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책꾸러미
달과 함께
박은경 과천지회
우주에서 지구와 가장 가까운 달만큼 사람에게 친근한 대상이 또 있을까. 달만큼 인류와 오랜 시간과 모든 삶의 공간에서 함께 한 자연물이 또 있을까. 원시시대부터 현재, 그리고 미래 인간이 존재할 때까지. 남극에서 북극까지, 심연의 바다에서 하늘의 우주 비행선까지 인간이 살아가는 그 어느 곳이든 달은 낭만과 공포의 감정을 만들고, 다양한 풍속과 문화를 만들고, 그렇게 만들어진 삶의 요소로 인간과 함께 해왔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달에 착륙하고, 달을 두고 자원 경쟁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그 관계의 내용은 달라질지언정 달은 인간과 멀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달은 아무것도 아니어서 역설적으로 아무것이나 될 수 있다.
달이 하나의 고정된 실체가 아닌 상황이 저마다 달에게 다양한 실체를 부여할 수 있게 하며, 상상력을 추동한다. 달은 누구에게는 엄마가 되고, 누구에게는 계수나무의 토끼가 되고, 또 누구에게는 악마가 된다. 과학이 아무리 달이 지구의 위성임을 주장하고, 달에서 화학 성분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달은 여전히 그것에 마음을 주는 존재에게 신비로운 대상이다.
달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달이 인간의 소유물이 아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모두의 것이 될 수 있다. 달은 원시인의 것이었고, 백제인의 것이었고, 고려인의 것이었고, 또 현대인의 것이다. 달은 옆집 친구의 것이고, 우리 엄마의 것이고, 또 나의 것이다. 달은 항상 나에게 웃어 주고, 나를 비추어 주고, 내가 어디를 가든 나를 따라다니는 나만의 것이다.
어둠이 달을 보이게 한다.
낮에 뜨는 달을 보기도 하지만, 달은 어둠이 있어야 인간에게 드러난다. 특히 다른 어느 자연물보다도 달은 어두움 속에서 빛난다. 달이 어둠을 밝혀 주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모든 것을 가려주기 때문에 달이 밝게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어둠이 만들어 준 달이 전유한 그 시간과 공간에서 우리는 달에게 자신의 마음을 쏟아내고, 꿈을 빌고, 위로를 받는다.
《달님 안녕》
하야시 아키코 글, 그림 | 이영준 옮김 | 한림출판사 | 2001년
일명 까꿍책으로 이미 필독서가 된 우리 아기의 첫 그림책. 깜깜한 밤에 지붕 위로 달님이 떠오른다. 그러나 구름에 가려지자 달님은 울상을 짓는다. 잠시 후 구름이 걷히자 달님은 다시 환하게 웃는다. 어두운 밤과 노란 빛을 머금은 달빛의 단순한 대비가 아기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젖을 먹고 자라는 포유류는 본능적으로 동그라미 모양을 선호한다고 한다. 아기 눈에는 모유가 가득 찬 가슴이 동그랗게 보이기 때문에 그 동그라미에서 엄마를 느낀다. 그래서 아기에게 주인공 달님은 아주 매력적인 존재이다. 그래서일까? 아기는 달님 얼굴이 담긴 표지만 보고도 즐거워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달님의 움직임을 따라가며 반응하는 아기의 모습에 자꾸만 더 읽어 주고 싶은 책이다.
《달 샤베트》
백희나 지음 | 책읽는곰 | 2014년
무더운 여름밤이다. 하얗고 둥근 달이 떴지만 늑대 아파트의 불빛은 달보다 더 환하다. 주민들은 창문을 꼭꼭 닫고 에어컨과 선풍기를 틀어놓고 잠을 청한다. 냉방기가 뿜어 내는 열기에 달이 녹아내린다. 반장 할머니가 똑똑 떨어지는 달물을 받아 샤베트 틀에 부어 얼린다. 달 샤베트는 은은한 달빛을 발한다. 정전으로 깜깜해지자 사람들은 달빛이 비치는 할머니 집으로 모여든다. 할머니가 건넨 달 샤베트를 먹고 사람들은 비로소 시원하게 잠이 든다. 이번에는 달이 사라져서 살 곳이 없어졌다며 옥토끼들이 반장 할머니 집을 두드린다. 할머니는 고심 끝에 남은 달물을 화분에 부어 달맞이꽃을 피워 낸다. 꽃이 크게 피어날수록 밤하늘에는 커다란 보름달이 피어난다. 달에 관한 상상이 유연하고 기발하고 건강해서 볼 때마다 유쾌하다. 본능적으로 달빛에 이끌리는 사람들, 달맞이꽃을 피워 달을 만드는 대목에서 아름다운 감성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어 좋다.
《달빛 산책》
레이첼 콜 글 | 블랑카 고메즈 그림 | 문혜진 옮김 | 다산기획 | 2018년
아이와 엄마는 저녁을 먹고 달빛 산책을 나간다. 목을 빼고 밤하늘을 바라보지만 달은 쉽게 보이지 않는다. 도시의 달은 빌딩 사이로 사라지고, 구름 뒤에 숨어 버린다. 얼마쯤 걸었을까. 갑자기 밝고 환한 보름달이 나타난다. 그 경이로운 달의 모습에 두 사람은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바라본다. 은은한 달빛으로 충만해진 아이는 편안하게 잠이 든다. 건물도 네모, 창문도 네모, 반듯반듯 모가 진 세상 위로 둥근 달이 솟는다. 딱딱하고 삭막한 도시의 풍경에 따뜻하고 부드러운 달이 시각적으로 대비된다. 엄마와의 산책에서 달과 교감하며 대화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정서적 안정감이 느껴진다. 자연을 찾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 한다. 자연을 멀리서만 찾지 말고 하늘이라도 보자. 밤하늘의 신비를, 달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었으면 좋겠다.
《호랑나비와 달님》
장영복 글 | 이혜리 그림 | 보림 | 2015년
‘달님, 제가 낳은 알들을 무사히 지켜주세요.’
달님은 자신의 눈앞에서 생을 마감한 호랑나비의 소원이 부담스럽다. 알이야 스스로 깨어나 제힘으로 자라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데, 자신더러 뭘 어쩌라는 건지…. 호랑나비의 간절한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는다. 결국 달님은 호랑나비의 알을 찾아 지켜본다. 마지못해 시작한 지켜보기는 시간이 거듭되면서 모성애로 발전한다. 애벌레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달님은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애벌레가 위험에 부딪칠 때마다 달님의 가슴은 졸아들고, 제 힘으로 위기를 넘길 때는 응원이 넘친다. 그저 기다리고 믿어주고 지켜보는 것으로 달님의 사랑을 전한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까. 고치에서 빠져나온 호랑나비가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른다. 아, 엄마를 꼭 닮았네. 그저 지켜보는 달의 마음이 엄마인 내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진다.
《부엉이와 보름달》
제인 욜런 글 | 존 쉰헤르 그림 | 박향주 옮김 | 시공주니어 | 1997년
보름달이 환하게 뜬 겨울밤, 아이는 아빠와 함께 부엉이를 보러 숲으로 간다. 밤이 깊어 꿈 속처럼 고요한 숲은 춥고 무섭다. 그러나 아이는 말없이 아버지의 뒤를 따라간다. 부엉이를 구경하려면 조용히 해야 한다. 이윽고 아이는 경이롭고 신비로운 정경을 목격한다.
우리는 컴컴한 숲 속 하얀 빈터에 이르렀습니다./ 보름달이 우리 머리 위로 높이 떠 있었습니다./ 달빛은/ 빈터 한가운데로/ 고스란히 쏟아졌습니다./ 달빛 아래서 눈은/ 아침마다 먹는/ 우유보다 더 하앴습니다.
마침내 아버지가 부엉이와 똑같은 소리로 그 신비한 밤새를 불러내자 눈이 부리부리한 부엉이 한 마리가 부녀 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저렇게 눈부신 보름달 아래를, 침묵하는 날개에 실려, 날아가는 소망”처럼 말이다. 춥고, 어둡고, 부엉이를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환하게 보름달이 뜬 밤, 아이가 부엉이를 만나러 숲으로 갈 수 있게 조금만 앞서 이끌어 주는 그런 어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