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다리 아래로 잔잔한 파도를 내려다보며
얼마동안은 넋 빠진 인형모양 혼자서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17년 전 7월 하순 그 어느 날.동족끼리의 처참함. 6.25동란으로
나도 나의 고향산천을 뒤돌아보며4식구의 책임을 지고
부모님은 옥천에 남아 계신 채 헤어져 남하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부산이란 곳은 난생 처음이요,
어느 누구에게 의지할 곳 없는 곳이었다.
혼자서 이곳저곳을 헤매 다니다, 방이라고 얻어 보니
또한 말로만 듣던 영도 섬이란다.
뒤늦게 남하하시겠다던 부모님을 맞이하기 위해
매일같이 영도에서 초량, 부산진역 등을 막연히 찾아 헤매며
애타는 초조감과 긴박감 속에서 오로지 국군의 승리만을
기원하며 불안에 싸였던 그때,
다리난간 아래로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고만 있던 나에게
인내라는 두 글자가 새로워졌다.
참고 견디며 노력하면 광명은 다시 찾아 줄 것만 같아
지쳤던 나에게 순간적으로 미약하나마
새로운 용기가 되살아남을 느꼈다.
인내는 무위(無爲)가 아니며 또한 무능(無能)도 아닐 것이다.
인내는 달성을 위한 노력이요 성취를 위한 진통이 아닐까.
때가 성숙될 때까지 피나는 노력을 계속하며
가진 고난을 극복해 나가는 인간의 존엄성. 노력이란 후일에
그 성과의 비중도 중요하겠으나 노력한다는
그 자체가 더욱 귀중하게 생각된다.
이것은 마치 머리가 우수하여 노력하지 않고서도
성적이 좋은 어린이보다는 보다 좋아지려고
꾸준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어린이의 모습이보다
슬기롭고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과 같다.
이 정다운 파도도 그 어느 때에는 노도로 변하여생명과
재산을 잔인하게 삼켜버려 사람들의 가슴마다
뼈저린 상처를 남겨주었겠지만 그 자연의 위력도지금은
저 바다 속 깊은 곳에서 선량해지고저 인내로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때의 걷잡을 수 없던 불안과 빈곤을 그 영도다리 난간에서
무아(無我)의 심정으로생각 아닌 생각에 잠기어 찾은
인내로써 극복했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내 머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용기 있는 사람은 인내할 줄 알며 지혜로운 사람도 인내할 줄 알고
선량한 사람 또한 인내할 줄 알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권회복도, 민주국가의 수립도,
동란으로부터의 승리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빈곤에서 풍요한 사회로 진보하는 것.
이 모두가 우리 겨레의 인내와 노력에서
이루어졌고 또 이루어져 가고 있지 않은가?.
특별히 참고 견디어 크게 내 뜻을 이루어 본 일도 없고
그로 말미암아 자기가 지닌 괴로움을 잊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있는 기적도 없기는 하나,
역시 참고 견디어 후회해 본 일 없고,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다.
현재도 또 후일에도 인내와 노력 그리고 성실만은
나의 신조요 가장 가까운 벗이고 단 하나의 위안이며
나의 축소된 과거 기록이기도 하다.
"어머니 자신은 서예에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예에 집착한 것은 1970년대에 들어서였으며,
1973년 초부터는 항상 거처하는 방에 조그마한 서예용 책상을
마련해 두고 틈이 날 때마다 서예에 몰두하였습니다.
걱정스럽거나 고달플 때 언제나 책상 앞에서 단정히
붓을 잡던 모습은 마치 마음을 한곳에 모으며
정리하는 도인의 모습과도 같았습니다.
제가 옆에서 먹을 갈아드리곤 했지만,
세상의 시름을 잠재우려는 어머니의 모습에서
또 다른 힘이 느껴지는 광경이었습니다."
<나의 어머니 육영수 (박근혜) 중에서>
(글, 옮김, 編: 동해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