런데도 너무나 약하고 죄악 세상에 살기 때문에 힘들고 그래서 우리가 자주 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언젠가 한 번 크게 성공하리라 언젠가 한 번 크게 행복하게 해주리라 언젠가 한 번 크게 웃으리라 그러지만은 언젠가 한 번 이건 성공적인 삶이 아닙니다.
오늘이 성공적인 삶이죠. 오늘 자주 웃고 오늘 자주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렇게 하늘을 우러러 말하고 오늘 자주 따뜻한 인정을 나누면서 사랑의 추억들을 작은 추억들을 만들어가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보겠습니다.
얼마 전에 저희 집에서 재혼 이야기가 나왔는데 저희 집사람이 말해요.
나 죽으면 혼자 혼자 살지 말고 당신 꼭 재혼하세요.
그렇게 간곡히 권해요. 제가 아무 말도 안 했습니다.
괜히 말에 대답했다가 문제만 생기니까 말도 안 해서 근데 그렇게 재혼하라고 간곡히 보냈으면 됐지 얼마 있다가 물어요.
솔직히 한번 말해봐요. 나 죽으면 정말 어떻게 할 거예요?
그게 제가 기분 좋으라고 아침을 좀 했습니다. 당신 죽으면 내가 재혼하기는커녕 매일 포천 재림공원 묘지에 출근해 가지고 당신 묘 옆에서 성경도 읽어주고 나한테 평소에 잘했던 생각도 하면서 감사하고 기도도 하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저녁에 쓸쓸히 퇴근했다가 또 그다음 날 또 거리로 출근해서 또 그렇게 세월을 보내겠다 그랬더니 이 정도 아침 했으면 좋아해야지 한참 듣고 있다가 말해요.
정말로 그렇게 할 생각이라면 죽은 다음에 하지 말고 지금 좀 해봐요.
그래 근데 언젠가 하지 말고 지금 좀 하라는 것은 우리 그늘 없는 가정에 나오는 말씀들이에요.
언젠가가 아닙니다. 지금 오늘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행복하게 살고 싶으면 오늘 작은 행복을 만드셔야 돼요.
사랑의 추억을 언제 만들겠다 하시지 말고 오늘 작은 사랑의 추억들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성공적인 삶입니다. 그런 무수한 사랑의 추억들이 우리들을 서로 위로하면서 하늘까지 함께 가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https://youtu.be/agQpIT7OItA?si=qtOCmffzFyXSaZH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