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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의 시인들, 청진기 대신 펜을 들다
이 승 하
(시인ㆍ중앙대 교수)
의사와 시인. 얼핏 생각하면 둘 사이의 거리가 무척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사람의 몸과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의사와, 사람의 생로병사에 대해 고뇌하는 시인은 다 사람을 ‘낫게 하는(healing)’ 존재라는 점에서 동료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정신과 의사라면 그 거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이 땅에 한국의사시인회가 만들어진 것이 2012년 6월 9일, 동인시집 『닥터 K』가 나온 것이 2013년 6월 29일이었다. 25명 회원들이 의사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 와중에 시상을 떠올리고, 초고를 쓰고, 퇴고와 정리를 하고, 시집을 묶어냈다. 주기적으로 모여서 식사도 함께 하고 술도 함께 마시는 것으로 안다. 이번에 제2집을 준비 중인데 해설의 글을 쓰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세계문학사를 살펴보면 의사를 직업으로 갖고 있던 사람이 적지 않다. 독일의 의사로서 시인과 소설가로 활동한 한스 카로사(1878~1956)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카로사는 1903년 의사 시험에 합격, 결핵 전문의인 아버지의 대를 이어 의사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자원입대, 군의관으로 종군하여 부상을 입기도 했다. 처음에는 시를 썼으나 『뷔르거 의사의 운명』을 비롯하여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둔 자전적인 소설을 다수 썼다. 나치 정권이 수립되면서 예술원 회원으로 추천되었지만 사퇴하여 정권의 미움을 샀다. 1942년 독일 국내에서 결성된 유럽작가동맹에 회장으로 강제로 취임하여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두 차례 세계대전 사이에 뮌헨시 작가상과 괴테상을 받아 문학적 능력을 인정받은 카로사는 죽기 직전에는 독일연방공화국이 주는 공로대십자훈장을 받았다. 시인으로서의 카로사는 1977년 민음사 세계시인선 75번 『빛의 비밀』이 간행되면서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다.
죽어갈 수밖에 없는 모든 이를 위해
나는 잔을 가득 채워준다
마신 뒤에도 언제까지나
취기가 감도는 잔임에랴.
백열을 내뿜으며 이네들은 가라앉는다.
그러면 이네들 시체 위에는
마지막 상념의 날개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지난날에는 꿈에도 비치지 않던 상념
적막한 얼음의 고향땅 위에 맴도는
갈매기 떼 모양.
―「죽음의 찬가」 끝 부분
독일군 군의관으로 종군하여 동부전선 루마니아에서 부상병들을 치료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 『루마니아 일기』를 쓴 카로사는 죽어가는 병사들을 위한 진혼가 같은 시를 썼다. ‘현대의 괴테’ 혹은 ‘현대의 고전주의자’라고 일컬어지는 그는 휴머니즘에 입각하여 시와 소설을 썼기에 시집 번역자 전광진은 “고통과 상처의 시가 아니라 쾌유와 자유의 시”를 썼다고 평가하였다.
독일의 제1차 세계대전 종군 시인으로 고트프리트 벤(1886~1956)도 있다.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한 뒤 베를린 군의학교에서 의학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에는 피부과ㆍ비뇨기과 의사로서 베를린에 정착하였다. 1912년에 대단히 전위적인 처녀시집 『시체공시소』를 발표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표현주의와 니체의 영향을 바탕으로 출발한 그는 니힐리즘 초극의 가능성으로서 나치즘을 찬양했지만 곧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펜을 놓고는 ‘망명의 귀족적 형식’을 선택하여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50대에 다시금 군의관으로 참전하였다. 종전 뒤에 시집 『정학적 시편 Statische Gedichte』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초기 시에는 성도착과 매춘, 성병 등 의학적 측면이 중요한 주제였는데, 첫 번째 아내의 죽음과 친구로 지내던 한 여배우의 자살의 영향이 짙게 나타나 있다. 인간 내면의 어둠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표현주의 성향 때문에 나치 정권은 작가와 의사로서 그의 직업에 제재를 가했으며, 1937년에는 작품 발표를 금지시켰다.
이름 모르게 죽은
한 창녀의 외로운 이빨에
금니가 달려 있다.
나머지 이빨들은 마치 조용히 약속이나 된 듯
빠져 있었다.
시체 치우는 인부가 그 금니를 뽑아서
전당잡힌 뒤 춤추러 갔다.
그럴 것이, 그는 말하기를,
흙만이 흙이 되어야 하니까.
―「순환」 전문(김주연 역)
베를린의 가장 불쌍한 여인네들
―방 하나 반쪽에 있는 열세 명의 아이들,
창녀들, 포주들, 쫓겨난 사람들―
여기서 그들은 육신의 괴로움으로 흐느낀다.
그토록 슬픔 흐느낌 있으랴.
그 어디인들 여기처럼
아픔과 고통의 모습 보이리,
이곳은 끊임없는 오열의 도가니.
―「진통하는 여인의 방」 제1연(김주연 역)
전쟁 중 벤에게는 창녀들의 성병 여부를 조사하는 임무가 부여되었다. 성병에 안 걸린 여성은 전장에서 막 돌아온 군인들의 접대부가 되게 하였고, 성병에 걸린 여성은 후방으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하였다. 창녀들 중에도 임신한 여성들이 있어 그들의 아기를 받아내어 고아원에 보내거나 입양을 주선하는 일을 하였다. 매일 수많은 여성의 성병 감염 여부를 관찰해야 했던 시인의 고뇌가 이런 시를 쓰게 했을 것이다.
전시 상황 하에서의 군의관 시인의 고뇌는 자살에 이르게도 하였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태생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은 약학 석사학위를 받고 군의관이 되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가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트라클은 자원입대해 약정국 소속 약사시보로 일선에 배치되었다. 섬약한 기질의 트라클은 부상병의 자살, 탈영병들에 대한 교수형, 포로의 자살 등 끔찍한 광경을 계속해서 보게 되자 마약에 손을 대게 된다.
인류는 포구(砲口) 앞에 세워졌다.
북소리는 그칠 줄 모르고, 검은 전사들의 무수한 이마,
피어린 안개 속을 걸어가는 발자국 소리, 검은 쇳소리가 요란하다.
절망, 슬픔으로 가득한 밤.
서성이는 에바(Evas)의 그림자,
사냥 그리고 번쩍이는 금화.
구름을 가르는 빛, 만찬.
양식과 포도주에 온화한 침묵이 흐르고,
거기 열두 사람이 모여앉아 있다.
깊은 밤, 올리브 그늘 아래서 외친다.
성 토마스가 흉터에 손을 댄다.
―「인류」 전문(윤동하 역)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인 830만 명이, 민간인 1,300만 명이 죽었다. 트라클은 전장에서 부상자들에게 모르핀을 주사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자살을 기도한다. 자살 기도자였기에 군 정신병원에 입원해 감시를 받게 되었는데 야전병원 약국에서 몰래 가져온 코카인을 흡입, 심장마비가 와서 스물일곱 나이에 죽었다. 하지만 독일어로 쓴 그의 시집 『시집』은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시집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게오르크 트라클의 생애와 시세계에 대해서는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문학사상사)이란 책에서 30쪽에 걸쳐 상술한 바 있다.) 또 다른 의사 출신 문인으로는 러시아의 소설가 안톤 체호프(1860~1904)와 일본의 소설가 모리 오가이(1862~1922)를 들 수 있다.
체호프는 모스크바 대학 의학부 출신으로서 의사 활동보다는 소설과 희곡 쓰기에 전념하였다. 러시아 중편소설의 정수를 보여준 그는 생의 후반기에는 희곡 쓰기에 전념, 「갈매기」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 동산」 등을 썼는데 이들 작품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오가이는 도쿄대학 의학부를 나와 독일 유학을 하고 돌아온 뒤 육군대학 교관을 거쳐 군의총감ㆍ의무국장 등을 역임하고 나서 퇴역, 제국미술원장 등을 지냈다. 소설과 번역서 말고도 평론집ㆍ역사물 등 다방면에 걸쳐 저술 활동을 했으며, 1956년 이와나미 서점[岩波書店]에서 발간한 『모리 오가이 전집』은 53책의 방대한 분량에 이른다. 이밖에도 실러ㆍ코난 도일ㆍ서머싯 모옴ㆍ루쉰 등이 의사 면허증이 있는 문인이었다.
국내에도 의사 문인은 대단히 많다. 경북대 의대를 졸업한 병리학자로서 부산 고신대 의대 교수를 지낸 허만하(1932~) 시인이 대표적이다. 서울대 의대를 나온 마종기(1939~)는 황동규ㆍ김영태와 함께 동인을 결성해 동인지 『평균율』을 내다가 도미,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의대 소아과 임상교수를 거쳐 그 대학의 아동병원 초대 부의장과 방사선과 과장을 거쳤다. 정영태ㆍ배광훈ㆍ이상호ㆍ강경주ㆍ김경수ㆍ정재영 등의 시인, 전용문ㆍ강동우 등의 소설가가 의사라는 현업을 갖고 있으면서 시와 소설을 썼다는 점에서 문단의 화제를 불러 모으기도 했다.
한국의사시인회의 시인들은 일단 의사로서 실력이 쟁쟁한 분들이다. 전공분야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이후에 시를 써 시인이 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미 대학시절부터 시작에 관심을 가져 습작을 했던 분들도 있다. 26명 동인이 3편씩의 시를 냈는데 간단한 인상기를 써볼까 한다.
김대곤은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와 『시대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자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원장을 역임한 내과 및 소화기내과 전문의이다.
철없던 의예과 시절
젊은 혈기로 성토대회에 뛰어들어
데모대 교문 뚫고 시가지로 진입했다고
초승달 뜬 자정 무렵 경찰서 연행되었어
밤새워 추궁당하고 조서 쓰고 탈진한 아침
이모부 유치장 밖 불러내어 뜨거운 국밥 한 그릇 불러주었지
그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국밥 한 그릇
국밥 그릇 감싸안고
목메어 감사하다는 말 할 수 없었어
―「국밥 한 그릇」 제3연
의대 예과 시절에 데모에 참여하며 경찰서 유치장에 갇혔을 때 찾아온 이모부가 고생한다고 국밥을 사주었다. 눈물과 콧물이 뒤범벅된 국밥을 먹고는 목이 메어 감사하다는 말도 못했는데 세월이 흘러 그 이모부가 “중환자실에 야윈 얼굴로 산소마스크”를 쓰고 누워 계시다. 그때의 그 국밥을 ‘유언’으로 인식하는 것은 의사의 판단이 아니라 시인의 마음이다. 멸종 위기에 이른 두루미들에 대한 안타까운 시선(「안변 프로젝트」), 생사의 갈림길에서 사지로 가고 만 사람에 대한 착잡한 심정(「전화기」)도 시인의 마음이기에 갖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러고 보니 김대곤 시인은 시집을 6권 출간한 중견시인이기도 하다.
김춘추는 가톨릭대의대 조혈모세포 이식세터 소장을 역임한,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혈액 전문가이다. 시집도 여러 권 상재한 가톨릭대의대 명예교수 김춘추 시인은 자신의 유년기 회상을 「어린 순례자」라는 장시로 행하고 있다.
둑길을 지나 전라도 광양 땅이 빠끔히 보이는
신작로로 접어들면 소년은 달리고
달릴 줄만 아는 새끼 고라니이거나
노루 새끼이고 싶다 사십 리 길 신작로는
비단길이다 깜장 조약돌이 흑요석처럼 깔린
월곡을 돌아 꼬부랑 굽이를
몇 굽이 더 도니 오, 관음포!
―「어린 순례자」 제3연
경남 남해 출신인 김춘추는 삼일만세 소리가 제일 먼저 터진 탑동 장터와 조상이 줄줄이 묻힌 심천리도 떠올려보고, “시앗을 봐 속이 밴댕이 젓갈이 된 고모”와 “풋콩 잘못 주워 먹고 세 살에 죽은/ 희자 누야”도 떠올려본다. 우리는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고 중국인들은 ‘桑田碧海’라고 했다. 쏜살같은 세월의 흐름을 누가 막으랴. 바닷가에서 자란 시인은 「海霧」와 「臥溫에 오면」에서도 바닷가 풍경을 시의 화폭에 담으며 그리움에 눈물짓는다.
인제대학교 총장이며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 명예의료원장인 이원로는 미국의 내과전문의, 심장내과 분과 전문의, 노인병학 전문의 자격증을 갖고 있는 한국 의학계의 ‘원로’이다. 시를 보면 뜻밖에도 감성이 대단히 여린 분임을 알 수 있다.
각도를 조금만 틀면
궤도를 살짝만 돌리면
보이지 않던 별이 보인다
들리지 않던 노래가 들린다
죽을 것 같지 않던 것이 죽는
짧은 날의 슬픔이 지나면
살 것 같지 않던 것이 살아나는
긴 날의 기쁨이 솟아오른다
기적들 중의 기적
삶이 흐른다
신비들 중의 신비
눈물이 흐른다
―「긴 날의 기쁨」 전문
그 동안 수많은 환자를 보았을 것이다. 살아나 퇴원을 한 이와 끝끝내 사지로 가고 만 이를 수도 없이 보았겠지만 생명체는 그 낱낱의 것이 기적이고 생로병사도 기적적인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가 쓴 시이다. 생명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탐색은 「삼월의 창」과 「추수」에도 잘 나타나 있다.
경북대의대 출신으로 대구에서 내과병원 원장으로 있는 박언휘는 분주한 일상 가운데서도 시인인 자기 자신을 위해 처방전을 쓴다.
늦은 밤
불빛조차 지친 진료실에서
나를 위한
오늘의 마지막 처방전을 쓴다
파릇한 시의 잉태를 위한,
건강한 출산을 위한,
습작(習作) 수액 주사
용량 제한 없음
―「처방전」 마지막 연
여느 의사라면 늦은 시각이면 일과에 지친 몸을 이끌고 귀가하여 쉴 텐데 박언휘 원장은 그때 비로소 시인으로서의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갖는다. 의술이 아닌 인술을 베풀고자 하는 정신은 시로써 타인에게 위안을 주고자 하는 시심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침이면 들려오는 갖가지 소리들,
소음과 괴성을 참으며,
환자들이 호소하는 이명(耳鳴)에는 처방을 내리고,
오늘도 정성을 다해 치료하며
치유의 기쁨을 누리게 해주십사고
환자를 볼 때마다 기도하는 순간,
눈 감지만 이 시간은 평화입니다.
―「기도」 마지막 연
전국의 모든 의사가 박언휘 의사와 같은 마음으로만 진료하면 환자들의 존경을 받고 신뢰를 얻을 것이다. “치유의 기쁨”, 사실 의사라는 직업은 정말 좋은 직업이다. 병자를 치료하여 고통을 덜어주고 병을 낫게 하고 목숨까지 구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인간을 구하겠다는 휴머니즘이 없으면 의사 생활은 힘들고 고달픈 중노동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정의홍은 서울대의대를 졸업하고 인제대의대 백병원에 재직하다가 도미, 하버드대의대 부설 병원과 연구소에서 일하였다. 3권의 시집을 냈고 지금은 고향 강릉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의사로서의 삶이 과연 남들보다 훌륭한 것이었나 회의하고 있다.
춥거나 덥거나 일 년 삼백육십오 일
힘들고 거친 일 허리 휘어질 때까지 일해도
먹고 사는 일조차 만만치 않은 분들에게
조금 더 배웠다고 선생님 소리 들으며
조금 더 배부르고 더 편히 산다는 게
때로는 민망하기도 송구스럽기도 하다
내가 죽어 행여 바늘귀를 통과하여
천국 근처를 얼씬거리게 된다면
천국 아파트 지하층에 들어갈 자격은 있는 것일까
한 줄 햇살이 호사스러운 지하층에
―「천국 아파트」 마지막 연
이러한 자기반성은 결국 보다 나은 자아정립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사회적으로도 존경받고 경제적으로 안정된 직업을 가져온 자신이지만 늘 깨어 있는 양심으로 살아왔는지 시를 쓰면서 반성하고 있는 것이다.
김현식은 전남대의대를 졸업한 외과 전문의이다. 시집 『나무늘보』도 좋았지만 산문집 『시의 향기』는 이 땅, 이 시대 시인들의 대표작에 대한 성실한 평설이라 의사 김현식이 공부하는 시인이기도 함을 세상에 천명한 저서이다.
붉은피톨이 흘러가다 얼어붙어 멈춘 곳에
붉은 모래 알갱이로 모여 속 꽃을 피운 곳
흡혈귀의 전설이 되살아나고 피의 향연이
재연된다
―「화」 제1연
뜻하지 않은 절벽과 수렁 때문에
무한한 나락 속으로 추락해 갔다
진이 빠진 날의 초라함은 세상 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제2악장」 제4연
이런 비극적인 세계관이 어디에서 연유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인은 절망하고 애통해한다. 절망을 해본 사람이 희망을 꿈꿀 수 있는 것일까, “어둠 속 불빛과 외로운 가로등과/ 언덕 위의 꼬막집들에서/ 새나오는 수선한 빛들의 속삭임이/ 희망을 얘기하고 있지 않느냐”(「미명」)고 반문한다. 시인은 생로병사의 쳇바퀴를 굴리지 않을 수 없는 우리에게 새벽을 기다리며 살아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황건은 인하대병원 성형외과에 근무하면서 인하대의대에서 ‘문학과 의학’을 가르치고 있기도 하다.
무릎을 베고 누워서
당신 손길을 기다립니다
팽팽하게 당겨주셔요
따뜻하게 안아주셔요
열락(悅樂)의 산으로
눈물의 폭포로
머리에 흰 눈이 내리고
가슴엔 붉은 꽃이 필 때까지
―「거문고」 전문
열렬하고도 처절한 사랑노래이다. 거문고는 누군가 자신의 몸을 팽팽하게 당겨주거나 따뜻하게 안아주어 소리를 낼 수 있게 했을 때 비로소 존재의 값어치를 획득한다. 마지막 연은 ‘老’와 ‘死’의 세계일 터인데 그렇게 되기 전에 거문고는 악공이 자신을 열락의 산, 눈물의 폭포(기쁨의 눈물이리라)로 데려가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여기서 거문고는 물론, 이성의 손길을 기다리는 여인의 객관적 상관물이다.
연세대의대 출신으로 강서구에서 이비인후과 병원을 경영하고 있는 홍지헌 시인은 무척 가족적이며, 마음이 여리고 가슴이 따뜻한 분이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같은 옷만 입어도 행복하던 시절”(「색 바랜 티셔츠」)이라고 말하는 그는 독서실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아들이 안쓰럽다.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하던
이원상 교수님 돌아가셨다
일 년을 기다리다 입원한
청신경 종양 환자 두개저 수술
하루 전날 돌아가셨다
환자는 황망히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새해 첫 날
교수님은 하늘로 가시고
나는 문상 갔다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고 돌아가는 발자국들
집과 하늘 사이에 어지럽다
남아 있는 사람들 흉중에
회오리치는 바람
어디로 돌아갈까
―「집과 하늘 사이」 전문
집은 지상에 있고 하늘은 저승세계, 즉 천상이다. 우리는 한 생애 내내 어떤 길을 걸으며 어떤 발자국을 찍으며 살아가는 것일까. 의사이기에 생과 사의 비밀을 보통사람보다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은사님의 선종을 접하고 시인은 환자가 황망히 ‘집’으로 돌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홈 스위트 홈, 내 집만 한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리.
가정의학과 전문의로서 2권의 시집을 상자한 바 있는 한현수는 간이역이건 진달래꽃이건 간에 이를 여성의 몸으로 환치하여 독특한 시상을 전개한다.
그녀의 몸을 열차가 지나다니고 있다
그녀의 주름살은 기찻길을 닮아 있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녀의 늘어진 풍경 안으로
빨랫줄 당기듯 기차소리가 들어온다
그녀의 하루는 기찻길을 따라 펄럭인다
―「간이역」 제1, 2연
그녀를 보면 끝, 이란 말이 낯설다
나뭇가지 끝에 꽃핀다는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끝, 이라 부르는 게 그녀에게 시작점이니까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는 자리가
그녀가 돌아오는 그 자리이니까
그리하여 그녀의 알몸은 앞모습뿐이라고
기억하기는
그녀 뒤로 숨은 그늘을 찾기가 어려웠으므로
―「진달래꽃 같은」 제2, 3연
예로부터 여성의 몸은 수많은 조각가와 화가의 예술혼을 뒤흔든 창작의 원천 소스였다. 비너스를 그린 그림이나 다른 그리스 여신들을 그린 그림이나 서양의 미인도는 알몸인데 시인도 여성의 옷을 벗긴다. “그녀를 만지는 것이 살 떨리어서/ 내가 그녀 속으로 들어가 있다, 라고만 말한다”는 「진달래꽃」의 결구는 시인의 미의식이 상당히 감각적임을 말해준다. 「중년」이라는 시에서는 “여자야 너의 직설적인 말씨가 나를 아프게 해 내 말에 왜? 란 말을 달지 말아줘 인디고란 풀로 파란 염색물을 만든다고 하지 우기 때면 널찍한 우물에 풀을 담그고 철썩철썩 수천 번 초록 물결에 발길질을 하는 거지 사람들은 이때 파랑이 깨어난다고 믿는 거지 그러나 사실은 물에 멍이 들게 하는 거지 파도가 바위를 쳐서 파랑을 얻는 것처럼”이라는 대목이 나오는데 대단히 눈부신 감각적인 표현으로서 우리 시단에 한현수만의 독특한 세계가 펼쳐질 것임을 예감케 한다.
피부과를 전공해 전문의를 딴 전남대의대 출신 시인 나해철은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영산포」로 등단한 이후 창비에서 시집을 여러 권 출간한 중견시인이다. 향가인 「헌화가」를 패러디한 시는 상당히 많으니 다른 두 편의 시를 보자.
살 속에 접힌 날개가 퍼덕거릴 때
산꼭대기 돌무더기에 올라
푸른 하늘 멀리 그대를 그리리다
솔숲 진한 향내에 취해
한 시절 낯선 사랑에 빠지셨던가
그리고 그리 슬피 우셨던가
여인이여
그대를 닮아 은빛 날개로
만월빛 알로 이 세상에 왔으나
나 서럽지만은 않은 날들로
슬픔의 천년 왕국을 세우리니
드높은 머리 위에서
언제나 푸르르시라
―「계림에서 울다」 후반부
그대 가는 길을 그대라 생각하고
길 위에 온 몸을 돌탑으로 세운 일
그대는 지나쳐가고
그대는 스쳐 흘러갈 뿐인데
처음 그대를 만난 그 저물 무렵부터
이 자리에 움직이지 못하고 서 있네
다가오던 그대 한 번 안아보려
팔 활짝 벌린 그 몸짓 그대로
―「다리」 후반부
고전의 바다에 띄운 배가 참으로 아름답다. 이 두 편의 시도 수로부인에게 돌산 봉우리에 피어 있는 꽃을 따다 바친 노옹의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신화의 시대나 설화의 시대나 산업혁명의 시대나 정보통신의 시대나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괴테). 시인은 고풍스런 어투로 이 시대의 헌화가를 사랑의 기쁨과 이별의 아픔을 아는 아름다운 여인에게 바치고 있다.
나라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인 박권수는 소외된 자들, 혹은 이 땅의 장삼이사들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고 있다. 지하철 옥수역에서 타고 내리는 승객들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옥수수」), 외로운 화성 고모님의 “이제 보면 또 언제 보겄냐”(「화성고모」)고 하신 말씀을 반추하기도 한다.
차 옆을 스쳐가는 종촌리 1구
문패 없는 대문 사이로 주인 없는 바람들이 놀고 있다
묵은 씨래기 서걱거리는 가슴
연기 없는 굴뚝에 기대어 선 감나무
담벼락 구멍을 따라 삽짝 앞에 서서는
떠남, 기억하지도 말고
흙, 잘 간직하라고
―「늦은 가을」 제2연
시골에 가보면 빈집이 많은데 그런 집들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잘 묘사하고 있다. 인간에게는 모성이나 고향은 대체로 원천적인 그리움의 대상이다. 고향이란 곳은 언제든 찾아갈 수 있을 때 마음의 둥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고향이 예전의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면 우리는 마음의 둥지를 잃고 마는 것이다. 나중에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는 것, 그 쓸쓸함의 깊이를 박권수 시인은 잘 알고 있다.
연세대의대를 나온 신경정신과 전문의 신승철은 큰사랑노인전문병원의 원장이어서 그런지 생의 비애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다.
지난 사십여 년은
하룻밤이었다.
하룻밤 사이에
위염과 당뇨와 허리 디스크와
만성 피로와 기관지염을 앓았다.
고스란히 내려놔야 할 것들이
―「장독대」 부분
무병장수가 대다수 인간의 소망이지만 병마는 부지불식간에 찾아온다. 납골당이나 공원묘지에 가보면 인생의 종착역은 결국 죽음임을 알게 된다. 아옹다옹 아득바득 살아보려고 하지만 저승사자는 늘 지척에서 기다리고 있다. “내 죽은 뒤/ 마음이 없어진 뒤에야// 나는 비로소/ 행복과 기쁨의 바다에 이르는 것일까.”(「까치」), “공을 들인 고통들이 일시에 바스러질까봐// 공을 들인 고통들이 아무 보람도 없이// 허무하게 그냥 바스러질까봐/ 두려워 몸을 숨긴 채// 가만히 너를 지켜만 보고 있는 중이다.”(「초봄」) 등에도 시인의 죽음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신경정신과 의사인 김승기는 나무를 통해 인간세상의 이모저모를 생각해본다. 나무는 한 자리에서 생을 다 보낸다. 한 자리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내는 사람은 신경정신과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들, 혹은 교도소에 수감된 장기수들일 것이다.
숲길을 걸으며 자꾸만
밭머리 외나무 생각이 났다
그 나무는 왜 숲속에 들지 못하지
그 사람 생각이 났다
―「숲에 들지 못하는 나무」 끝부분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그 자리에서 맨몸으로
긴 겨울을 나겠다는
단단한 결심이다
―「겨울 숲」 부분
숲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올려다본다
겨울나무들이 나보다 키가 몇 배씩 더 크다
―「날마다 남의 꿈속을 걸으면서도」 부분
나무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지만 실은 환경에 적응하고 천재지변과 싸우고 햇빛과 바람과 물과 공기를 잘 이용해 살아가는 영리한 존재이다. 인간이 오히려 어리석다. 주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몸의 병, 마음의 병에 걸리고, 범죄를 저지른다. 사회에서 격리된 채 살아가는 사람은 숲속(사회)에서 살아가지 못하고 밭머리에서 살아가는 저 외나무와 같은 것일 터.
심장내과 전문의로서 광주보훈병원 심장혈관센터장으로 있는 김완은 의사로서 환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므로 많은 환자와 보호자들의 존경을 받고 있을 것이다.
봄 들녘에 아지랑이 피어오른다
레지던트 수련 중에
스트레스 견디지 못하고
병원을 떠나는 전공의들
4월초 담장마다
목련 두근두근 벙그는데
떠나는 이들의
까만 눈망울이 젖어 있다
유구무언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우리들의 경전이다
―「환자가 경전이다」 전문
경전이란 무엇인가. 진리가 담겨 있기에 늘 곁에 두고 읽으며 마음의 거울로 삼는 책이다. 의사가 될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는 이유는 의사에게는 환자를 자기 가족처럼 생각하고 돌보는 의무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면 의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다. 인내심과 체력이 필요하며 희생정신과 휴머니즘이 요구되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시가 아닌가 한다.
부산대의대를 나와 서울대의대 대학원을 거쳐 현재 성균관대의대에 외래교수로 있는 내과 전문의 김세영은 「정읍사」나 「처용가」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하고 재미있게 변용하였다. 환상성이 더욱 잘 발휘된 시는 「가야 여인」이다.
선로를 복구한 경부선 야간열차를 타고 상경하다 깜박 잠이 든다
가야 여인의 혼이, 뼈의 몸체 속에 들어가서 하룻밤 머문 후
새벽안개처럼 빠져나가는 것을 본다
그녀의 옷자락을 잡으려고 허우적거리다, 옆에 앉은 여인의 소매를 붙잡는다
낯선 여인의 비명에 꿈에서 깨어난다
시간의 단층을 파헤치다 지워진 지문의 손가락으로
밤하늘의 별자리를 차창 위에서 맹인처럼 더듬어본다
같은 시간 속의 별들이 서로 닿기엔 너무 멀듯이
같은 공간 속의 별들도 서로 닿기엔 너무 아득하다.
―「가야 여인」 후반부
일종의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쓴 시이다. 가야의 여인이 꿈속과 현실세계를 넘나드는데 화자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 꿈을 깨면 일장춘몽이요 다시 잠들면 만리장성을 쌓을 수 있다.
의정부에서 내과의원을 개업하고 있는 김연종은 『문학과 경계』 신인상으로 등단할 때 내가 심사를 했던 인연이 있다. 그의 2권 시집 『히스테리증 히포크라테스』와 『극락강역』은 대단히 훌륭한 시집인데 주목을 제대로 못 받은 것이 안타깝다. 내과의사인데 현대인들이 공통적으로 조금씩 앓고 있는 신경정신적인 질환에 대해 관심이 많다.
건망증이 심해 내가 신고 다녔던 神을 어디에 벗어 놓았는지 헷갈린다 양복 윗주머니에 잘 모셔 두었던 우울과 몽상의 부스러기를 수거해 붉은 우체통에 살처분하고 나서도 내가 신었던 신발의 빛깔은 기억나지 않는다
―「Vertigo」 제1연
센티멘털과 멜랑콜리를 극복하지 못해 사유의 연하곤란증을 겪고 있나요 초기 치매와 중증 건망증을 감별하느라 거미줄처럼 얽힌 기억의 행간에서 꼼짝 못하고 있나요
―「가면우울증」 제2연
입술과 항문과 성기가 없는 그곳으로 가면
술 마시지 않고도 잠들 수 있으리
촛농처럼 흘러내리는 고독을
한 줌 먼지로 방점 찍을 수 있으리
아직 내 몸을 빠져 나가지 못한 맹독의 환상마저
알레르기 행진곡처럼
온몸을 붉게 물들이고 뇌 속까지 울려 퍼지리
―「데스홀릭」 부분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라 하는데 현대인 가운데 스트레스 안 받고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리 주변에 건망증, 현기증, 편두통, 불면증, 강박증, 약간의 우울증을 전혀 인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본인은 고통스러워하는데 병원에 가면 병이 아니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 시인은 “치료를 포기한 의사의 위로 한마디에 다시 용기를 얻었나요” 하면서 현대인의 만성적 정신질환의 양상을 하나하나 기록하고 있다. 처방전을 쓰는 대신 원인 분석에 나선 이가 김연종 시인이다.
충남대의대를 나온 외과 전문의 송세헌은 시간의 의미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다. 순간이 쌓여 세월이 되고 세월이 쌓여 역사가 된다. 「낙화-이형기 풍으로」는 개인사와 한국 현대사의 관계에 대한 연구이고, 「대전역 구두병원」은 인간사의 축도인 신발에 대한 연구이다.
무성한 베트남의 정글에
머지않아 열매 맺을 부하들을 묻고
하롱베이를 건너왔다
그들의 청춘은 꽃답게 죽었다
따라가자
피 묻은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처럼 진 전우들 곁
현충원 병사 묘역으로
―「낙화-이형기 풍으로」 부분
이력은 신발이 끌고 온 기행문
편력은 신발을 끌고 간 채색화
옥신각신 발바닥에 새긴 펜혹 같은 티눈
거개의 발병의 발병 원인은 신발에 기인한다
까치발로 까치발로 살아온 역마살이다
―「대전역 구두병원」 전문
앞의 시에서의 죽음은 전장에서의 죽음이므로 ‘장렬한 전사’라고 해야겠지만 실은 비명횡사에 가깝다. 뒤의 시는 살아가는 일의 팍팍함에 대하여 논한 것으로 보인다. “강아지마냥 대문 밖에 매어 있”는 “하얀 목련 한 그루”를 의인화한 「빈집」은 기억에 대한 연구인데 기억도 사실상 시간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시어이다.
한양대의대를 나와 흉부외과 전문의로서 한전병원에 근무하고 있는 김응수는 『나는 자랑스러운 흉부외과 의사다』 외 다수의 에세이집과 ‘닥터 콜롬보의 메디컬 에피소드’라는 부제를 단 의료인 위인동화 『의학의 달인이랑 식사하실래요?』를 2권이나 낸 저술가이기도 하다. 세계사에 대한 공부가 「1694년 비망록」을 쓰게 했는데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게 된다.
울적할 때면 가위로 머리를 깎는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위질하면 깎아지른
절벽에서 맨몸으로 아랫바람을 맞는 황홀감
머리를 감을 때면
우울을 꾹꾹 눌러주는 흐뭇함
샤워기로 머리털을 씻어내리면, 어여차!
수채통을 피해 뭉쳐져 유영하는 머리카락 덩이
참 어렵게 살아왔구나
―「머리를 깎다」 부분
몸보다 술이 지쳐 누운 새벽
목 마려워, 술 마려워 거울을 보다
헉∼,
인기척에 식겁한 두꺼비 같은
내 안의 귀신
―「더불어 사는 세상」 부분
소크라테스는 시장바닥을 헤매 다니며 사람들에게 질문을 해댔는데 그 중심된 질문이 “너 자신을 아느냐?”라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모르고서 남을 평가하고 남을 탓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질문이 “너 자신을 아느냐?”라는 것인데 김응수는 바로 그 질문을 하고 있다. 먼 타인들, 혹은 가까운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부산대의대를 졸업하고 부산백병원 원장을 역임한 뒤 지금은 인제대의대 흉부외과 교수로 있는 조광현은 서정시의 본령을 지키려고 한다. 지나친 난해함과 정도 이상의 장형화, 음악성의 상실로 인해 시가 위기상황으로 치닫고 있음을 아는 시인은 자연과의 합일을 꿈꾸는 한편, 사람 사이의 감정 교류에 호소하는 낭만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
새소리가 왜 고우냐고요
그냥 새소리이니까요
세상은 사랑하기에 정말 좋은 곳이랍니다
이리 오세요 참 좋은 아침입니다
커피나 한 잔 합시다.
―「어젯밤의 그 바람이」 끝부분
가만히 눈감으면 뿌-연 안개 속
어느 먼 행성의 언덕 너머에
무슨 지표 하나 아른거리네요
본향인가요?
어차피 가야 하는데
우리 잠깐 쉬어가면 안 될까요.
―「역방향의 기차를 타고」 끝부분
오늘날 상당수의 시가 독자와의 소통을 거부한 채 자신만의 성채에서 독백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조광현은 쉬운 어조로, 다정하게, 간단한 말로 뜻을 전하고자 한다. 암시성이나 애매성은 부족하지만 이런 시에 독자는 오히려 더욱 크게 친근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과의원을 하면서 부산의 대표적인 문예지 『시와 사상』을 발간하고 있는 김경수는 철학적인 깊이를 지닌 시를 쓰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세계는 형이하학이 아니라 형이상학이며, 일상성이 아니라 사상성이다.
난초에게 좁은 면적의 말을 던지면
난초는 안개를 뿜어내며
안개에게 말소리도 무게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안개보다 정밀하게, 난보다 처절하게
인간들은 자신들 인생의 밝은 면의 무게를 잴 수 있을까?
―「난초에게 말을 걸다」 끝부분
인생에서 사랑보다 행복한 선물이 있을까?
길 위에 서서 내가 마지막으로 돌아가는 날
나는 제대로 된 인생길을 걸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만이 빈자(貧者)에게 손을 내미는
길 위에 서서 우리는 진정 부끄럽지 않을 수 있는가?
―「길 위에 서서 실을 찾는다」 끝부분
‘인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면 철학책 몇 권을 읽어야 하겠지만 김경수의 시를 읽어도 해결이 되니, 얼마나 쉽고 빠른가. 시인의 답은 ‘사랑’이다. “안개 속에서 사랑만큼 어두움을 밝히는 따뜻한 빛은 없다.”(「안개와 놀다」)고 한 것도 인생행로에 몰려온 안개를 물러가게 하는 것은 바로 빛과 온기, 즉 사랑이라는 결론이다.
부산대의대를 나와서 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으로 있는 박강우는 『시와 사상』 주간이기도 한데 대단히 포스트모던한 시를 쓰고 있다. 형식적인 실험을 하지 않은 「뭉게구름의 비밀」과 「왜」도 애매성과 다의성에 입각한 꽤 난해한 시인데 「익명성과 피상성의 정보미학」은 제목만큼이나 어렵다.
⟰은 평범한 쇠창살이었다
폭탄을 안고 ➽이 쇠창살 안에서 터졌다
시소가 오르락내리락 웃었다
⤡⤢와 ⤢⤡로 나눠진 우리는 웃다가
또 웃다가
⤡⤢은 밤이라고 우겼고
⤢⤡은 낮이라고 우겼다
⟲ 이렇게 ⟰을 따돌려야 한다고 우겼고
⟳ 이렇게 ➽을 피해야 된다고 우겼다
이렇게 시작되는 시는 “⇯은 밤과 낮을 시소에 앉혀 무게를 맞추었고/ ⟰➽⤡⤢⤢⤡⇯은 뒤섞여 ⊙이 되었다”로 끝난다. 의미를 정확하게는 파악하지 못하겠지만 감금과 감시, 권력과 금력, 무기와 술책에 좌우되어 온 세계사에 대한 암담한 진단이라고 어렴풋이 여겨진다. 시가 미로학습을 시키는 것 같아서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퀴즈풀이처럼 재미있기도 하다.
동아대병원 정형외과에 근무하고 있는 이규열은 시전문계간지 『신생』의 편집인이기도 하다. 연작시 「外道」는 시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자신을 풍자한 인간풍자시다.
다시 쓰기 시작해야 하는 밤이다
낮에 걸어온 길에서 벗어나
밤이 되어야만 항문과 구강의 위치가 없어지고
밤이 되어야만 손과 발의 역할이 불분명해지고
주체와 객체의 습관에서 벗어나
자아와 무의식의 차이가 없어지고
이기와 이타의 순서가 뒤바뀌며
밤이 되어야만 순수와 혼탁이 동시에 들어오고
밤이 되어야만 상처와 치유가 동일시되는
아아 밤이 되어야만 쓸 수 있는
이 지독한 정신적 자위행위는
길을 벗어났지만
언제나 경계에서 머무는
이 찬란한 외도는
外道가 오래되면 正道가 되듯이
오래된 밤은 이미 낮이다
―「外道ㆍ1」 전문
낮에는 가운을 입고 사는 의사이고 밤에는 시인이 된다. 외도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1993년 이후 외도를 계속하다 보니 이것이 정도가 된 것 같다. 그것을 그는 “아아 밤이 되어야만 쓸 수 있는/ 이 지독한 정신적 자위행위”라고 하였다. 시마(詩魔)에 들린 것이다. 그래서 “사리와 분별이 탈각된/ 낮에는 보이지 않는 길/ 그 길이 잘못된 길이라 해도/ 이제는 포기할 수가 없”(「外道ㆍ2」)는 것이다. “개 같은 시가/ 날아오르자/ 불완전한 삶마저/ 더욱 멀어져 간다”(「外道ㆍ3」)고 했다. 시를 쓰기 전에는 건실한 생활인이었는데 시(개 같은 시!)를 쓰면서 밤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고 말았다. 즐거운 고통을 감내하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이규열은 ‘외도’로 표현하였다. 이런 외도라면 얼마든지 하고 싶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있는 이용우는 시를 통해 인생론 혹은 생명론을 펴고 있다.
사람의 세월도 호박 한 덩어리 같으니
제 살 제 피 다 녹여 씨 얻는 일이
사람이나 늙은 호박이나 무엇이 다른가
사람이 젊은 시간에 제 생명 빚어내듯
호박은 늙은 것이 아니다, 호박은 지금
가장 빛나는 시간의 자리에 당도했다
황금 엉덩이로 튼튼한 가부좌를 틀고서.
―「늙은 호박을 위하여」 종반부
이제부터 소가 할 수 있는 일은
허물어진 탑의 기단에 걸터앉아
용도폐기 도장 찍힌 삶 반추하는 일
생, 노, 병, 사 4개의 반추 위(胃)에서
한 점의 살, 한 방울의 피까지 꺼내
꾸역꾸역 되새김질하는 일
되새김하며 속수무책 주름지는 일생
아아, 텅 빈 북소리 남자의 헛기침.
―「되새김질하는 一生」 종반부
우리 사회는 젊은이 혹은 신진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반면에 노년은 퇴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년의 지혜와 통찰력을 무시하면 사회적으로도 손해인데 그것을 잘 모르는 것이다. 시인은 “호박은 늙은 것이 아니다”라고 역설한다. “사리같이 빛나는 씨앗 얻으려/ 그 살 다 버리고 여기까지 온” 노년의 완숙미에 대한 예찬은 ‘퇴직, 그 후’라는 부제를 붙인 「되새김질하는 一生」으로 이어진다. 이 땅의 가장을 일만 해온 일소에 빗댄 이 시에서 시인은 노년이 어른으로 대접받는 세상이 오기를 꿈꾸고 있다. 고령화 사회가 된 우리나라에서는 이 문제가 앞으로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전남대의대를 나와 고려대의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안과의원 원장으로 있는 장원의는 시야를 먼 곳으로 둔다. 사람은 먼 지평을 보아야 눈이 좋아지는 것을 시로써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구도의 길도 대상의 길도
열사에서 열사로 이어지는 고행의 길
옛분들 족적을 따라 밟은
나그네 발걸음도 무겁기만 하다
―「실크로드」 제2연
천 년 전 2500개의 탑을 세우고 공덕을 쌓아
극락왕생을 빌던 중생들이나
서방정토를 꿈꾸던 왕조는
희미한 역사의 한 페이지일 뿐
번뇌를 씻으려는 고행보다
인생의 무상함에 숙연한 마음 안고
길게 늘어진 탑의 그림자 밟으며
나그네는 발길을 돌린다.
―「바간(Bagan)/미얀마」 제2, 3연
실크로드에 가보면 “모래바람으로 풍장한 영혼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 사막의 모래바람 자체가 “귀로는 동냥할 수 없는/ 선열들의 말씀”이다. 바간은 상미얀마 중부에 있는 도시 이름인데 황금빛 탑 등 불교 탑들이 엄청나게 많은 모양이다. 다 무엇인가를 비원하며 쌓은 탑들일 텐데 지금은 서방정토를 꿈꾸던 왕조조차도 희미한 역사의 한 페이지일 뿐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고 꽃이 예뻐도 화무십일홍이다. 해외여행을 하면서 우리는 사진을 찍기에 바쁜데 이처럼 장원의 시인은 인생무상 혹은 제행무상을 느낀다. 다듬잇돌을 시적 대상으로 삼아 “씨줄 날줄 인고의 세월/ 활같이 구부러진 허리/ 물빨래처럼 쭈글쭈글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려본 것도 시인의 시간관을 엿보게 한다.
서울대의대를 나온 내분비내과 전문의인 유담은 현재 한림대의대에 재직하고 있다. 시적 대상이나 사물에 대해 평면적인 묘사를 하지 않고 그것의 이면을 들여다보면서 끈질기게 관찰하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시가 아주 철학적이고 사색적이다.
귀머거리로 돌아다니다
그 노래에 닿아 자리를 폈다
먼저 나선 리듬이 뒤따르는 리듬더러
앞서 내민 발등에 허리를 얹고
그 허리에 가슴을 휘감아
자리에서 구르라고 속삭인다
리듬에 듬뿍 섞여 구르라고
―「습관의 진화」 제1, 2연
제목부터 뜻 파악이 잘 안 되는 귀머거리가 듣는 노래라니, 모순된 표현에 초장부터 바짝 긴장하게 된다. 우리는 습관이나 버릇을 갖고 사는데, 그것이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거나 세상의 상식에서 벗어나도 모른 채 살아가게 된다. 아예 습관이 진화를 한다. 나의 잣대로 세상을 보는 것이 위험하지만 우리는 그 위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야 안전하다
노래도 거꾸로 듣고 불러야 순하다
눈 내리고 낙엽 지고 소나기 부어
꽃 피고 돋는 싹
―「스케이트를 틀다」 제3연
스케이트는 신는 것인데 음악과도 같이 ‘튼다’라고 표현하였다. 시계방향으로 돌아야 안전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고 시계반대방향으로 돌아야 안전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우리는 우리 관점에서 남의 행위를 탓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유담 시인의 생각이 아닐까. “내가 본 것은 불이었다/ 겹겹이 뚫고 나와 웅성거리는/ 고생대의 불씨들”, “만발에 지쳐/ 타다 남은 가을보다/ 더 사무치는/ 별똥별들”(「가을 능소화」) 같은 훌륭한 표현을 자주 만나게 되기를 바란다.
서홍관 시인은 한국의 대표적인 의사 시인이다. 일찍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어여쁜 꽃씨 하나』를 내어 시단의 주목을 받은 이래 실천문학사에서 『지금은 깊은 밤인가』와 문학동네에서 『어머니 알통』을 낸 중견시인이다. 시집 외에도 번역서와 수필집, 아동용 전기 『전염병을 물리친 빠스뙤르』 등 전방위적 글쓰기를 하고 있는데, 의사로서의 서황관은 서울대의대 출신으로 2011년부터 국립암센터 국가암관리사업 본부장으로 있다.
최신작은 해외여행의 산물이다. 베니스의 산마르코 광장에서 만난 이국 청년과 히말라야 랑탕 계곡에서 만난 아주머니가 시의 소재가 된다. 「산마르코 광장」에 나오는 ‘너’는 “산타 루치아를 부르는 베네치아 청년”과 동일인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작별을 아쉬워하는 장면이 무척 애처롭다. 회자정리라고, 사람과 사람은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어 있다. 탄생은 또 하나의 죽음을 위한 첫출발이며, 백년해로의 끝은 사별이 아닌가. 히말라야 랑탕 계곡에서 만난 아주머니와의 사연은 몹시도 안타깝다.
집을 짓는 여인네와 집터를 잘 찍고
아예 여동생까지 가족사진을 찍은 뒤
전화번호를 적어 왔다.
―「랑탕 계곡에서 생긴 일」 제3연
한국에 가서 돈 벌고 있는 아들에게 전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진을 여러 장 찍어왔는데 웬걸, 인천공항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여인네의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전화번호가 결번이라고 한다. 생이란 이런 것이다. 어긋나고 엇갈린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이다. 학교 생활지도교사의 삶도 마찬가지다. “늬들 담배가 얼마나 해로운데 담배를 펴?” 하고 말하지만 곧바로 “선생님도 피시잖아요?” 하는 반격에 부딪힌다. 학생들 앞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어 차를 몰고 학교 밖으로 나가서 멀리 돌면서 차 안에서 한 대씩 피우는 교사 역시 뜻대로 안 되는 삶을 영위해가는 이 땅의 장삼이사 중 한 사람이다. 서홍관은 앞으로는 이렇듯 우연과 필연이 야기한 희비쌍곡선을 시의 화폭에다 담을 것 같다.
이상 26명 의사 시인의 시를 주마가편 식으로 읽었다. 현직의사들이 쓴 시들이라 대충 아마추어리즘에 입각한 어설픈 시들일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은, 시 몇 편을 읽으면서 여지없이 깨지고 말았다. 진료실이나 수술실은 우리 문학의 세계에서는 미지의, 미답의 공간이었다. 앞으로 한국의사시인협회 회원들의 작업이 더욱 활발히 전개되어 이 공간에서 보고 느끼고 꿈꾼 사연들이 멋진 시가 되어 우리 독자들 앞에 펼쳐질 것을 바라고 기대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