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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國志(번역) - 800[6 ~ 15]
< 전 체 번 역 >
제 사십팔 회 조조 장강의 연회에서 시를 짓고,
북군은 배들을 연환으로 묶어놓고 싸우다.
한편 방통은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급히 돌아보니 다름 아닌 서서[徐庶]가 아닌가! 방통은 그 사람이 옛 친구임을 알고 비로소 마음이 갈아 앉아 좌우를 돌아보았더니 아무도 없어 그때야 말했다. : “자네가 만약 내 계책을 퍼뜨린다면 애석하게도 강남 팔십일 주의 백성들의 목숨은 자네가 죽이고 마는 셈이네.”
서서가 웃으며 말했다. : “이 곳의 팔십삼만 인마의 목숨은 어떡하고?”
방통 : “원직이 자네 정말로 내 계획을 망칠 작정인가?”
서서 : “내가 유황숙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그 은혜를 갚을 일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네. 뿐만 아니라 조조는 우리 어머니를 핍박하여 죽인 사람이네, 내가 일찍이 종신토 록 조조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계책도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는데 지금에 와서 형의 좋은 계책을 어찌
망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도 역시 이곳에 종군하고 있는데 조조 가 전쟁에서 패하고 나면 옥석을 가리지 않고 패한 책임을
물을 터인데 난들 어찌 그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내가 탈신[몸이 위험에서 빠져나가는 것]할 방도를 가르쳐 주게, 그러면 나는
함구하고 멀리 떠나 피신하겠네.”
방통이 웃으며 말했다. : “원직이 이 사람아, 그처럼 탁월하고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이 그까짓 것 하나 해결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단 말인가!”
서서 : “선생께서 부디 좀 가르쳐 주시오.”
방통은 서서의 귀에다 대고 몇 마디 말을 했다. 서서는 대단히 기뻐 감사히 사례를 드렸다. 이리하여 방통은 서서와 이별하고 배를 타고 강동으로 돌아왔다.
한편 서서는 그날 저녁 무렵에 은밀히 가까운 심복들을 시켜 각 영채를 돌면서 헛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다음 날 영채 안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귀에 입을 대고 소곤댔다.
곧 바로 염탐 군이 이 사실을 조조에게 보고했다. : “군중에 떠도는 말인데, 서량의 한수와 마등이 모반을 하여 허도로 쳐 들어오고
있다합니다.”
조조가 이 보고를 받고 깜작 놀라 급히 여러 모사들을 불러 모아 상의를 했다. : “내가 군사를 이끌고 남정을 하면서 마음에 걱정되는 것은
한수와 마등인데 군중에 떠도는 소문이 비록 허실을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방비하지 않을 수 없다.”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서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제가 승상의 보살핌을 받고도 아직껏 촌공도 세우지 못한 것이 한이었습니다.
삼천의 인마를 주시면 밤을 도와 산관으로 가서 애구를 지키겠습니다. 만약 긴급 사항이 발발하면 그 때 다시 보고 드리겠습니다”
조조가 기뻐서 말했다. : “원직이 간다면 걱정할 것이 없지, 산관 위에 역시 군사가 있으니 공이 통솔하시오. 당장 삼천군마를 차출하여
장패를 선봉 삼아 밤을 도와 달려가 되 지체해서는 안 되오.”
서서는 조조에게 떠나겠다고 인사를 하고 장패와 같이 즉시 길을 떠났다. 이것이 바로 방통이 서서를 구출한 계책이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말했으니 :
조조가 남정하는 동안 날마다 걱정한 것은 마등과 한수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 이였지
봉추가 서서에게 한마디 가르쳐 주니 서서는 낚시 바늘 벗어나는 물고기 같았구나.
조조는 서서를 파견 보낸 후부터 마음이 조금씩 편해져서 말을 타고 먼저 강변에 늘어선 육군 영채를 시찰하고 다음에 수군 영채를 둘러보았다. 큰 배 한 척에 오르니 중앙에 “帥”자 기가 세워져 있고 양 옆으로 수상 영채가 늘어서 있는데 배위에는 궁노 일천 개가 매복되어 있다. 조조 자기는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때는 건안 13년 겨울 11월 15일이었다. 날씨는 청명하고 바람은 산들 산들 불고 물결은 잔잔했다.
조조가 명령을 내렸다. : “큰 배위에 주연을 마련하고 악대도 준비하라, 오늘 밤 여러 장수 들을 한자리에 모으려고 한다.
< 原 文 >
第四十八回 宴長江曹操賦詩 鎖戰船北軍用武
却說龐統聞言,吃了一驚;急回視其人,原來却是徐庶。統見是故人,心下方定;回顧左右無人,乃曰:「你若說破我計,可惜江南八十一州百姓,皆是你送了也!」庶笑曰:「此間八十三萬人馬,性命如何?」統曰:「元直眞欲破我計耶?」庶曰:「吾感劉皇叔厚恩,未嘗忘報。曹操逼死吾母,吾已說過終身不設一謀,今安肯破兄良策?只是我亦隨軍在此,兵敗之後,玉石不分,豈能免難?君當教我脫身之術,我即緘口遠避矣。」統笑曰:「元直如此高見遠識,諒此有何難哉!」庶曰:「願先生賜教。」統去徐庶耳邊略說數句。庶大喜,拜謝。龐統別却徐庶下船,自回江東。
且說徐庶當晚密使近人去各寨中暗布謠言。次日,寨中三三五五,交頭接耳而說。早有探事人報知曹操,說:「軍中傳言西涼州韓遂,馬騰謀反,殺奔許都來。」操大驚,急聚衆謀士商議曰:「吾引兵南征,心中所憂者,韓遂、馬騰耳。軍中謠言,雖未辨虛實,然不可不防。」
言未畢,徐庶進曰:「庶蒙丞相收錄,恨無寸功報效。請得三千人馬,星夜往散關把住隘口。如有緊急,再行告報。」操喜曰:「若得元直去,吾無憂矣。散關之上,亦有軍兵,公統領之。目下撥三千軍步軍,命臧霸爲先鋒,星夜前去,不可稽遲。」徐庶辭了曹操,與臧霸便行。……此便是龐統救徐庶之計。後人有詩曰:
曹操征南日日憂,馬騰韓遂起戈矛。鳳雛一語教徐庶,正似游魚脫釣鉤。
曹操自遣徐庶去後,心中稍安,遂上馬先看沿江旱寨,次看水寨。乘大船一隻,於中央上建「帥」字旗號,兩傍皆列水寨,船上埋伏弓弩千張。操居於上。時建安十三年冬十一月十五日,天氣晴明,平風靜浪。操令:「置酒設樂於大船之上,吾今夕欲會諸將」。
< 文 段 解 說 >
(1)第四十八回 宴長江曹操賦詩 鎖戰船北軍用武
却說龐統聞言,吃了一驚;急回視其人,原來却是徐庶。統見是故人,心下方定;回顧左右無人,乃曰:「你若說破我計,可惜江南八十一州百姓,皆是你送了也!」庶笑曰:「此間八十三萬人馬,性命如何?」統曰:「元直眞欲破我計耶?」庶曰:「吾感劉皇叔厚恩,未嘗忘報。曹操逼死吾母,吾已說過終身不設一謀,今安肯破兄良策?只是我亦隨軍在此,兵敗之後,玉石不分,豈能免難?君當教我脫身之術,我即緘口遠避矣。」統笑曰:「元直如此高見遠識,諒此有何難哉!」庶曰:「願先生賜教。」統去徐庶耳邊略說數句。庶大喜,拜謝。龐統別却徐庶下船,自回江東。
제사십팔회 연장강조조부시 쇄전선북군용무
각설방통문언,흘료일경;급회시기인,원래각시서서。통견시고인,심하방정;회고좌우무인,내왈:「니약설파아계,가석강남팔십일주백성,개시니송료야!」서소왈:「차간팔십삼만인마,성명여하?」통왈:「원직진욕파아계야?」서왈:「오감유황숙후은,미상망보。조조핍사오모,오이설과종신불설일모,금안긍파형양책?지시아역수군재차,병패지후,옥석불분,기능면난?군당교아탈신지술,아즉함구원피의。」통소왈:「원직여차고견원식,양차유하난재!」서왈:「원선생사교。」통거서서이변약설수구。서대희,배사。방통별각서서하선,자회강동。
賦 구실 부, 읊다, 읊다, 영송(詠誦)함, 시가(詩歌)를 짓다. 鎖 쇄사슬 쇄, 잠그다. 用武 무력을 사용하다, 전쟁하다, 완력을 쓰다. 吃 말 더듬을 흘, 당하다, 받다, 입다, (…에게) …당하다. 原來 원래, 알고 보니, 본래. 却是 실인 즉. 알고본 즉. 送 보낼 송, 버리다, 망치다. 此間 여기, 이 근처, 이곳. 性命 목숨, 생명. 忘 잊을 망, 다하다. 未嘗 일찍이 …한 적이 없다, …이라고 말할 수 없다, 지금까지 …못하다, 결코 …(이)지 않다. 逼 닥칠 핍, 협박하다. 只是 다만, 오직, 그러나. 諒 살필 량, 이해하다, 양찰하다.
< 해 석 >
제 사십팔 회 조조 장강의 연회에서 시를 짓고,
북군은 배들을 연환으로 묶어놓고 싸우다.
한편 방통은 그 말을 듣고 너무 놀라 급히 돌아보니 다름 아닌 서서[徐庶]가 아닌가! 방통은 그 사람이 옛 친구임을 알고 비로소 마음이 갈아 앉아 좌우를 돌아보았더니 아무도 없어 그때야 말했다. : “자네가 만약 내 계책을 퍼뜨린다면 애석하게도 강남 팔십일 주의 백성들의 목숨은 자네가 죽이고 마는 셈이네.”
서서가 웃으며 말했다. : “이 곳의 팔십삼만 인마의 목숨은 어떡하고?”
방통 : “원직이 자네 정말로 내 계획을 망칠 작정인가?”
서서 : “내가 유황숙의 두터운 은혜를 입어 그 은혜를 갚을 일을 한시도 잊어본 적이 없네. 뿐만 아니라 조조는 우리 어머니를 핍박하여
죽였네, 내가 일찍이 종신토록 조조 를 위해서는 단 하나의 꾀도 쓰지 않겠다고 말했는데 지금에 와서 형의 좋은 계책을
어찌 망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나도 역시 이곳에 종군하고 있는데 조조가 전쟁에 서 패하고 나면 옥석을 가리지 않고 패한 책임을 물을 터인데 난들 어찌 그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 자네가 내가 탈신[몸이 위험에서 빠져나가는 것]할 방도를 가르쳐 주게,
그러면 나는 함구하고 멀리 떠나 피신하겠네.”
방통이 웃으며 말했다. : “원직이 이 사람아, 그처럼 탁월하고 앞일을 내다보는 사람이 그까짓 것 하나 해결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단
말인가!”
서서 : “선생께서 부디 좀 가르쳐 주시오.”
방통은 서서의 귀에다 대고 몇 마디 말을 했다. 서서는 대단히 기뼈 감사히 사례를 드렸다. 이리하여 방통은 서서와 이별하고 배를 타고 강동으로 돌아왔다.
(2)且說徐庶當晚密使近人去各寨中暗布謠言。次日,寨中三三五五,交頭接耳而說。早有探事人報知曹操,說:「軍中傳言西涼州韓遂,馬騰謀反,殺奔許都來。」操大驚,急聚衆謀士商議曰:「吾引兵南征,心中所憂者,韓遂、馬騰耳。軍中謠言,雖未辨虛實,然不可不防。」
차설서서당만밀사근인거각채중암포요언。차일,채중삼삼오오,교두접이이설。조유탐사인보지조조,설:「군중전언서량주한수,마등모반,쇄분허도래。」조대경,급취중모사상의왈:「오인병남정,심중소우자,한수、마등이。군중요언,수미변허실,연불가불방。」
晩 저물 만, 해질 무렵, 저녁.當晩 그날 저녁. 謠 노래 요, 유언비어. 謠言 유언비어, 풍설. 交頭 머리를 맞대고. 接耳 남의 귀에 입을 대고 작은 소리로 말함. 探事人 염탐군. 傳言 떠도는 말, (남의) 말을 전하다, 소문, 풍문. 殺 죽일 살, 돌진할 쇄, 쇄도할 쇄. 奔 달릴 분. 聚 모일 취. 辨 분별할 변.[辯 말 잘할 변, 辮 땋을 변].
< 해 석 >
한편 서서는 그날 저녁 무렵에 은밀히 가까운 심복들을 시켜 각 영채를 돌면서 헛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다음 날 영채 안에는 삼삼오오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서로 귀에 입을 대고 소곤댔다.
곧 바로 염탐 군이 이 사실을 조조에게 보고했다. : “군중에 떠도는 말인데, 서량의 한수와 마등이 모반을 하여 허도로 쳐 들어오고 있다
합니다.”
조조가 이 보고를 받고 깜작 놀라 급히 여러 모사들을 불러 모아 상의를 했다. : “내가 군사를 이끌고 남정을 하면서 마음에 걱정되는 것은
한수와 마등인데 군중에 떠도는 소문이 비록 허실을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방어하지 않을 수 없다.”
(3)言未畢,徐庶進曰:「庶蒙丞相收錄,恨無寸功報效。請得三千人馬,星夜往散關把住隘口。如有緊急,再行告報。」操喜曰:「若得元直去,吾無憂矣。散關之上,亦有軍兵,公統領之。目下撥三千軍步軍,命臧霸爲先鋒,星夜前去,不可稽遲。」徐庶辭了曹操,與臧霸便行。……此便是龐統救徐庶之計。後人有詩曰:
操征南日日憂,馬騰韓遂起戈矛。
鳳雛一語教徐庶,正似游魚脫釣鉤。
언미필,서서진왈:「서몽승상수록,한무촌공보효。청득삼천인마,성야왕산관파주애구。여유긴급,재행고보。」조희왈:「약득원직거,오무우의。산관지상,역유군병,공통령지。목하발삼천군보군,명장패위선봉,성야전거,불가계지。」서서사료조조,여장패변행。……차변시방통구서서지계。후인유시왈: 조정남일일우,마등한수기과모。 봉추일어교서서,정사유어탈조구。
蒙 입을 몽. 錄 기록할 록, 보살피다. 收錄 현대어에서는 ‘책이나 잡지 등에 글을 싣다[수록하다]’라는 의미로 쓰이지만 고전이나 백화문 소설에서는 ‘사람을 거두어 채용하다’ ‘거두어 부하로 삼다.’라는 뜻이다. 效 본받을 효, 드리다, 바침. 報效 (은혜에 감사하여) 있는 힘을 다하다, 진력하다. 得 얻을 득, 차지함, 손에 넣음. 散關 관문 이름. 사례주 우부풍군(右扶風郡) 진창현(陳倉縣)에 속했다. 송(宋)나라 이후에는 이름을 대산관(大散關)이라 했다. 고대의 군사 요충지였는데, 옛터는 지금의 섬서성 보계시(寶鷄市) 대산령산(大散嶺山)에 있다. 星夜 별이 밝은 밤, 별이 보이는 밤. 전[轉]하여 ‘밤’이란 뜻으로도 사용 됩니다. 把 잡을 파, 쥐다. 把住 지키다, 점유하다, 붙잡다, 꼭 잡다. 隘 좁을 애. 目下 지금, 바로 지금, 앞에 닥친 지금. 撥 다스릴 발, 배치하다. 차출하다. 稽 머무를 계. 稽遲 머물다, 지체하다, 정체하다, 끌다. 辭 말씀 사, 고별하다, 이별하다, 알리다. 便是[변시] 다른 것이 아니라 이것이 곧. 戈 창 과, 전쟁. 矛 창 모. 游 놀 유, 헤엄칠 유. 釣 낚시 조. 鉤 갈고랑이 구. 釣鉤 낚시.
< 해 석 >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서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 “제가 승상의 보살핌을 받고도 (승상께서 저를 거두어 써셨는데도)아직껏 촌공도 세우지 못한 것이 한이었습니다. 삼천의 인마를 주시면 밤을 도와 산관으로 가서 애구를 지키겠습니다. 만약 긴급 사항이 발발하면 그 때 다시 보고하겠습니다”
조조가 기뻐서 말했다. : “원직이 간다면 걱정할 것이 없지, 산관 위에 역시 군사가 있으니 공이 통솔하시오. 당장 삼천군마를 차출하여
장패를 선봉 삼아 밤을 도와 달려가 되 지체해서는 안 되오.”
서서는 조조에게 떠나겠다고 인사를 하고 장패와 같이 직시 길을 떠났다. 이것이 바로 방통이 서서를 구출한 계책이다. 후세 사람이 시를 지어 말했으니 :
조조가 남정하는 동안 날마다 걱정한 것은 마등과 한수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 이였지
봉추가 서서에게 한마디 가르쳐 주니, 서서는 낚시 바늘 벗어나는 물고기 같구나.
(4)曹操自遣徐庶去後,心中稍安,遂上馬先看沿江旱寨,次看水寨。乘大船一隻,於中央上建「帥」字旗號,兩傍皆列水寨,船上埋伏弓弩千張。操居於上。時建安十三年冬十一月十五日,天氣晴明,平風靜浪。操令:「置酒設樂於大船之上,吾今夕欲會諸將」。
조조자견서서거후,심중초안,수상마선간연강한채,차간수채。승대선일척,어중앙상건「수」자기호,양방개렬수채,선상매복궁노천장。조거어상。시건안십이년동십일월십오일,천기청명,평풍정랑。조령:「치주설악어대선지상,오금석욕회제장」。
稍 벼 줄기의 끝 초, 점점, 조금씩 더하거나 덜하여지는 모양. 張 베풀 장, 헤아리는 단위. 거문고나 활 등을 헤아리는 단위. 建安 13년 서기 208년. 신라 奈解尼師今 13년. 晴 갤 청. 靜 고요할 정.
< 해 석 >
조조는 서서를 파견 보낸 후부터 마음이 차차 편해져서 말을 타고 먼저 강변에 늘어선 육군 영채를 시찰하고 다음에 수군 영채를 둘러보았다. 큰 배 한 척에 오르니 중앙에 “帥”자 기가 세워져 있고 양 옆으로 수상 영채가 늘어서 있는데 배위에는 궁노 일천 개가 매복되어 있었다. 조조 자기는 그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때는 건안 13년 겨울 11월 15일이었다. 날씨는 청명하고 바람은 산들 산들 불고 물결은 잔잔했다.
조조가 명령을 내렸다. : “큰 배위에 주연을 마련하고 악대도 준비하라, 오늘 밤 여러 장수 들을 한자리에 모으려고 한다.”
2026년 8월 4일
이 종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