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드름 / 전선용
고드름을 생각하다가 베드로라고 쓴다
바닥으로 곤두박질칠 그는
외골수,
땅을 지향한 죽음
고드름 같은 몇 번의 죄가 문신이 되어
하늘에 새겨졌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영혼을 위해
잡아도 잡히지 않는 박해를 위해
고드름도 피땀을 흘린다는 사실
물구나무선 채 죽어간 그가
저녁 무렵 소름으로 자라 내 피부에 자랐다
거꾸로 매달린다는 것과
뒤집어야 바로 보이는 것들
시체 같은 겨울,
고드름은 흔적 없이 사라질 우리의
사자 굴이다.
봄의 궤도 / 전선용
노지 바람에 일어설 줄 모르는 꽃,
어머니 등은 노란 꽃가루 만발입니다
조문처럼 다녀간 별빛이 간지럼을 유발할 때
동백은 소문 없이 내 정수리에 피고 집니다
허세 부리는 욕창과 거드름 피우는 불면
돌아누울 때마다 지구는 무너지고
방언 같은 옹알이는 고장 난 테잎처럼 꿀렁댑니다
질주를 마친 생의 미등
몇백만 광 년 거리에서 온 기별이
정맥을 좇아 수액으로 흘러가고
기도가 으스러져 섬망이 될 즈음
내 허물, 내 죄는 눈덩이처럼 커집니다
동선이 모호해진 별의 움직임
자전이 힘들어 타래 풀린 실 같은 다리는
끈 떨어진 연입니다
퇴적된 봄밤의 궤적
애기똥풀 한아름 안은 어머니
이 밤, 아리랑 넘습니다.
달리 기억의 지속 / 전선용
시계 속에서 미어캣의 시침을 본다
사막에서 황금빛 노을을 채집하던
고장 난 시곗바늘
우상처럼 섬기던 금모래가 산화해서
흙모래 시계가 됐다
착란의 시간,
시냇물이 바다에 이르고 나서 사막은
고작 호수 정도란 걸 안다
별을 바라보고 취하진 못한 고집은 바윗덩어리일 뿐,
엿가락처럼 늘어진 시간을 그물에 가둔
낙서 같은 시간
오류의 늪을 무릎으로 기는 것이
낙타가 살아가는 방식이란 것을
바닥을 통해 알았다
시시각각 불어오는 바람의 농도가
묵은지만큼 진하게 전해질 때
내가 한낱 먼지인 것을 이해한다
사막의 시간은 깊어져 어둠이 짙고
시계는 아무 일 없다는 듯
또박또박 걸어가고 있다.
그리움은 선인장이라서
bitl.bz
바지랑대 / 전선용
네가 무너질까
중심 잡는 일이다
펄럭이는 네 꿈 추락할까
힘써 지탱하는 일이다
돌아와 어깨 기대면
등까지 내미는 아량
별이 모유 같아서 모세 지팡이에 싹이 돋는다
절개된 밤에 흰머리 같은 달빛
그리움은 선인장이라서
이 자리
대못투성이다.
카페 게시글
신춘문예 등 문학상 수상작
제3회 생명과문학 작가상 / 전선용
김수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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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2.0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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