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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사람과 인사를 하겠습니다. 그동안은 제가 인사말을 여러분의 입에 담아드렸는데, 오늘은 하시고 싶으신 대로 하고 싶은 말들을 담으셔서 옆 사람과 인사하겠습니다. 인사합니다.
질문으로 말씀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최근 요 근래에 하나님이 주신 마음에 순종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깨달은 말씀을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알고 순종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거절하지 않고 순종하려고 노력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성령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도 해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일에 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아야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이 자신에게 하신 말씀은 구별할 줄 알아야 돼요. 이 말씀이 나를 위한 것인지 아닌지 정도는 알아야 된다는 거예요. 자녀는 아버지 어머니의 음성을 구별하잖아요. 여러분이 많은 사람들이 있어도 부모가 부르면 부모의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리는 것처럼 자녀라면 하나님의 자녀라면 최소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음성은 들을 수 있어야 되는 거죠.
오늘 이 말씀이 나를 위한 것인지, 오늘 주신 이 깨달음이 나를 위한 것인지는 구별을 해야 우리가 성도이고 하나님의 자녀일 수 있습니다.
여러분 펭귄들이 새끼를 놓고 이제 먹이를 구하러 바다로 뛰어들잖아요. 여러분 보셨던 것처럼 병아리 새끼 이렇게 구별이 될까요? 구별이 안 돼요. 펭귄들도 이 새끼들은 모양새가 똑같아서 구별되지가 않아요.
그런데 모든 펭귄들이 다 어미를 만나요. 왠지 아세요? 부모는 그 어미는 새끼의 소리를 구별하고 새끼는 엄마의 소리를 구별하기 때문인 거예요. 여러분 펭귄도 아버지 어머니의 소리를 구별할 줄 안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여러분과 저도 최소한 아버지 하나님의 음성은 우리가 구별할 수 있지 않아야 될까요?
오늘 이 말씀이 나를 위한 것인지, 요즘 내게 늘 내 마음에 주신 이 마음이 나를 위한 것인지는 구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성도는 또한 성령이 주시는 마음에 순종할 줄 알아야 됩니다. 또한 성도는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거절했을 때 어떤 영적인 손해가 일어나는지도 알아야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할 줄도 알아야 되지만 이 음성을 거절했을 때 어떤 손해가 나에게 있는지도 알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거절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거절하면 일단 기도가 응답이 되지 않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의 능력도 중단이 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말씀도 하나님의 이끄심도 멈춰지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공급되는 많은 영적인 부하들도 다 중단이 돼요. 우리가 성령이 주시는 마음을 왜 거절하지 말아야 되느냐 실질적인 손해가 있기 때문인 거죠.
사람들은 물질의 손해는 민감하지만 영적인 손해에 대해서 민감하지 않아요. 그래서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았을 때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지 않았을 때 어떤 소녀가 이 손해가 있는지를 잘 모르고 실제 손해가 있어도 그거를 잘 구별해내지 못할 경우가 많아요.
여러분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하루 장사 안 하면 하루 수입이 거둬들이지 않잖아요. 내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순간 그만큼의 영적인 손해가 바로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거예요. 하루 일하면 하루 수입이 없는 것처럼 내가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고 거역하면 곧바로 영적인 손해가 나에게 온다. 우리가 이 정도는 우리가 알고 있어야 됩니다.
요즘 새벽 기도회를 위한 말씀을 준비하고 그리고 새벽 기도 시간에 말씀을 전할 때 되게 마음이 행복합니다. 물론 이번 주는 성도들이 좀 줄었어요. 되게 최근에 참 많이 나오시다가 이번 주간은 조금 줄시더라고요. 그래도 그것과 상관없이 말씀을 전하는 저는 되게 행복했고 준비할 때도 되게 기분이 좋았어요. 성령의 일하심에 대한 깊은 깨달음이 깨달음을 하나님이 저에게 몇 시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공식적으로는 4번의 전도 여행을 했고, 비공식적으로는 4번 이상 5번, 6번 전도여행을 했을 것이라고 추측을 합니다. 사도바울의 이 전도 여행의 모든 발걸음이 성령 안에 있었다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처음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로 임명받고 파송될 때도 성령의 보내심으로 파송을 받았고요. 사도바울이 로마로 향할 때도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서 로마로 향했고, 사도 바울이 안디옥에서 선교사로 임명받아 처음 사역한 곳이 사람이라는 곳인데, 이곳에 사역할 때도 성령이 사도바울을 이끌었어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삶이 위대했던 것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인 거죠. 자기의 능력, 자기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이끄심으로 살아서 사도바울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 4절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바나바와 바울은 성령이 가라고 보내심으로
실루기아로 내려가서 거기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가 실루기아와 키프로스를 거쳐 다음에 간 도시가 살람이고, 살라미에서 바울은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니까 사도바울의 사역의 시작은 사람이 한 것이 아니라 성령이 한 거죠. 사도바울의 사역의 시작은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계셨던 것입니다. 성령께서 그가 첫 사역을 어디에 시작할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시고 정확하게 인도해 주셨어요.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의 전도 여행은 사람에 의한 여행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영이다. 성령이 시작하고 또 이끌어가시고 완성하신 여행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을 때의 기록입니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이 거의 끝나지 않는 시점에 전도가 아직 끝나지도 않은 거죠. 선교 여행이 그런데 바로 로마에 대한 비전을 선포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우리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이 일이 있은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여야 하리라 하고
사도 바울은 1차 전도 여행은 46년부터 48년까지 횟수로만이 아니라 그냥 횟수로 한 3년 동안 진행이 되었고요. 2차 전도 여행은 49년에서 52년까지 한 4년 동안 진행이 되었고, 3차 전도 여행은 53년부터 58년까지 한 6년간 전도 여행을 다녔어요. 바울은 그러니까 쉬지 않고 13년 동안 전도 여행을 다닌 거예요. 물론 1차 전도여행을 갔다 오고 난 뒤 한 1년 정도 쉬긴 쉬었어요.
근데 그때도 실은 우리처럼 안식년이라고 해서 사 어디가 쉰 게 아니라 계속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신 시간 없는 게 없는 것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러니까 13년 동안 쉬지 않고 계속 사역한 바울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새로운 비전과 새로운 길을 보여주셨어요. 그것이 예루살렘과 로마에 대한 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예루살렘에게 가는 것을 반대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바울도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을 성령으로부터 받았고, 또 성령 충만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이 이 예루살렘에 가서 많은 박해와 환란을 받을 것을 환상으로 봤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21절을 한국어 성경으로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과 로마에 대한 비전을 품을 때 성령과 관계없이 품은 것처럼 이렇게 보여요. 왜냐하면 성령이라는 단어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221절을 잘못 보면 그냥 바울이 개인의 생각과 열정으로 예루살렘과 로마에 대한 선교 비전을 세운 것처럼 보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헬라어 성경에를 보면 이 작정하다는 단어가 성령 안에서 결심하다라는 이런 의미로 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바울이 영 안에서 이 일을 결정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의 이끄심으로 예루살렘과 로마에 대한 비전을 품었다는 겁니다. 21절을 킹 제임스 버전으로 함께 보겠습니다. 시작
이 일들이 끝난 후에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려고 영 안에서 작정하여 이르되 내가 거기에 있다가 반드시 로마도 보여야 하리라 하고,
바울이 아직 3차 전도 여행이 다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예루살렘에 대한 또 로마에 대한 비전을 세운 것은 성령의 이끄심 때문이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울은 언제든지 성령이 인도하시면 자기의 순교 여행의 목적지도 그리고 거쳐가는 이 가정도 다 바꾸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자기의 뜻과 생각이 없는 사람이 아니었죠. 성령에 대한 간절함이 너무 커서 그리고 성령에 순종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서 선교의 비전을 다시 세우고 길을 출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사도 바울의 마음이 없었다면 로마 선교에 대한 비전은 세워지지 않았을까요? 한번 따라가겠습니다.
자세가 사역을 완성시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늘 기도하는 이 기도의 자세가 목회자의 사역을 완성시키고 우리가 사역할 때 어떤 태도들이 이 태도가 처음 시작부터 끝까지 줄어들거나 약해되지 않고 계속될 때 사역이 완성이 되더라고요.
사도바울이 멋진 사역을 완료하고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성령의 이끄심에 날마다 순종하는 이 태도로 평생을 살았기 때문인 거예요. 성도들의 좋은 태도가 교회를 완성시키고 목회자의 좋은 태도가 교회를 부흥시키게 만들어요. 사도바울의 이 좋은 태도가 평생 사도바울의 가운데 있었고, 그러므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이 이 로마 선교에 대한 비전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은 성령에 대한 말씀을 한두 가지 더 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먼저 성령의 이끄심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은 우리의 삶과 무관한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예수를 믿고 나면 하나님도 또 예수님도, 성령님도 나와 무관하다. 내가 교회를 다닐 뿐인 거지 그냥 나와 무관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믿음이 좀 있는 분들은 하나님과 예수님과는 관계를 연결시키지만 성령과는 관계를 연결시키지 않아서 교회를 오래 다니고 신앙이 좀 있어도 내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된다는 생각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은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는 무관한 분이 아니라는 거예요.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우리에게 대신 보내심을 받은 분인 거죠.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대신 보내심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행하셨던 일들을 성령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도록 보내심을 받으신 것이 성령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은 우리의 삶에 관여하시는 분이신 거예요.
성령은 우리의 삶을 이끄시고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에 민감해야 하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은 하나님의 일과 관계되어 있다는 거예요. 성령이 사람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이끌어가지 않는다는 거예요. 성령이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우리를 이끄신다는 거죠.
그러니까 성령이 이끌어가신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금 나와 우리 교회에 하실 일이 있다는 의미인 거예요. 성령은 사람에게 충성하는 영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는 영인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일하신다는 것은 하나님의 일들이 지금 우리 교회와 내 인생 안에 계획되고 있다.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 하나님의 일들이 내 안에 열매 맺어줄 수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성령은 사람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를 인도하신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이 땅의 삶을 사셨던 것처럼 성령도 아버지와 아들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분인 거예요. 그렇기 위해서 성령은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자꾸 성령 안에 있으니 기쁨이 충만해진다. 이렇게 기쁨의 포인트를 맞춰요. 내가 기뻐하고 내가 즐겁고 나 요즘 성령 안에서 너무 행복해.
여러분 이거는 정말 성령에 대해서 조금 이해한 거예요. 물론 성령이 함께 계시면 우리가 충만하면 성령이 나를 이끌어가시면 행복하죠. 그러나 성령이 우리를 이끄시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우리 가운데 역사하신다는 걸 알아야 돼요. 사람의 일을 이기기 위해서 보낸 하나님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영인 거예요. 그래서 성령이 일하신다는 것 우리의 삶에 지금 하나님의 일이 진행되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음성 음성에 민감해야 되고 성령의 음성을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순종하면 사람의 일이 이루어집니다. 반대로 성령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져요. 우리가 사람에게 충성하면 사람의 일이 이루어져요. 하나님께 충성하면 하나님께 일이 이루어지고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면 하나님의 일들이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교회를 이끌어가신다. 지금 우리 교회를 통해서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신 거예요. 성령이 요즘 나에게 자꾸 말씀을 하신다. 나를 통해서 이루고 싶은 하나님의 일이 있으신 거예요. 그래서 말씀하시려고 하신 거예요. 그럼 당연히 우리는 우리는 아버지의 음성을 들을 줄 아는 게 우리 자녀의 본분이잖아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병아리도 부모를 분별해요. 병아리도 펭귄들의 새끼도 부모의 음성을 분별해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분간하지 못한다는 게 이게 영적으로 말이 되는 일일까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이 보내신 영이신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분간하지 못한다는 게 이게 말이 될까요? 그래서 교회에 자꾸 사람의 일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교회 안에 사람의 일이 이루어지는 걸 수없이 많이 보셨죠? 왜요? 우리가 사람에게 충성해서 그래요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면 성령의 일이 하나님의 일이 교회의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했습니다. 순종해서 이방인의 사도라는 하나님이 그에게 준 이 사명을 다 감당할 수 있었어요.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명도 주시고 사명을 완성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그의 삶을 이끌어 가셨던 거예요.
여러분 아셔야 될 게 하나님께로부터 온 비전은 누가 이루어요? 하나님이 이루어요. 교회가 하나님의 품으면 이 비전을 이루기 훨씬 더 쉬워요. 목사의 생각을 비전으로 품으면 이건 사람의 일이니까 너무 어려워요.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마음에 품으면 이게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기 때문에 훨씬 수월합니다. 사도바울의 삶에 역경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그는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다 완성할 수 있었어요.
왜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전도 여행 중에 있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대한 비전, 로마에 대한 비전을 심어주셨습니다.
여러분 중간에 목적지를 바꾸는 거 되게 힘든 일이에요. 여행을 가다가 여행 목적지를 바꾸면 되게 힘들잖아요. 마찬가지죠. 선교 여행의 목적지를 제가 태국 선교 여행을 준비해서 열심히 가다가 갑자기 제가 미얀마로 실제 이렇게 틀 수는 없지만 미얀마로 목적지를 바꿨어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난리가 나죠. 사도바울은 최소한 성령이 자기를 인도하신 영이라는 하나님이 대신 보내신 영이라는 사실을 인정했고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시간과 순간과 타이밍에 자신의 선교 여행의 목적지를 바꿔도 그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권위를 인정하면 그 권위자가 뭔가를 변경해도 별 이의가 없어요. 그런데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자꾸 뭔가를 바꾸면 사람들이 항의를 해요. 요즘 왜 이렇게 우리나라가 막 항의 투성이냐 하면 이제 권위를 인정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항의가 많아져요.
하나님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면 하나님이 내 인생의 목적지를 수없이 바꿔도 아멘 하며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거예요. 교회가 하나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하나님이 순간순간 주시는 그 사역과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거죠.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메시지라면 우리가 어떻게 거역할 수 있을까요? 네 지난날을 돌아보면 아마 저나 여러분이나 수없이 하나님의 이끄심에 거역했던 날들이 있을 거예요. 아마 지금도 우리 중에는 또 저도 하나님의 음성을 거역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거역해도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그게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도 모르는 거죠. 그래서 하나님의 일들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지 않는 겁니다.
사람의 일들이 사람의 일은 결과가 아주 복잡해요. 사람의 일은 이루고 나도 불란이 일어나요. 사람의 일은 이루고 나도 열매가 없어요. 사람의 일은 겉은 화려한데 속은 다 썩었어요. 하나님의 일은 그렇지 않아요. 겉은 형편없어도 속은 알차고 열매 없는 것처럼 보여도 열매는 많아지고 바울이 로마에 가서 무슨 열매를 얻었어요? 죽은 게 전부였잖아요. 근데 전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어요. 그로 말미암아 이게 하나님이 하신 일의 모양새인 것입니다.
성령은 바울의 생각과는 다른 길을 계속 만나셨습니다. 여러분 아셔야 될 게 내 생각과 다르지만 하나님의 길은 항상 옳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해야 됩니다. 제가 몇 주 전 설교 때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는 솔직히 죽음에 대한 이해를 다 하지 못해요. 저도 어머님의 돌아가신 거에 대한 이해가 다 되지가 않더라고요. 장남이니까 장례 전체를 이렇게 주관해야 되잖아요. 물론 이제 제가 목사니까 장례식을 얼마나 많이 치러봤겠어요 그래서 그래도 그래도 우리 부모는 처음이니까 이게 되게 혼란이 있었어요. 좀 더 살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고 등등 제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에 깨달은 게 하나 있는데 성도들의 마음을 조금 알겠더라고요.
그러니까 부모님이 저기 부모님 안 계신 분이 되게 많잖아요. 그 마음을 조금 알겠어요? 저는 부모님이 한두 번 생각날 줄 알았는데 한두 번이 뭐예요? 많을 때는 하루에 한 20~300번 생각나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제가 울거나 이렇게 하지는 않지만 이게 쉬운 감정의 처리는 아니에요. 근데 그게 이제 첫날 제 마음이었어요. 근데 하나님이 둘째 날 아침에 하나님의 시간은 옳다는 마음을 주셨어요.
성령이 제게 주신 마음 하나님의 시간은 옳다. 내 시간은 봐라. 내 생각에 빠른 것 같지만 내 시간은 오라라는 음성을 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그 음성을 듣고 마음의 평안을 누리고 지금까지 잘 생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이 이끄시는 길은 항상 옳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야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차도 제대로 운전하지 못해요. 여러분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안 내신 분 있나요? 물론 어제 운전하신 분 안 내셨겠죠? 사고 한 번 안 내고 운전하기는 거의 불가능해요. 여러분 운전하다가 안 좋으신 적 있나요? 한두 번 다 좋으셨죠? 우리는 차도 제대로 운전하지 못할 연약한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의 이끄심에 내 인생의 운전대를 맡겨야 되는 거예요.
하나님 한번 따라가겠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에 내 인생에 운전대를 맡기겠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잡고 있고 잡고 있지 마십시오. 맡기십시오. 두 번째로 성령이 이끄시는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순종하면 평탄한 길이 열릴 거라 생각해요.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해서 복종하면 좋은 길이 열릴 거라고 생각해요.
사도행전 20장 22절 23절입니다. 같이 한번 읽습니다. 시작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란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그러니까 로마에 대한 비전을 주셨는데 하나님은 그 가는 길에 있는 환란과 박해도 함께 보여주셨어요. 성령이 이끄신다고 해서 인생의 어려움이 그 일에 완성하는 데 드는 수고가 다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하면 고난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령이 이끄신다면 어려움이 없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성령의 이끄심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환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로마로 이끄셨지만 그 길에는 많은 박해와 환란이 있었고, 심지어 감옥도 있었고 심지어 죽음도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환란 때문에 성령의 인도를 거역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 음성에 순종하는데 어려움 때문에 그 길에 있는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됩니다. 박해와 환란이 있어도 그 길을 걸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바울의 발걸음이 강력했던 겁니다. 박해가 있어도 길을 가면 그 길은 강력한 길이 되어 어려움이 있어도 그 길을 가면 그 길은 강력한 길이 됩니다.
왜 우리의 길이 약할까요? 우리의 목회의 발걸음이 약할까요? 환란과 박해를 이겨내지 못해서예요. 피해서예요.
이제 말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마무리도 아주 짧지는 않아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박해와 환란을 이겨낼 수 있는 거예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박해와 한란도 방해 거리가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가장 합당한 길, 가장 좋은 길이 열립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성령의 은사와 성품으로 사역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나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요즘 들어 주시는 마음이 하나 있는데 목회자나 선교사들이 자기의 일을 하더라고요.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맹세한 게 목회자들이잖아요.
그런데 자기 일을 하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성령의 이끄심에 순종하지 않아서 그래요. 우리 교회는 외국의 아이들이 마음만 먹으면 제가 구미대학으로 아이를 초청해서 이 아이들을 여기서 학교 다니게 하고 또 나중에 취업까지 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는 일본과 다른 나라 나서 외국인과 임금의 차별이 없어요. 그래서 되게 높은 임금을 받고 그래서 지금 외국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해요.
근데 선교사님들이 안 보내줘요. 왜냐하면 보내면 자기 교회 섬길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이해는 돼요. 이해는 돼요. 근데 그래도 자기의 제자들이 잘 살고 행복한 게 좋은 게 아닐까요? 언제나 내 밑에서 내 종노릇하는 것보다 이 사람들이 잘 사는 게 진짜 목자의 마음이 아닐까요?
이런 마음을 안 갖더라고요. 제가 설득을 하고 설득을 해도 안 돼요. 왜 그럴까요? 자기의 일을 하기 때문인 거예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환란이 아니라 사명이 보입니다. 한번 따라하겠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환란이 아니라 사명이 보입니다.
또 따라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고난이 아니라 비전이 보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어려움이 아니라 하나님의 꿈이 보이게 돼요. 성령 인도를 따르지 않기 때문에 성령과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고난과 어려움과 환란이 더 크게 보이고 그것이 더 먼저 보여요.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권면합니다. 성령의 인도하심 앞에서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 길을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마지막에는 하나님 말씀 듣다가 하나님께 가야 되지 않을까요? 평생 여러분 뜻대로 사셨잖아요. 20대 하나님 음성이 들리지도 않았어요. 30대 들을 겨를도 없어 너무 바빠가지고요. 40대는 너무해 그렇게 살았더니 아예 그게 왜 중요한지도 잃어버렸어요. 그렇게 50대 60대를 보냈어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이 시간에도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린다면 우리는 과연 인생을 바로 산 걸까요?
이제 하나님 가기 전에 1년 아니면 10년 이제 20년 남았잖아요. 이 시간만이라도 성령의 음성을 듣고 우리가 살아야 하실까 할까요?
마지막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얼마나 효도하려고 노력해요. 말씀 잘 들으려고 저희 집이 그래요. 어머님 돌아가시고 나니까 아버지가 남으셨잖아요. 자녀들이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요. 침대도 저희 집 침대도 그렇게 비싼 게 아닌데 막 고액의 침대를 사서 시골에 이런 거죠.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까지 잘해드리자. 그가 사람에 대해서 이런 마음을 먹는데 하나님에 대해서 그래야 되지 않을까요?
아무쪼록 우리 교회는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 열매로 이 재단이 가득 채워질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성령은 여러분께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그 음성을 듣기는 하셨습니까? 들으셔야 됩니다. 아셔야 됩니다. 왜요? 성령은 아버지가 보낸 아버지가 나를 돕기 위해서 보낸 영이기 때문인 거예요. 아버지와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돕기 위해서 대신해서 보내신 보혜사 영이 성령인 거예요. 우리 멀리 떨어진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의 음성은 잘 듣지 못해도 대신 보냄 받은 성령의 음성만이라도 우리가 잘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 교회가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이 나에게 이런 마음을 주셔서 성령이 나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어요. 그래서 권사님 제가 미안해요. 목사님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지난주에 어떤 권사님이 저한테 막 깎듯이 인사하는 거예요. 왜 그러냐고 그랬더니 방송을 들었대요. 아마 이런 거겠죠. 목회자에게 잘해라. 저한테 이렇게 자랑하셨대요. 근데 그분이 볼 때마다 요즘 계속 옛날엔 가볍게 인사하셨는데 요즘 고개가 많이 내려가셨어요. 그렇게라도 방송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셨구나. 이렇게라도 우리가 들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