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소경과 저는 자들이 성전에서 예수께 나아오매 고쳐 주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의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아이들을 보고 분하여 예수께 말하되 저희의 하는 말을 듣느뇨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케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
우리가 어렸을 때 교회를 예배당이라고 불렀습니다. 물론 교회는 예배당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예배당에 지나지 않아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합니다. 즉 교회는 무엇보다도 기도하려는 성도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성도들의 기도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왜 기도하는가?”라는 책에서 B. J. 윌하이트는 “하나님께서는 기도가 하나님의 집의 최우선적인 특징이 되기를 원하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슬쩍 보기만 해도 많은 교회들이 기도보다는 찬양과 설교 등으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집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와 다른 것으로 만들었음을 회개하고, 그리고 이제는 교회에 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기도하는 집으로 회복시켜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영적으로 회복되며 나아가서 만유를 회복시키는 본연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1. 우리 교회의 비전.
타 교회에 다니는 어떤 성도님이 우리 교회에 와서 주보를 보더니 이 교회에는 기도회, 기도회, 기도회, 기도회들이 쭉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는 “기도하는 교회”라는 책에서 “교회에서 기도는 최우선적이어야만 한다. 교회 프로그램에서도 최고의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감입니다. 왜냐하면 교회 안에 여러 가지 예배와 모임들이 있을 수 있지만 기도는 하나님께 직접 나아가는 것이며 우리가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께 개인적으로 직접 나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교회는 하루 세 번의 기도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점차 늘려 나가다가 미래의 어느 날 하루 24번의 기도회를 통해 24시간 기도 모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명실상부한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해야 할까요? 찰스 스펄전이 말한 대로 “기도회는 교회의 영적 발전소”입니다. 각종 기도회는 교회의 영적 발전소입니다. 기도회가 살아있어야 교회가 살아 있고 기도회가 능력이 있어야 교회가 능력 있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기도는 개인의 영혼의 호흡일 뿐 아니라 교회의 호흡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만 생기인 성령을 들이마실 수 있으며 영적 생명과 능력으로 가득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교회를 모여서 기도하는 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2. 교회는 초자연적인 은혜와 역사로 채워져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적인 요소가 아닌 신적인 요소들로 충만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 목사의 지식, 인격, 재능만이 나타나면 그 교회는 가련한 교회입니다. 목사의 한계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과 은혜와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교회이고, 은혜스러운 교회입니다. 각 개인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그 교회만의 독특한 소명과 은사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소명과 은사는 오직 성령님에 의해서만 분별되고 성취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새들백교회의 영향을 받은 일부 교회들이 모델 교회 운운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정말 모델 교회라면 그 교회가 초대교회를 닮았어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야말로 참으로 모든 교회의 모델이 되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초대교회의 매력과 강점은 어디에 있습니까? 웅대한 성전 박식한 강해 설교나 , 성경공부, 아니면 어떤 독창적인 프로그램에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매력과 강점은 바로 초자연적인 성령의 임재와 역사에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1:8절을 말씀을 받든 사도들과 120문도에 의해 성령의 권능으로 시작된 교회입니다. 초대교회는 신자의 100%가 성령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했으며 성령의 각종 은사들이 끊임없이 그 교회에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10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이는 대 교회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이런 교회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행 1:12-15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모인 무리의 수가 한 일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이처럼 초대교회의 강점은 모두 기도에서 온 것입니다. 그런데 잘 나가던 초대 교회에 위기가 왔습니다. 그것은 외부의 핍박이나 경제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기도에 전념하지 못하게 된 데서 발생한 위기였습니다.
행 6:1-4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이와 같이 사도들이 기도를 등한히 하였을 때 초대교회에 위기가 왔습니다. 구제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기도하는 시간을 그것이 대신 차지할 때 교회에 영적 위기가 오게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도 사도들은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라는 슬기로운 결단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위기를 잘 극복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같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제가 믿기로는 어떤 교회이든 그 교회가 무슨 문제를 가지고 있든 우리가 사도들과 같은 결단을 내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교회는 힘차게 부흥하게 될 것입니다.
3. 하나님은 기도하는 교회를 통해 열방을 만지십니다.
초대교회는 기도모임을 통해 세워졌습니다. 기도할 때 교회가 교회 됩니다. 기도할 때 교회에 성령이 임하고 교회가 부흥하고 은혜가 넘치고 기적과 표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기도할 때 세계를 선교할 수 있는 대형교회로 성장하게 됩니다. 피터 와그너 박사가 쓴 “성령의 능력과 교회 성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 보면 제가 상당히 좋아하는 다음과 같은 간증이 실려 있습니다. 1909년 1월 14일 아침 칠레의 한 야간 경비원이 발파라이소에 있는 자기 집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마치 그 침실에 서 계신 것처럼 생생하게 그의 꿈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잠자던 사람은 그리스도인이었고 그 지역의 한 감리교회 교인이었으며, 전에는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쳐다보시며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라. 나는 너에게 말하고 싶다."
"예, 주님!" 그는 놀라서 대답했습니다.
"너의 목사에게 가서 교회에서 가장 영적인 사람들을 모이게 하라고 말하라. 매일 모여서 기도하도록 이르라. 내가 불의 혀로써 그들에게 세례를 주겠노라."
이 꿈을 꾸고 그는 잠이 확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 사람은 당장 목사에게 달려가 자기의 꿈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그 목사는 그 즈음 몇 달간 영적인 축복을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꿈을 하나님으로부터의 타당한 계시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음날 오후 일단의 헌신된 교인들이 기도를 위해 목사관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의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매일 오후 5시에 모여서 계속 기도하기로 서로 약속했습니다. 기도가 시작된 후 그들에게는 서서히 범상치 않은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신자들은 영적 생활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숨은 죄를 깨닫고 고백하였습니다. 강퍅한 이방인들이 개종되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그들이 올바른 길에 있음을 확신시키는 꿈과 환상을 경험했습니다. 사람들은 커다란 축복을 기대했고 열렬히 기도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후, 4월 중순경부터 부흥이 시작되었습니다. 발파라이소 목사관의 교인들은 요엘 2장 28절의 말씀이 문자 그대로 자기들에게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리라." 성령께서 큰 권능으로 임하셨습니다. 칠레의 오순절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 감리교회의 담임목사님은 미국인 선교사인 윌리스 C. 후버였는데, 그때까지 칠레의 자기 교회에서 사도행전의 교회들과 같은 능력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1895년에 후버는 시카고에 있는 한 부흥하는 교회에 출석하고 있었으며 거기서 깊은 감동을 체험했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생애 가운데서도 그것과 유사한 어떤 것이 일어나기를 열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인도로부터 보내온 소책자 하나가 그의 생애를 서서히 바꿔놓기 시작했습니다. 판디타 라마바이(Pandita Ramabai)와 함께 젊은 과부들을 위해 일하고 있었던 그의 아내의 한 동창생이 그것을 보냈던 것입니다. 그 책은 지구 반대편의 신자들에게 어떻게 불로써 성령이 임하셨는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큰 감명을 받게 된 후버 부부는 베네수엘라, 노르웨이, 인도에 있는 다른 친구들과 성령에 관한 체험을 서로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 야간 경비원이 환상을 본 것은 바로 이때였고, 오후 기도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교회는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일 출석 인원이 7월에는 363명에 이르렀고, 8월에는 425명, 9월에는 527명에 이르렀습니다. 10월에는 예배 참석 인원이 팔, 구백 명을 헤아리게 되었습니다. 이런 괄목할 만한 성장은 칠레 감리교회에서 전례가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후버 목사와 그 교회의 교인들은 강력한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말미암은 공개적 사역들이 많은 사람들의 비위에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 지방의 몇몇 신문들은 “뉴욕에 있는 감리교선교협회로 돌아가라”는 기사를 게재했습니다. 어떤 동료 선교사는 “후버 목사가 발파라이소의 한 형사 법정에서 유죄 선고를 받았다”고 본국에 거짓 송사하는 전보를 치기도 했습니다. 1909년 연말에는 공식적인 비난이 그에게 가해졌습니다. 한 문서는 후버에 대해서 “손을 올리는 것, 불 세례, 믿음 치유의 기적들, 환상, 방언 은사, 예언, 그리스도의 재림일 예언, 성령의 권능으로 거꾸러지는 것, 기성 교회에 대한 반대 등의 교리를 가르친다”고 고소했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다 “반성서적이고 반감리교적”이라고 말해졌으며, 그로부터 얼마 후에 감리교회는 윌리스 후버를 축출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후버는 그러한 일에도 아랑곳없이 독립적으로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으며 오순절 감리교회를 세웠습니다. 이 교회는 해마다 굉장한 성장을 이룩해갔습니다. 오늘날 이 교단의 총 교인 수는 약 65만 명으로 집계됩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후버를 쫓아냈던 감리교회는 약 2만 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제가 이 글을 처음 읽었을 때 저는 이 글을 그저 부러워하며 읽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것을 능가하는 부흥의 가능성을 우리 교회에서 보면서 이것을 소개할 수 있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모두 기도함으로써 큰믿음교회를 이 교회를 능가하는 교회로 만듭시다.
앞으로는 사도적인 네트워크가 기존의 교단의 역할을 대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교단을 능가하는 교회를 꿈꿉니다. 교단보다 성도수가 더 많아지는 교회, 교단보다 지 교회를 더 많이 세우는 교회, 교단보다 선교사를 더 많이 파송하는 교회, 교단보다 더 많은 표적과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 교단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넓게 확장시키는 교회 그런 교회를 저는 꿈꾸고 있습니다. 나는 큰믿음교회가 충분히 그런 가능성이 있는 교회라고 믿습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날 기독교 단체를 보면 교회와 기도원 등 양대 단체로 크게 대별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선교단체와 마찬가지로 기도원 역시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기도원은 선교단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친히 몸으로 세운 교회처럼 근본적이거나 절대적인 조직이 아닙니다. 교회가 얼마나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원이 생겼겠습니까? 교회는 예수님이 지적한 대로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기도하기 위해 기도원엘 가야 합니까? 왜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교회에 가지 않고 기도원으로 올라가지요? 그것은 대다수의 교회가 기도가 충분히 쌓이지 않고 기도가 잘 안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기도원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교회는 기도하는 집이 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교회가 기도원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원처럼 교회는 기도하러 온 성도들의 발걸음과 기도 소리가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가 잘 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교회가 소망이 있는 교회이며 그런 교회를 통해 주님은 큰 부흥을 일으키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