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문예대학 출신 작가 작품>
음악 산책
안치화
행복을 찾는 방법은 다양하다. 맛집에서 좋아하는 음식을 먹는 일, 커피 향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것,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의 속삭임을 엿듣는 것, 강가에 피어있는 꽃 무리를 만나는 것, 음악을 들으며 산책하는 것도 일상의 즐거움이다. 무엇보다 정서를 같이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명곡 감상하는 것이 작지만 확실한 나의 행복이다.
우레가 땅 위에 울려 퍼지는 모습에서 음악이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음악은 말보다 먼저 등장한 소통 수단이다. 원시 시대의 음악은 병든 사람 몸에서 악령을 내쫓는 주술이었고 일정한 억양과 음감을 띠고 있었다. 음악은 병을 치유해 주는 수단이 되었고 동료들과 의사소통의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우리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기억한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 시민들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행사로 '멜로디가 흐르는 음악' 도시 조성사업이 있었다. 새로운 합창단이 생겼고 도심 거리공연이 시도되었으며 콘서트 개최가 활성화되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에 음악이 큰 위로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코로나 사태를 맞았다. 음악을 통한 위로와 격려가 그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때이다. 국내 최고 수준의 대구 교향악단이 콘서트하우스에서 전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콘서트를 선보인다고 한다. 유튜브를 통한 무관중 생중계 콘서트 시도는 시민들의 잃어버린 삶의 의지를 향상시킬 것이다. 고여 있는 일상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의 치유 수단이 되었으면 한다.
유년 시절 어느 날, 교회의 피아노 반주 소리에 발길이 머물렀다. 감성이 예민하던 시절, 음악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이 생겨 성가대 일원이 되었다. 선율이 다른 소리가 어울려 화음을 이루어낸다는 것을 알고 음악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감성을 지닐 수 있었다. 지난날의 열정이 그대로 남아 주부가 되어서도 합창단 생활을 하고 있다. 병원 소속 합창단 일원으로 환우 치유를 위한 봉사활동이 목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르고 보니 나를 위한 치유의 시간이었다. 내 삶의 숨통이었다. 합창을 통해 기쁨과 환희를 맛보고 슬픔을 위로받으며 내면의 나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이 되었다.
합창단 활동과 더불어 공연 문화와도 가까워졌다. 음악제, 무용제, 연극공연, 소리꾼 공연,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에 관심을 두던 중에 녹향 음악 감상실을 알게 되었다. 중앙로 향촌동에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클래식 음악 감상실이다. 6.25 전쟁 중에 피난 온 예술가들의 쉼터 역할을 했고 음악가들의 왕성한 창작 활동이 이루어진 곳이다. 녹향에서 진행하는 예술 단체 중 고전 음악 감상 모임의 회원이 된 것은 행운이었다. 클래식 음악 감상과 명곡 들여다보기 모임은 나의 음악적 소양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고 회원들과의 소통과 화합을 통해 더 넓은 음악 세계로 들어섰다.
녹향과 지척지간에 있는 콘서트하우스는 최첨단 음향 시설을 자랑하는 연주 홀이다. 공연 예매를 통해 연주회 감상의 기회를 얻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 클래식 향연을 즐긴다. 관을 통해 소리를 내는 금관 악기와 목관 악기, 줄을 튕겨 소리 내는 현악기, 두드려서 소리 내는 타악기, 건반 악기가 어우러져 명곡을 만들어 낸다. 베토벤 교향곡의 웅장함, 모차르트 피아노곡의 유려한 음악적 기교, 차이콥스키 발레곡의 환상과 만난다. 음악은 어디에나 가득하다. 가만히 그냥 들으면 된다. 특별 출연자의 감미로운 바이올린 소리에 현혹되어 연주가 끝난 후에도 바이올린 세계에 몰입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마찰, 세상살이의 고뇌와 번민이 말끔히 사라진다.
대구 오페라하우스는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과 국제 오페라 축제 공연장이다. 대구 뮤지컬 작품 투란도트는 세계화 작품이며 초연 이후 중국에 진출하여 한국 창작 뮤지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얼음 공주 투란도트에 반한 칼리프 왕자의 구혼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배우들의 열연과 웅장한 군무로 완성도 높은 공연을 관람했다. 지금의 우리는 코로나 사태와 사회적 거리 두기 영향으로 공연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 공연예술문화의 중심에 선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광장 콘서트'를 개최한다. 지역을 위해 애써주신 의료진, 소방대원, 자원봉사자들을 초청해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하며 '함께해요 대구' 공연으로 시민들에게 마음의 위로를 전한다. 음악이 소통의 수단이 되면 다 함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사문진 나루터는 우리나라 최초의 피아노 유입지다. 190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항을 출발한 피아노는 낙동강을 통해 사문진 나루터에 도착했다. 2012년부터 사문진 나루터에는 100대 피아노 콘서트가 성대하게 열린다. 어느 해 가을밤, 사문진 나루터에 쇼팽의 '녹턴' 곡이 피아노로 연주되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환경 속에서도 영혼을 울릴 수 있다는 감동적인 영화 '피아니스트' 삽입곡이었다. 영화 장면 속의 감동이 그대로 살아나 눈을 지그시 감았다. 무대 위에는 100대의 피아노가 준비되어 있었고 100명의 연주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베토벤 운명 교향곡이 동시에 울렸다. 청중을 압도하는 웅장함에 놀랐다. 야외 공연이 주는 최고의 무대였다.
2017년 11월 1일은 역사적인 날이다. 녹향 음악실, 콘서트하우스, 오페라하우스, 사문진 나루터를 토대로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 창의 도시 네트워크에 선정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폐허 속에서도 대구에는 바흐의 선율이 흐르는 음악 감상실이 있었다는 사실과 지하철 참사의 아픔을 '멜로디가 흐르는 도시' 사업으로 치유한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자세히 소개했다. 대구 출신 음악가들의 두드러진 활동이 밑거름되어 근대 현대 음악이 발전되었다. 음악적 자산이 풍부한 대구가 유네스코 음악 창의 도시로 선정되었으니 음악 발전의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것이다. 자부심을 느낀다.
음악은 내 삶의 작은 위안이며 치유와 소통의 수단이다. 음악 산책길에서 만나는 이야기들이 감동의 꽃을 피운다. 일상에서 누리는 소소한 행복 찾기는 계속될 것이며 나는 곧 나를 만나러 간다.
(《수필문예》 제19집, 2020. 수필문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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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프로필
· 2015년 《수필과 비평》 등단
· 수필문예회, 대구수필과비평작가회의 회원
· 대수수필문예대학 18기 수료
· chihwa100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