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차시 공지가 올라왔는데 이제서야 7차시 과제를 제출하네요. 죄송합니다.
포기할까 했었는데 제이드님 발표글을 보고 저도 용기를 내보았습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18살의 여름, 난 운좋게 살아남았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엄마들의 치맛바람과 교육열 높기로 소문난 7학군, 신정동과 목동의 경계에 위치한 신생 여고였다. 이 여고는 신정동, 고척동 주소를 가진 일반주택에 사는 아이들과, 목동에 주소를 가진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로 극명하게 나뉜 학교였다. 너 어디살아 물어보면 대충 그 집의 부를 가늠할 수 있다. 하교시간에 자동차가 와서 기다리는 아이들도 대게 아파트 사는 아이들이었다.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집이 더 가까운데도 말이다.
신정동 언덕빼기에 살고 있었던 나는 대로변까지 7-8분 걸어내려와 학교까지 버스를 타고 네정거장 정도를 가야 했는데, 아침마다 만원버스에 매달려 가는게 너무 곤혹스러워 입학 후 몇 달뒤부터는 줄곧 걸어다녔다. 버스타는 대로변에서 길을 건너면 바로 목동아파트 단지였고, 단지 사이에 난 1차선 도로 옆 인도로 약 20분 정도 걸으면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파트 사는 친구들 몇 명과 부쩍 가까워지면서 그 길로 등하교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이사도라’라는 별명이 붙은 교장은 이 신생여고를 명문고로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고, 여고였음에도 자율학습을 밤 10시까지 시켰다. 그리고 희망자에 한해 12시까지 자율학습할 수 있도록 도서관을 개방했다. 집안 형편상 학원도, 사설독서실도 갈 수 없었던 나는 공부한답시고 매일 학교에 남아 아이들과 놀았다. 매일 함께 노는 멤버들이 있어서 어느날은 몰래 학교 담장 넘어 만화방에 가기도 하고, 어느날은 강당에 숨어들어 피아노 치고 노래부르며 놀고, 또 어떤날은 학교 어두운 구석에 숨어들어 시간가는줄 모르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그 날도 별다를 건 없었다. 여름이라고 기억하는 건, 내가 입고 있었던 사복 때문이다. 우리 학교는 교복을 입었는데 매주 수요일만큼은 사복을 허용했다. 보라색 반팔 남방. 그것만큼은 뚜렷이 기억난다. 밤 10시 의무자율학습 시간을 넘겨 친구와 좀 더 공부하기로 하고 도서관에 남았다. 그리고 12시가 다 될 무렵 친구와 학교를 나섰다. 우리가 공부하는 동안 비가 왔는지 땅이 젖어 있었고, 살짝 밤안개가 껴 있었다. 거리에 사람이 없었고 그날따라 가로등도 어두워 보였다. 좀 무서운 마음에 친구랑 시덥잖은 이야기로 더 깔깔대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친구는 그 아파트 사잇길의 중간쯤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가고 난 혼자 나머지 길을 더 걸어 대로변으로 빠져 나가야 했다. 친구와 헤어지고난 후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길 건너 뒤편에 운동복 차림의 남자가 보였다. 느리게 조깅을 하는 듯 했다. 이 밤중에 운동을 하네 생각하며 고개를 돌리는 순간이었다. 그 남자가 순식간에 길을 건너 내쪽으로 왔다. 그리고 내 뒤쪽에서 입을 틀어막고 나를 넘어뜨렸다. 순간 소리를 질렀던 것 같은데 꿈속처럼 있는 힘껏 소리도 질러도 목소리는 나오질 않고 손에 들려있던 우산을 휘두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가로등 근처라 주변이 나름 환했는데, 주황색 가로등 불빛도 멀리 보이는 아파트 불빛들도 순간 비현실적으로 느껴져 절망스러웠다. 나의 사지를 제압하고 있는 그 남자의 턱을 봤다. 얼굴을 볼수 있겠구나, 제발 이러지마세요. 근데 갑자기 그 남자는 벌떡 일어나더니 어둠쪽으로 다시 후다닥 없어졌다. 나는 일어났다.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지만 혹시나 다시 쫒아올까 벌벌벌 떨리는 몸으로 그 길을 간신히 벗어났다. 우산대 허리가 휘어져있었다.
엄마에게도, 선생님들께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괜히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처럼 느껴져 숨기고만 싶었다. 왜 사복을 입었었냐고, 왜 그런 길로 다니냐고 꾸짖을 것 같기도 하고, 학교에서 늦게까지 남아서 대체 뭘 하냐고 추궁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추궁한 건 바로 나였다. 설사 말한다해도 엄마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어보였다. 학교 앞으로 데리러 와줄 수도 없고, 집근처 사설 독서실을 끊어줄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다. 충분히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왜 나는 나에게만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고 숨기기에 바빴을까 최소한 학교에라도 알려 대책을 세웠어야 했는데, 지레 포기했다. 그런 걸 생각할 수 없었다.
다다다다다 우악! 복도를 걷고 있는데 친구가 장난치려고 뒤에서 빠른 속도로 달려와 놀래키며 와락 안는다. 나는 너무 놀라 그대로 털썩 주저 앉았고, 친구의 장난임을 알면서도 울음이 터졌다. 몸이 덜덜 떨렸다. 그날 밤 난 정말 운좋게도 살아남았지만 내 몸은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그로부터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난 뒤에서 누군가 빠른 걸음으로 따라오면 일단 멈춰서서 옆으로 비껴선다. 놀란 가슴이 세차게 방망이질친다. 밤이 아니라 낮에도 그렇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아도 그렇다. 뒤에 오는 사람이 심지어 여자여도 그렇다. 자동으로 반응한다. 가해자는 순간 충동적으로, 술김에 저지른 일이라며 벌써 잊었을텐데 피해자는 그 상처와 잔상을 이토록 오래동안 껴안고 있다.
18살의 여름 이후에도 난 몇 번이나 운이 좋았다.
대학 1학년, 세상을 논하며 부어라 마셔라 밤을 하얗게 불태우던 사람들이 하나둘 쓰러져 자던 시각, 잠든 모습이 예뻐 보인다며 추행하던 선배로부터
늦은 밤 숨가쁘게 올라탄 막차에서 옆자리에 앉아 가슴으로, 허벅지로 슬쩍 손을 대던 남자들로부터
노동다큐 활동가로 취재차 출장을 자주 갔던 울산에서, 자본주의 체제 공고히 하는 도덕따위 무시하고 연애하자며 달려들던 유부남 노동자. 일 때문에 계속 봐야 하는 상황이라 좋게좋게 거절했는데 결국은 강제로 추행하려 달려들던 그 밤으로부터 운좋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2016년 5월 17일 강남역 살인사건.
그녀는 죽고 나만 살아남았다.
지레 겁먹고, 도망치는데 급급했던 그 수많은 운좋았던 날들에 살아남은 자로 내가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그녀도 함께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라도 침묵하지 않을꺼다.
운이 좋은게 아니라 우연히 살아남았을 뿐이므로.
첫댓글 오, 메이. 읽는 나도 가슴이 방망이질. ㅠㅠ 정말 무서웠겠어요. 이 글의 리뷰는 다음 과제랑 같이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