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기독교계(JW를 포함)에서는 인간이 완전하게 창조되었으나 원죄로 인하여 타락되었다고 한다. 타락되기 전의 인간은 생명과 완전한 건강을 누리는 어떤 표준 스타일의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여기서 우리는 완전 또는 완전성이란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 고찰해 보기로 한다. 어떤 것을 만들려고 결심하고 그것을 완성하는 사람은 그것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제작자 자신뿐만 아니라 제작자의 생각과 목적을 바르게 알고 있는 사람 또는 알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렇게 말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어떤 작품(나는 그것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가정한다)을 보고, 그 제작자의 목적이 집을 짓는 것임을 안다면, 그 사람은 그 집이 완성되지 않았다[불완전하다]고 말할 것이고, 이에 반하여 제작자가 작품에 부여하려고 의도한 목적이 이루어지면, 그것이 완성되었다[완전하다]고 말할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이 아직 한번도 비슷한 것을 본 적이 없는 어떤 작품을 본다면, 그리고 그것을 제작한 사람의 생각도 알지 못한다면, 그는 물론 그 작품이 완성되었는지 아닌지 알지 못할 것이며, 완전하다 불완전하다는 평가를 내리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예에서 완전 및 불완전이라는 말이 출발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인간이 일반적 관념들을 형성하여 집, 건물, 탑 등의 형(型)을 안출하고, 사물의 어떤 형을 다른 형보다 선호하기 시작한 후에, 각자는 같은 종류의 사물에 대하여 형성해 놓은 일반적 관념과 일치하게 보이는 것을 완전하다고 하고, 자신이 파악해 놓은 형과 별로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것을, 설령 제작자의 의견으로는 그것이 충분히 완성된 것이라고 할지라도, 불완전하다고 한다. 이러한 개념은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닌 자연물에 대해서 조차 사람들이 보통 완전하다거나 불완전하다고 하는 것에는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인공물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자연물에 대해서도 일반적 관념을 동일하게 적용시키는 것이 보통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일반적 관념을 사물의 형태로 간주하며, 또 자연의 사물은 그 완전한 관념에 충실한 형태로 자연에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그들은 같은 종류의 것에 대하여 파악해 놓은 형과 일치하지 않는 것이 자연에서 발생한 것을 볼 때에, 자연(또는 신) 자체가 실패했거나 실수를 범하여 그 사물을 불완전하게 생성시켰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이 사물에 대한 참된 인식에 의해서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편견에 의해서 자연물을 완전하다거나 불완전하다고 판단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신은 목적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목적'이라고 하는 것은 신을 인간과 동일한 인격으로 취급하여, 인간이 원하는 바를 '하나님의 목적'이라는 신의 이름으로 내세운다. 그러나 신은 완전하여 부족함이 없다는 전제 아래서 다시 어떤 목적을 갖는다면 그것은 부족함 또는 원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에 '신은 완전하다'라는 전제와 충돌된다. 우리가 신 또는 자연이라 부르는 저 영원하고 무한한 존재는 자신의 존재의 동일성과 필연성에 의하여 행동한다. 그러므로 신 또는 자연이 왜 행동하는가에 대한 이유 또는 원인은 왜 신이 존재하는가의 이유 또는 원인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어떤 목적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신이 행동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따라서 신은 존재함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행동(작용)함에 있어서도 어떤 원칙이나 목적을 갖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목적인이라는 것은 인간의 행동이 어떤 사물의 원칙 또는 원인으로 생각되는 감정적 충동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거주하기 위함이 주택의 목적이라 말할 때, 사실은 인간이 옥내 생활의 이점을 떠올려 가옥을 건축하려는 충동을 가졌다고 이해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거주를 주택의 목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러한 감정의 충동에 지나지 않는데도, 이 충동이 실제로 작용인이며, 제 1원인으로 여기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보통 자기의 충동의 진짜 원인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자기의 행동과 충동을 의식하고 있지만, 자신으로 하여금 어떤 것을 원하도록 결정하게 하는 원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연이 때때로 실패하거나 실수를 저지르며, 불완전한 사물을 산출한다고 믿는 일반 대중의 생각은 허구들 중의 하나로 간주한다. https://youtu.be/EaCDxC7_x9g 그러므로 완전과 불완전은 실제로 사유의 양태에 지나지 않는다. 즉 우리가 동일한 종 또는 류에 속하는 개체를 비교함으로써 지어내는 개념일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실재성과 완전성은 동일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연에 있는 모든 개체에 일반적으로 종류의 개념을 귀속시키기 때문에, 자연에 있는 모든 개체를 이 류(類)에 귀속시켜 서로 비교하고, 또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많은 이점이나 실재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더 완전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한계, 종말, 무능력 등과 같은 부정을 포함하는 어떤 것을 인정하고서는, 그것들이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것들은 우리가 완전하다고 하는 것들 만큼 우리의 정신을 감동시키지 않기 때문이지, 본래 그것들에 속하는 어떤 것이 결여되어 있다거나, 신 또는 자연이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물의 본성에는 작용 원인의 필연성에서 생기는 것이므로,작용인의 본성에서 생기는 것은 모두 필연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위의 인용된 유투버에서 볼 수 있는 샴쌍둥이도 신 또는 자연이 실수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작용 원인에 의해서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이며, 그것을 신의 뜻으로 보고 감사한다고 샴 쌍둥이 형제는 말한다. 선과 악에 관해 말하자면, 이것들도 역시 우리가 사물을 그 자체로 고찰하는 한, 사물에 있어서의 아무런 선악을 나타내지 않으며, 사유의 양태 또는 우리가 사물들을 서로 비교함으로써 형성하는 개념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일한 사물이 동시에 선이 될 수도 있고 악이 될 수도 있으며, 선과 악이 무관한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컨데, 음악은 우울한 사람에게 좋고, 슬퍼하는 사람에게는 귀찮고 귀머거리에게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그러나 사정이 그러할지라도, 우리는 인간 본성의 전형으로 볼 수 있는 인간의 관념을 형성하고자 하기 때문에, 이러한 말들은 유용하게 사용된다. 따라서 이러한 말들을 앞에서 언급한 의미 속에서 보존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을 선이라고 해석할 것이며, 또 우리의 유익을 방해하는 것이 확실한 것을 악이라 해석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는 인간이 우리가 기대하는 전형에 더 가까이 또는 덜 다가가는 데에 비례하여 그 인간을 더 또는 덜 불완전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특히 주의해야 할 것은, 어떤 사람이 보다 불완전한 데에서 보다 완전으로 발전된다거나, 또는 그 반대로 말할 때, 그것은 그가 하나의 본질 또는 형상에서 다른 본질 또는 형상으로 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말이 사람으로 변한다면, 그것은 완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종류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활동능력이, 그의 본성에 의하여 증대하거나 감소하는 것이 완전 또는 불완전해진다는 뜻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완전성을 실재성으로 나는 이해한다. 즉 완전성은 각각의 사물이 일정한 방식으로 존재하고 작용하려는 그 사물의 본질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사물의 지속으로 고려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어떠한 물(物)에 대해서도 보다 오랜 시간 동안 존재를 지속했다는 것이 사물의 본질에 의하여 결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과 동일한 힘을 가지고 존재를 지속할 수 있을 때, 실재하는 것이며 동시에 완전한 것이다. 이 원리는 모든 사물에 동등하게 적용된다. 완전과 불완전에 대한 이러한 용어의 의미를 고려할 때,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에서 초기의 사람들이 천년에 가까운 장수를 누린 사실이 인간이 더 완전했기 때문이라 볼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이나 본질과 무관하며 외부적인 힘. 이를테면 기후나 공기 물 등, 자연의 조건과 성서의 표현대로 생명과를 먹은 효과가 남아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완전하다고 말하는 의미가 목적에 부합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일성을 지속하기 때문인지 두 가지 원인에서 생각할 때. 전자는 신이 목적(욕망)을 갖지 않으므로, 인간을 완전하게 창조하였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으며, 후자는 전통적 기독교 교리대로 첫 부부가 불순종하여 죄를 저질렀다면, 이 또한 동일성이 유지되는 것이 아니므로 완전의 개념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우리는 언어 생활의 편의상 목적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의 유익함에 동의한다. 또한 신이 목적이나 뜻을 이루게 한다는 표현을 그 나름의 문맥에 맞게 이해하기 위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단지 그것이 욕구나 욕망의 차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