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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둘레길 20코스 북한산 강북 코스는 '묘지 앞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길'이라는 테마를 가진 만큼 역사적 위인들과 일부 문화예술인의 유적이 많아 숲길을 걸으며 조국과 민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북한산둘레길의 흰구름길, 순례길, 소나무숲길과 겹치는 구간이다.
서울 동북단에 위치한 강북구는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이 감싸 안고, 우이천의 맑은 물이 흐르는 살기 좋은 동네다. 풍부한 녹지공간을 자랑하며 자연과 어우러진 문화재와 전통사찰 등 문화유산이 많이 있으며, 국립 4.19민주묘지 등 수많은 호국 민주 영령들의 숭고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계사 일주문 26번째 스탬프룰 찍고 나무계단을 올라서면서 시작한다. 멧돼지로부터 인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철망을 설치해 놓은 것으로 산행 시 꼭 철문을 닫고 가기를 부탁드린다는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는 문을 통과한다.
‘2024 서울국제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 참가자들이 연이어 지나간다. 도전하는 젊음이 부럽다. 둘레길 우회 안내가 설치되어 있는 구간이다. 오늘은 예전 길을 선택한다.
예전에 가끔은 쉬어가던 사각정자가 있는 너른 공터를 뒤로 아리수 정수시설이 있는 철조망을 따라 좁은 둘레길은 가파르게 내리막길이 된다.
사랑나무 연리지다. 후한 말의 문인인 채옹은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채옹은 어머니가 병으로 자리에 눕자 삼년 동안 옷을 벗지 못하고 간호해드렸다. 마지막에 병세가 악화되자 백일 동안이나 잠자리에 들지 않고 보살피다가 돌아가시자 무덤 곁에 초막을 짓고 시묘 살이를 했다.
그 후 채옹의 방 앞에 두 그루의 나무 싹이 나 점점 자라서 가지가 서로 붙어 성장하더니 결이 이어져 마침내 한그루처럼 되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채옹의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니와 자식이 한 몸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연리지는 모자의 지극한 사랑을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간절한 사랑을 노래한 백거이의 대서사시 장한가가 나온 이후엔 사랑이야기에 회자되면서 사랑의 나무로 더 상징성을 갖게 되었다.
연리지를 뒤로 내려서면 우측으로 100m 지점에 본원정사가 있다. 본원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대각회 소속의 사찰이다. 지장보살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불 사이인 부처님 없는 시대에 중생들을 교화하는 대비보살이다.
본원정사 창건주비구니 손덕선공덕비에 의하면 비구니 손덕선 스님이 지금의 자리에 도성암을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사찰에서 전하는 바에 따르면 본원정사는 조선말기 부터 있던 도성암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또한 한때 도선사보다 많은 신도들의 기도행렬이 이어지던 곳이었다고 한다.
조선말기 부터 사찰이 있던 이곳에 손덕선 스님이 머물면서 중창을 하였던 것으로 추측이 된다. 그 후 손덕선 스님이 연로하여 사찰을 유지할 수 없을 지경이 되어 폐사직전에 이르렀던 것을 1980년대 초 원성스님이 주지소임을 맡게 되었다.
이후 스님은 절 이름을 본원정사로 바꾸고 불사를 일으켜 대웅전과 명부전, 나한전 등을 건립하였다. 그러나 1996년 5월 22일 인근에 있는 삼성암, 화계사로 이어진 연쇄 방화사건으로 대웅전과 나한전이 모두 불타고 말았다. 그러던 것을 1999년 대웅전과 나한전 자리에 대적광전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우측으로 “온동네 숲으로 KCC 로 그리는 마을의 추억”이라는 주제로 마을의 축제가 한창이다. 다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한차례 올라서면서 시야가 트이며 북한산의 만경대 능선과 인수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철망사잇길을 걷다보면 흰구름길 종점 아치 파고라가 반갑다.
국립통일교육원이다. 1972년 5월 통일연수소로 발족하여 1978년 1월 통일연수원으로 개칭하였다. 그 뒤 1996년 12월에 통일교육원으로 개칭하였다. 주요 기능은 통일문제 및 국민정신교육에 관한 전문가와 교육자의 훈련 및 양성, 통일에 대비한 정부기관·공공기관·사회단체의 간부 및 요원에 대한 교육의 실시 등의 운영을 담당한다.
그리고 통일정책 및 국민정신교육상 특히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자에 대한 교육의 실시, 통일문제 및 국민정신문제에 관련되는 교육에 관한 연구 및 자문, 통일문제 및 국민정신교육상 필요한 전시시설의 운영 등을 담당한다.
이제 순례길이 시작된다. 순례길은 아기자기한 숲길이 잘 다듬어 놓은 조성길과 어우러져 걷는 내내 나라의 독립과 민주화를 위해 온 삶을 바친 순국선열을 만날 수 있다.
민주화의 성지 4.19. 국립묘지를 비롯해 3.1운동, 임시정부, 헤이그특사 등 역사교과서에서 보았던 우리나라 민주, 독립운동사의 주인공들이 곳곳에 잠들어 있어 살아있는 역사 교육의 장이다. 또한 소규모 갤러리와 섶다리도 놓치기 아까운 볼거리 중에 하나다.
이준열사 묘소 입구다. 이준열사는 1907년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장에서 을사늑약의 무효를 주장하려 하였지만 일제와 열강의 방해로 회의장에 입장하지 못하고 헤이그에서 순국하였다. 한국광복군합동묘소는 샛길로 한참 올라야 하기에 통과한다.
어제 내린 비로 시원하게 흘러가는 물길을 따라 푸르른 숲이 싱그럽다. 섶다리를 통과한다. 섶다리는 1428년(세종 10)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덕리의 보광산에 위치한 청송심씨 시조묘에 사계절 전사일에 용전천 강물이 불으면 유사 관원과 자손들이 건너지 못할까 걱정해 섶나무(잎나무와 풋나무 등)를 엮어 만들었다는 전설이 시초가 되었다.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섶다리가 북한산둘레길이 열리면서 이곳 순례길에서 둘레꾼들은 만날 수가 있다.
시간이 여유가 있다면 근현대사박물관도 둘러볼 수 있겠지만 통과한다. 북한산 대동문으로 오르는 길과 만나고 삼거리 쉼터와 옆으로 주말농장이 내려다 보이는 데크길은 강재 신숙 선생의 묘소로 가는 길을 만나게 된다. 강재 신숙 선생(1885 ∼ 1967)은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임시정부로부터 천도교의 대표적 인물의 파견을 요청받았을 때 선임되기도 했으며, 길림한국인회의 위원장에 당선, 피난민의 구제와 귀국의 알선 등으로 교포의 권익보호에 진력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수여되었다.
한차례 숲길을 따라 오르면 길이 누그러지며 보광사가 내려다보인다. 보광사는 1788년(정조 12) 금강산에서 수도한 원담 스님이 신원사를 창건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소실되고 일부 건물만이 남아 법등을 겨우 이어 왔었다. 그러던 것을 1979년 남산당(南山堂) 정일(正日) 스님이 포교의 원을 세우고 이곳에 주석하면서 불사를 시작 하여 1980년 11월 보광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스님은 가람을 일구어 오늘의 모습이 되도록 하였고, 대승경전 산림 법회와 참선 법회를 정기적으로 열어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선법을 전하여 스스로 바른길을 찾게 하였다. 이로써 보광사는 스님의 발원대로 명실상부한 포교의 도량으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한다.
보광사를 지나 국립4.19민주묘지 전망대에 도착한다. 1960년 4월19혁명은 독재와 불의에 항거하고 민주주의를 실현한 혁명이었다. 1963년 묘역을 단장하고 4.19혁명 때 희생된 199위를 이곳에 모셨다. 1993년 국립묘지로 승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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