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의 『남도사람』
1. 영화 <서편제>의 원작인 연작소설 <남도사람>에는 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사람들의 뜨거운 갈망과 끝나지 않는 여정이 담겨있다. 그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삶의 본질은 추상적인 목표나 이상적인 가치를 향하기보다는 그들이 만나고 살았던 일상의 편린 속에서 극복해야 했던 한과 새롭게 부여해야 했던 존재의 의미였다. 그것은 남도 지방의 ‘소리’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소리’는 그들에게 족쇄이기도 했지만 자신을 표출하고 타인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이기도 하였다. 아버지가 다른 오누이의 방랑과 추적은 그들에게 새겨진 고통을 치유하는 방법이었으며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일상의 행복과는 다른 형태의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2. 아버지에 의해 눈이 먼 여인은 남도 지방을 떠돌면서 살아간다. 그런 누이를 찾아 헤매는 오빠는 때론 장흥에서 때론 보성에서 때론 해남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한다. 그들은 서로를 밝히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흔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누이을 찾아 떠나는 방랑은 소리의 소문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어느 허름한 주막에서 들려온다는 소리을 찾아 떠나는 기묘한 추적인 것이다. 그것은 한의 무게를 통해 살아갔던 사람들의 슬픈 풍경이다. 슬픔이 삶의 힘이 되듯이, 한 또한 삶을 살아가는 슬픈 동력이었다. “사람의 한이라는 건 (.....) 인생살이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긴긴 세월동안 먼지처럼 쌓여 생기는 것이라네, 어떤 사람들한테 외려 사는 것이 바로 한을 쌓는 일이고 한을 쌓는 것이 바로 사는 것이 되듯이 말이네.”
3. 오누이를 둘러싼 이야기는 오랫동안 우리의 정서를 지배하던 떠남과 기다림의 애환이 담겨있다. 머묾이 고통이 되거나 아픔이 될 때 누군가는 그곳을 떠나려 한다. 하지만 떠나는 자들은 항상 귀향의 그리움으로 시달리며 언젠가 ‘탕아’처럼 다시 돌아오려한다. 떠나는 자가 있다면 남아있는 자가 있다. 그것은 ‘새와 나무’처럼 떨쳐버릴 수 없는 관계의 사슬로 묶여있는 영원한 인연의 모습이다. 그 시간의 단절 속에서 사람의 삶은 이어지겠지만 그것은 커다란 상처를 안은 모습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한은 쌓이고 그것은 삶이 된다. “사람들한테는 그 한이라는 것이 되레 한 세상 살아가는 힘이 되고 양식이 되는 폭 아니겄는가.”
4. 소리를 하는 누이와 북채를 진 오빠가 만나 벌이는 소리와 북의 만남은 서로의 한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는 슬픈 인연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같이 머물 수 없다. 서로에 대하여 따뜻한 말을 건네지도 못한다. 오직 타인의 시선과 설명을 통하여 서로에 대한 감정을 전해들을 뿐이다. 머물 수 없는 숙명을 확인하면서 그들은 말없이 만나고 헤어지면서 세월을 흘려보낸다. 그 처연하고 안타까운 모습은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 속에 숨겨야 했던 우리의 정서를 적확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말이 아닌 ‘소리’였다. “남도소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그 몹쓸 한을 쌓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그 한으로 굳어진 아픈 매듭을 소리로 달래고 풀어내는 것이란 말이외다. 그래 그 한의 매듭이 깊은 사람들에겐 자기 소리로 그것을 풀어내는 일 자체가 삶의 길이 되는 수도 있는 거지요.”
5. 연작소설 마지막 작품 <다시 태어나는 말>에서는 오누이의 이야기가 새롭게 해석된다. 앞 4편의 소설 속에서 추적하던 삶의 중심이었던 ‘한과 소리’의 정체를 ‘말’을 통하여 새롭게 구현한다. 한과 소리를 통해 살았던 오누이에 대비하여 ‘다도’에 밝았던 초의선사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말의 중요성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것은 말이 삶의 중심이 라는 깨달음이다. 초의선사의 ‘다도’에서 자연의 차가 다구가 결합하여 차의 본질을 구성하듯이, 인간의 정신은 말을 통해서 표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말이 가진 힘이요, 말 속에 잠재되어 있는 삶의 정신인 것이다. “삶이 말이 되고, 말이 바로 삶이 되며, 그 삶으로 대신되어진 말, 거기서보다도 더 자유로와질 수 있는 말의 마당이 있을 수 있는가”
첫댓글 - 가난과 생존, 슬픔의 한, 말없는 자연....... 풀어낸다고? 억지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