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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4일 토요일 지리산 무박산행
W 산악회 28인승 5만원
산행코스 : 성삼재 02:40 – 노고단 – 돼지령 – 임걸령 – 반야봉 – 삼도봉 – 화개재 – 토끼봉 – 명선봉 –
연하천 대피소 – 벽소령 대피소 – 세석 대피소 – 장터목 대피소 – 중산리 17:05
산행거리 : 약 34 km 산행시간 : 약 14 시간
https://www.ramblr.com/web/mymap/trip/371711/2206340
거리 34.2 km
소요 시간 14h 17m 29s
이동 시간 13h 43m 21s
휴식 시간 34m 8s
평균 속도 2.5 km/h
최고점 1,755 m
총 획득고도 1,342 m
난이도 보통
지난 주말 지리산에 가려다 통영에 불시착 하게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고 나서 역시 지리산과는 인연이 없는가보다 하는 생각이 드는 한 편 그래도 꼭 한 번 가야겠다는 고집이 일어선다. 이런 일도 미뤄두면 또 언제 실행에 옮길지 모르는 일이기에 주말 날씨를 살펴보고 일찌감치 수요일에 예약을 마쳤다. 이번에도 인원이 얼마되지 않아 28인승 버스를 운행한다고 한다.
주중에 몇 번 비가 내렸지만 본격적인 장마라고 하기에는 비의 양이 좀 적다. 남부지방에는 비가 꽤 많이 내렸고 중부지방에도 어느 정도 내렸기에 설악산 토왕성폭포며 대승폭포의 풍경이 대단하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마음 한 편에는 설악산에 가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설악산은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기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다. 일기예보에는 금요일 밤에 비가 내리고 토요일 오전 6시 이후에 개인다고 한다.
금요일 퇴근해서 집에 가니 8시다. 윤이는 일산 진골산악회 회원들과 저녁을 먹고 처형 집에서 자고 북한산 산행을 할 거라며 집을 비웠고 미리와 나는 통닭을 시켜서 저녁을 대신한다. 지난 주 20분 늦게 도착해서 지리산행 버스를 놓쳤던 뼈아픈(?) 기억을 교훈삼아 이번에는 9시에 집을 나섰다. 시장에서 바나나 한 송이를 사서 배낭에 넣고 과자 몇 개 그리고 물 세 병을 샀다. 배낭에는 윤이가 사 놓고 간 빵이 들어 있으니 이만하면 하루 양식으로 충분하겠다. 더구나 지리산에는 군데군데 샘이 있어 물을 공급받을 수 있으니 작은 페트병 두 개면 된다. 양재역에 도착하니 이슬비가 이슬거린다. 우산이나 우비를 챙겨오지 않았기에 조금 신경이 쓰이지만 어짜피 밤 사이 그칠 비라고 가볍게 맞아 준다.
중간에 인삼랜드 휴게소에 잠시 들르고 새벽 2시 40분쯤 지리산 산행 들머리인 성삼재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찬 바람이 훅 몸에 부딪친다. 야생에 길들여지지 않은 도시인의 본능으로 몸을 움추린다. 안개비가 내린다. 랜턴 불빛에 비친 풍경이 어둠속에 뿌옇게 다가온다. 준비성 있는 산꾼들은 바람막이 옷을 챙겨입고 배낭에 덮개를 씌운다. 겁먹은 산꾼들은 화장실에 들어가 잠시 머뭇거린다. 어짜피 가야할 길이고 달리 더 갖출 것도 없는 나는 어둠 속으로 발을 내딪는다. 재작년(2018년) 9월 백두대간을 뛸 때 걸었던 그 길이다.
노고단(老姑壇 1,507 m)
먼 옛날 마고(麻姑)할미 제사를 모셨다는 노고단(老姑壇 1,507 m)까지는 편안한 임도길이다. 노고단에는 대피소도 있고 등산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쉽게 찾는 곳이다. 고려 태조의 어머니가 지리산을 찾아와 기도를 올린 후 낳은 아들이 태조 왕건이라 하여 천왕봉에 성모사당을 짓고 돌로 성모상을 모셔놓았는데 이후 고려말에 왜구들에 의해서 그리고 해방 후에는 기독교인들에 의해서 훼손되었으며 지금 그 성모상이 중산리에 있는 천왕사에 모셔져 있다고 한다. 지리산은 남한에서 한라산 다음으로 높은 산으로 옛날 선조들은 이 산에서 분명 어떤 신성함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아니, 옛 사람뿐만 아니라 현대인들도 지리산을 찾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런 기분을 느낄 것 같다.
성삼재에서 반야봉까지 약 10 km 거리다. 비가 내린 탓에 중간중간 물 웅덩이가 번들거리고 길 가에는 여름 풀꽃이 지나가는 랜턴 빛에 얼굴을 비춘다. 지리터리풀. 일반 터리풀에 비해 선홍빛 색깔이 고운 지리터리풀이다. 범꼬리도 지금 한창이다. 노란 큰뱀무꽃도 보인다. 산꿩의다리, 노루오줌 등 이른바 여름 야생화가 오늘 산길의 장면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 영화처럼 눈 앞에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돼지령을 지나 임걸령에 이르니 오른쪽 조망처 너머로 구름속에 해가 꿈틀거린다. 반야봉에서 멋진 아침 일출을 보고자 했던 기대와 달리 짙은 구름에 제대로 된 해돋이는 볼 수 없을 듯하다. 사실 성삼재를 출발할 때만 해도 해뜨는 시각 5시 15분까지 반야봉에 오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을 갖고 있었으나 걷다보니 그리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다. 다만, 구름 속에 가려진 태양에 여명조차 비치지 않으니 어두운 길을 막연하게 걸어야 한다.
반야봉 (般若峯 1,732 m)
5시가 거의 다 되어 반야봉으로 갈라지는 노루목에 도착했다. 아직도 주변은 어둑어둑하다. 거기서 반야봉 삼거리까지는 금방이다. 이제 랜턴을 꺼도 주변이 보일만큼 밝아온다. 서서이 지리산의 면모가 드러난다. 희뿌연 안개가 내려앉은 숲길을 따라 반야봉에 오른다. 2년전에는 가을 쑥부쟁이와 투구꽃 그리고 산오이풀이 화려한 꽃길을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푸르른 녹음이 안개를 머금고 있는 모습이다.
가파른 바위길을 이어주는 철제 사다리에 오르기 전 주위를 눈여겨 살펴본다. 내가 찾고자 하는 흰참꽃이 어디쯤 있을지 대충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위 위에 눈에 익은 꽃이 피어 있다. 사진에서 보았던 흰참꽃이다. 진달래과에 속하는 낙엽 활엽 관목이다. 잎은 털진달래와 비슷하지만 그보다 훨씬 작고 빗물에 젖은 털이 더욱 돋보인다. 꽃은 새끼손톱보다도 더 작은 것같다. 진달래꽃을 경상도에서는 참꽃이라 한다. 그러니까 흰참꽃이라는 것은 하얀 진달래라는 말이다. 잎도 꽃도 진달래꽃을 닮았다. 다만, 색깔이 하얗고 크기가 엄청 작다. 한 나무에 이미 져버린 꽃과 한창 피어있는 꽃 그리고 앞으로 피어날 꽃봉오리가 섞여 있다. 내려올 때 좀 더 자세히 보기로 하고 우선 정상으로 향한다.
반야봉 정상부위는 고도가 높은데다 바위가 많아 키 큰 나무는 그다지 많이 자라지 않고 분비나무가 여러 그루 자라지만 시야를 가리지 않는다. 넓지 않은 초원에는 일월비비추와 꿀풀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날만 좋으면 이 곳에서 노고단과 성삼재 그리고 멀리 천왕봉까지 볼 수 있는 위치지만 짙은 안개가 끼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날이 밝아 내려오는 길에 흰참꽃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꽃 한 송이 입에 넣어 씹어본다. 진달래꽃 향을 느껴 보려하지만 꽃이 너무 작아서 그런지 별다른 향을 느낄 수는 없다. 마음속으로 진달래 맛이라고 생각한다. 큰 벌들이 날아다니며 이 꽃 저 꽃 잠시 앉았다가 옮겨다닌다. 아마 비가 내려 빨아먹을 꿀도 별로 없을 듯하다. 꽃이 하두 작아서 벌이 앉아서 쉴 곳도 없다. 그냥 날개를 저으면서 꽃 위에 떠 있는 채로 꽃에 빨대를 내리꽂았다가 금방 빼 낸다. 꽃이 귀한 시기에 피어나니 이렇게 작은데도 불구하고 벌이 끊임없이 찾아온다.
봉우리 아래로 내려오는데 갑자기 조망이 터진다. 천왕봉쪽에 짙게 깔린 안개 사이로 아주 작은 틈이 벌어지고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이어서 남쪽으로 흰듬봉인지 불무장등인지 이름모를 산군들이 구름을 헤집고 짙은 녹색 향연을 펼쳐보인다. 오늘 하루 종일 이렇게 흰 구름과 녹색 산봉우리의 숨바꼭질 놀이를 보면서 산길을 걷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금마타리와 돌양지꽃 그리고 참조팝나무와 노루오줌이 제 철을 만난 듯 활짝 피었다. 봄에 피었던 야광나무에는 팥알만한 열매가 가득 달려 벌써 붉은 빛이 감돈다. 계절의 수레바퀴는 이렇게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한 숨 돌릴 여유도 없이 앞으로 앞으로만 굴러간다.
삼도봉 (三道峰 1,550 m)
바위 봉우리가 낫의 날처럼 날카롭게 생겼다 하여 ‘낫날봉’이란 이름으로 불리다가 산꾼들이 발음하기 쉬운 ‘날나리봉’으로 고쳐서 불렀는데 이 봉우리가 전라남도 경상남도 전라북도 등 삼도의 경계에 걸쳐 있어 삼도의 도지사들이 모여 쇠로 된 정상석을 세운 삼도봉을 지난다. 이제 안개가 온 산을 다 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주 작은 안개비가 바람에 날린다.
화개재
삼도봉에서 나무계단을 타고 한없이 내려간다. 옛 기억에 이렇게 계단을 내려가서 연하천 대피소에 이르렀던 것 같은데 아직 연하천은 한참 남았다. 삼도봉에서 길게 이어진 나무계단 아래에는 화개재가 있었다. 꽤 넓은 공터에는 나무 울타리가 쳐져있어 풀이 무성하게 자랐는데 참조팝나무 꽃과 범꼬리 꽃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화개재는 옛날 경상남도에서 해산물과 소금을 지고 올라와 전라남도에서 올려온 농산물과 바꿔가는 장이 섰던 고개라고 한다. 오른쪽 화개로 내려가는 길은 비법정탐방로로 지정되어 있고 왼쪽 뱀사골 계곡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탐방로이다.
화개재 길 가에는 개회나무 한 그루가 하얀 꽃을 피우고 있다. 물푸레나무과 수수꽃다리속 낙엽활엽 소교목이다. 두꺼운 잎이 뻣뻣한 혁질인 것이 지난 주 욕지도에서 보았던 광나무 잎과 비슷하다. 다만 광나무는 상록활엽수이기에 겨울에도 푸른 빛을 유지하지만 개회나무는 가을에 낙엽이 진다. 원뿔형 꽃차례에 하얀 꽃이 모여서 피는데 코를 가까이 대니 향기가 그윽하다. 꽃개회나무는 햇가지에서 꽃이 피지만 개회나무는 묵은 가지에 핀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화개재에서 산길은 짙은 녹음으로 덮인 오솔길로 이어진다. 완만한 오르막길 주변으로 하얀 산꿩의다리 꽃이 심심챦게 피어있고 산수국과 일월비비추 그리고 여로가 금방이라도 꽃이 필 듯 꽃망울이 부풀어있다. 날씨가 좋지 않은 탓인지 아니면 내가 늦은 탓인지 호젓한 산길에 오고가는 산님들이 안보인다.
토끼봉
한참 오르다보니 눈 앞이 훤해지는데 지난 번 백두대간 산행 때 아침을 먹었던 토끼봉이다. 실제로 봉우리는 더 올라가야 하지만 산길이 봉우리를 빗겨가기 때문인지 이 헬기장에 토끼봉이란 이정표를 붙여놓았다.
이번 산행에서 보고 싶은 꽃이 있다. 나무 표피가 얼룩져 있어 마치 늙은 오이(노각)처럼 생겼고 혹자는 사슴뿔(鹿角) 모양이라고 하여 노각나무라 부르는 나무다. 이제까지 나무는 숱하게 많이 보았으나 때를 맞추지 못해 꽃을 본 적이 없다. 2주전에 고인돌 형님이 가야산에서 노각나무 꽃 사진을 보내왔으니 어쩌면 가야산보다 높은 지리산에는 지난 주에 피어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찾아오려 했으나 버스시간을 놓치는 바람에 계획에도 없던 섬여행을 하고 말았었다. 그래도 아직 피어 있는 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산길을 걸으면서 주변을 둘러본다.
명선봉
토끼봉을 지나 밋밋한 숲길을 걷는다. 지도에 운봉 무덤이라 표시된 바위 봉우리를 지나고 몇 그루의 노각나무를 보았으나 꽃은 흔적도 안보인다. 이 나무도 암 수 딴그루인가? 하니면 해거리를 하여 올 해는 꽃이 피지 않는걸까? 별 생각을 다 하면서 다음 번에 만나는 노각나무에는 꽃이 피어 있을 것이라 기대해본다. 하지만 명선봉을 지날 때까지 세 그루의 노각나무를 만났으나 꽃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지리산 능선길에서 그리고 하산길에서 수 많은 노각나무를 보았으나 꽃은 보지 못했다. 나중에 장터목 대피소에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에 큰 노각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노각나무 꽃을 보고서야 적어도 일 주일 늦게 찾아왔기 때문에 꽃이 이미 다 지고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노각나무 꽃은 또 내년을 기약해야 한다.
노각나무 꽃은 보지 못했으나 오랜만에 귀한 회목나무 꽃을 보았다. 오래 전 월악산 영봉에서 내려오는 나무계단 옆에서 한 번 보고 이 번에 두 번째 보는 꽃이다. 꽃이라고 하기에는 좀 허접하다. 잎 겨드랑이에서 나온 꽃자루 끝에 자주색 꽃잎 네 장이 달려있는데 꽃은 마치 나뭇잎 위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노박덩굴과 화살나무속 낙엽활엽교목이다.
연하천(煙霞川) 대피소
명선봉 봉우리를 우측에 두고 우회하여 지나고 나서 다시 내리막 급경사 나무계단을 내려간다. 연하천(煙霞川) 대피소다. 능선 위의 계곡처럼 사철 물이 흐른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전남 구례의 연하반 산악회 이름을 따서 붙여준 이름이라고 한다. 대피소에 도착하니 오전 9시가 조금 넘었다. 오면서 바나나 몇 개를 먹었으나 시장기가 느껴진다. 산행을 하면서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부담되기도 하거니와 어디 자리를 잡고 앉아 배불리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냥 무작정 걷다보면 배에서는 음식을 채워달라 보챈다.
버스에서 산대장이 10시에 세석대피소를 지나야 안전하게 산행을 마칠 수 있겠다고 했는데 나는 9시가 넘은 시간에 아직도 연하천 대피소다. 연하천에서 벽소령 대피소를 거쳐 칠선봉과 영신봉을 넘어야 비로소 세석대피소에 도착한다. 갈 길이 까마득한데 산행 속도는 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 여유를 찾아본다. 야외테이블에 배낭을 내려놓고 바나나와 빵을 먹는다. 그리고 빈 병에 물을 채운다.
형제바위
여기서 천왕봉까지 15 km 남았고 10시간을 잡아야 한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지금이 9시니까 10시간 후에는 오후 7시다. 아무래도 천왕봉까지 가기에는 무리가 따르겠다. 세석에서 거림으로 내려가는 방법을 생각해본다. 그래도 우선 가는데까지 가보자. 아직 버스 출발시간까지는 8시간이나 남았다.
이 길은 백두대간을 뛸 때 한 번 걸었던 길이기에 낯설지 않다. 지금보다 조금 늦은 때였기에 길 가에는 촛대승마 꽃이 예쁘게 피어 있었고 노란 지리고들빼기 꽃이 무리지어 피어 있었다. 지금은 고들빼기 잎만 무성하다. 잎을 하나 따서 입에 물어본다. 부드러운 잎을 씹으니 쓴 물이 입 안 가득 솟는다. 잘린 잎에서는 하얀 진이 금방 올라온다. 설악산에서 본 까치고들빼기와 쉽게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지리산에서 나는 것이니 어련히 지리고들빼기라고 믿어본다.
형제바위에 이르기 전 조망처에서 다시 한 번 짙은 안개를 확인한다. 사방이 희뿌옇다. 아무런 조망도 기대할 수 없다.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형제바위 (또는 夫子바위)를 지난다. 백두대간 뛸 때 이 곳에서 광양의 백운산까지 보였는데 오늘은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안보인다. 두 형제가 지리산에 들어가 마음 수양을 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멋진 외모에 반한 요물이 갖은 방법으로 유혹을 해보지만 두 형제는 서로 몸을 의지한 채 꼼짝달싹하지 않고 수양을 하다가 그만 몸이 굳어져 바위로 변했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큰 바위가 형일테고 작은 바위가 동생바위 이렇게 형제바위는 옛 전설을 간직한 채 무한의 세월을 지키고 있다.
형제바위에서 보이는 작은 봉우리를 돌아서 조금만 가면 벽소령 대피소가 나온다. 산 길에는 진분홍 지리터리풀 꽃이 자주 보인다. 일반 터리풀 꽃은 흰색인데 비해 지리터리풀은 진한 분홍색이다. 아직 확짝 피지 않은 꽃망울이 알알이 구슬처럼 예쁘고 또 활짝핀 꽃은 연한 분홍빛이 아름답다. 2018년 만복대를 오르면서 꼭 한 포기 지리터리풀을 보았기에 이번에는 좀 일찍 찾아왔더니 아주 적기에 찾아온 것 같다.
바위에는 바위떡풀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고 군데 군데 바위틈에 참바위취가 나 있다. 참바위취는 꽃대가 길게 올라왔으나 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길 양쪽으로 높은 바위가 솟아 있는 모습이 개선문 같다는 느낌이 든다.
벽소령 대피소
11시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했다. 푸른 달빛을 본다는 벽소령이다. 백두대간 때는 오후 1시에 도착하여 음정으로 하산했는데 그보다 두 시간 일찍 도착했으니 어쩌면 천왕봉까지 가도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도 생겨난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젖는다고 부슬부슬 내리는 안개비에 옷이 후즐건하게 젖어온다. 짙은 안개에 조망이 없으니 설사 천왕봉에 오른다 해도 별 감흥은 없으리라는 생각이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칠선봉에 올라서고 곧 이어 영신봉을 지난다.
세석대피소
산대장에게 두 번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는다. 아마도 정신없이 하산하고 있는 모양이다. 세석대피소에 거의 다 와갈 때 전화가 왔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진다. 산대장은 이미 하산했다고 한다. 세석에서 거림으로 하산해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택시타고 중산리로 와야 한다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나 한 사람 때문에 버스가 거림까지 둘러갈 수 없겠다는 말이다.
이제 스스로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세석에서 거림까지 6 km 아직 가보지 못한 길이지만 내리막으로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거림에서 택시로 중산리까지 가야한다. 아니면 일단 장터목 대피소까지 가서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방법이 있다. 세석에서 장터목까지 3.4 km 로 그리 멀지 않고 또 장터목에서 중산리까지도 멀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산 종료시간 5시까지 이제 세 시간 남았다. 산대장은 천왕봉에 가지 않고 장터목에서 하산한다면 좀 빠듯하지만 가능하겠다고 한다.
이제 마음이 급해졌다. 안개가 더욱 짙어져 조망은 별로 좋지 않지만 중간에 만나는 흰참꽃이나 박새 군락 등 야생화라도 즐기면서 걷고 싶은데 이제 그럴 여유가 없다. 촛대봉도 지나고 연하선경으로 유명한 연하봉도 눈으로 대충 훑어보고 달리다시피 걷는다. 3.5 km 라는 거리가 그리 긴 것은 아니지만 마음이 급하면 영원처럼 긴 거리다. 그래도 마지막 구간은 내리막인데다 오솔길처럼 잘 닦여져 있어 어렵지 않게 장터목에 도착했다.
장터목 대피소
안개가 자욱하게 낀 장터목 산장이다. 산불 대비용인지 빈 마당에는 파란 물통이 가득하다. 이 장터목 대피소는 백무동과 중산리를 이어주는 고개다. 옛날 경상남도 산청군 사람들과 전라남도 함양군 사람들이 각자 토산품을 이고 지고 이 고개에 올라 물물교환을 했다고 한다.
중산리로 내려가는 길 초입에 이정표가 서 있다. 중산리 5.3 km 다. 내가 생각했던 3 km 의 거의 두 배다. 오후 3시 30분이니 이제 한 시간 반 남았다. 녹록치 않은 거리다. 오늘도 여느때와 같이 험난한 여정을 남겨두고 있다. 산장 바로 아래 있는 급수대에서 물을 담고 내리막 돌길을 뛰기 시작했다. 지리터리풀과 골무풀 등 예쁜 야생화에게도 곁눈질하지 않고 달린다. 왼쪽 계곡에 물 흐르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느낄만큼 수량이 풍부하다. 비에 젖어 있어도 다행히 돌이 그다지 미끄럽지 않다.
예전에는 눈에 띄지 않던 노각나무가 많이 보인다. 굵기도 어른 허벅지나 허리통 만하다. 오늘 하루 종일 걸으면서 노각나무꽃이 뇌리를 벗어나지 않았다. 위를 올려다 보지만 역시 꽃은 안보인다. 그런데 바닦을 보았을 때 비로소 의문이 풀렸다. 노각나무에 꽃이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미 꽃이 다 져버렸기 때문이었다. 나무 아래 돌 바닦에는 얼마전에 진 노각나무 꽃이 널려있었다. 그러니까 오늘 내가 노각나무 꽃을 볼 수 없었던 이유는 꽃이 다 져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노각나무도 함박꽃나무처럼 얼마간 꽃이 계속해서 피고 지고 또 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노각나무 꽃은 동백꽃처럼 그냥 때가 되면 활짝 피었다가 마치 비가 내리듯이 후두둑 떨여지고 마는 모양이다. 올 해도 노각나무꽃을 보지 못하고 또 내년으로 숙제를 미루어야겠다.
유암폭포까지 1.6 km를 30분에 걸어 내려왔다. 남은 중산리까지 3.7 km 남았다. 오후 4시가 조금 지났으니 한 시간 남았다. 아직 다리가 굳건하게 버텨준다. 앞서 가던 사람들을 하나 둘씩 추월해나간다. 산을 오를 때는 모두 자신만만하지만 내려올 때는 거의 다 흐느적거린다. 나는 제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는 시간적 압박감으로 고갈되어가는 체력을 붙들어 매어둔다.
중산리 (中山里)
오후 4시 45분 천왕봉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나는 삼거리를 지난다. 장터목에서 4.1 km 내려왔고 앞으로 남은 거리가 1.3 km 다. 이제 15분 남았다. 여기부터는 평지성 길이지만 바위가 여기저기 박혀있고 사람들이 더욱 많아진다. 느린 사람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고 추월하면서 걸음을 더욱 빠르게 내딛는다.
칼바위를 지나고 통천길 탐방로 끝에 이르렀을 때 산대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냐고 묻는다. 이제 큰 길에 들어선다고 하니 부지런히 오라고 한다. 시간은 이미 산행종료 시간인 5시가 지났다. 5시 5분 마침내 거북이 식당에 도착했다. 배낭을 든 채 차에 올랐다. 사람들은 모두 편안한 자세로 누워서 쉬고 있다. 5분 늦은 것도 늦은것이니 미안하다고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산대장은 또 누군가와 통화하고 있다. 어디냐고 묻는걸 보니 나보다 늦게 오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버스에 시동을 건 채 약 5분쯤 지나고 나니 남 녀 세 명이 헐레벌떡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차에 오른다. 내려오면서 내가 추월했던 사람들이다. 그들도 나름대로 상당히 빠른 걸음으로 걸었었는데 아무래도 함께 움직이다보니 조금 늦어진 모양이다.
예정시간보다 약 10분 정도 지체하여 중산리를 떠났다. 일단 버스에 타기만 하면 된다. 서울에 도착할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누워서 잠을 자도 되고 유튜브를 봐도 된다. 정중동(靜中動)이 아니라 동중정(動中靜)이다. 모든 것이 정체된 느낌을 받는다. 약 4시간의 긴 여행끝에 9시쯤 서울 양재역에 도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