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독립운동가, 반크 / 양선례
몇 년 전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이다. 그녀는 <신사의 품격>, <태양의 후예>, <도깨비> 등 내놓는 작품마다 흥행에 성공한 스타 작가이자, 마음을 녹이는 부드럽고 달달한 대사를 잘 쓰는 멜로 드라마 작가이기도 하다. 작품에 출연하는 주인공들은 드라마가 끝난 뒤 하나같이 스타덤에 오르기에 방송가에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작가의 이름 석 자만으로 출연을 결심하는‘김은숙 사단’이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녀가 전 세계에 1억 8천만명의 회원을 가진 넷플릭스에서 300억을 지원받아 만든 작품이 <미스터 션샤인>이다. 1900년대 풍전등화 같은 조선의 운명을 배경으로 사대부의 영애와 노비의 아들과의 사랑, 외세의 침입과 흔들리는 왕조의 운명, 그 속에서 나라를 구한다는 일념 하나로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의병이 되어 가는지를 말하고 있어 나 역시 재미있게 보았다.
작가가 이야기를 구성하게 된 배경은 놀랍게도 구한말 총을 들고 선 의병의 모습이 담긴 한 장의 사진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당시에 사진을 찾아보긴 했지만 긴 호흡의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에 탄복만 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사이버외교사절단 반크 단장인 박기태씨의 강의에서 사진에 얽힌 배경 설명을 듣고 다시 본 이 사진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묵직하게 다가왔다. 금장 단추가 양쪽에 달리고, 색이 많이 바랜 검정 군복을 입고 긴 칼을 폼나게 든 한 사람이 없었다면 나머지 사람들은 총을 내려놓고 그대로 밭일을 하러 가도 하등 이상할 게 없는 순박해 보이는 얼굴들이다. 구겨진 한복 바지 저고리에, 하얀색 두건을 이마에 두른 채 사진기를 응시하는 12명의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많이 봐야 열대여섯 살 정도로 보이는 앳된 소년도 있다. 1905년 을사늑약 후 일어난 정미의병의 모습을 영국의 종군기자 멕켄지가 1907년에 찍은 사진이다. 멕켄지는 영국 데일리 메일 신문의 극동특파원이었는데 의병활동을 취재하기 위해 조선에 왔다가 정미의병을 만나 사진을 찍었고, 본국에 돌아가서 책을 펴냈다.
반크는 4대 문명 발상지이자 지투(G2)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중국과, 경제발전 대국이자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의 만행에 맞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는 민간 단체이다. 전 세계 교과서와 백과사전 세계지도상의 우리나라 역사 왜곡은 심각한 상태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피침의 역사’, ‘속국의 역사’로 규정하고 있다. 즉 한국은 독립적인 주체국가가 아니라 긴 세월 동안 중국의 속국이었으며, 청일전쟁 이후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은 식민지 국가라고 표기하고 있다. 중국은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에 편입시키려는 ‘동북공정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1950년대부터 공무원들이 중심이 되어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가 아니라 ‘원폭피해국가’로 마치 자신들이 전쟁의 피해자인 양 전 세계에 치밀하게 홍보하고 있다.
세계 최고 국가 정보기관인 미국 CIA가 해외에 보급하는 한국의 해양 영토 지도에는 동해가 ‘일본해’로, 독도는 ‘리앙쿠르 록스’로 표기되어 있다. 리앙쿠르 록스는 일본이 한국의 독도 소유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 제3국에 홍보하는 이름이다. 구글에도 역시 ‘리앙쿠르 록스’라고 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수능 교재에 해당하는 미국의 세계사 온·오프라인 교육자료에는 우리나라가 중국의 속국이라는 내용이 곳곳에 서술되어 있으며, 역사 교과서의 중국 소개 자료는 30쪽, 일본은 20쪽인데 반해 한국은 달랑 1쪽이 기술되어 있다. 유럽에서 잘 팔리는 교과서에도 중국과 일본의 지도 위에는 그 나라의 다양한 문화를, 한국의 지도 위에는 강아지 한 마리를 그려넣는 등 한국에 대한 소개가 극히 미미하며 그조차 왜곡된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올해 세계인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 메인에는 200개 국가정보가 있는데 우리나라 지도에는 없는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지도에는 버젓이 표기되어 있다. 미국의 월마트와 호주에서 판매되는 유명 온라인 상품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욱일기’를 변형한 디자인 옷들이 팔리고 있고, 300억 인구가 시청한다는 넷플릭스에도 ‘동해’를 ‘일본해’로 써 놓았다.
반크는 전 세계 네티즌에게 한국을 바르게 알리는 외교 활동과 더불어 오류를 바로잡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일본 측을 대변하고 있던 세계보건기구(WHO) 홈페이지는 반크가 주도하는 글로벌 청원으로 2020년 10월 14일자로 일본의 바다영토로 표기되었던 독도와 울릉도가 삭제되었고, 넷플릭스는 청원된 지 하루만에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었다. 성과만 있는 건 아니다. 미국 CIA에는 무려 20년간이나 오기를 바로 잡아 주십사 청원하고 있으나 지금 이시간에도 수정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이런 상황을 잘 알지도 못 할뿐더러 안다고 하더라도 영어를 잘 하는 젊은이들이 할 일이라고 치부한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중국의 패권주의에 대항하려면 한 두사람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옛날 변변한 군복도 없이 총을 들었던 의병처럼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노력이 모이면 언젠가 전 세계 지도에 ‘일본해’ 대신 ‘동해’가 ‘리앙쿠르 록스’대신 ‘독도’가 당당하게 표기되지 않을까.
정미의병 사진을 다시 본다. 사진 속의 의병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형제였고, 동생일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이기에 목숨을 내 놓고 승패가 뻔한 싸움에 뛰어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곡괭이나 삽을 들고 땅을 일구던 평범한 사람들이 국가의 위기 앞에 두려움을 떨치고 분연히 일어섰을 것이다. 멀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그렇고, 가까이는 5·18민주항쟁이나 촛불혁명이 그것이다. 그 민초들의 힘으로 대한민국은 이만큼 성장했다. 국제 원조를 받던 국가에서 원조를 주는 유일한 나라가 되었다. 2050클럽을 넘어 2018년 3050클럽(GDP 3만달러 이상, 인구 5천만 이상인 국가)에도 가입했다. 3050클럽 회원이 전 세계에서 7개국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자부심을 느끼기 충분하다.
여행하면서 외국인에게 흔하게 듣는 소리가 ‘일본인’이냐는 거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으면 바로 이어서는 ‘중국인’이냐고 묻는다. 유럽은 물론 호주에서도, 미국에서도 그랬다. 심지어는 마추픽츄 오르는 버스 안에서 옆자리에 앉은 아르헨티나 아주머니도 그랬다. 한국은 모른다기에 아주머니가 쥐고 있는 휴대폰을 한국 회사가 만든다고 하니 그때서야 알아 들었다. 경제대국 12위에 빛나는 나라지만 세계인의 인식 속의 대한민국은 여전히 ‘리더’가 아닌 '세계의 변방'일 뿐이다.
반크 단장은 한국의 젊은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로 1인당 5명의 세계 젊은이와 진실한 친구가 되라고 조언한다. BTS와 블랙핑크 등의 1억 명의 한류 팬들이 넘쳐나는 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란다. 잘못된 한국의 역사를 그대로 받아들일 확률도 그만큼 높기 때문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전 세계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알려 그들의 자발적인 관심과 사랑을 이끌어내야 하는 게 젊은이들이 할 일이라고 말한다. 중국의 중화사상과 일본의 물량 공세에 심취된 전 세계 원로학자와 교수, 언론인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미래의 지도자가 될 해외 학생들에게 한국을 제대로 알리는 일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잘못 기술된 그들의 교과서나 지도를 그들의 말로 이의를 제기하여 바로 잡을 수 있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지난 20년간의 반크의 노력으로 전 세계 교과서의 단 3%만이 ‘동해’로 표기되었던 것을 40%로 끌어 올렸다. 아직은 60%가 남아 있기에 갈 길은 멀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옛날 총을 들었던 의병들처럼 힘을 모은다면 이룰 수 있는 꿈이 되지 않을까. 독립운동가가 되지는 못하지만 독립운동가를, 외교관이 되지는 못하지만 민간외교관을, 국제기구직원은 아니지만 세계평화에 이바지하는 젊은이를 키우는 교육이야말로 교육자인 우리가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왜곡과 편견의 역사를 바로잡는 21세기 독립운동가이자 민간외교관 반크(VANK)를 응원한다.
첫댓글 정미의병 사진 저도 보고 참담한 느낌을 받었어요. 대강 뉴스로 들었을 때 울분이 터졌습니다. 바로 선생님이 VANK(Voluntary Agecy Network of Korea) 이상으로 독립운동가입니다. 반크를 시작한 한 청년의 꿈이 세계 만방에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선생님 글 놀랐습니다. 너무 훌륭하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선생님, 정성스런 댓글 고맙습니다.
교수님처럼 세계시민으로 나아가는 글을 쓰기에는 아직 필력이 많이 부족합니다.
칭찬해주시는 선생님이 있어서 힘납니다.
오자가 나왔어요. Agency
한문으로 < 독도는 일본국 땅 >이라고 일본 지도에는 기록 했더라구요. 그나라 사람들은 그렇게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지도를 보냈겠지요. 젊은 날 일어 학원을 다니면서 회사원 아가씨와, 피아노 선생님과 펜팔을 잠시 했었어요. 배우면서 도움이 될까 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노래 가사만 보내주고 끝낸 적 있습니다. 선생님 글 잘 읽었어요.
저도 반크의 활약상을 최근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작은 후원이라도 해야지 생각해서 쓴 글이랍니다.
자유여행 해 보는 게 꿈이라서 외국어 한 가지라도 제대로 배워야지 하는데
계속 꿈만 꾸고 있습니다.
일본어로 펜팔까지 하셨다니, 대단합니다.
그 사람들은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으니 그러는 거겠지요.
깨어서 앞서가는 후배님의 역사 인식에 박수를 보내며 잘 읽었습니다.
선배님, 부끄럽네요.
그래도 칭찬 고맙게 받겠습니다.
교수님의 안목에 미치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글로써 만나게 되어 반갑네요.
뵙게 되면 꼭 인사드릴게요
그런데 늘 얼굴을 안 보여주셔서 알아볼 수 있으려나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 의견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저는 일본이란 나라에 여행도 가기 싫을 정도로 거부감이 있어요.
그러게요.
조금 전 뉴스보니 또 혈압이 오르더라고요.
반성을 모르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해 주고 싶네요.